한고조열전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전횡과 초장 계포의 상반된 충성 》

오토산 2020. 6. 21. 09:28



한고조 열전 (漢高祖 列傳) (126) 전횡과 초장 계포의 상반된 충성

유방은 천하 통일을 한 뒤에는 논공 행상을 공평하게 베풀어 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공평을 기해도 불평객이 전혀 없을 수는 없었다.
즉위식을 거행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장량이 입조하여 유방에게 아뢴다.

 

"예전, 제왕(齊王)의 후예인  전횡(田橫)이란 자가 지금 해도(海島)라는 섬에서 반란을 꾸미고 있사옵니다.

그러니 속히 손을 쓰지 않으면 후일 커다란 부담이 되겠습니다."
유방이 적이 놀라며 묻는다.

 

"손을 쓴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이까 ?"
장량이 대답한다.

 

"해도는 여기서 멀리 떨어져 있는 섬인 까닭에,

군사를 보내 토벌하기가 적절치 않으므로, 조서(詔書)를 보내어 회유하는 것이 좋겠사옵니다.

조서에는 전횡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제왕(齊王)에 봉한다는 하명(下命)을 내리도록 하시옵소서.

그리하면 전횡은 성은(聖恩)에 감동하여 반드시 굴복하고 들어올 것이옵니다."
유방은 장량의 말을 옳게 여겨 육가(陸賈)를 불러 말한다.

 

"내가 조서를 써 줄 테니, 대부가 해도에 가서 전횡을 회유하시오."
육가는 망망 대해를 건너 해도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전횡이 어디있는지를 알 길이 없었다.

 

그리하여 사방을 수소문한 결과, 어떤 어부가 이르기를,
"그분은 여기서 150여리 떨어진 즉묵현(卽墨縣)이라는 섬에 계시옵니다."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해도에서 즉묵현이라는 섬에 가려면, 파도가 몹시 거친 바다를 또 하나 건너가야만 하였다.
육가가 뱃꾼을 사가지고 거친 파도를 헤치고 즉묵현에 도착하니,

전횡은 유방의 사신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진문(陳門)을 굳게 걸어 잠그고 경계를 삼엄하게 하고 있었다.
육가가 진문 밖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한제께서는 초나라를 평정함으로써 천하를 완전히 통일하였소.

그리하여 군소 작은 제후들이 앞을 다투어 귀순을 하였으나 ,

귀공만은 승복(勝腹)을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된 일이오 ?

그리하여 한제께서는 귀공에게 특별히 조서를 보내셨으니,

속히 진문을 열고 나와 나를 만나 주기 바라오."
전횡은 육가를 맞아들여 조서를 받아 보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제왕(齊王)의 후예인 전횡 장군에게 글을 보내오>
짐은 이미 육국을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 하였소.

귀공이 비록 해도에 있다 하여도, 해도 역시 한나라 영토요.

나는 귀공에게 특별히 제왕의 자리를 주어,

전씨 문중(田氏門中)의 종사(宗祀)를 길이 누릴수 있게 해 줄테니, 빨리 달려와 귀순하도록 하시오.

만약 군사를 일으켜 엉뚱한 계획을 꾸민다면 전씨 일족을 전멸시켜 버리겠소.

그런 어리석은 일은 제발 하지 말도록 하시오.

전횡은 유방의 조서를 읽어 보고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

그리하여 곧 유방에게 달려가 귀순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하들이 반대하고 나왔다.

 

"유방은 겉으로는 무척 관대한 듯 보여도, 실상은 몹시 가혹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을 믿고 섣불리 귀순했다가 배반을 당하면 어떡하시렵니까 ?

차라리 우리들은 이 섬을 중심으로 합심하여 새 나라를 이루어 편히 살아가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옵니다."
그러나 전횡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이 척박한 섬에서 나라를 이루어 본들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는가 ?

유방이 일부러 사람을 보내 나를 <제왕>으로 봉해 주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옛 봉토를 회복할 수도 있지 않은가 ?

더구나 그의 말을 듣지 아니하면 군사를 보내어 우리 모두를 죽이려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대들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귀순을 아니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부하들이 다시 말한다.

 

"장군님의 생각이 그러시다면 장군님 혼자만 가시옵소서.

저희들은 이곳에 남아서 어부(漁夫)노릇이나 하겠습니다."

 

전횡은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어, 부하들을 해도에 남겨 둔 채 육가와 함께 낙양으로 떠났다.
부하들을 내버려두고 낙양으로 떠나 가는 전횡의 심정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더구나 낙양이 가까워 올수록 전횡의 마음은 괴롭기 짝이 없었다.

 

(내가 유방을 배반하고 해도로 도망간 것은, 그 옛날 유방이 제왕 전광(田廣)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

그런데 나는 제왕의 원수를 갚이 드리지는 못할지언정,

그의 휘하에 들어가 그를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은 자손의 도리를 벗어나는 일이 아니런가 ?)

 

전횡은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낙양으로 가는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결을 하고 말았다.
육가가 낙양에 돌아와 그 일을 사실대로 고하니, 유방은 크게 놀라며 말한다.

 

"전횡이 자결을 했다면, 아직도 해도에 남아 있다는 5백여 명의 그의 부하들이

주인의 원수를 갚는다며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

그렇다면 그들을 달래기 위해 모두 낙양으로 불러다가 벼슬을 주게 하여라."

육가는 황명을 받들고 해도를 다시 찾아갔다.

 

그러나 5백여 명의 부하들은 전횡이 자살을 하였다는 소식을 듣더니,
"그 어른은 우리들을 살리기 위해 당신 혼자서 자결을 하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어찌 그 어른을 희생시키고 우리들만 편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

이제나마 우리들도 뜻을 모아 그 어른의 뒤를 따르자 ! "하고

5백여 명의 한결같이 자결을 하고 말았다.
5백여 명이 주인을 따르기 위해 한꺼번에 자결했다는 것은

어느 역사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의거(義擧)였던 것이다.

 

육가가 낙양으로 돌아와 그 사실을 알리니 유방은 크게 감동하면서,

"그러면 이제부터 해도를 <전횡도(田橫島)>라고 이름을 바꿔 부르도록 하라."하고 특명을 내렸다.

 

(이곳은 지금도 산동성 청도 인근에 있는 섬으로 많은 관강객이 다녀가는 곳이다)
이렇게 전횡의 문제는 전횡 자신이 자결을 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유방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초나라에서 도망을 가버린 대장 계포와 종이매 문제였다.

그 두 사람이 지금 어디서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생사조차 알 길이 없어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마침내 다음과 같은 방문을 널리 써붙이게 하였다.

 

<초장 계포를 생포해 오는 사람에게는 황금 천 냥을 상금으로 준다.

만약 그를 숨겨 두고 신고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극형에 처한다. >
            ...

한편 계포는 구리산 전투에서 항우가 패망하자, 함양에 살고 있는 주장(周長)이란 사람의 집에 숨어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주장은 어느 날 누각위에 나붙은 계포를 찾는 방문을 읽어 보고 돌아와 계포에게 말한다.

 

"지금 한제는 장군을 찾아내려고 전국 방방 곡곡에 무서운 방문을 내걸고 있습니다.

장군을  숨겨두고 있는 사실이 탄로나는 날이면 우리 일가족은 모두 참형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어찌 했으면 좋겠소이까 ?"
계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결연히 말한다.

 

"잘 알겠소이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살아갈 길을 새로 모색해 보겠소이다."

 

그리하여 계포는 상투를 잘라 노예(奴隸)로 변장을 하고,

풍삼(馮三)이라는 이름으로 노(魯)나라에 있는 주씨 가문(朱氏家門)에 노예로 팔려가 버렸다.
주씨 가문에서는 풍삼을 진짜 노예인 줄로 알고 돈을 주고 사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풍삼의 행동거지가 결코 노예답지가 않음을 알게 되자 주인은,
(이 사람은 혹시 초나라 출신의 장수 계포가 살아 남기 위해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게 되었다.
그리하여 하루는 계포를 불러 묻는다.

 

"그대는 혹시 초나라 대장 계포가 아닌가 ?

조정에서는 계포를 엄중하게 찾고 있는 중이다.

그대가 계포라면 당장 조정에 잡아다가 바쳐야 하겠으니 사실대로 말하라."
계포는 더 이상 속일 수가 없음을 깨닫고 체념하며 말한다.

"저는 틀림없는 초장 계포입니다.

살아 남기 위해 노예로 변장을 하고 댁에 팔려 왔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사실이 드러났으니, 선생은 나를 관가에 잡아다가 상금을 타도록 하소서."

 

그러자 주인은 머리를 가로 저으며,
"내 어찌 상금을 타기 위해 사람을 죽게 할 수 있겠소.

천하의 갑부가 된다 하여도 그런 짓은 못하오.

나에게 좋은 친구가 한 사람이 있소.

등공 하후영(騰公 夏侯英)이라는 사람이 바로 내 친군데,

그 사람은 지금 낙양에서 한제의 중신으로 활약하고 있으니,

내가 그 친구에게 부탁하여 당신을 살려 주도록 하겠소."
계포는 <하후영>이라는 이름을 듣고 깜짝 놀란다.

 

"옛 !

하후영이오 ?"
계포가 놀라는 모양을 보고 주씨가 묻는다.

 

"왜 놀라시오 ?

내 친구 하후영이란 사람을 잘 알고 계시오 ?"
계포가 대답한다.

 

"잘 알다 뿐이옵니까. ''저는 지난날 하후영을 상대로

여러 차례 싸운 일이 있어서 그도 저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한제의 충신이니까, 그 사람이 저를 살려 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러자 주씨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한다.

 

"하후영은 결코 속이 좁은 사람이 아니오.

당신이 그렇게 불안하다면 내가 직접 하후영을 만나서 타협을 해보고 오리다."

 

주씨는 그날로 집을 떠나 낙양으로 하후영을 찾아갔다.
하후영은 주씨를 반갑게 맞아 술상을 내오자, 주씨는 술을 마셔가며 하후영에게 묻는다.

 

"계포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나라에서는 그를 엄중하게 찾고 계시오 ?"
하후영이 대답한다.

 

"계포는 항우의 부하로 있을 때 금상(今上)과 싸울 때마다 한제에게 많은 욕을 퍼부었습니다.

주상께서는 그 원한으로 계포를 기어이 잡아 죽이려는 것입니다."
주씨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말한다.

 

"무릇 남의 신하로 있는 사람이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오.

그런 일이야 어찌 계포에 국한된 일이겠소 ?

한제께서는 천하를 평정하신 지금에 와서도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려 하신다면 그런 편협된 생각이 어디 있단 말이오.

내가 보기에는 계포라는 사람은 좀처럼 보기 힘든 호걸이었소.

만약 그런 장수를 용납하지 못한다면,

계포는 북호(北胡)나 남월(南越)로 달아나서, 또다시 한제와 싸우려고 할 것이오.

그렇게 되면 국가적으로도 얼마나 막대한 손실이 되겠소 ?

그러니까 귀공이 한제에게 간해서, 계포를 관대하게 품도록 하시오.

중신들의 할 일이란 바로 이런 일일 것이오."

하후영은 친구 주씨의 충고를 옳게 여겨,

곧 입궐하여 유방에게 아뢴다.

 

"폐하 !

계포에게 무슨 죄를 물으시려고 그를 엄중하게 찾으시옵니까 ?"
유방이 대답한다.

 

"초장 계포는 전쟁터에서 싸울 때마다 나에게 참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소.

그것을 어찌 죄가 아니라고 할수 있으리오.

나는 그 분함을 풀기 위해서라도 그를 기어이 잡아 죽이려는 것이오."
하후영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아뢴다.

 

"비단 계포뿐만 아니라 모든 장수는 주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법이옵니다.

계포가 주상과 싸울 때에도 승리만 생각했을 뿐이지, 상대방인 한나라는 안중(眼中)에도 없었을 것이옵니다.

충성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

하오니 계포에게 사사로운 원한을 품으실게 아니라 그의 충성심을 높이 사 주셔야 하옵니다."

 

"경의 말씀은 참으로 옳은 말씀이오.

그러나 계포라는 자가 나에게 무참한 욕설을 너무도 많이 퍼부어,

그를 용서해 줄 기분이 좀처럼 나지 않는구려."
이에 하후영이 다시 아뢴다.

 

"폐하 !

우리 나라 신하들이 모두가 계포처럼 충성스럽다면,

폐하께서는 가만히 앉아 계셔도 천하가 잘 다스려질 것이옵니다.

계포는 지(智)와 용(勇)을 겸비한 현인이옵니다.

폐하께서 지금 천하를 평정하고 만승 지위(萬承之位)에 오르신 이 마당에,

계포 한 사람쯤 어찌 용납을 못 하실 것이옵니까 ?

바라옵건데 계포를 너그럽게 용서하시어, 폐하의 덕(德)을 만천하에 널리 펼쳐 보이시옵소서."

 

유방은 그제서야 자신의 편협됨을 진심으로 깨닫고,
"경의 말씀을 듣고 보니 내가 크게 잘못했소이다.

앞으로 계포를 찾게 되면 그의 과거를 불문에 붙일 뿐만 아니라,

그의 높은 충성심을 우리에게로 향하도록 회유하여,

옛날에 그가 지니고 있었던 지위를 수여하기로 하겠소."하고 말했다.
하후영은 크게 기뻐하며 즉시 퇴궐하여 주씨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알려 주었다.

 

주씨는 그 날로 집으로 돌아와 계포에게 교섭 결과를 상세히 말해주면서,
"한제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시니,

나와 함께 낙양으로 올라가서 한제를 만나 뵙도록 합시다."하고

같이 떠날 것을 재촉하였다.

계포가 낙양으로 올라와 유방을 알현하니,

유방은 반갑게 맞아 주면서 말한다.

 

"그대는 전국 어디에 있더라도 몸을 의탁할 곳이 없었을 터인데,

왜 일찌감치 나를 찾아오지 않으셨소 ?"
계포가 대답한다.

 

"항왕이 오강에서 자결을 하셨을 때, 신은 따라 죽지 못한 것이 부끄럽기 그지 없사옵니다."
유방이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지난 날 그대는 나와 싸울 때마다 무섭게 욕설을 퍼부었는데,

그것은 어찌 된 일이었소 ?"

 

"그때 폐하는 저의 적이었습니다.

적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짓인들 못하오리까.

그러니 싸울 때에 상대방에게 욕을 퍼부은 점에 대해서는 저는 추호의 뉘우침이 없사옵니다."
유방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과연 그대는 충렬지사(忠烈志士)임이 분명하오.

이제는 그대의 충성심에 의문이 가셔서 ,내, 그대에게 낭중(郎中) 벼슬을 내릴 테니 받아 주기 바라오."

 

그러자 계포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저에게 죽음을 면하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하온데,

어찌 관작까지 받을 수 있으오리까."하고 벼슬을 사양하였다.
유방이 다시 말한다.

 

"벼슬을 사양하다니,

아직도 항우를 잊지 못하고 있다는 말씀이오 ?

그러지 말고 과거지사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나와 백성들을 위하여

충성을 다 할 수 있도록 벼슬을 꼭 받아 주시오."
이에 계포는 유방에게 두 번 절하며 벼슬을 받고,

금후에는 유방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

* 글 긑에 붙여..
남자가 세상을 살다 보면,

충성의 결과로써 위의 전횡(田橫)과 계포(系布)와 같은 상반된 결론에 도달할 수가 있다.
앞서, 유방에 의해 패망한 제나라  전광(田廣)의 후예 전횡(田橫)처럼

승자(勝者)의 제의를 무시하고 자결(自決)로써 자신의 충성을 귀결 지어야 할까 ?

아니면 후자의 계포처럼 새로운 충성의 시발점(始發點)으로 삼아야 할 것인가 ?
이 글을 읽는 귀하의 생각은 과연 어떠하신지 ?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