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아방궁 보다 규모가 더 방대한 연복궁을

오토산 2021. 1. 13. 19:16

금옥몽(속 금병매) <19>
*채경과 동관 두 간신은 휘종을 위해 아방궁 보다 규모가 더 방대한 연복궁을 지었다.

무지개 서려있는 폭포, 푸른 기암괴석 사이사이 너울대고.
운무(云雾) 뒤덮힌 골짜기에 울려오는, 청학(青鶴)의 울음소리.
먼길 낭떠러지에 우뚝 솟은 고목(古木)의 용트림,
봉우리마다 날개 펼치고 솟아 있는 누각과 정자.
기화요초(奇花妖草)의 향기 가득 머금은,
이곳은 정녕 신천지(新天地)의 선계(仙界)인가?

그러나, 황홀경.
문득 들려오는 백성들의 원한 맺힌 호곡소리,
천지를 진동한다.

여기가 대체 어디든고?
서왕모(西王母) 살던 곤륜산(崑仑山) 꼭대기의 공중화원이더냐,
왕자교(王子乔)의 피리소리에 백학이 춤을 추던 숭산(嵩山)이 여가더냐?

 

여기가 대체 어디든고?
천하통일 하여놓고 불로장생 꿈을 꾸던 진시황이
오매불망 그리워하는 삼신산(三神山)의 계곡이더냐,
복사꽃 만발한 심심산골 숨어 살며 세상걱정 아예 없는

도연명(陶渊明)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여기던가?

그곳은 송나라 휘종(徽宗) 황제의 신선 세계를 그리는 간절한 마음에서

궁궐옆 평탄한 벌판 위에 상상하기도 어려운 엄청난 인공(人工)산을 만들어

강남 땅 소주 항주의 기화요초 수만 종과 기암괴석 수만 점을 옮겨와,

진귀한 보물들과 함께 신의 솜씨로 배치하여 만수산(万寿山) 이라 이름짖고 간악(艮岳)이라 불렸다.

간악은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는지 인공산이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자연적 천연 그대로의 모습이라,

옥황상제의 선계(仙界)가 아닐까 할 정도로 아름답고 신비로운 산 이었다.

 

완성 후에 예술인들은 모두 조경 예술의 극치라고 극찬을 하면서도,

황제의 사치와 취미를 위해 백성들의 뼈골이 빠지고 등골이 휘어지며

피와 땀으로 만들어졌다 하여 빽골산이라 하며 수군 거렸다.

환관 동관(童贯)과 결탁하여 권력을 장악한 채경(蔡京)은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진시황의 아방궁 보다도 더 화려하고 규모가 방대한 연복궁(廷福宫)을 지어

많은 아름다운 궁녀들과 연회와 유희를 하도록 하여

휘종의 신임을 받게 되었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심드렁 하여 졌다.

채경은 황제의 환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연복궁 공사로

국고도 바닥나고 백성들도 도탄에 빠져 있었으나

두번째 벌린 일이 만수산 인공산 공사였다.

휘종이 신선 세계를 얼마나 동경하는지 또 음악 미술등 예술에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를

잘 알고 있던 채경은 만수산을 고전예술의 그윽한 향취가 잠재된 무릉도원으로 꾸미어

황제가 그곳에 파묻혀 살게 하여 놓고는 통치는 자신이 맡아 하겠다는 욕심에

야심차게 백성이 편안한 정치를 하겠다며 덕정(德政)이란 통치 구호를 걸어 놓고는,

통치는 정반대로 했다.

 

첫 조치로 화석강(花石纲)을 조직하여 전국 명산에 산재되어 있는

온갖 기암괴석과 기화요초를 수집하여 개봉으로 운반해 오는 일이었다.

그 결과 아름다운 전국 강산이 파혜처져 명산대첩들이 보기 싫은 몰골로 변해갔으며

뿐만 아니라 감상할 값어치가 있다하면 소유주에 관계없이 무조건 뺏어왔다.
심지어 백성들의 정원에 있는 정원수 까지도 황표(黄表)를 붙여놓고

황제의 나무라며 운반해 갈때까지 잘 보관 하라고 하며

나무가 뿌러지거나 고사하면 능지처참을 했다.

 

거대한 바위와 나무를 다루는 과정에서 장정들의 인명 사고도 다반사로 발생하고

운반에 따른 백성들의 재산 피해도 발생하나 보상이라고는 일채 없었다.
심지어 나중에는 꽃과 나무 돌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보석으로된 골동품 조각 그림 까지도 닥치는대로 빼앗아 갔다.
황제의 취미를 위해 엄청난 국고가 낭비되고, 백성들의 재산이 강탈 당하였으며,

대형 공사와 운반으로 인한 죽은 남편이나 정정들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뒤덮었다.
이것이 채경이 말하는 덕정이라니 이러고도 나라가 온전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늘도 무심치 않았다.

자운봉, 취개봉, 옥기봉 등 모두 칠십이봉으로 이루어진 만수산에는,

봉우리 사이마다 두개의 계곡을 만들어 맑은 물이 흘러가는 곳곳에

폭포와 작은 호수를 만들어 바라보는 방향이나 각도에 따라 물의 색갈이 다르게 보이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햇빛의 방향에 따라 영롱한 무지개가 뜨기도 하였다.

 

대리석, 영벽석(灵壁石) ,자계석(慈溪石), 무강석(武康石) ,등의 크고 작은 바위로 만들어진

거대하고 신비로운 형형색색의 암벽은 계곡과 어울려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가 부딧 칠때는

거대한 물소리를 토해 내었다.

 

이 웅장하고 거대한 바위들은

강남의 유명산에서 채취 운반해 와서 인공 계곡과 산비탈 곳곳에 배치하여,

가까이서 구경하는 황제의 눈에는 아름다운 금수산으로 보일지 모르나,

멀리서 바라 보는 백성들은 피와 눈물 땀과 목숨과 바꾼 통한의 산이라 할 것이다.

절강성(浙江省)의 복건, 광동, 이화와 기죽 등에서 가져온 여지, 용안, 밀감, 등의 열대 과일 나무와

호남의 문죽(文竹) , 소상강(潇湘江) 강가에서만 자라는 신비주의 대나무를 비롯하여

해남도에서 자라는 야자수도 옮겨와 절묘하게 배치되어 산수화 보다도 더 아름다웠다.

굽어 휘도는 계곡의 요소요소에는 운치있고 아름다운 도관(道颧)을 모양과

자태가 다르게 각 도관의 특색을 살려 육십여개나 지어 놓았으며,

멀리 바라보이는 절벽에는 낙락장송까지 심고

밑둥에는 수백년 씩 자란 드렁칡까지 배치하여 천연의 향기가 물씬 베어나게 했다.
계곡을 흐르는 물밑의 작은 조약돌 까지도 태호(太湖)에서 가져올 정도로 세심하게 준비했다.

도관은 전국에서 수집하거나 뺏어온 진귀한 골동품 보물 그림들로 꾸몄으며,

수련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비급의 책들로 채워졌다.
도관 관리 책임자는 삼만명의 궁녀중에서도 용모나 자태가

특출한 미녀만 선발 산속 경치와 조화를 이루어

하늘에서 목욕하려 속세에 잠시 내려온 선녀 같았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