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영양 서석지 누대정강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0. 8. 23. 19:16

영양 서석지 누대정강좌를 다녀와서

 

 

처서를 하루앞둔 8월 22일 15:00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경정(서석지)에서

안동청년유도회에서 주최하는 제74회 누대정강좌를 다녀왔다.

 

안동을 출발하여 영양을 가면서 푸른들판에 익어가는 곡식들을 보며 풍요를 느끼고

지난번 장마로 물이 그득하게 담긴 암하호를 지나며 마음이 푸근함을 느꼈다.

 

누대정강좌는 경정(敬亭)의 마루 위에서 진행을 하고 참석자들은 경정과

주일재 마루, 서석지주변 행당과 사우당 옆에 군데군데 앉아

거리띄우기를 실천하면서 누대정 강좌를 들으며 진행되었다.

 

정상인 위원장의 사회로 정동진 선생이 문중에서 참석하신 분들을 소개하고

권진호 안동청년유도회장의 인사와 정동호 전 안동시장님의 문중대표 인사,

강일호 청년유도회 전국회장의 축사가 이어졌으며

 

안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천명희 교수는 '석문을 열다'라는 주제로 석문 정영방 선생의

생애와 서석지(瑞石池)와 경정(敬亭)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석문(石門)은 석문선생이 은거하였던 임천(연당마을)을 들어서기 위해 거쳐야 하는

반변천과 청기천이 합류하는 마을입구로 약 17m의 선바위(立岩)가 솟아 있고

맞은편에 10m높이의 암벽으로 이어지는 내자금벽(內紫錦屛)을 말하고

 

석문(石門) 정영방(鄭榮邦 1577~1650)선생은 신라 진지촌장 지백호의 원손

정회문을 시조로 하고 고려조 보윤호장을 지낸 정지원을 1세조로 하는 동래정씨로

용궁현 포내리(현 풍양 우망리)에서 태어나 열네살인 1590년

종숙부인 정조(鄭澡)의 양자가 되어 안동 송천으로 이거하였고

서애 류성룡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의 제자로 퇴계선생의 학통을 이은 삼전제자로

우복이 '정영방과 나눈 하룻밤 대화가 자기의 삼년 공부보다 낫다'라 칭찬하였다.

 

1605년(선조 38) 증광시에서 진사로 급제하고 1608년 연당에 거처를 마련하고

'세상사람들이 과거를 통한 공명심을 추구하다가 본심을 잃게 되고 마침내는

본심을 회복할 길이 없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는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에 유혹되었기 때문이다' 하며 산림처사의 길을 걸었다.

 

1637년 서석지를 조성하고 경정과 주일재를 건립하고 주자와 퇴계의 서술을 읽으며

자연에 은거하는 삶을 이어가면서 공자의 제자인 자로와 노나라 성문지기의 대화

'불가한 것을 알면서도 하려는 분'이란 일화에 나오는 '석문(石門)'이란 호도

이때부터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1633년 당시 폐현으로 남아 있던 영양의 복현을 위해 상소를 올려

1683년 영양현 설치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고 1650년 안동 송천으로 돌아와

선어대(仙漁臺) 위에 읍취정(揖翠亭)을 건립하고 유유자적하시다가 같은해 7월 7일

돌아가시어 선어연 언덕에 모셔지고 지보면 완담서원(浣潭書院)에 제향되고 있다.

 

서석지(瑞石池)는 자연속의 소요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되려 한 선생의 정신세계가

반연된 곳으로 담양의 소쇄원과 보길도 세연정과 함께 조선시대 3대 민간정원으로

상스러운 돌(瑞石)이 놓인 연못을 중심으로 서쪽에 경정, 북쪽에 주일재가 있으며

연못안 19개의 돌에 유가와 관련되는 의미를 비롯하여 선계(仙界)와 관련되는

이름을 붙여 석문선생이 바랐던 이상적인 세상을 표현하였고

소나무. 대나무, 국화, 매화가 심겨진 사우단(四友壇)으로 인해 凹형으로 생긴

연못에는 섬이 없고 주변에 400년된 은행나무가 있는 행단(杏壇)이 있었다.

 

천교수는 담장안의 내원의 배치와 서석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였고

경정 정면의 담장을 낮게 쌓아 루마루에서 석문까지의 외원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바라볼수 있는 구조로 조성되었다는 설명도 하였으며

영양의 고지명이 고은(古隱)으로 불리게 된것은 '곱다', '볕이 좋은곳'의

이두식 표기방법이 아닐까 하는 설명도 덧 붙였다.

 

강의가 끝나고 권진호 회장이 천명희 교수에게 꽃다발 증정을 하였으며

문중에서 코로나로 인하여 야외에 트럭 2대 위에 차려진 음식들을 먹으며

오늘의 행사를 마쳤으며 특히 오늘 행사에는 400년동안 서석지에서

피고 진 연을 인근 연못에 재배하여 만든 언잎차인 '연당차'를

참석자들에게 음료수로 한병씩 제공하여 주었다.

 

우리는 행사장을 가는도중

입암 임구에서 국보 187호린 산해리 오층모전석탑(봉감탑)을 구경하였다.

자연석 기단위에 2단의 탑신받침을 쌓고 벽돌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약 11m, 기단폭 3.34m의 탑신과 탑신하반부에는 화강암으로 조각된

문주와 미석(眉石)이 있는 감실에서 불상을 모셨던 것을 알 수 있었고

이 탑은 분황사탑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쌓은 모전석탑으로 추정이 되며

석탑주변의 하천은 천연기념물 수달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돌아오는 길에는

반변천과 동산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남경대(攬景臺)를 구경하였다.

남경대는 1615년(광해군 7) 용담(龍潭) 권지(權誌 1567~1637)선생이 건립한 정자로

아들 번곡(樊谷) 권창업(權昌業 1600~1663)이 물려받아 별사로 삼았고

손자 산택재(山澤齋) 권태시(權泰時 1675~1719)가 중건,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을 하는

강학처로 삼았으며 번곡과 산택재 부자는 퇴계학통이 연결되는 영남학파의 일원으로

유수한 영남사림들과 교우하는 장소로 이용하여 왔으며 오랫동안 훼손되었던 것을

1993년 다시 중건하였다고 전하며 장지 주변에는 금강송이 둘러서 경관이 아름다웠고

정자앞 연못에는 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누대정강좌와 오층전탑, 남경대를 구경하고 돌아온 우리는 송현에 위치한

수민집에서 삼겹살과 돼지껍질구이에 소주 한잔을 나누고 헤어졌다.

 

누대정강좌를 주최하신 안동청년유도회와 강의를 하신 천명희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참석하신 모든 분들과 많은 준비를 하여주신 문중분들께도 감사인사를 전하며

운전하시며 우리들을 안내하신 박선생님과 저녁을 사신 정회장님께 감사를 드리며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