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그내 타는 원상저는 휘종의 눈에

오토산 2021. 1. 22. 18:04

금옥몽(속 금병매) <27>

*그내 타는 원상저는 휘종의 눈에, 이 무슨 운명?

"버드나무 사이 그네에 나부끼는 연분홍 옥색 치마,
구름끝에 걸린 백설 같은 저고리 월궁(月宫)의 항아(姮娥) 던가,
요지(瑶池)의 선녀(仙女)던가,
머리에는 옥비녀, 허리에는 비취 구슬.
홍조 물든 두 뺨에는 살포시 새긴 보조개 두개,
제비처럼 날씬한 그 몸매에, 황제마져 오랑케 시름 잊고 넋나간 듯 바라본다."

휘종 선화(宜和) 오년,

방의 오랑캐 거란족이 요(遼) 나라를 멸망시키고 아골타(阿骨打)가 금나라를 세웠다.
새 군주가 들어서자 요나라의 구신(旧臣)들은 신변에 위협을 느껴 속속 송나라에 귀순을 했다.

아골타가 죽고 나자 동생 오걸매(吳乞买)가 왕위를 계승하고는

송나라 휘종에게 귀순한 요나라 구신들을 모두 송환 할것을 요구했다.
휘종은 그중 꼴사나운 몇명 만 돌려 보냈다.

신흥강국 금나라는 그것을 구실로 삼아 군대를 둘로 나누어

점한(粘罕)이 이끄는 우로군(右军)은 태원(太原) 방면으로,

알리부(斡离不)가 이끄는 좌군(左军)은 연경(燕京)을 공격해 왔다.
송나라는 휘종이 채경에게 정사를 맡기고는 만수산 간악에서 음주가무에 계집질이나 하며

나날을 보내고 있었으니 나라 꼴이 말이 아니었다.
국가가 멸망의 위기에 몰린 것이다.

나이 어린 원상저는 규방에 틀여 밖혀있다가 가끔 심부자네 집에 가서는

강남 각지에서 데려온 예능에 탁월한 기생들에게 서화와 시문을 읽히고

금을 배우며 지낸 것이 전부이며, 특히 심부자가 눈먼 아들 금가를 낳자

더욱 자주 찾아가 친동생 같이 보살폈다

그러니 바깥의 나라 사정을 알 턱이 없었다.

청명절(清明节)날이었다.
심가네 여인네들은 후원에 모여 커다란 버드나무 가지위에 그네를 메어 놓고는

한 두명씩 창공을 차고 올라 봄기운을 마음껏 마시며 즐기고 놀았다.
원상저도 그네 타기라면 자신이 있었다.
다리쪽으로 탁터진 금빛 무늬로 수놓아진 유선군(留仙裙)치마에

아롱지게 날렵한 저고리를 입고 제비처럼 치솟으니 타게 놓은 치마 사이로

백설같이 하얀 허벅지가 언뜻 선뜻 내 비칠때는 창공을 날아 다니는 선녀가

그네를 타는 것 같아 심가네 여인들도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오랜만에 그네를 타보는 원상저는 발을 구를때 마다

금방이라도 저 높이 떠 있는 구름에 다을것 같아 스스로 월궁의 항아 선녀가 된 느낌이었다.
모두들 상저의 그네 타는 모습에 찬탄의 혀를 내 둘렀다.
이 넓은 세상에 가본 곳이라곤 심부자네 집뿐인 상저는,

높은 담 넘어 바깥 세상의 궁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 할수 있어서

그네를 타면 답답하던 가슴이 후련해지고 바깥 세상에 대한
그리움이 조금은 해소가 되었다.

바깥 세상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네를 타고 있는데,

후원과 담 하나 사이를 두고 맞 붙어 있는 곳에 꿈속에서나 본듯한

사방이 푸른 버드나무로 둘러쳐진 궁궐 같이 크고 화려한 누관(楼馆)이 보였다.
드넓은 정원에는 이름모를 기화요초가 꽃을 피워 향이 코 끝에 닿는 듯했다.

 

중앙에는 기묘하고 아름다운 바위로 꾸민 연못이 있고

연못 중앙에는 추녀가 날아 갈듯한 아름다운 정자가 물 위 뜬 듯이 지어져 있고

정자와 정원을 잊는 구름다리는 온갖 조각을 해놓아서 화려하기가 말로서 표현 하기도 어려웠다.
길게 늘어진 수백 칸이나 되어 보이는 회랑도 보이는데

한 누각 앞에는 보초를 서는지 관복을 입은 무관인 듯한 사람도 서넛 보였다.

호기심이 동한 상저는 자세히 살펴보니 정원 곳곳에는

화려한 옷단장에 짙은 화장을 한 아름다운 여인들도 여러명 보이는데,

연못의 고기에게 먹이를 주는이, 피리를 불고 있는지 아름다운 선율이 들릴듯 말듯 하고,

보초를 서고 있는 누각안에서는 중년의 선비에게 술을 따라 올리는 가냘픈 여인이 보인다.
그 여인의 옆에는 생황도 보인다.

 

아마 선비가 생황 연주 소리를 좋아하는것 같았다.
상저는 이세상에 심부자네 집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는게 상상이 되지 않아,

대체 저 집이 누구의 집이며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하여

자꾸만 그쪽을 보느라 그네에서 내려올 생각을 안한다.

그곳은 바로 개봉 최고의 기생 이사사의 악부(乐府)인 희춘루(煕春楼),

휘종의 별궁(别宫)인 셈이다.
휘종은 주방언을 유배 보내고 이사사를 독차지 한 후,

지하 비밀 통로를 간악과 연결 하여 놓고 정원도 간악과 같이 꾸며 놓고는

수시로 이사사에게로 와서는 음욕을 채우기 위해 몹쓸 회개한 짖을 다하고 있었다.

오늘도 간악에서 노닐다가 마침 청명절을 맞아 새로운 기분을 풀어 보고자

대낮이라 그짖은 하지 못하고 해가 기울기를 기다리기가 무료하여

이사사의 생황 연주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 으흠! 저기 누가 그네를 타고 있네,

그네 타는 모습이 제법 잘 어울리는데..."

영란각(迎鸾阁)에서 주안상을 받아놓고 뭐 새로운 것이 없나 하며

사방을 둘러보다 상저가 그네 타며 버드나무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사사도 따르던 술 주전자를 내려놓고 황제의 시선이 머물고 있는 곳을 바라 보았다.
담넘어 버드나무 사이로 아직 앳된 아가씨가 그네를 타는데 날렵한 제비가 춤을 추는 듯,

꾀꼬리가 즐겁게 나래를 파닥이는 듯,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차오른 모습이 현란하고 황홀하였다.

사사는 가만히 황제를 곁눈질해 보니,

휘종은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안으려는 듯,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황제의 목에서 꿀꺽 하고 침 넘어 가는 소리 마져 들린다.
사사는 다시 한번 그네타는 아가씨를 바라 보다가 무언가 알겠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한두번 끄덕인다.

 

벌써 몇년을 모신 황제인데 황제의 머릿속을 모를까,

필경 아가씨의 찟어진 치마사이로 흔듯 흔듯

들어 나는 새 하얀 허벅지를 보고 춤을 꼴깍 했을 것이다.
그러나 황제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술만 몇잔 마시더니

저녁까지 기다리지도 않하고 느닷없이 환궁을 해버렸다.
다음 날 이사사는 하인을 불러 물어 본다.

"저기 담넘이 있는 저집이 누구네 집이더냐?"

"예, 개봉 제일 갑부 심월의 집입니다, 요."

심월 이라면, 사사도 잘 알고 있었다.
개봉의 난봉 건달 수전노 그가 자신의 집과

인접한 이웃인 줄을 몰랐다니 세상은 참 넓고도 좁았다.

"그 댁에 열 댓살 정도 되는 아가씨가 있드냐?"

글쎄요,

말이 이웃이지 그집 정원도 워낙 넓은 데다가 대문이 우리와 번대로 나 있어서 전혀 모르옵니다,

소문에 늙으막에 아들 하나를 얻어 크게 잔치르를 벌였다는 이야기는 들었읍니다.

"그럼,

은밀히 한번 알아보거라!"

"예, 그거야 어렵지 않조,

제가 잘 아는 뚜쟁이가 있는데 그런 것은 모두 잘 알고 있으니 문제없어요."

" 그래?

그렇다면 얼른 가서 데리고 오너라."

사사가 반색을 하고 말한다.
왕파(王婆)라고 부르는 뚜쟁이는 오후 한식경에 찾아 왔다.
사사가 묻자.

왕파는

"아, 그 색시요? 잘 알구 말구요,

심부자의 외 조카 원지휘의 고명 딸인데

미모나 학식은 개봉 어디에도 그만한 처녀가 없을 거에요.
자식이 귀하여 두 집안은 한식구 같이 지낸답니다,

이제 이팔 청춘 열 여섯에 얼마아 얼마나 고운지

마주 보면 같운 여자도 눈이 부셔 똑바로 보기가 어렵다구요.
미모 뿐만 아니라, 시문과 기예도 뛰어 나답나다.
심부자 집에 가기(家妓)로 있는 수십명의 강남 출신 명기(名妓)들이

서화하며 금 생황등의 음률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얼마나 영특한지

가르치는 기생들도 혀를 내 든답니다.
어디 좋은 신랑 감이 있다면 저가 적극적으로 나서 볼께요?

이사사는 너무 기뻣다,

기대는 했지만 그렇게 까지 용모나 제주가 출충한지는 생각도 못한 사실이었다.
사사는 곧바로 편지를 써서 심부자에게 전달 했다.

뜬금없이 이사사의 편지를 받은 심부자는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비록 기생이지만 황제의 후궁이나 다름없는 그가 몇번 본적은 있지만

편지를 보내오니 내용이 궁금해 버로 뚣어 보았다.

"담장을 마주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편지를 전하게 되어 송구스럽슴니다.
항공하옵게도 황상 폐하께서 청명절에 저희 집에 납시었다가,

그대의 집에서 그네를 타는 처자를 보고는 너무 좋아 하셨소,

그래 알아 보니 그대의 생질녀 원상저라 하니 내 이제 어명을 받들어

그 아이를 황상의 귀비로 간택되는 걸 돕고자 하니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지,

혹 간택되어 태자 마마라도 순산 한다면 나라의 경사요 수대 가문의 영광이 아니겠소

조속한 답을 바랍니다.
이일이 확실히 매듭데기 전에는 절대 당신과 나 외에는

알아서 안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세요. "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경사스러운 일이나,

편지 투가 판단해서 답을 주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점 찍었으니 따르라는 협박조의 편지라

읽는 심부자는 기분이 떨떠름 하였다.
그렇지만 심부자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경사였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긁어 모으면서도

늘 권문 세도가에게는 굽실거리며 망신 스러웠는데,

친딸은 아니지만 생질녀가 황상의 총애를 받는 귀비가 된다면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으리라 싶었다.
심부자는 바로 원지휘를 불렀다.

" 조카! 축하하네, 축하해.

참으로 경사났어, 이보다 더 큰 경사는 없을 거야,

가문의 영광 이로세!"
심부자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원지휘는 알 수 없는 말을 혼자 씨부리며 좋아서 어쩔줄을 모른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