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28>
*공매옥은 손매파의 설득에 금이관에게
첩으로 시집을 가기로 승낙하고 날짜까지 확정한다.
님계시는 정자에는 가을빛이 완연하네,
그리워라 눈 감으니 꿈이었나 아련하다.
여윈몸에 한이맺혀 눈물방울 옷적시네,
주악소리 그쳤는데 등불마져 꺼지누나.
매옥 모녀를 설득하여 첩이라도 괜찮다고 어렵사리 약조를 받아낸 손 매파는
신이 나서 그녀는 당장에 금이관(金二官)의 집으로 달려갔다.
금이관 합목아(哈木兒)의 본 마누라는 바로 오랑캐 장수 점한의 딸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모든 유전자를 다 이어받아 생김새로 말한다면
아버지를 닮아 사무라운 남정내라 하여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얼굴만 본다면 어쩌면 흉측한 두꺼비도 놀라 도망갈 인상인데.
그 꼬라지에 질투는 어찌나 대단한지 별명이 '암호랑'이라 소문이 나 있었다.
천성은 애비에게 그대로 물러받아 호전적이라 항상 쌍칼을 차고 다니는데,
수시로 말을 타고 사냥을 나가 남자도 다루기 힘든 각궁(角弓)을 번쩍 치켜들고는
허공을 향해 화살 한대를 날리면 한번에 두 세마리의 새를 떨어뜨리니
지 애비의 흉악스런 풍모 그대로 였다.
오히려 남자로 태어났다면 지 애비 보다 더 훌륭한 장수가 되었을 것이 확실했다.
반면에 그의 서방 합목아는 얼굴도 새하얗고 입술도 계집아이 모양 발그스레하여
생겨먹은 꼬락서니가 영낙없는 기생오라비였다.
심심하면 마누라한데 두둘겨 맞거나
오만 욕을 다 쳐먹으면서도 말 한마디 대꾸 못하는 그런 위인이었다.
이러니 기생오라비 처럼 생긴 놈팽이가 할 수 있는 짖거리는
한량 패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이나 쳐먹고 오입질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말채찍을 휘두르며 깡짜를 부리는 마누라에게는 벌벌떨며 접근도 못하고
허구헌 날 밖으로 싸다니며 계집질로 마누라에 대한 욕구 불만을 떼우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할려고 이번에는 공매옥을 첩으로 들이려 하니,
그야말로 질투 많은 마누라에게 죽고 싶어 환장을 한 건지
신랑으로써 위엄을 갖춘 반항인지 흥미가 더해진다.
손 매파는 공씨댁의 승인을 받아 내었으니 이젠 금이관 한데
중신비만 잔뜩 울겨 내려는 속샘으로 합목아를 은밀히 찾아갔다.
합목아는 혹시 마누라에게 눈치라도 채일까봐,
재빨리 손 매파의 손을 끌고 빈 방으로 들어갔다.
"그 색씨 에미는 통 탐탁하게 여기지를 않더구만요.
그래서 쉰네가 나으리를 위해 온갖 좋은 말로 설득을 하니까,
그 색씨도 감동을 받았는지 그예 승낙을 하더라구요.
쉰네가 나으리께서 인물이 아주 훤하게 미남으로 생기셨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길하니까 홀딱 빠져가지고
예물이니 지참금이니 하는 얘기는 아예 끄내지도 않드라구요.
그나저나 나으리께서는 지참금을 얼마나 내 놓으실 생각이시우?
그 정도로 몸도 잘생기고 미인인 여자아이는 적어도 백냥은 내 놓으셔야 될텐데..."
"백냥은 말도 안되고, 오십냥만 줘도 충분할 걸세.
그리고 양 두마리하고 술 두 통이랑 옥반지. 금반지. 진주목걸이 같은
패물을 열개쯤 주도록 할 테니 가마에 테워서 데려 오도록 하라구."
합목아는 역시 오입장이 답게 훤하게 알고 있는 듯 망설임 없이 척척 지시를 내렸다.
그러더니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는 듯 멍하니 천정을 처다 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무래도 여기루 데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
밖에다 따로 아담한 집을 얻어야 되겠구만,
그래야 모녀끼리 편하게 왕래도 할 수 있지 않겠나?"
"아이구, 그러면 훨씬 좋지요.
그 색씨 어미도 딸을 시집 보내고 나면 얼굴도 잘 볼 수도 없을테고
어찌 살고 있는지 알 수 없어 걱정을 태산같이 하고 있던데 아주 잘되었네요.
나으리께서 이렇게 조그만 일까지 조신하게 챙겨 주시니
말이 첩이지 본처와 조금도 다르지 않아 보이네요,
그 색씨도 복이터졌네요.
나으리께서는 어서 집을 구하시고 좋은 길일이나 잡아 주새요.
그러면 쉰네가 알아서 그 색씨를 데려 오겠습니다.
이번 혼사를 성사 시키기 위해서 쉰네가 얼마나 애를쓰고
간신히 성사시킨 건지 공은 알아 주셔야 합니다요 ,
그나저나 수고비는 두둑하게 주셔야 합니다?"
합목아는 즉시 달력을 가져와서 길일(吉日)을 골라
예물을 보낼 날과 색씨를 데려올 날을 정했다.
예물은 팔월 십 일일날 보내고,
신부는 팔월 십 육일날 데려오기로 했다.
그리고는 손 매파에게 은전 다섯 냥을 수고비로 주었다.
손 매파는 입이 함박만 하게 벌어져서 돌아갔다.
한편 공씨댁은 딸 매옥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엉겁결에 승낙은 했지만,
곰곰히 생각해 볼수록 합목아가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고
경솔하세 행동했다는 생각이 들어 은근히 후회스럽기까지 했다.
게다가 옆에 있는 여씨댁이 자꾸 의심스러워하는 말을 자꾸하였다.
"아이구, 좀 경솔했어.
아무리 금나라 장군댁 아들이라 하여도 어떤 장군댁의 어떤 아들이며
본 처는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 알아보고 결정해도 될텐데
기다렸다는 듯이 덜컥 결정을 해 버렸으니 좀 경솔 했어."
공씨댁은 자꾸 생각 할 수록 걱정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하지만 어미와 달리 매옥은 신랑감이 훤칠하게 잘생긴 미남자라는 손 매파의 말에
마음이 기울어져 있는데다가 금나라 내노라하는 장군댁이라니
하루빨리 신랑품에 안기는 날이 오기를 갈망하게 되었다.
저녁이 되었다.
손 매파가 합목아의 혼례로 선택한 길일이라는 날짜를 가져와 알려주고
본가가 아닌 별도의 신방을 얻는다는 말을 전하자.
일단 큰 걱정꺼리는 사라진듯 했다.
"얘,
방으로 가서 우리끼리 술 한잔 안 할래?"
금계가 매옥에게 자기 방으로 가서 술 한잔 나누며 서로의 심정을 얘기하자고 했다.
여씨와 공씨댁은 각자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
그러나 금계와 매옥은 둘만 오봇하게 서로 다리를 걸치고 마주앉아 술을 마시며
이런 얘기 저런 얘기로 시간 가는줄 몰랐다.
"매옥아!
네 혼사날도 인제 얼마 안 남았구나.
시집을 가고나면 앞으로는 자주 만나기 힘들겠지?"
술이 거나하게 오르자, 금계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매옥도 슬픈 심정이 되어 지난 날을 회상하며 말했다.
"언니랑은 참 인연이 깊은 것 같아,
어려서 부터 맨날 같이 놀았던 것도 그렇구,
아빠따라 멀리 변방에 가는 바람에 헤어졌다
십년만에 우연히 만나서 같이 살게 된 것두 그렇구.
아마 언니랑 나는 전생부터 무슨 인연이 있었나봐
,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렇게 맨날 같이 지내면서두
한번도 얼굴 붉히며 다툰 적이 없는 것 같애,
여태까지는 언니랑 이렇게 재밋게 지냈는데 앞으로 시집가면 어떻게 될까?"
"에구! 나도 모르겠다.
모두 팔자 소관이지 하며 결정한 것에 따라 가야지 뭐 별 수 있겠나?"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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