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고조열전

한고조 열전(漢高祖 列傳)《종남산으로 들어간 장량 》

오토산 2020. 7. 3. 09:39



한고조 열전(漢高祖 列傳) (138)

종남산으로 들어간 장량

척씨 부인은 여의를 태자로 책봉하는 데 실패하고 나자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방이 먼저 죽고 나면

자기네 모자는 여 황후의 손에 그날로 죽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척씨 부인의 그러한 불안 심리를 유방이 모를 리가 없었다.
유방은 마음속으로 그에 대한 대책에 부심하다가, 어느 날은 척씨 부인에게 이렇게 물어 보았다.

 

"예전에 내가 <한단>에 주둔했던 일이 있었는데,

한단은 경치도 수려하거니와 사람들의 인심도 순박한 곳이었다

더구나 한단은 장안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어서

여의를 조왕(趙王)으로 봉해 한단으로 보냈으면 좋겠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

조왕으로 가 있으면 부귀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려니와,

여 황후의 그늘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겠으니 좋은 일이 아니겠나 ?"

척씨 부인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폐하께옵서 여의를 조왕으로 보내 주신다면 그처럼 다행한 일이 어디있겠사옵니까.

다만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여의가 아직 나이가 어려

나라를 제대로 다스려 나갈 능력이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옵니다."

 

"그런 일이라면 조금도 걱정 마라.

정사(政事)를 잘 살펴 줄 지혜로운 보필자(補弼者) 한 사람을 딸려서 보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다."
다음날 유방은 조회에 나와서 중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경들의 의견에 따라 태자를 바꾸지 않기로 하겠소.

그 대신 여의를 조왕에 봉하여 한단으로 보냈으면 하는데 경들의 의견은 어떠하오 ?"

중신들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여의 공자를 조왕에 봉하신다는데 누가 무슨 이론(異論)이 있겠사옵니까 ?"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소.

여의가 아직은 나이가 어리므로, 왕으로 보내려면 노성(老成)한 보필자를 한 사람 딸려서 보내야만 하겠는데,

누구를 함께 보내는 것이 좋겠소 ?"
그러자 승상 소하가 대답한다.

 

"대부 주창(大夫周昌)을 보내심이 좋을 줄로 아뢰옵니다.

주창 대부는 매사를 공정하게 처리하는 현사(賢士)이므로, 그 이상 좋은 보필자가 없을 것이옵니다."
유방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한다.

 

"음...승상께서 말씀하신대로,

주창 대부를 함께 보낸다면 그 이상 다행한 일이 없을 것이오."
그리고 그 자리에 참석해 있던 주창에게 간곡한 어조로 부탁을 한다.

 

"수고스럽지만, 경이 여의와 함께 한단으로 부임해 주기를 바라오."
그러자 주창이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신이 영광스럽게도 황명을 받들기는 하겠사오나,

경솔하게 가납(嘉納)하기는 매우 어렵사옵니다."
유방이 고개를 기울이며 묻는다.

 

"가납하기가 어렵다는 것은 무슨 뜻이오 ?"
주창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매우 외람된 말씀이오나,

신이 보필자로서의 중책을 맡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전제 조건이 있사온데,

폐하께서 그러한 조건들에 대하여 미리 응낙해 주셔야만 하겠사옵니다." 
유방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세 가지의 조건이란 어떤 것들이오 ?

말씀을 들어 보아서 가능한 것이라면 응낙을 해 주리다."
이에 주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내세웠다.

첫째, 조왕은 어떤 일에 있어서나 성년이 되기까지는 보필자인 자신의 말을 반드시 들어줄 것.
둘째, 조왕은 일단 임지로 부임해 간 뒤에는 친어머니인 척씨 부인과도 서신 왕래(書信往來)조차도 일체 단절할 것.
셋째, 자기가 보필자로 부임해 가면 그쪽 일이 바빠서 자리를 비우기가 곤란하니,

조정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자기를 불러 올리지 말 것.

"이상과 같은 세 가지 조건을 폐하께서 응낙해 주시되

그냥 말씀만으로 응낙해 주실 것이 아니라 반드시 친필 문서(親筆文書)로써 응낙을 해 주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 즉석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오.

그러면 여의를 이 자리에 불러다 놓고 문서를 작성해 주리다."

유방은 여의를 어전에다 불러다 놓고 주창에게 문서를 작성해 주면서,
"이제는 사전 준비가 다 되었으니,

여의는 오늘부터  당장 조왕으로 부임할 준비를 시작하라."하고 명했다.


그리하여 수 일간 부임 준비가 끝난, 열두 살짜리 조왕 여의가 궁중으로 들어와

척씨 부인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니, 척씨 부인은 아들을 부등켜 안고 흐느껴 울면서,

 

"네가 조왕으로 떠나가 버리면 우리 모자는 언제나 또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느냐."하고

좀처럼 헤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이윽고 여의가 수행원을 이끌고 주창과 함께 길을 떠나게 되자,

유방은 척씨 부인과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을 나와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는 것이 아닌가 ?
주창은 그 광경을 보다 못해 유방에게 냉철하게 간한다.

"폐하 ! 폐하는 만인의 어버이이시옵니다.

사해 창생(蒼生) 모두가 폐하의 적자(赤子)가 아닌 사람이 없사온데,

어찌하여 폐하께서는 조왕 한 사람만을 편애(偏愛)하시어, 이처럼 눈물을 흘리고 계시옵니까 ?

눈물을 거두시고 속히 환궁하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서야 눈물을 거두고 대궐로 돌아오는데,

문득 백성 하나가 달려 오더니 땅에 엎드리며 다음과 같이 호소하는 것이 아닌가 ?

 

"폐하전에 긴히 여쭐 말씀이 있사옵니다."

 

"무슨 말이냐,

어서 말해 보아라."

 

"폐하 ! 소하 승상으로 말하면, 폐하 다음으로 이 나라의 최고 어른이시옵니다.

그런데 그 어른이 상림원(上林苑: 나라 땅)의 공지를

백성들에게 개간하게 하여 자기가 농사를 지어 먹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많은 뇌물을 받아 부귀를 한없이 누리고 있으니,

승상이라는 사람이 이래 가지고서야 이 나라가 장차 어떻게 될 것이옵니까."하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

유방은 너무도 놀라운 고발에 아연 실색하였다.
그리고 소하가 불의를 저질렀다는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발자에게  큰소리로 이렇게 꾸짖어 주었다.

 

"너는 무슨 곡해 심정(曲解心情)으로 승상을 함부로 무고(誣告)하는 소리를 지껄이고 있느냐,

소하 승상은 백성을 동원해 사리(私利)를 도모하거나, 아랫사람들에게 뇌물을 받아 먹을 어른이 아니로다."
그러자 고발자가 오히려 성을 발칵 내며 아뢴다.

 

"폐하께서는 정당한 고발을 무슨 이유로 무고라고 말씀하시옵니까 ?

만약 소인의 말이 믿어지지 않으시면, 상림원에 직접 가 보시면 될 것이 아니옵니까 ?

상림원의 공지를 개간하여 곡식을 심기까지는 여러 천 명의 백성들이 고된 부역(賦役)을 했던 것이옵니다."

 

"알았다.

그러면 내가 상림원을 직접 가 보아서 사실 여부를 확인하도록 하겠다."

유방은 대궐로 향하던 행차를 돌려, 직접 상림원으로 가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수 만 평에 달하는 상림원 공지가 송두리째 개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는 곡식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

 

(명재상이라고 철석같이 믿어 왔던 소하가 원 이럴 수가 있을까....? )

유방은 분노가 극도에 달했다.

그리하여 대궐로 돌아오자 사감부(司勘部) 정위(廷尉)를 불러 서릿발 같은 명령을 내렸다.

 

"승상 소하를 당장 체포하여 옥에 가두라 ! "

승상 소하는 영문도 모른채 벼락같이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자 전옥(典獄) 왕위가 급히 달려와 유방에게 묻는다.

 

"소하 승상을 무슨 죄로 하옥시키라 명하셨사옵니까 ?"
유방이 대답한다.

 

"소하는 백성들을 동원하여 상림원의 공지를 개간해 가지고 곡식을 심어 사리(私利)를 도모하였다.

아무리 승상이기로 그런 자를 어찌 그냥 내버려둘 수 있느냐 ?"
왕위는 천부당 만부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으며 말한다.

 

"어떤 자가 그런 고자질을 했는지 모르오나,

소하 승상이 공지를 개간하여 사리를 도모했다는 것은 커다란 오해이시옵니다.

실상인즉, 폐하께서 진희의 반란과 영포의 반란을 평정하시기 위해 대군을 거느리고 출정하셨을 때,

소하 승상은 군량을 풍족하게 공급해 드리기 위해 백성들을 총동원하여

공지를 대대적으로 개간하였던 것이옵니다.

 

상림원의 공지도 그때에 개간하여 곡식을 심은 것이옵니다.

소하 승상께서는 거기서 나온 곡식을 한 톨도 사유(私有)한 일이 없사옵니다.

국가를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공지를 개간하여 곡식을 심게 한 것은 승상의 임무인 줄로 아옵니다.

그런 것을 가지고 폐하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
유방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소인배의 말을 듣고 승상을 의심한 것은 내가 너무도 불민한 탓이로다.

승상을 직접 찾아가서 사과해야 하겠으니, 나를 옥으로 인도하거라."

황제가 몸소 감옥에 납신다는것은 법도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유방은 승상을 함부로 하옥시킨 죄책이 너무도 심하여,

직접 감옥으로 찾아가 사과의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유방은 소하를 직접 석방시켜 주면서 말한다.

"내가 워낙 불명하여, 승상을 일시나마 하옥시켰던 잘못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오.

경은 아무런 죄도 없이 하옥당하면서 어찌하여 한마디의 변명조차 아니 하셨소이까 ?"
소하가 국궁 배례하며 아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신이 조금만 참고 견디면 주상께서 반드시 알아 주실 일이온데, 구차스럽게 무슨 변명이 필요하겠나이까."
유방은 그 말에 더욱 감격해 하며 말한다.

 

"경은 진실로 현명한 재상이시오. 경같이 어질고 너그러운 분을 참소한 소인이 있었으니,

내 그런 놈을 그냥 둘 수는 없소이다."
그리고 유방은 소하를 무고한 자를 당장 잡아다가 목을 베어 버리라는 명령을 내리고야 말았다.

한편, 소하가 아무 죄도 없이 투옥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도 놀란 사람은 장량이었다.
장량은 한숨을 쉬며 혼자 탄식해 마지않았다.

 

(소하 같은 명재상을 투옥 시킨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가 아니런가 ? 

주상은 제위(帝位)에 오르고 나자 한신,영포,팽월 같은 공신들을 모조리 죽여 버리더니,

이제는 소하도 처치해 버릴 생각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나 역시도 무사하기는 어려울 것이 아니겠는가...? )

장량은 문득 태자의 계승 문제를 자기가 배후에서 조종해 왔음을 깨닫고 가슴이 철렁하였다.

만약 <상산 사호>를 가지고 배후에서 조종하지 않았던들 

지금쯤은 유방의 뜻대로 <여의>가 태자로 책봉되었을 것이 분명했겠기 때문이었다.
그런 막후의 비밀이 지금이라도 유방에게 탄로나는 날이면 자기 자신도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장량은 <상산 사호>들을 찾아가 모든 것을 사실대로 고백하고 나서,
"나는 아무래도 종남산으로 들어가 수도나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이다."하고 말했다.

상산 사호들은 즉석에서 찬성하며 말한다.

 

"태자 책봉 문제는 이미 지나간 일이 되었으니, 별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그러나저러나 선생께서 종남산으로 들어가신다면 저희들도 선생을 따라 산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나를 따라 들어가겠다는 말씀이 고맙기는 하오.

그러나 우리가 한꺼번에 모두 떠나 버리면 주상께서 오해를 하실지 모르니,

그 점도 생각하셔야 하오."

무슨 일에나 용의 주도하기가 이를 데 없는 장량이었다.
장량의 말에 <상산 사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희들은 나중에 떠나기로 할 테니 선생은 주상의 윤허를 받아 종남산으로 먼저 떠나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장량은 유방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려고 오랜만에 입궐하였다.
장량이 입궐하니 유방은 크게 반가워하며 말한다.

 

"선생을 오랜만에 만나 뵙게 되어 이렇게도 기쁜 일이 없소이다.

그간 건강은 어떠하시옵니까 ?"

 

장량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한다.

"신이 그동안 신병으로 인해 자주 문후를 여쭙지 못해 죄송스럽기 그지 없사옵니다."

 

"신병이라고요 ... ? 

어디가 어떻게 불편하시다는 말씀이시옵니까 ?"

 

"매우 외람된 말씀이오나, 이제는 신도 나이가 많아 심신이 모두 노쇠해졌사옵니다.

앞으로는 산수가 좋은 종남산으로 들어가 여생을 한가롭게 보내고 싶사오니 폐하께서는 윤허를 내려 주시옵소서."
유방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낙심하며 말한다.

 

"선생께서 내 곁을 떠나시다뇨 ?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

선생은 그동안 공로가 너무도 많으셨기에 나는 선생에게 관작을 수여한 바 있었지만,

선생께서 굳게 사양하시며 관작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와서는 갑자기 내 곁을 떠나겠다고 하시니,

혹시 내게 대해 무슨 불만이라도 계시는 것이 아니옵니까 ?

만약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씀해 주소서."
장량은 거듭 머리를 조아리며 말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관후 인덕하신 폐하께 신이 어찌 불만이 있을 수 있으오리까.

신이 관작을 사양한 것은 다만 신의 신념일 따름이었사옵니다.

신이 종남산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은 오로지 몸이 쇠약해진 때문이오니,

폐하께서는 쾌히 윤허해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다른 일도 아닌 건강을 위해 종남산으로 들어가시겠다면 어찌 무리하게 붙잡을 수 있으오리까.

그렇다면 선생의 뜻대로 떠나도록 하시옵소서.

그러나 나 역시도 몸이 자꾸만 쇠약해 와서 우리가 지금 작별을 하게 되면 차후에 언제 다시 만나게 될는지,

그 일을 생각하면 단장(斷腸)의 비애를 금할 길이 없구려."

 

이렇게 말하며 유방은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기까지 하는 것이었다.
유방은 장량과 이제 작별하면 다시는 만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차마 그 애기만은 입 밖에 꺼낼 수가 없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회자 정리(會者定離), 생자 필멸(生者必滅), 이라더니,

영원한 것도 없는 것이 인생 무상이로다.. ! )하는 생각이 내내 그의 마음을 짖눌렀다.

 

이렇게 장량이 종남산으로 들어간 얼마가 지난 후에

<상산 사호>들은 유방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이제 천하는 통일되어 사해가 안정되었사옵고, 태자 또한 영명하시기 그지없사와,

이로써 한(漢)나라의 국기(國基)는 튼튼하게 다져졌사옵니다.

저희들은 이미 팔십을 넘어 기동이 자유롭지 못하오니,

이제는 자연으로 돌아가 여생을 조용히 보내게 해 주시옵소서."

 

장량과의 약속대로 그들도 장량의 뒤를 따라 종남산으로 들어가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유방은 <상산 사호>들을 서글픈 얼굴로 바라보며 만류한다.

 

"장량 선생이 내 곁을 떠나신 것이 바로 엊그제의 일이오.

장량 선생이 떠나셔서 가뜩이나 마음이 서글픈데 선생들조차 왜 내 곁을 떠나겠다고 하시오 ?

태자가 아직 나이가 어리니, 선생들은 하산하신 김에 끝까지 태자를 지도하며 보살펴 주소서."
그러나 <상산 사호>들은 다시 머리를 조아리며 아뢴다.

 

" 지금 조정에는 현신들이 가득 차 있어서, 이미 늙어 버린 저희들로서는 이 이상 할 일이 없사옵니다.

그러니 수많은 현명한 대부들로 하여금 태자를 교육케 하시오면 ,

태자께서는 다양한 여러 방면의 지식을 얻으실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소생들은 비록 산으로 들어가더라도 그동안 베풀어 주신 성은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유방은 더 이상 <상산 사호>들을 붙잡아 둘 수가 없음을 알게 되자

많은 사례를 내려 주며 그들을 산으로 보내 주기로 하였다.
장량을 비롯하여 <상산 사호>까지 떠나 보내고 나니, 유방의 심정은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그리하여 어느 날은 태자 영을 불러서 말한다.

"나는 홀홀 단신으로 군사를 일으켜,

강대국인 진나라와 초나라를 모두 평정하고 드디어 천하를 통일 하였다.

그간에 나를 배반하고 돌아선 자들도 많았지만,

기모 묘산(奇謨妙算)으로 나를 도와 준 공신들도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

이제 천하를 통일하고, 정국을 안정시키고 나니, 지난날의 공신들 생각이 새삼스러이 간절하구나.

이제 그들의 공적을 찬양하는 마음에서 이미 작고한 공신들을 포함하여,

모든 공신들의 초상화(肖像畵)를 그려, 공신각(功臣閣)에 모셔 놓고,

후손들에게 길이 전해 내려가도록 해야 하겠다."

 

유방은 그 날로 화공(畵工)들을 불러 공신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목수들을 불러 공신각을 대규모로 짓게 하였다.

그로부터 몇 달 후에 공신들의 초상화를 공신각에 모시게 되자,

유방은 공신들의 초상화를 일일이 돌아보며 그들의 내력과 공적을 태자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태자는 기신(紀信)의 초상화 앞에 이르자,
"영양성 싸움 때에 만약 기신 장군께서 목숨을 걸고 저를 구출해 주시지 않았다면,

저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옵니다."하고 말했고,

 

또 하후영의 초상화 앞에서도 발을 멈추고,
"만약 하후영 장군께서 초나라 팽성에 잡혀있던 저를 구출해 오지 않으셨다면,

오늘날 저는 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하고 말하자

유방은 매우 기뻐하며 이렇게 칭찬하였다.

 

"네가 근본을 잊지 않고 있으니,

세상에 이렇게도 기쁜 일이 없구나."
그러나 공신각에는 초나라 대사마(大司馬)였던 항백(項伯)의 초상화는 걸려 있지 않았다.

 

항백의 아들 항동(項東)이 그 사실을 알고,
"홍문연 연회 때에 폐하를 구출해 드린 사람은 저의 아버지셨는데,

제 아버님의 초상화는 어찌하여 걸려 있지 아니하옵니까 ?"하고 항의하니

 

 

유방은 즉석에서,
"그것은 나의 실수였노라.

너의 아버지의 초상화를 새로 그려 걸게 하고, 너는 내 사위로 삼으리로다."하고 말하며

소화 공주(小華公主)를 항동에게 주기로 하였다.
                   ...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