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3>
*서문경은 저승 첫 관문에서
친구 이병아 본 남편에게 두둘겨 맞고...
말로만 듣던 황천 길은 생각 외로 간간이 주막도 나타나고 물건파는 가게도 제법 눈에 띄었다.
또 비록 귀신(人鬼)들이 겠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인귀들이 오고 가는 모습이 이승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서문경은 혼자 희죽이며 간땡이가 점점 커져간다.
이윽고 행렬이 멈춘 곳은 자그마한 귀신촌의 제법 큰 집이었다.
저승사자에 떠밀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가운데 높은 당상의 관모(官帽)를 쓴 텁석부리가 눈을 부릅뜨고 앉아있는데
좌우 당하에는 수많은 저승사자가 도열해 있었다.
"아! 여기가 이를테면 이승의 관청과 같은 곳이렸다?
으흠! 그렇다면 내 이승적 벼슬이 제형천호(提刑千户)였으니
마땅히 관례로서 대우해 주겠지." 하며
속으로 쾌제를 부르는데 문경의 귀에 저승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새로 저승에 온 인귀들은 들으라!
지금부터 호명하는 인귀들은 앞으로 나오너라!
알겠느냐?"
호명된 인귀들이 속속 앞으로 걸어 나갔다.
길흉(吉凶)의 여부는 잘 모르겠으나,
거의 대부분의 인귀들이 다 불려나가 도록 자신은 부르지 않는지라
혼자 곰곰히 앞날을 점쳐보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저승의 옥졸들이 덤벼들어 서문경의 관복을 누에 껍데기를 까듯 홀랑벗겨 버리고는
목에는 큰칼, 팔 다리에는 쇠고랑을 철컥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번개같이 채워버렸다.
서문경은 아이쿠 하는 소리와 함께 뿌리치며 악다구리를 써보나 아무 소용이 없다.
"시끄럽다 , 이놈!
최종 판결은 다시 내리겠지만 너희같이 패악무도하여 제 명에 못 죽은 놈들은
일단 쓴 맛을 봐야 하느니라!"
텁석부리 판관의 호통속에 다시 저승사자에 이끌려 길을 떠나게 되었다.
거리로 나와서 한참을 끌려가고 있는데,
"아이구 이게 누군가?
문경이 아닌가? 그래 언제 왔는가?" 하며
아는체 하는자가 있어 힐끗 보니
하도 오래전에 죽어 이름도 생각나지 않는 친척 어른이시다.
" 여보슈, 저승사자 나으리!
이녀석은 제 조카 놈인데 밥이라도 한끼 먹여 길을 가면 안되겠습니까?"
슬며시 손에 지전을 쥐어 주자
,저승사자는 마지못한 척하며 슬쩍 받아 넣는다.
"이것봐라!
여기서도 돈이라면 만사형통 이구나!"
내복 주머니에 오월랑이 지전을 불태우며 명복을 빌때
들어온 두둑한 지전을 어루만지며 경황 중에도 베짱이 생기는 듯 싶었다.
제법 반듯한 주막을 찾아 들어가 막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어디선가 서문경의 얼굴을 향하여 주먹 한방이 날아와
"퍽!"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 뒤이어 날아드는 발길질을 피하느라 잔뜩 움크리며 숨을 곳을 찾았다.
"네, 이놈! 서문경아! 너 잘 만났다!
내, 네놈을 도산(刀山)지옥에 보내고야 말겠다. "
어디서 많이 들은 여인의 목소리였다.
웅크린체 머리만 돌려 바라보니, 머리에는 구슬이 박힌 관모를 쓰고,
손에는 동악제군(东岳帝君)의 신충동악사(新充东岳使)라 쓰인 패를 들고 있으며,
조정에서 신는 수달피 가죽신을 신고 있었다.
깜짝놀라며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수염은 없으나 늙은 남자인데, 바로 화태감(花太监)이었다.
가슴이 썰렁한 서문경은 다시 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피하고 있을때,
머리를 풀어헤친 왠 젊은 놈이 옆에서 갑자기 나타나
짱돌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내리찍었다.
서문경은 "으악!"하는 비명을 지르며 이제는 영락없이 죽었구나 싶었다.
그러나 회수가 튀고 피가 철철 솟구쳐 나왔건만 한없이 아프기만 할 뿐,
떨어져 나간 살점은 멀쩡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차라리 죽는게 낫지 싶었다.
얻어맞은 자리에 살점이 되솟아나면 다시 짱돌로 얻어맞고 또다시 얻어맞고...
잠시 튀어나온 눈으로 자세히 보니,
육랑 이병아의 본 남편이며 친구였던 화자허(花子虚)였다.
숙질간에 한 패거리가 되어두둘겨 패는 것도 모자라,
하인들로 보이는 대여섯 명의 장정들까지 합세해서
오뉴월 개패듯 두들겨 패니 견더낼 제간이 없었다.
고래고래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 귀신도 말리지 않았다.
신충동악사 벼슬의 화태감을 옆에서 말릴 어느 귀신도 없었다.
한식경이 지나서야
"대감 나리! 잠시 노여움을 거두소서,"
이자를 끌고 가 상부의 심판을 받을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저승사자가 정중하게 화태감에게 아뢰니,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은듯 씩씩거리며 매질을 멈추고 뒤로 물러났다.
화씨 숙질이 돌아가자,
이번에는 주위에서 구경하고 있던 아귀들이
서문경의 주머니에서 삐죽나온 지전을 발견하고는 벌떼같이 덤벼든다.
찍싸게 얻어맞고 주머니까지 몽땅 털려 거지 귀신이 되어버린 서문경은
처량하게 저승사자의 뒤를 쫓아 터덜터덜 황천길을 걸어간다.
첩첩산중에 험한 고개마루 양편으로는 이름 모를 괴목들이 빽빽하게 서 있었다.
이제까지 보며 왔던 황천길 보다 더 으시시하고 음산했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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