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

금양정사와 금선정을 다녀와서

오토산 2020. 7. 18. 21:01

금양정사와 금선정을 다녀와서

 

죽령에서 점심을 먹은 후 오후 첫 답사로 금계 황준량선생을 모시고 있는 금양정사와

금계선생이 자주 소요하던 곳에 세워진 금선정을 찾았다.

 

금양정사(錦陽精舍)는 퇴계문인으로  신령현감, 단양군수, 성주목사 등을 역임하시며

향촌교화에 힘쓰신 조선중기 문신인 금계 황준량(錦溪 黃俊良 1517~1563)선생이

만년에 장수처(藏修處)로 삼기 위하여 건립하였으나 완공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고

1566년(명종 21) 퇴계선생이 풍기를 지나다가 황폐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풍기군수에게 청원하여 조환익 풍기군수가 금양정사 수호를  지시하는 체문(帖文)을 내렸고

다시 황폐하여 1595년(선조 28) 류운룡 풍기군수가 퇴계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수호지시를

내렸으며 병자호란때 소실되었다가 1701년(숙종 27) 중건하였다고 한다.

 

욱양단소(郁陽檀所)는 원래 욱양서원(郁陽書院)으로 1662년(현종 3) 풍기읍 욱금리에

건립되었으나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복설되었는데

농업용 저수지인 금계호가 건설되면서 금양정사 왼편으로 옮겨 졌다고 한다.

 

입구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몇 굽이 올라서 성천(聖泉)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숨을 돌리고

욱양단소에서 퇴계선생과 금계선생을 참배를 하고 금양정사 왼편에 있는 종택

영월헌(迎月軒)에 올라서 황재천 종손님으로 부터 금계선생의 유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종손님은 영주 소수서원에서 한계를 느낀 선비들이 욱양서원을 세우게 되었고

금계선생은 학풍 일신에 노력하여 1551년 신령현감 재임시 백학서당을 창건하였고

1557년 단양군수로 부임하여 「단양진폐소」를 올려 빈궁한 백성들에게 10년간 면세를 하고

단양향교 중수와 우탁 사당 제향으로 학풍일신에 노력하였으며 1560년 성주목사로 부임해

영봉서원 중수와 공곡서당, 녹봉정사를 세우는 등 교육사업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하며

성천(聖泉)은 고려태조 왕건이 마셨다고 전하며 일제는 금계(錦溪)를 금계(金溪)로 지명을

바꾸면서 탄압을 한적도 있으며  금양정사가 6.25때 소실되되면서 금계선생에 관한

많은 자료들이 사라지게 되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설명을 마쳤다.

 

금선정(錦仙亭)은 풍기군수 이한일이 건립한 정자로 이 부근은 금계선생이 자주 소요를

하였던 곳이며  계곡의 널찍한 바위를 금선대(錦仙臺)라 이름하였다고 전하며

송림이 우거진 숲이 있고  암반위를 흐르는 계곡물이 아름다운 곳에 바위 위에 세워진

정자로 정자의 기둥이 암반의 높이에 따라 길이가 각각 다른 것이  특징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는 휴가를 즐기는 사람들도 볼수 있었으며

또 장자 입구에는 금계선생의 <유금선대>시가 황재국교수님의 글씨로 새겨져 있었고

정자 뒷편에는 금계황준량선생 추모비와 계양정이 세워져 있었으며

계양정 앞 노송에는 낙옆이 쌓인 줄기위에 느티나무 씨가 날아 들어

나무줄기에서 나무가 자라는 모습도 볼수가 있었다. 

 

금양정사에서 욱양단소에 참배를 하고 종손님으로 부터 좋은 말씀을 듣고

종손님깨 감사를 드리고 금산정에서 절경을 구경하고 다음 답사지인 소수서원을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