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옥쇄 불의와전' 발간보고회를 다녀와서
10.23. 13:30 안동댐 예움터마을 구인당 광장에서 국학자료 발간 보고회에 다녀왔다.
코로나로 인하여 각 문중의 종손님들과 내앞문중의 관계자분들과
국학진흥원관계자들과 일부시민으로 80여명이 모여서 보고하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오늘 보고회는 "전통을 이어 미래를 여는 국학의 진흥'을 목표로 하는 한국국학진흥원에서
풍산류씨 화경당(북촌댁), 의성김씨 지촌문중, 재령이씨 영해파 종가, 진성이씨 향산고택'에 이어
다섯번째 문중이야기로 2003년과 2010년 두차례 고서 2,043건, 고문서 720점, 서화류 24점,
목판 336점 등 3,155점 문중에서 기탁한 전통기록유산을 정리한 보고서로
김진선생이 말씀하신 '寧須玉碎 不宜瓦全(영수옥쇄 불의와전 : 차라리 옥으로 부서질지언정
기왓장으로 온전하기를 구하지 마라'를 보고서 제목으로 삼았다.
내빈소개와 조현재 국학진흥원장과 천전파 김창균 종손님의 인사에 이어
연구를 맡아서 정리를 한 권오덕 박사가 연구결과를 보고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의성김씨는 경순왕의 넷째 아들로 고려초기에 많은 치적을 쌓아 의성군(義城君)으로 봉해진
김석(金錫)을 시조로 승봉함으로 의성을 본관으로 삼게되었고 8세 김공우(金公瑀)의 아들대에
이르러 가문이 크게 번성하여 장남 김용비, 차남 김용필, 삼남 김용주가 세갈래로 분파하였다.
김용비(金龍庇)는 고려 태자첨사를 지내고 그의 아들 김의(金宜)는 감문위상호군을 지냈으며
손자 김태권(金台權0은 문예부좌사윤을 지냈다.
의성김씨가 안동지방에 정착하게 된 것은 1363년(공민왕 12)에 일어난 흥왕사의 변으로
김태권이 목숨을 잃자 그의 아들인 김거두(金巨斗)가 화를 피하여 안동으로 내려오면서 부터
김거두의 아들 김천(金洊)은 풍산현에 살다가 만년에 방적동(邦適洞)으로 이거하였으며
김천의 차남 김영명(金永命), 김영명의 장남 김한계(金漢啓 1414~1461)가 방적동에 살다가
김한계의 장남 김만근(金萬謹0이 임하에 살던 돈용교위 오계동(吳季潼)의 딸에게 장가를 듬으로
의성김씨 천전파 입향조가 되고 김만근의 장남 김예범(金禮範 1479~1550)이 종가규모를 넓혔고
김예범의 장남 청계(靑溪) 김진(金璡 1500~1580))은 1525년 사마시에 합격,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출사를 포기하고 귀향한 뒤 다섯아들을 퇴계 이황에게 보내어 수학시켰으며
극일, 성일, 복일은 문과에 급제하고 수일, 명일은 사마시에 합격하게 되어 천전오룡(川前五龍),
김씨오룡(金氏五龍)이라 했고 청계종택을 오자등과댁(五子登科宅)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천전파 대종택이 있는 내앞마을(川前)은 전형적인 배산임수 지형으로 조선후기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심님의 4대길지 가운데 하나로 꼽았으며 그 일족의 세거지가 되었다.
김진의 장남 약봉 김극일(1522~1585)은 슬아에 자식이 없어 동생 귀봉 김수일의 차남
김철(金澈)을 양자로 들여 종사를 잇게 하였다.
기탁자료로는 청계 김진선생의 영정(보물 제1221호), 1525년(중종 20) 식년시 생원시방목,
1605년 추증교서(자헌대부 이조판서 겸 지의금부사), 청계선생영정개모시일기,
1577년 김진의 분재기와 유언, 1546년 김극일 납채례서, 1559년 김극일의 처에 대한 별급문기,
1581년 김극일의 후사로 김철을 세우는 입안(立案), 1639년 김시온 노비매매영문 등이 있었고
개호송 고목 25그루를 베어 김성탁의 변고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정사 8월 동중추완의,
천전리 임수(林藪)의 길이와 넓이를측정하여 기록한 천전동내금림안 등 기록도 있었으며
김진과 다섯아들의 시문과 유사(遺事0를 모은 연방세고(聯芳世稿)와 목판과
표은선생문집 등 여러문집과 교지, 간찰, 상소 등의 기탁자료들이 소개되었다.
또 구한말 혼란한 시기에 독립유공자 33인을 배출한 내앞마을 인물들의 구국활동 기록과
의성김씨 천전파 대종택의 사랑채 마당에서
1698년(숙종 24)에 표은 김시온의 넷째아들 지촌 김방걸(金邦杰)이 실정을 규탄 한 것과
1707년(숙종 33)에 칠탄 김세흠(金世欽)이 이잠(李潛)의 탄핵이 부당함을 상소한 일
1737년(영조 13)에 재산 김성탁(金聖鐸)이 스승 갈암 이현일의 신원소를 올린 일 등
의금부 금부도사가 3번이나 말을 메게된 회화나무를 소개하고
청계 김진과 다섯아들 그리고 긔의 자손으로 14대손까지 94명의 유묵을 집성하여
1973년에 제작한 병풍 대기병(大忌屛)을 소개하면서 연구결과 발표를 마쳤다.
발표회가 끝나고 국학진흥원장과 김창균 종손이 전달식을 가지고
참석하신분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면서 오늘 행사를 마쳤다.
오늘도 예움터에서 의성김씨 천전파 대종택의 집안에 대하여 배우는 시간을 가지며
우리 조상들이 남긴 귀중한 유산들을 수집하여 관리하면서
자료들을 정리하여 문중별로 문중이야기를 엮어주시는 한국국학진흥원에 감사드리고
발표를 하여주신 권오덕 박사님과 함께하여주신 모든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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