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풍기가 내려보이는 죽령주막에서 점심을

오토산 2020. 7. 18. 17:59

풍기가 내려보이는 죽령주막에서 점심을

 

요즘 단양에서 영주를 죽령터널을 이용하여 다니는데 터널이 없던 시절 굽이굽이 돌아

죽령에 오르면 숨 차게 올리 왔던 차량은 쉬게하고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죽령고개에 내려서 멀리 단양과 풍기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죽령주막의 동동주 한 잔이 맛 있었던 길!!

오늘은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올라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죽령루에 올라서 권갑현 교수님이 퇴계선생의 촉령대운과 온계선생의 차운시를 설명하였다.

형 온계선생이 충청감사로 재임하시며 말미를 내어 고향으로 오실때 퇴계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임하면서 죽령에서 맞이하여 요원(腰院)아래 좋은자리에 자연을 다듬어 자리를 만들어

동편에는 유뇌계의 <죽령행>에서 '죽령길 백 번 돌고 돌아 높은 잔도 구름위에 닿았네

(竹嶺行百盤 棧道浮雲邊)'를 취해 잔운대(棧雲臺)라 하고 서편에는 점필재의 <유두류산>에서

'산은 우뚝하고 물은 맑네(雲根矗矗水冷冷)'를 취하여 촉령대(矗泠臺)라 이름하였으며

골짜기는 두보의 시 '기러기 그림자 골짜기 안에 이어졌네(鴻雁影來連峽內)'를 취하여

안영협(雁影峽)이라 하고 다리는 강엄의 <별부>에서 '사람의 혼을 녹이는 것은 오직

이별일 뿐이다(黯然銷魂者惟別而已)'라고 한 구절을 취하여 소혼교(銷魂橋)라 이름하며

 만났으며 헤어질때 온계선생이 '자네는 이 고을을 떠나지 말게 명년에 내 다시 와서

이 자리에서 술잔을 들자' 하였으나 온계선생이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다시 만날수 없게 되자  형제간의 마지막 만남이 될줄이야 ??

 

죽령루(竹嶺樓)에 올라서 풍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선현의 마음을 느끼며

 두 분의 이별시에 대한 해설을 하시며 시비는 죽령에서 풍기로 내려오는길에

세워져 있으나 버스를 세워서 살펴볼 수가 없는 구간이란 설명도 덧 붙었다.

우리는 죽령루를 내려와 죽령주막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으며 동동주를

한 잔 나누었는데 식당에 쓰여진  글귀가 재미있어 음식이 더 맛있었다.

 

오랜시간 얼을 머금은 가마솥이,

 맑고 깨끗한 죽령의 세월이 더 해진 장맛이,

소백산의 이슬을 먹고 자란 산채가 약이 되는 음식입니다

좋은 재료와 좋은 조리법이 만나서 정성이 더 해지면 건강한 음식이 됩니다.    

 

죽령(竹嶺)은 소백산 연화봉과 도솔봉이 이어지는 잘룩한 지점(695m)에 위치하며

<삼국사기>에 '158년(이딜리왕 5) 3월에 비로소 '죽령길이 열리다'라고 하였고

<동국여지승람>에는 '아달라왕 5년 죽죽(竹竹)이 죽령길을 개척하고 지쳐서

순사(殉死)했고 고개마루에는 죽죽이를 제사하는 사당(竹竹堂)이 있다'라고 기록하였으며

유구한 역사와 온갖 애환이 굽이굽이 서려있는 죽령은 삼국시대 고구려와 신라가

대치하며 삼국의 군사가 뒤엉켜 엎치락 뒤치락 하는 불꽃튀기는 격전장이기도 하였고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청운의 꿈을 안은 선비들의 과거길이었고

영난과 호서의 문물을 나르는 보부상과 나그네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았던 곳이었으나

교통이 발달되면서 가끔씩 등산객이나 관광객이 차는 한적한 길이 되어 버렸다.

 

죽령 고개에서 퇴계선생과 온계선생이 만나서 형제의 정을 나누었던 이야기를 들으며

산채비빔밥을 먹는데 정회장님이 동동주와 도토리묵을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되었고

배불리 먹고 십승지로 알려진 풍기읍 금계리의 금양정사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