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 황전마을 도암정을 다녀와서
소수서원을 나서서 안동으로 오는 길에 있는 연꽃이 피어있는 황전마을 도암정을 찾았다.
도암정 왼편의 '예향황전(禮鄕黃田)'이란 비석과 뒷편 마을입구의
'효(孝)는 백행(百行)의 근본(根本)'이란 비석이 마을의 모습을 알려주는 듯 하였다.
도암정(陶巖亭)은 조선시대 문신 황파(黃坡) 김종걸(金宗傑 1628~1708)이
1650년(효종 원년)에 당대 유림들과 교유하면서 시사공론(詩事公論)과 시영(詩詠)을 즐기던
정자로서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마루를 두고 양쪽에는 온돌방을 두고
전면 반칸에는 누마루로 꾸미고 계자난간을 설치하였으며 초석은 자연석 주초를 사용하였고
후면에는 자연암반 위에 바로 기둥을 세웠고 기둥은 전면에만 원주(圓柱)를 사용하고
주상(柱上)에는 소로수장만 한 간결한 모습이다.
도암정은 바위의 형태가 둥글고 두루 갖추어져 마치 큰 항아리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며
정자 곁에 부여잡고 올라가는 돌은 재암(梯巖 사다리바위), 동쪽에 홀로 서있는 것은
병암(屛巖 병풍바위), 서쪽에 누운 것을 은암(隱巖)이라 부르고
정자 오른쪽방 앞에 걸린 '연비어약(鳶飛魚躍)'은 '솔개가 날고 물고기가 뛴다'는 뜻으로
인생의 즐거움을 비유할때 쓰기도 한다.
정자의 전면에는 방형의 연지(蓮池)를 조성하였는데 주위 바위들과 노송들이
정자와 좋은 조화를 이루어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뛰어난 조경미를 잘 나타내고 있어
달력의 배경사진으로 자주 등장하기도 하였다.
정자에 올라서 주변을 돌아보며 권갑현 교수로 부터 상세한 설명을 듣고
정자 뒷편 마을을 구경하였더니 경암헌고택과 일학당 등 옛날 고가들을 볼수 있었다.
경암헌고택(畊菴軒故宅)은 원래 영양남씨종택으로 진사(進士) 남구수(南龜壽)가 건립하여
김종걸선생의 조부가 장인으로부터 건물을 이어받아 현재 의성김씨 황전문중 종택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가 'ㅁ'자를 구성하고 사랑채(경암헌)는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돌을 쌓은 단 위에 주춧돌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운 남도리집이고 앞면에는 툇마루,
뒷면 왼쪽은 온돌방, 오른쪽은 마루를 지었고 가운데 기둥간격을 좌우보다 좁게하여
누은재(陋隱齋)라는 편액을 걸었는데 이런 구성은 다른 건물에서 보기 드문
독특한 모습이라 한다.
또 이 마을은 영양남씨들이 다 떠나고 현재는 의성김씨 집성촌으로
'외손이 들어 오면 본손이 망한다'는 말이 전하여 오기도 한다고 한다.
도암정을 끝으로 장회나루에서 퇴계선생과 두향이 이야기로 시작하여
암각자(복도별업, 탁오대)를 돌아보며 단양에서 10개월 안되는 기간을 군수로 근무하시며
지명도 많이 지으시고 시도 많이 남기신 퇴계선생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죽령에서 온계선생과 퇴계선생이 나눈 형제의 정과 아쉬운 이별도 느껴보았으며
금양정사에서 제자에게 베푸신 애뜻한 애정도 느껴보면서
소수서원을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사액서원으로 남기신 업적 등을 돌아보며
이 달의 거경대학 여행기를 마칩니다
준비를 하여주신 도산서원 선비수련원 관계자분들과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리며
다음 달에 더욱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뵙기를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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