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52>
*월랑은 아끼던 금팔찌를 쌀과 바꾸려고 소옥을 호심사로 보내는데,
뜻하지 않게 신랑 대안과 해후한다.
마귀도 부처 될 수 있고,
공(空)도 어느새 색(色)을 잉태하네,
고진(苦尽) 하면 감래(甘来)하듯,
웃음 있는 곳 슬픔 생기네.
이별과 만남의 아픈 추억도,
절망적인 인생의 자포자기 속에서도
인연의 끈은 아직 남아있어,
어느새 봄이오니 꽃이 만발 하였다.
대안은 큰길을 따라 가서는 회안성안에 가서
월랑의 흔적을 수소문해 볼 생각으로 회안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큰 길 저 앞에는 허둥지둥 도망가는 피난민들이 보였다.
그 뒤로는 그들을 쫒아가는지 많은 오랑캐 들이 따라 가고 있었다.
그래서 대안은 일단 성안에는 상황을 더 알아보고 들어가기로 하고는 성 외곽을 멀리서
삥 돌아 이마을 저마을 동양질을 하면서 월랑의 종적을 살피기로 하였다.
한편 비구니가 된 월랑은 법명을 자정(慈静)이라 하였다.
소옥은 월랑과 함께 지내며 시중을 들어주었다.
맹옥루만 농가에 남아 혼자 살면서 틈만 나면 쌀과 땔감을 암자로 갖다 주었다.
그러나 암자를 오가는 중에 갑자기 오랑캐가 나타나 못된 짓을 할까 염려되어
일부러 가장 더럽고 남루한 옷을 입고는 얼굴에는 검댕이까지 무쳐고 걸인 행세를 하고 다녔다.
조금만 지체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반드시 암자에서 하룻밤을 묵고
날이 밝아서야 농가로 돌아가곤 했다.
월랑은 맹옥루가 고생 하는게 안쓰러워서
그동안 아끼며 몸에 지니고 있던 금팔찌를 팔아 쌀을 사기로 마음 먹었다.
"소옥아.
이걸 가지고 마을에 가서 어떻게 쌀과 바꾸어 올 수 없을까?"
"하지만. 마님.
이 난리통에 이걸 어디가서 바꾸죠?
살만한 젊은 사람들은 다 피난가고 늙은이 들 밖에 없을텐데요?"
소옥이 영 자신없는 표정이자,
암자에 함께 지내는 옆에 듣고 있던 노 비구니 스님이 방안을 일러주었다.
"그거?
내, 좋은 방법을 가르쳐 주지,
시방 호심사에서 금불상을 만들구 있는데 마침 금이 부족하다구 하던데
거기가서 얘기만 잘된다면 쌀하고 교환이 가능 할 거야?"
소옥이 손뼉을 치며 기뻐하며 호심사로 떠났다.
호심사는 암자와 그리 멀지 않았다.
암자 앞에 있는 소나무숲 시냇가에 걸쳐진 돌다리를 건너니 바로 호심사 입구로 들어가는 큰 길이 나왔다.
정문에는 '고로심사(古湖心寺)'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다.
호심사는 엄청나게 큰 절이었다.
지원(智圆) 주지 스님밑에 승려가 삼백명이 넘었으니,
매년 먹는 식량만 해도 천 오백석이 훨씬 넘었다.
그러나 워낙 절이 흥성했기 때문에 난리를 격눈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뜻에서
새로이 금불상을 만들고 승려들은 매일같이 독경하며 참회하고 있었다.
"나무아미타불,
시주께서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소옥이 절안으로 들어서니, 접객승(接客僧)이 나와 물었다.
"이 옆 엄자에 계신 비구니 스님께서 보내셔서 왔습니다.
제가 지니고 있는 금팔찌를 여기서 쌀로 바꿀 수 있다고 해서 왔으니 잘 부탁드립니다."
접객승이 소옥을 데리고 지원 주지 스님에게 데리고갔다.
주지스님은 소옥이 내 준 금팔찌를 백미 일곱석으로 후히 셈해 주며 일
꾼들을 시켜 암자까지 날라다 주라 하였다.
소옥은 접객승이 가져온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곡간으로 가서 쌀을 정량으로 담는지 지켜보았다.
혹시라도 나중에 양이 부족하면 피차간에 남감한 일이었다.
그 때였다.
목탁을 목에 걸고 바랑을 어깨에 멘 어느 거지도인이 절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그 거지 도인은 멀리서 소옥의 모습을 힐끔 보고서는 순간적으로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다.
소옥도 무슨 일인가 싶어 도인의 모습을 먼 발치에서 힐끗 쳐다보았다.
남루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이었다.
낡은 가사자락 찟어진 옷고름 대롱대롱 메달리고,
때에 쩔은 머리, 두건은 풀풀 먼지까지 난다.
한 발걸음 걸음마다 가뿐 숨을 몰아쉬네,
길을 잃은 병든 나귀 기진 맥진 자빠진다.
뉘리끼리 삐는 앙상 상가집의 굶주란 개,
뱃대기는 사흘동안 밥구경을 못했구나!
그 도인은 점점 가까이 다가서며 뚫어져라 소옥을 쳐다보았다.
외간 남자가 빤히 쳐다보는 것이 민망스러워 소옥은 고개를 돌려
잠꾼들이 빨리 쌀을 가지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러자 그 도인은 재빨리 소옥이가 고개를 돌린 쪽으로 몸을 틀며
얼굴을 소옥의 코앞에 들아대는 것이었다.
"소옥이!
소옥이, 맞지?"
소옥이 깜짝놀라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떼에 쩔은 그 얼굴은 분명 꿈에도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해왔던 자기의 서방,
대안이가 아닌가!
"여보!
정말. 정말 당신이우?"
소옥은 갑자기 들이닥친 뜻밖의 해우라
얼굴이 버얼겋게 흥분이 된 채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고였다.
헤어진지 그 얼마만인가?
자식을 잃어버린 주인의 애닯은 모습에 감히 함부로 이별의 슬픔도 드러내지 못하고
남몰래 홀로 또 얼마나 울었던가?
부부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점시 후,
소옥은 쌀을 멘 짐꾼들을 앞장세우고 대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암자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 쌓였던 밀린 이야기를 나누노라니, 헤어진 후의 고초와 이별에 쓰라려
애간장이 탔던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나 다시 한번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월랑은 소옥을 보내고 나서 마음이 영 안놓였다.
혹시 오랑캐 들에가 붙잡혀 가지나 않았나 싶어 염려가 태산 같았다.
금 팔찌를 뺏기는 것은 괜찮지만 접혀가서 몹쓸 짓이라도 당한다면
쌀을 바꾸어 오라고 보낸 자산에게는 죽을 때 까지 한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응어리였다.
그리고 앞으로 누굴 의지하며 산단 말인가?
그래서 소옥이 나간뒤 곧 다시 불러 오려고 했지만 이미 멀리가고 보이지 않아
혼자 암자의 앞마당을 오가며 좌불안석아었다.
소옥이 암자를 떠난지 세시진이 지나자 더욱 애가 타 오는데,
앞을 바라보니 한무리의 사람들이 짐을 메고 오는 뒤에
소옥이가 어렴풋이나마 보여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런데 가까워 질 수록 짐꾼들과 떨어져 오고 있는 소옥이가 뚜렸하게 보였다
하나 어인 일인지 한 거지같은 사내가 소옥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는
희희덕대며 오는것이 보여 눈쌀이 찌푸러졌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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