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매옥의 정혼자는 난리통에 죽고

오토산 2021. 5. 11. 15:04

금옥몽(속 금병매) <124>
매옥의 정혼자는 난리통에 죽고,

금계는 약혼자 절뚝이 유조를 우연히 만나기는 하였으나...

담능 비구니가 이들을 제당(斋堂)으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했다.
부인네들은 옛날 얘기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옛날 어울려 다니던 패거리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많았던

장도감의 마누라는 어느덧 머리가 거의 백발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자색(紫色)꽃무늬의 외투를 걸친 모습이 아직은 꽤 젊어 보이기도 했다.
장도감의 처가 말했다.

"바깥 양반들은 난리 중이라도 서신 왕래는 있겠지요?
딸들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되었구만요."
여씨댁이 한숨을 쉬면서 힘없이 대답했다.

"제 남편은 몇년을 산서땅 거용관에서 참장으로 근무하며 지내다가 오랑캐가 쳐 내려오자

수비하던 병졸들이 모두 도망가는 바람에 책임을 느껴 자살 함으로써

지금은 가세가 말이 아닙니다.

우리 금계는 아이 아버지들 간에 술자리에서 정혼 약속을 하는 바람에

정식으로 천쪼가리 하나라도 혼수를 받은 일이 없어요.
그집 어른은 산서(山西)지방에 수비(守备)로 전근 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도 그곳에 계시는지 모르겠네요?"
장도감의 마누라가 호들갑을 떨면서 말한다.

"아이구,

나는 늙어 그러는지 다 잊어먹고 통 기억이 없네,

정말 유씨댁과 정혼을 하긴 했는가?" 하며

말을 하면서 금계를 힐끔 처다봤다.
그리고는 공씨댁에게 물었다.

"매옥이는 누구랑 정혼했더라?"

"서영(西营) 왕천호(王天户)댁이지요.
정혼한 뒤에 난리가 일어나는 바람에 그냥 나중에 혼례를 치루더라도

매파를 통해 예를 갖추자고만 했는데,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되지 않네요.
저는 과부의 몸으로 딸 하나만 데리고 살고 있으니 생활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네요?
어떻게 하든 시집을 보내주기는 해야 할 텐데 언제나 소식이 올런지 걱정입니다."

"아니,

그렇다면 왕천호 왕명우(王明宇) 어른의 아들이 사윗감이란 말인가요?"

"맞아요,

바로 그 사람이지요.
제 기억에는 꽤 멀끔하게 생긴 아이였는데!
제 딸보다 두살이 많으니 올해 열 여덟이나 아홉쯤 됐겠네요."
장도감의 처가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아이구  아직 모르는 것 같구만.
그 애가 내 외조카 된다우,

그런데 왕천호가 대동영(大同营)으로 재 배치된 후

아들은 풍토병을 얻어 거기서 죽은지 벌써 십년이 넘었다우.
아직도 그집 생각을 하고 있었다니,

그 후 그 집은 풍지박산이 나 지금은 왕씨 가문이 맥이 끊겨버렸어요."
그리고 나서는 금계를 측은히 바라보며 말했다.

"사실은 괜히 얘기해서 속상해 할까봐

말을 안 할려 했는데 사실을 얘기 해 주어야 겠네."
여씨댁이 눈이 동그래지며 얼른 물었다.

"그럼 얘 정혼자도 난리통에 죽었단 말인가요?"

"차라리 죽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지금 공씨댁 사돈댁인 유씨네는 오랑캐에게 부부가 다 살해되고

금계랑 정혼한 유조 녀석만 오랑캐 병사 칼을 맞고 간신히 도망을쳐 목숨은 건졌으나

칼을 맞은 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되어 버렸다오,

그래서 모두들 절뚝이라 부른다오.

마땅한 생업꺼리도 없어 친척집을 전전하며 눈치 밥을 얻어 먹고 있다우.
오늘 나를 따라 오기는 했는데 중간에서 걷기가 힘이 들어 나귀를 구해

타고 온다고 했는데 언제쯤 여기까지 도착 할지 잘 모르겠구먼."

여씨댁이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금계는 고개를 떨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모두 아무 말없이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그때 남녀가 방장 안으로 들어오며 장도감의 처에게 큰소리로 말한다.

"고모님을 모시려고 서둘러 나귀를 몰아 뒤쫓아 왔는데

얼마나 빨리 내 달리셨으면 따라잡지 못했어요.
서역 비구니 스님 설법이 그렇게 좋았어요?
그래도 이 조카를 데리고 가야지요 하며 웃는다."

열 여덟살 쯤 된 젊은 녀석의 모습은 가관이었다.
비쩍마른 얼굴에  까치집 머리, 듬성듬성 빠진 누런 이빨에
배꼽이 다 드러난 짧은 저고리, 절뚝대는 다리는 세번을 뛰어야
한걸음이 겨우 되고, 움츠러든 모가지는 자라목이라.
이 자가 바로 금계가 그렇게 오매불망 그리워 하던 서방이었다.
하늘아래 이처럼 안 어울리는 짝이 또 있을까?

허나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 맘에 드는 짝을 찾아간다면,

풍류시인 할 일 없고 한맺혀 자살할 여인 없을것이다.
모든 것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거늘 월하노인 탓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
절뚝이 유조(刘朝)는 두 과부 여인과 아름다운 여자아이를 보고는 고모에게 물었다.

"이 마님들은 누구세요?"
장도감의 처가  유조에게 얼른 말했다.

"뭐하는 게야?
어서 빨리 네 장모님에게 큰 절 올리지 않고,

날마다 장인 장모 찾는다고 야단이더니 여기서 만날 줄이야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

유조가 고개를 돌려 자세히 보니

두 여인 뒤편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아름다운 두 처녀가 앉아 있었다.
어느 쪽 여인이 장모인지 누가 자기 색시인지 알 수 없는 유조는

우선 되는 대로 두 여인에게 절룩거리는 한쪽 다리를 벌리고는

코가 땅에 닿도록 큰 절을 올렸다.

금계는 너무나 창피스러워 고개를 돌리고는,

어디 숨을 곳이 있다면 당장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유조는 어느 처녀가 자기 색시감인지 모르겠기에 금계와 매옥을

번갈아 힐끔거리며 보다가 두 처녀를 향하여 말했다.

" 내 색시 금계 소저도 안녕하셨어요?"

꼴에 넉살도 좋게 이렇게 운을 띄는 것이었다.
금계야 물론이고 여씨댁도 기가 막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도감의 처가 금계의 손을 잡아 당기며 절뚝이 놈에게 말했다.

"이녀석아!
이 세상에서 이렇게 예쁜 색시감을 네 따위가 어디서 만나 보기나 하겠어 ?"

금계를 자세히 바라보던 절뚝이 놈은 그만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자기의 색시감이 이렇게 어여쁜 천하절색일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절뚝이 병신 빌어먹는 주제에 언감생신 어디감히 그런 생각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

혼이 후르륵 하고 날아가 버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헤헤헤,

  내일 처가 댁에 인사 드리려 가겠습니다요.
그럼 이야기 계속 하시구려."

그러구는 절뚝이며 방장을 걸어 나갔다.
여씨 공씨 두 과부는 벌레씹은 얼굴이 되었고,

장도감 처는 난감해 하며 침통한 얼굴이었다.
항상 제잘대며 까불대던 금계는 기가막혀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속으로 탄식만 할 뿐이었다.

"아이구,

내 팔자도 기구하지!
이런 웬수를 만나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차라리 매옥이 년 정혼자 처럼 뒈져버렸다면 뒷 끝이나 깨끗하지.
다른 데로 시집이나 가게 말야."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던 비구니들도 혀를 끌끌차며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예쁜 색시가 저런 애물 단지를 만났을꼬 하며 안타까워했다.

다음날 아침이었다.
여씨댁 일행에게 아침 공양을 대접한 복청이 제안을 하였다.

"빈승(贫僧)이 대각사로 들어오구 나서 여기 살림규모가 점점커져,

지금은 비구니만도 백여명이 넘지만 하루종일 행사 준비하느라

다들 한가한 시간이 없어서 신발조차 만들 수 가 없네요.
그러니 아예 두 분이 따님들과 함께 이곳으로 이사를 오는게 어떨런지요?
마침 뒤쪽 삼교당(三教堂)동편에 열칸짜리 빈 건물이 있으니 거기서 거처하시면 될 것 같네요.
원래는 이사사의 하인들이 살던 곳인데, 지금은 칸을 막아 한쪽은 서당으로 쓰고 있어서,

우리 출가인들이 출입하기가 곤란하니,

두 분 식구가 거처하면서 저희들 신발을 만들어 주시면 서로 도움이 될것 같아요?"

"스님 고마워요, 저희야 좋지요.
그렇지 않아도 적적하고 생활에 어려움이 있던차에,

스님께서 대각사로 옮기신 후 더불어 이야기도 나눌 사람도 없어 쓸쓸 하였어요.
하던 주막도 본전까지 다 날려 버렸으니 그곳에 미련을 둘 이유가 없지요.
이곳으로 이사오면 부처님과 스님에게 의지하며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든든하겠어요?"

여씨 공씨 두 과부는 이구동성으로 찬성했다.
그리하여 곧 이사를 오기로 얘기를 매듭짖고는, 비구니 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여씨댁은 한숨을 내쉬며 공씨댁에게 푸념을 하였다.

"목이 빠져라 사돈댁을 만나 금계를 기쁘게 할 날을 기다려 왔는데

이런 웬수 덩어리를 만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수!
사람 꼴도 아니고 귀신 꼴도 아닌 절뚝발이 병신새끼라니!
찢어지게 가난한 거야 둘째치고라도,

병신 새끼에게 내 귀한 딸네미를 맡긴다면 무슨 수로 먹여 살릴까?
어떻게 그 사는 꼴을 지켜 볼꼬?
차라리 매옥이 처럼 정혼자가 죽고 없다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말을 마치고는 대성통곡을 하며 오열하니, 공씨댁은 달래느라 진땀을 뺏다.
금계는 금계대로 자기 방에 틀여박혀 엉엉 울기만 하니 매옥도 공씨 못지않게 난감해 했다.
문득 공씨에게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생각해 봤는데, 언니!
그런데 그 작자가 언니 사위감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어?
애시당초 매파가 중신을 선 것도 아니고 예물을 교환한 것도 아니고,

단지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농으로 한 말을 혼담이 성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그걸 가지고 이제와서 야단법석을 떨 이유가 없다구, 안그려 언니?"
그러자 여씨댁이 울음을 뚝 그치고는 생각을 해보더니 맞 장구를 쳤다.

"그래, 맞아!
자네 말한번 시원하게 잘했네.
일반 중신 혼사로 대단한 사윗감일지라도 따질건 철저히 따져야 할 텐데,

남정네들의 술자리에서 한 농을 가지고 금계같은 내 금쪽같은 딸년를

절뚝이 병신한테 공짜로 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야."

여씨는 이제부터 더이상 절뚝이 유조를 사위감으로 여기지 않기로 마음을 정하고 나자

지끈거리며 아프던 머리가 안개 걷히 듯 사라졌다.
매옥은 처음에는 정혼자가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낙담하였지만,

금계의 신랑감이 못난이에다가 다리병신 절뚝이라는 사실을 눈으로 보고나자

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후유,

가슴이 철렁하네!
그런 못난이 병신를 서방으로 섬긴다는 것은 생각만 하여도 끔찍한 일이야,

차라리 얼굴 맞되지 않게 죽어 버리는 것 백배 낫지."

이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서는데, 

청의(青衣)에 큰 모자를 쓴 남자가 먼 발치에서 뒤따라 오다가 매옥의 집을 확인하고는

옆집 오은장(吳银匠)네 전당포 앞에서 한참을 서 있다가 돌아갔다.
옛 말에 아녀자와 사기 그릇은 바깥으로 돌리면 깨어지기 마련이라는 속담이 있는데,

매옥이 버젓이 얼굴을 내보이며 바깥을 쏘다녔으니

장차 어떤 사단이 벌어질찌 아님은 좋은 징조가 나타날지 두고볼 일이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