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묘당에서 우연히 정애향의 동생 정춘을 만나

오토산 2021. 5. 28. 19:52

금옥몽(속 금병매) <136>

 

묘당에서 우연히 정애향의 동생 정춘을 만나

여춘원은 찾았으나 또 그 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데...


응백작이 잠시 뜸을 들이며 눈치를 살펴보니,
정춘(郑春)이란 놈이 솔깃해 하면서도

아직 뭐가 미심쩍어 하는 것 같은지라 얼른 몇 마디 더 보텐다.

"그 비단 장사 양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성씨가 조(赵)이며 호가 서천(西泉)인데, 일찌기 이천냥을 밑천으로 시작해서는

지금은 오백필 비단을 가지고 지금 임청현(临清县)에 와 있다네,

물건을 사자(狮子)거리 주점에 내려놓고 비단을 파는 중인데

한달간 쉬면서 함께 생활할 기생을 찾고 있어서 내가 자네 누이를 적극 추천한게 아닌가?

자네 누이가 하초(下草)만 잘 놀려 그 양반의 마음만 붙잡는다면

이번 기회에 한 밑천 단단히 잡을 수 있다구.
헌데, 자네 누이 솜씨가 아직도 여전한가?
우선 내가 한번 확인해보고 결정하든지 말든지 했으면 하는데..."

그러자 정춘은

입이 떡 벌어진 채 바로 응백작의 옷소매를 잡아 끌며 씩씩하게 말했다.

"어르신!
이 추운데 뭐하십니까?
어서 소인 집으로 가셔서 뜨끈한 아랫목에 앉아 기다리시지요.
이 썰렁하고 추운 묘당안에서 막연히 기다리는 것보단

백배 낫지 않겠습니까요?"

"으흠, 그래!
그렇다면 그렇게 할까?"
응백작은 못이기는채 하며 두말 않고 일어나 정춘과 같이 묘당을 나섰다.

"지금 이 동네엔 몇집이나 남았는가?
한보삼(韩宝三),새보옥(赛宝玉),일평금(一枰金) 같은 기생 아이들도

아직 여기 살고있는가?"

"말씀마십쇼,

옛날에는 여기에 기방이 사오십이 넘고 난다하는 기생들도 백여명이 넘었지만

지금은 열군데도 안 남았구만요.

난리통에 조금 반반하면 오랑캐 장수의 첩으로 들어가거나 잡혀가

군졸들에게 농락당하다 쫒겨와 몸은 망가지고 병들어 겨우 연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오랑캐 장수의 첩이된 여인들은 진짜 기똥차게 운이 좋은 자들이고,

대부분은 계속되는 시달림으로 거의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요.

소인네는 누이 혼자 벌어 가족을 먹여살리는데

이젠 나이가 서른이 넘었으니 찾아 오는 이가 거의 없어요.
게다가  난리통에 오입쟁이들 발길도 끊어지고 정말로 어렵다구요.
그 놈의 오랑캐 새끼들은 허구헌 날 찾아오지만,

그 놈들은 돈은 땡전 한푼 안 내놓구 칼이나 목에 들이 데구

술 내놓으라고 호통을 치며 지랄을 해데니 환장하겠습니다요.

이제는 누이 병도 웬만하게 괜찮아져서 우리도 막 여길 떠날 참인데,

어르신네가 쪼메만 도와주신다면 백골난망(白骨难忘)이 겠구만요."

얘기를 주고 받으며 골목을 들어서는데 눈에 보이는 집들도 담벼락이 거의다 무너졌고,

정애향(郑爱香)의 기방도 옛날에 봤던 번듯한 건물은 어디가고

겨우 대여섯칸의 다 쓰러져 가는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대문은 부서지고 집은 기울어 폐허가 된 기방들.
주악소리 어디가고 귀뚜라미 소리만 슬피들리네.
무너진 담장 깨어진 기와 지붕 꽃조차 시들한데.
촌스럽고 볼품없는 기생 몇이 손님을 유혹하네 .

좁은 골목 문은 열려 있으나 과객은 보이지 않고.
움츠려든 기둥 서방 몇놈만 파리를 날리고 있다.
시들시들 지는 꽃은 벌 나비도 찾지않나 보다.
무성한 잡초 사이로 새우는 소리만 처량하다.

문을 들어서는데 웬 노파가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 나오는데

응백작을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노파가 정춘에게 물었다.

"이 어른은 뉘신가?
눈이 침침해서 통 몰라 보겠네 그려."

"왜 전에 서문대인과 자주 어울려 오시던

응씨 어르신이잖아요."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권했다.
정애향이 맞이하려 나왔는데,

다 낡은 푸른 비단 저고리에 낡아 빠진 흰 치마을 입고 있었다.
얼굴 안색이 어둡고 수척한 모습이 꽤나 병마에 많이 시달린 듯 보였다.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를 하면서도 반나절이 다가도록 차한잔도 안 나오자,

응백작이 정춘을 급히 불러 말한다.

"안되겠어, 

혹시 여길 못 찾을지 모르니까 자네가 밖에 나가 지켜보고 있게나.
반질반질한 누렁 나귀를 타신 어른과 두명의 하인들이

큰 상자를 메고 쫓아오는 일행이 있다면 그분이 바로 조씨 어른일세,

점심을 여기서 들게 된다면 십중팔구는 여기서 묵으실거야?
지나쳐 가시지 않도록 잘 지켜봐야지 잘못하면 내가 공연히 여기서 헛 기다리고 있던게 된다구."

그러자 정춘이 얼른 문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제서야 약삭빠른 정애향은 처음에 응백작이 초라한 행색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는

이 작자가 빈 털터리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하고는 어려운 살림에

대접해봐도 건질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 소홀히 하였다.
그런데 손님을 데리고 온다는 소리에 금새 점심을 준비하려고 일어서며 말했다.

"어르신네,

금방 상을 내올테니 잠깐만 기다리세요.

네?

하지만 술상이 형편없다구 비웃으시면 안되요?
왕년에는 여춘원에서 제일 잘나가던 애가 지금은 왜 저렇게 되었지?
하시면 싫어요.

옛날 서문대인이 계셨을 때처럼 오시기만 하면

금방 없는 것 없이 주안상을 뚝딱 차리던 때를 생각하시면 안돼요.
지금은 여기서 일할 사람도 없고 생선이나 고기를 팔러 오는 사람도 없어요.

가끔 두부나 채소장수가 오긴 하지만 그것두 가뭄에 콩나듯이 뜸하게 오니.
아주 큰 술집에서도 돼지창자 한접시 나올 정도밖에 안된다고요.
그리고는 직접 밖에 나가 술도 받아오고 간식거리도 구해왔다.
응백작을 잘 잡아 놓아야 큰 손님이 묵어 갈것 같다는 남동생의 말이 떠 올랐던 것이다.

할 수 없이 애향은 없는 돈에 술 한독과 돼지창자와 허파, 두부 속을 넣은

만두 다섯개를 사다가 낡은 밥상위에 올려 내왔다.
의자도 없는지라 앉은 뱅이 걸상에 걸터 앉았다.
애향은 초라한 주안상에 미안해 했다.

응백작이 마당을 내다 보다가 돌아다니는 장닭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땅바닥에서 벌레를 잡아 먹고 있는 놈을 보고 응가는 군침을 꿀꺽 삼켰다.

"아,

마침 잘돼었군 여기 통통하게 살찐 닭이 있구만.
어제 저녁에 조씨 어른이 하인 녀석에게 닷전을 주면

서 통통한 닭 한마리 잡아 오라고 시키든데 갑자기 찾으려니

캄캄한 오 밤중에 어디서 닭을 구해오나?

그랫더니 조씨 어른이 화가 나서

하인 녀석을 두들겨 패서 간신히  말려 놓았는데 오늘밤은 좋아 하겠구먼.
그 양반 식성은 더럽게 까다로워서 매일 밤 닭 한마리를 못먹으면 직성이 안풀린대나?

 

어쨌든 닭국이 없으면 밥을 안 먹고 그만 가 버리니,

아는 사람들은  꼭 매끼마다 닭을 잡아 올리지.
그럼 기분이 좋아져 가지고는 꼭 한 두 냥씩 상을 주시는데 ,

정말 돈쓸 줄 아는 기분파이고 말고.
그러니 자네들도 소홀히 하지 말고 알아서잘 모시는게 좋을거야."

노파가 그 소리를 듣고는 잽싸게 나가서 닭을 잡았다.
또 꽁꽁 숨겨 놓았던 대추 호두 밤을 한 움큼씩 꺼내어 안주감으로 내 놓는다.

그러나  오후가 지나도 오지를 않하자,

응가도 문가로 나가 한참을 서 있다가 말했다.

"응 이제 곧 도착 하시겠군." 하더니

애향이를 불러,

"아, 문간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지 않고 앉에서 뭐하시는 건가?" 하며

호통을 치고는 자기는 안으로 들어가 노파에게 말했다.

"어서 가서 의자 좀 빌러오게,

조씨 어른이 오시면 어디 앉으라고 그러나?"

노파가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자, 

응가 놈은 얼른  술과 만두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솥뚜껑을 열고 국물을 맛본 뒤,

닭고기 반마리를 맛바람에 게눈 검추듯이 먹어치우고는 나머지 반마리는 소매속에 감추었다.
그러고는 밖으로 잽싸게 걸어 나오며 애향에게 말한다.

"거 이상하군.
뭣 땜에 이리늦지?
아무래도  내가 직접 나가 봐야 겠는걸."
그러면서 곧장 나가다 큰 길가에서서 기다리고  있던 정춘과 마주치자 또 한마디 일러둔다.

"오늘반 절대로 다른 손님 받으면 안되네.
내 금방 다시 옴세." 하면서

여유자작 갈지자(之) 걸음으로 거드름을 피우며 사라지는 것이었다.

애향 일가족은 날이 컴컴할 때까지 눈이 빠져라 기다렸지만

사람 그림자도 하나 얼씬 하지 앉아,  뒤늦게 솥뚜껑을 열어보니

닭고기라고는 뼉다구 하나 안보이고 국물만 흥건히 고여 있었다 .

상위의 차려 놓았던  네 집시의 안주감도 보이지 않고 빈접시만 보자기로 덮혀 있었다.
그제서야 며칠을 굶은 상걸뱅이 응가놈에게 속은것을 안 애향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채 멍하니 서 있다가

방바닥에 털썩 주저 앉았다.

한편 응가놈은 오랜만에 닭고기로 포식을 한 뒤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다가

속이 거북하여 낡은 패가에 들어가 볼일을 보았다.
갑자기 기름진 고기를 먹어서 인지 모두 배설해 버리고 나자

힘이 쭉 빠져 잠자리를 마련해서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응가는 깊은 잠에 빠져있다가 눈이 칼로 도려내듯 아파서 깨어났다.
두 눈에서 뜨거운 피가 펑펑 흘러 내리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침이 되자 눈에서 흐르든 피는 멈추었으나 어찌덴 영문인지

눈앞이 뿌연 것이 사물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이틀 정도가 지나자 이제는 길가는 사람도 알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제서야 응가놈은 평생 나쁜짓만 하고 살았던

자신이 죄값을 받는구나 하고 회한의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