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백화궁주의 마수가 뻐치는데...

오토산 2021. 5. 5. 18:09

금옥몽(속 금병매) <120>

수행의 장소로 적합지 않다고 꺼리던 청루는

비구니 복청이 대각사로 번듯이 개수는 하였으나 백화궁주의 마수가 뻐치는데...


문 앞의 나무는 푸르지만 와서 지저기는 새가 없고,
정원엔 이끼가 푸르고 꽃잎만 떨어져 있네.
불어오는 봄 바람에 옛 일을 논하지만
아리따운 봄의 자태 누구 것이 되려나.

이사사의 청루를 서로 차지하려고

불교의 월광 스님 도교의 왕도관 유생들이 서로 물밑 암투를 벌리고 있으면서도

정작 비구니 복청이 이미 태자비의 밀지를 받고 제왕 유예에게 그 사실을 통고한후

공사를 착수 할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유예는 통고를 받은 그 다음날로 바로 궁정 창고에서 삼천 냥을 지출하게 하여,

내관의 감독하에 천음각으로 개수할 기술자들과 관음상을 조각 할 기능사들을 뽑아

작업을 하도록 조치하였다.

그리고는 비구니 복청과 협의 청루 개조 배치도와 착공식 날짜를 정하라고 준비시켰다.
길일을 택해 개봉 부윤이 참석한 가운데 착공식을 치루고 나자

복청은 제자와 법화암의 식구들을 데리고 이사를 하였다.

복청은 청루 곳곳을 돌아보니 외부에서 보았던 것 보다 훨씬더 규모가 방대했다.
모두 아홉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저택 곳곳을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회랑의 모습은

궁중 못지 않았다.

가재도구나 장식된 물건은 모두 몰수되어 옮겨지고 없었으나

문이나 창 내외벽들은 비교적 깨끗하여 청소만 하여도

사용하기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복청은 거대한 저택은 방만 하여도 무려 백오십칸이 넘었으니

수백명이 함께 지내도 넉넉한 공간인데

달랑 제자 두명과 함께 어찌 꾸려 나가야 할지 염려가 되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몇날이 지나자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권세없는 가난뱅이는 저자거리에 살아도 아무도 찾아가지 않지만,

권세있는 부자는 심산유곡에 살아도 방문객이 끊임없이 들락거리며

문전 성시를 이룬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힘있는 세력을 등에 업었으니 파리떼가 꼬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왕고자(王故子) 장고자(张故子) 유고자(刘故子) 이고자(李故子)를 비롯한 개봉일대에서

자칭 난다긴다하는 유명한 비구니들이 몰려와서는 복청을 사부로 모시겠다고

난리 법석을 쳤다.

또 몇날이 지나자 아직 불전의 개조 작업도 끝나지 않았는데

개봉성의 부자집이란 부자집에서는모두 불공을 드리겠다고 찾아오고,

개봉에서도 멀리 떨어진 시골 산골짝 노인네들까지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쌀과 땔깜을 머리에 이고 등에지고 아이들의 고사리 손을 잡고 시주를 하겠다고 찾아왔다.

인근 사찰의 신도회장들은 불상까지 기증하며 예불을 드리겠다고 몰려오는데

사람들이 타고 오는마차와 수례들로 저택 일대의 큰 길이 꽉 메워질 정도가 되고 보니

복청은 그저 어안이 벙벙했다.

어느정도 개수 작업이 막바지에 이르자

태자비 건달라파도 이삼일에 한번씩 들려 온갖 미비한 것을 시주해 주었다.

도군황제때 주조한 다섯척이 넘는 동정(铜鼎)도 가져와 대웅전 앞에 놓아 주고,

신도들 중에 독경을 잘 하는 사람이 있으면 먹을것과 동전 다섯푼까지 상으로 주어

격려를 해주기도 한다.

또한 높이가 세척이 넘는 주나라 때의 청동기 두개와 한나라때 빗은

고색이 창연한 화병 한쌍도 가져와 불전 앞에 올려 놓았다.

오색구슬이 늘어진 유리등도 가져와 천정 곳곳에 걸어 놓으니

낮에는 밝은 빛에 반사되어  여러 찬란한 빛을 발하고, 해가지고나면 점등을 하니

불전마다 휘황찬란한 빛이 불전을 더 무어지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개수 작업이 끝나자 태자비는 호국대각선림(护国大觉禅林)이란 편액(扁额)를 하사하여,

이때부터 대각사(大觉寺)라 불러졌다.

부처님의 공덕인지 권세의 힘인지 신기하게도 불교를 전혀 믿지 않던 사대부와 관리들도

언제부터 불교에 귀의했는지 예불을 드린다며 식량과 땔감을 싣고 줄줄이 찾아드니

꼭 전쟁중인 군사들에게 보급품을 수송하는 행렬 같이 보이기도 했다.

이사사의 청루를 불전으로 개수를 하였으나

워낙 넓은데다가 단시일에 모든 건축물을 불전으로 개수하기가 힘들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도교선원으로 개수하려던 천단리의 왕도관과

유교 서원으로 개수하려던 유생들이 각자 연명으로 올술왕자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사사의 청루는 워낙 넓으므로 정원을 셋으로 나누어

유교 불교 도교 삼교(三教)에게 공평하게 배려를 해주셔야 합니다. "

올술왕자가 상소를 받아 들이자,
곧바로 공사가 시작되어 삼교의 건물이 함께 지어 들었다.
원래는 석가를 모시는 건물이 가운데 있게 하려 했으나

유생들의 완강한 반대로 공자(孔子)를 가운데 건물에 모시게 배치 되었다.

이렇게 청루가 정리되고 보니 삼교의 도사(道士)와 선비 유생들이

삼교당(三教堂)이 있는 이곳으로 매일같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일이란게 노자(老子)나 공맹(孔孟)의 도(道)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옛 유곽을 개수하여 명칭만 바꾸어 놓고는 술마시며 시를 지어 읊으며

옛 기생집과 똑같은 짖을 하고 있었다.

그러하니 자연히 옛 이사사의 기생집 이야기가 화두에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삼교를 팔아 골빈 족속들만 몰려든다는 뜻으로

삼공서원(三公书院)이라 불렀다.

한편 오랑캐들이 많이 믿는 라마교에 백화궁주(百花宫主)라는 늙은 여승이 있었다.
백화궁주는 원래 서역 회교(回教)교주의 아내 였는데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나자

음녀였던 그녀는 남여관계가 문란한 라마교의 승려들과 밀통을 하다가 라마교에 귀의한 땡승이었다.

궁주는 항상 라마교의 상징인 노란 모자를 쓰고, 황금 귀걸이를 하였으며

서역에서 건너온 비단을 속에 두르고 기다란 가사를 걸치고는

손에 든 조그만 종을 흔들며 라마 경전을 암송하며 다녔다.

그녀는 목에 일백 여덟개의 해골 모양 염주를 걸고 다니고 있어

보기만 해도 으시시한 모습이 한층더 끔찍하게 보였다.

그런데 더 황당한 일은 백화궁주가 전파하는 교리란 것이 이른바 음양의 밀법(密法)이라는 것인데,

그내용은 오로지 남여가 교접하는 이야기 뿐이었다.

라마교에서 모시는 동불(铜佛)은 이름하여 극락불(极乐佛)이라 하는데,

남녀가 서로 꼭 껴안고 입을 맞추며 교합하고 있는  모습이었으니,

부처라기보다는 저질의 춘궁상(春宫像)이 라고 하는 것이 맞는것 같았다.

어찌되었든 오랑캐 사람들은 라마교를 신봉하며 그녀를 '궁주마마'라 부르며

생불(生佛)로 떠 받들고 있으니 그들의 행동이 이해 되지 않았다.

백화궁주를 따라다니는 승려들은 비구니 뿐만 아니라 남자 승려도 상당수 있는데,

육식을 할 뿐만 아니라 밤에는 남여 구분없이 혼숙(混宿)을 하였다.

또한 라마교도들은 요상한 혼미약을 즐겨 먹는데,

남자가 그 혼미약을 먹으면 남여가 교접을 하여도 방아질과 절구질만 밤새하며 사정을 하지 않는다고 하며,

여자가 먹으면 온몸이 근질근질거려 남자와 교접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배기게하는 그런 약이라고 한다.
교리에 대도를 설법하고 있는데 해석을 남여의 음양에 비유 하고 있으니...

"대도(大道)는 남여간에 가 평등한 법이니 함께 혼숙하며 즐기는 것은 당연한 것."

이러한 논리의 교리이니 비구니들이 아기의 애비도 모르는 자식을 안고 다니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백화궁주는 요술을 부리는데 귀신이나 유령을 만나면

그녀를 불러 퇴치하는데 심지어 뱀이나 맹수를 만나도 그녀를 찾았다 한다.

오랑캐들이 그녀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이유가 귀신이나 유령 독사나 맹수를 만나면

궁주가 가지고 다니는 조그망 종을 딸랑 거리게 흔들며 주문을 외운는데 귀신이나 유령은

그 종소리를 듣고는 혼비백산 도망을 치고 뱀이나 맹수는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몸이 굳어버린다고 한다고 소문이 나 있어 그렇다고 한다.

요사이는 중원(中原) 사람들도 궁주를 신처럼 떠받들며 라마교를 믿기 시작했는데,

마누라를 만족시켜 주지 못해 바가지에 들들 볶이는 남정네들은

십중팔구 라마교의 교리에 심취되어 해괴망측한 극락불을 침상 머리맡에 두고,

삼경 오밤중에 부부가 옷을 홀딱 벗고는 극락불에 삼배한 후 득남과 장수를 빌며

교접을 하기 시작 한다고 했다.

이러한 해괴한 사교(邪教) 교리는 사람마다 입을 해 벌리게 하는 남여의 색(色)을 주축으로

혼숙 혼미약등 큰 노력없이 이루어진다고 설법하니 중원땅에서도 급속도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다.

바로 그 백화궁주가 비구니 복청이 태자비를 동원해

이사사의 청루를 인수 대각사로 개수 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궁주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대각사를 빼앗아 라마교의 사찰로 만들어야 겠다는 욕심으로

가마를 타고 라마교 승려들을 떼로이끌고는 대각사로 갔다.

궁주가 온다는 전갈을 받은 복청은 가사를 걸치고 문밖으로 나와 맞이했다.
백화궁주는 남자처럼 굵은 눈썹에 하마처럼 커다란 입을 굳게 다물고 허리는 굵고

등짝도 드툼한 지라 얼른 보면 남자로 오해하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자세히 얼굴을 들여다 보면.

육십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뺨에는 더덕더덕 하얀 분을 쳐바르고

입술은 진한 연지로 샛빨갛게 그려놓아 꼭 배우나 광대 같이 보였다.

궁주는 대웅전에 들어서서도 부처님에게 절도 하지 않은채

손에 들고 있던 조그만 종만 딸랑딸랑하고 두세번 흔들더니

자신의 얼굴을 한손으로 툭툭 세번 두두렸다.

복청을 비롯한 대각사의 비구니들이 모두 함께 큰 절을 올렸지만

오만하게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는 눈만 지긋이 깜은채 꿈적도 하지 않고 절을 받았다.

"~~~살라 살라~~~"

절을 받은 백화궁주가 오랑캐 말로 뭐라고 하자 여에있던 라마교 비구니가

얼른 우유를 따라 주자 훌쩍 마셔버렸다.

복청은 하는 행동이 도무지 승려로서 이해되지 않아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함께온 승려들이 북을 두두리며 오랑캐 말로 라마경을 암송하는데

마치 참새떼가 시끄럽게 지저귀는것 같이 들렸다.

엄송이 끝나자 복청이 제자를 시켜 차와 다과를 가져오게 해 대접 하였다.
바닥에 붉은 담요를 깔고 앉아 아무 말없이 다 쳐 먹고도 일어날 생각을 하지않았다.
복청은 속으로 이제 빨리 가 주었으면 하고 언짢아 하자,

궁주가 오랑캐 말로 복청에게 무어라 말을 몇마디 했다.

오랑캐 말을 모르는 복청이 말이없자,

라마교 승려 한 사람에 통역을 하였다.

"복청 스님을 제자로 삼아야 일어 서시겠답니다."

복청은 라마교의 정체도 모르면서,

남들이 모두 생불(生佛)로 존경하는 덕망 높은 비구니 고승으로 소문이 자자한지라

그저 자신을 제자로 삼겠다는 말에 현혹되어 생각도 없이 옷을 단정히 메만진 후

두손을 모아 공손히 합장을 하고는 스승님 고맙습니다 하고 큰절을 올렸다.

요망한 백화궁주는 복청을 제자로 삼아 앞으로 대희락선정법(大喜乐禅定法)을 교리로 가르쳐

대각사를 음행(淫行)의 낙원으로 만들려 한다는 사실을 모른체 그의 마수에 걸려 들고 말았다.

백화궁주는 복청의 머리를 쓰다듬고 귀와 코를 살짝 눌리면서

어머니가 딸에게 대하듯 품에 꼭 안아서 친밀감을 심어놓고는

서역에서 가져온 호박(琥珀)목걸이를 걸어 주었다.

이렇게 되고보니 대각사는 연못에서 하이얗게 활짝핀 연꽃위에 부처님의 부드러운 미소가

잠시 드리웠을 뿐 앞으론 아름다운 연꽃을 구경하기는 어렵게 될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앞으로 청정한 불도 수행의 수도장은 사사가 공들여 가꾸어 놓고

온갖 음욕을 불 태웠던 대나무 숲 속에서 라마교의 이상한 교리에 따라

음욕의 불길이 서서히 타 오르기 시작하니,

처음 일년간 유곽을 신성한 수행의 장소로 꺼린것이 이제사 알 수 있을것 같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