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18>
*이사사는 생일 축하연 중에 오랑캐군에게 붙들려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긴채 늙은 장수에게 하사되어 만주벌판으로 끌려간다.
비바람은 저 꽃 대신 떨어질까 걱정하네,
비바람이 사라지니 저 꽃도 시들었다.
꽃을 보고 취한다고 애석하게 생각마소.
금년에도 꽃은 지고 내년에도 꽃이 지니,
칠흑같던 그대 머리가 백발이 성성하리.
흥이 일면 술병들고 나들이 나가리다.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어디든지 노세그려.
이다지도 좋은 봄날 무슨 걱정 그리 많나?
피어난 꽃 좋다지만 없다해도 무방하니
술 한병만 있다하면 무슨 상관 이으리오!
기생들은 여기까지 노래를 부른 다음,
모두들 일어서서 이사사를 맞이하고 해바라기 모양의 커다란 잔에
술을 가득 부어서 건네주니 이사사는 금팔찌를 두른 하얀 팔을 뻗어 손으로 받아 마셨다.
그때였다.
말 밟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말 울음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그러고는 오랑캐 군사들은 청루를 에워싸고는 연회장에 들이닥쳤다.
연회에 참석했던 한량들은 놀라서 도망갈 틈도 없는지라 모두들 벌벌 떨며
술상 밑으로 얼굴을 쳐 박는 모습은, 참매에 쫒기어 머리를 쳐박는 꿩의 꼴이었다.
멍하니 서있는 이사사의 화려한 연회 복장을 다 벗겨 버렸다.
그 사이이 머리에 장식한 보석이며 몸에 지니고 있던
장식및 금팔찌 목거리가 바닥에 떨어지자 오랑캐 군사들이 마구 주어갔다.
이제 이사사의 몸에 걸친 것이라곤 얇은 저고리 한겹과 속고쟁이 위에 걸친
안치마가 전부이다.
화려하고 선녀같던 모습이 마치 비맞아 떨어진 배꽃인 듯,
바람에 흩날린 복사 꽃인 듯 가련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오랑캐 군사들은 그 연회에 참석 하였던 한량들을
적과 내통하고 있는 첩자를 색출 한다는 명목으로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이사사와 기생 하인들도 모두 적과 내통을 방조 했다는 이유를 들어 관아로 압송해 갔다.
청루는 병사 삼십여명으로 하여금 모든 문을 봉쇄하고 경비를 서 아무도 출입을 못하게 하였다.
관아에 압송한 그들을 밤이 너무 깊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두고
심문은 다음날 날이 밝는데로 점한 장군이 직접 하기로 하였다.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생기고,
죄악이 쌓이면 재앙이 시작된다능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는것 같았다.
인간세상 천상세계 한결같이 망연하니,
비 그치고 구름 걷혀 연기마저 흩어진다.
가을하늘 기러기도 북쪽으로 날아가고,
누에실도 끊어지니 단잠에서 깨어나네,
오동잎도 떨어지고 가슴속만 쓰라린다.
매화가지 꺽어졌다 가엽단들 무엇하리.
비파줄도 끊어지고 눈물만이 흐르도다,
낙조어린 무덤가에 두견새가 슬피운다.
다음날 관청에서는 청루에서 잡아온 한량과 기생들에 대한 심문이 시작되었다.
병졸들은 형틀과 심문 준비를 해놓고는 옥에 가두었던 이사사와 한량 기생들을 끌어냈다.
개봉성 안에는 어제저녁 청루가 봉쇄되고 모두 관아로 압송해 갔는데
날이 밝으면 심문이 있다는 소문이 퍼져 이사사의 심문 과정을 지켜보려는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사사는 워낙 여우같은 재주를 가졌으니 이번에도 무사히 풀려날걸?
큰 난리를 몇번이나 격었지만 한번도 위세가 꺽인적이 없이 오히려 더 번성했으니까."
"저 불여우 같은년이 조정을 망치고 우리 송나라 강산도 말아 먹은 년이
또 무사히 넘어 간다면 말이되나?
그러고도 또 오랑캐에게 붙어서 부귀영화 실컷누리고선 아무 벌도 받지 않는다면
하늘도 무심 한거지, 하늘이 정말 있다면 틀림없이 죄에 대한 큰 벌을 받게 할꺼야?"
점한이 나와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중군장을 비롯한 병졸들이 양쪽에 두줄로 도열히여 서자,
중군장이 점한 장군에게 개요를 설명 하고는 곧 바로 고소인 적원외에게 사건 전모를 고하라고 했다.
"청루의 주인 이사사가 은병이란 기생년을 시집보내준다고
정옥경이란 놈팽이와 사기를 쳐서 삼천냥을 등쳐 먹었고,
또 무운이란 기생년을 시켜 거짓으로 소인이랑 살게 한 다음 왕인지라는 정옥경과
한패인 놈을 시켜 가짜 소식을 전하게 한 후 소인이 집을 비운사이
또 다시 이천냥의 재물을 훔쳐 갔습니다요."
오랑캐들의 법은 이것저것 세심하게 심문하는 법이 거의 없었다.
더군더나 기생과 오입쟁이의 일이니 더군더나 뭐 그리 대단하다고 자세하게 심문 하겠는가?
점한이 듣자하니 너무나도 우스운지라 파안대소를 터뜨린 후 적원외에게 말했다.
"에라,
이 못난 놈아 찌질이도 못난 놈 같으니라구 남자들 망신을 다 시키고 있구만,
그래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오입질한 일을 관에 고발해,
네 꼬락서나를 보니 저가 저 계집이랑 오입잘이 잘 안되니 속이 상해 구렇구나,
예끼 이 찌질이 같은 놈 그러니 마누라가 도망을 가지."
그러고는 아사사를 불러내어 이모저모 훑어보더나 또 호통을 쳤다.
"그래,
네 년이 그 잘난 도군황제를 모셨다고?
그렇다면 끌려간 그 놈을 위해서라도 응당 수절을 해야 제대로된 기생 아니더냐?
그런데 도리어 기루를 더 크게 짖고 오입질로 장사를 해?
올술왕자의 궁녀 선발에도 불응 했다 하던데,
네년이 그렇게 수단이 좋다더냐?
네 년이 얼마나 그 짖거리를 잘하게 생겼는지 네 엉덩이 좀 보자꾸나!"
점한이 곤장 이십대를 치고,
손가라 형을 명령하자,
병졸들이 엉덩이를 벗기고 곤장 스무대를 때렸다.
매끄럽고 반지르르한 하얀 엉덩이가 아름다운 향내를 풍기며
흔들흔들 황홀경의 운우 지정을 쏟아내던 탄력넘치는 사랑의 근원지가
곤장으로 졸지에 엉망 진창이 되어 버렸다.
새하얀 우유빛 피부는 솟구치는 붉운 피와 범벅이되어 누더기가 되어 버렸고,
병졸들이 열 손가락에 막대를 끼운 다음 억조르기를 하자,
이사사는 고통을 참디 못하고 이불 속에서 질퍽하게 방사를 벌일 때보다
더 큰 소리의 신음소리를 내며 고통을 못이겨 이리저리 뒹굴었다.
점한도 보고 있자니 속이 쓰렸던지 그만 형을 멈추고 옥에 넣으라고 명령했다.
이사사의 재산은 몰수하여 군비로 충당하라고 했다.
고소를 한 적원외와 잡아온 한량들은 난리통에 나라에 부역은 하지않고
기생집에 드나든 죄를 물어 곤장 열대씩을 때려 내보냈다.
다음 날 점한은 이사사를 군마를 잘 사육하여 공로를 인정받은
늙은 부장에게 상으로 하사했다.
마부 출신의 늙운 장수는 개봉 최고의 기녀를 상으로 받아
점한 장군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감지덕지 했다.
기생들들 중에서 얼굴이 반반한 계집 십여명은 자신의 시중을 들게 하고
나머지는 부하 장수들에게 한명씩 상으로 하사 하였다.
그 중에서 재수없게도 지독한 오랑캐 장수의 마나님을 만난 기생은
노비 신세로 된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부억때기로 변한 이도 있었다.
장수의 첩으로 행새한 이는 몇이 되지 않았다.
몰수한 이사사의 재산은 무려 이십만 냥이나 되었다.
이사사가 그리도 아끼며 정을 드려 가꾸었던 후원은 순식간에 인적이 끊긴 황폐한 곳이 되어 버렸다.
부귀영화는 일장춘몽이란 말이 다시 한 번 실감나게 하는 사건이었다.
수양버들 하늘하늘 봄바람에 날리는데,
봄안개는 가물가물 시름만이 쌓이누나.
해당화는 시들었다 부귀영화 어디갔나
옛추억은 어슴프레 그리움만 남아있네.
이사사는 기구하게도 누더기 옷에 돈 한푼 없이 마부출신의 늙은 오랑캐 장수를 따라
요동땅으로 끌려갔다.
몇날 전만 하여도 황비가 부럽지 않게 살았지만 말동무 할 수족 하나없이
연약하기만 한 여인이 끌려 가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못볼 정도로 처량하였다.
이늙은 장수에게는 십여차례나 남편을 바뀌었는 서역의 회족 출신의
무서운 마누라가 있었다.
까맣고 거친 얼굴에 매부리코의 이 마누라는 어찌나 강짜가 심한지
남편을 대하는 것이 어린아이 대하듯 하고 조금만 비위가 틀리면 욕지거를 파붓고
두둘기겨패기까지 하니 늙은 장수는 이핑게 저핑게 되고는 집에 들어가지 않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왠 곱상한 여인네 하나를 데리고 들어오니 안 그래도 속이 뒤틀리는데
늙은 장수에게 눈에 살기를 가득 뛴채 오랑캐 말로 삿데질을 한다.
"아니,
이 년은 또 뭐야?
어디서 뭐 할려고 줏어왔어,
이 영감탱이야!
너 죽고 나 죽는 꼴 봐야 속이 시원하겠어?"
"아니야,
그런게 아니라고.
태자께서 상으로 하사하셔서 하는 수 업이 데리고 온거라고."
잠시 후 이사사가 들어와 마누라에게 큰 절을 하고 일어나자,
표독스런 얼굴로 알아 듣지 못하는 오랑캐 말로 막 지껄였다.
무슨 말인자 알아 들을 수가 없어 망하니 있자,
늙은 장수가 물지게와 나무 물통 두개를 집어주며 통역을 했다.
"우물에 가서 물을 길러다가 밥을 지으라 하는구만."
이사사는 눈물을 흘리며 물지게를 지는데
정말 처음 해 보는 일이고 보니 옴 몸이 천근 만근 이었다.
허구헌날 평생도록 휘황찬한한 오색 등불 밝히고서 비파뜯고 노래하며
술마시며 즐기던 사사가 졸지에 만주 벌판으로 끌려가서 물지게를 질 줄이야
누가 감히 생각이나 했겠는가!
문밖으로 나서기는 하였지만 우물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앞으로 처량하게 걸으면서 이렇게 모질게 목숨 부지 하느니
차라리 우물에 몸을 던져 이 세상을 하직 하는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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