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병매/금옥몽

진회는 재상에 올라 전권을 휘두르나

오토산 2021. 7. 11. 17:17

금옥몽(속 금병매) <173>

진회는 현란한 언변으로 재상에 올라 전권을 휘두르나

올술의 재침으로 위기에 처하자 악비를 죽여 돌파는 하나...

진회(秦檜)의 말은 청천벽력처럼 고종의 머리를 때렸다.
고종이 늘 마음속으로 걱정해오던 바로 그일이었다.
그리하여 홍호를 두 황제 휘종과 흠종을 위로한다는 구실하여

동태를 파악하기 위해 사신으로 파견하기도 했었던 것이다.
고종의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본 진회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말을 이어나갔다.

"폐하!
그리되면 폐하께서는 머언 변방의 자그마한 왕으로 물러나실 수 밖에 없나이다!
아니, 잘못하면 기군망상(欺君罔上)의 누명을 쓰시게 될지도 모르나이다."

"무, 무엇이라고!!"

고종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진회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말을 쏟아냈다.

"장준과 조정 두 재상도 은밀히 악비와 뜻을 같이 하고 있나이다.
폐하!
그들이 한결같이 북진을 주장하는 이유를 이제야 아시겠나이까?"

"무, 무엄한 옴들!
내, 그놈들을 당장..."

고종이 용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국가와 민족과 빼앗긴 강산은 안중에도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하나, 권좌(权座)뿐이었다.

고종은 그 다음 날로 구실을 잡아 장준과 조정을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악비 장군과 한세충 장군을 시급히 항주로 불러 들이더니,

마침내 그들의 군사 지휘권을 박탈해 버리고야 말았다.

진회는 이제 거침없이 전권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고종은 수십만냥의 배상금과 함께 사신을 금나라에 보내

매년 엄청나 조공을 바치겠다고 서약하고 화친을 요청했다.

날로 맹위(猛威)를 떨쳐가는 악비 장군의 기세에 눌려 퇴각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던 올술은

쾌재를 부르며 하남(河南)과 섬서(陕西)에 주둔해 있던 군사를 이끌고 북으로 철수했다.

"하하핫!
아, 나의 이간 전술이 대성공이야!
이제 두고 보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와서 혼을 내줄거야?"

어리석은 고종은 올술이 쾌재를 부르며 후퇴하는 지도 모르고

그저 진회가 제안하여 화친을 한 덕분에 오랑캐들이 후퇴해 주는 것으로만 알고,

결단을 내리기를 아주 잘 했다고 스스로 위안을 했다.
그러나 악비 장군은 땅을 치며 울분을 참지 못했다.

오랑캐의 사기는 이미 땅에 떨어져 있어

총진격의 명령만 떨어지면 그간 훈련했던 군사들을 이끌고

단숨에 연경까지도 내달을 수 있었을 터인데

다시 한번 절호의 기회를 놓쳤으니 지하에 계신 종택 장군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고종의 신임을 확실하게 얻은 진회는 점점 더 기고만장해져 갔다.

권력을 한 손에 움켜 쥔 진회는 말 잘 듣는 심복을 조정(朝廷)에 대거 포진시키고,

정적(政敌)들을 하나씩 모두 제거해 버렸다.
이제 아무도 감히 그의 명령에 거역하는 사람이 없었다.
일년 후였다.

북으로 철수한 올술은 한세충과 악비 장군에게 대패하여 모욕을 당하였던 것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새롭게 군사를 훈련하고 군대를 재 편성하여 다시 대군을 휘몰아 질풍노도와 같이

하남과 섬서성을 점령해 버리고 말았다.
입장이 난쳐해진 진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악비 장군을 다시 대원수로 임명하여 전선의 방어 책임을 맡겼다.

예상대로 악비 장군의 군사들은 신출귀몰한 작전으로 올술의 오랑캐 대군을 곳곳에서 격파했다.
송나라 군사들은 싸움에서 모두 이기자 사기가 충천하여

이제는 올술이 북쪽으로 도망가는것도 허용치 앉았다.

 

또한 지형지물의 유리한 점을 이용하여 적은 군사이지만 기습공격을 하고는

빠져버리고 하는 것을 반복하니 오랑캐 군들은 정신이 없었다.
올술은 전투에 고전을 하다가 다시 이간지책(离间之策)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허허, 악비가 이렇게 끈질기고 무서운 놈일 줄이야!
이 편지를 가지고 송나라 진회에게 전달 하도록 하여라."

올술의 명령이 떨어지자, 첩자가 즉시 항주에 있는 진회를 찾아갔다.
그러나 뇌물로 진주 오백알까지 가져온 첩자 지만 전혀 달갑지 않았다.
이제는 송나라의 권력을 모두 장악하였고, 전선에서는 악비 장군이 잘 방어해주는 한

오랑캐가 전혀 두려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밀서(密书)를 뜯어본 진회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편지는 아주 간단하게 몇자가 쓰여 있으나 진회에게는 죽음에 대한 공포의 대상이었다.

"악비를 죽일것!
열흘내로 죽이지 않으면 고종에게 밀사를 보내 네가 우리와 내통하고 있음을 알리겠노라!"

- 올술 -

진회는 이제 자신이 살아 남기 위해서라도 수단 방법을 안가리고 악비를 죽여야만 했다.
그러나 배성들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억비 장군을 공개적으로 죽였다가는 분노한 백성들에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몰랐다.

진회는 궁리끝에 일단 악비를 항주로 불러들여

누명을 쒸워 대장군 직을 해임하는것을 고종에게 상소하기로 정하였다.
그러고는 대노한 금나라 황제 오걸매가 직접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사나흘이 지나자 오걸매가 쳐 내려 오고 있다는 소식이 고종의 귀에 까지 들어갔다.
진회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고종에게 달려갔다.

"폐하! 악비 장군이 또다시 전선 방어보다는 올술의 군대을 제압하였으니

군사들의 사기도 높아 북진을 계속하겠다고 한답니다.
그런데 금 태종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다 하니 잘못되면 항주도 바람앞에 등불입니다.
오걸매가 올술을 지원하려 오기전에 항주로 소환하여 황명을 어긴죄로 투옥 시키고

화해의 사절을 올술에게 보내 오걸매의 남하를 막아야 하옵니다."

오걸매가 백만대군을 몰고 온다는 소문을 들었는지라

어찌할바를 모르고 쩔쩔매고 있는데 진회가 와서 상소를 올리자.

"음, 그렇게 하도록 하라!
허나 전공을 세우고 백성들에게 추앙을 받고있는 악비 장군을

투옥까지 시킨다면 민심이 동요하지 않을런지?"

"잠시 투옥시켜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 오걸매의 남하를 막고 어멍의 지엄함을 보인후에

곧바로 석방을 시킨다면 별 일이 없을 것으로 아뢰옵니다."

그러나 항주로 소환당해 투옥된 악비 장군은 사흘 뒤 입으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두고야 말았다.
죽은 얼굴은 시커멓고 푸른 빛이 났으며, 억울하여 두 눈을 깜지 못하여 부릅뜬채

숨을 거둔 청년 장군 악비는 겨우 서른아홉살이었다.

분노한 머리털 치솟아 관을 찌르는데
난간에 기대섰노라니 세찬 비도 그치네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길게 휘파람부니
장렬한 마음 격렬하게 솟구친다.

삼십에 세운 공명도 진토에 불과하고
팔천리 길 구름과 달빛처럼 흔적이 없네
더 기다릴 수 없는데 백발이 되니
부질없이 슬퍼하지 말아야 하네

정강의 치욕 아직 씻지 못했으니
이 신하의 한은 언제나 없어지려나
병거를 몰고 달려가서 깨부수리라

하란산의 관문을
장쾌히 오랑캐의 살로 주린 배를 채우고
담소하며 흉노의 피로 마른 목을 축이리
옛 산하를 모두 되찾은 후에 천자를 배알하리라

 

(怒髮衝冠 憑闌處 瀟瀟雨歇 擡望眼 仰天長嘯 壯懷激烈 三十功名塵與土

八千 里路雲和月 莫等閒 白了少年頭 空悲切 靖康恥 猶未雪 臣子恨 何時滅 駕長車踏破

賀蘭山缺 壯志飢餐胡虜肉 笑談渴飮匈奴血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악비(岳飞)의 만강홍(满江红)
진회는 서둘러 악비 장군의 시신을 화장해 버렸다.
악비 장군의 시신을 목격한 옥리들도 며 칠후 모두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야 말았다.

민족의 영웅  악비 장군의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민심은 극도로 흉흉해 졌으나 결정적 증거가 없으니 무두들 추측만 난무 할 뿐이었다.
오랑캐군은 철 수 하였으나 송나라는 황하강 북쪽 영토를 금나라에 양보하고

매년 은 이십오만 냥과 비단 이십오만 필의 많은 조공과 여인들을 금나라에 바쳐야 했다.

악비 장군이 죽고 십사년이 지나 온갖 권력을 휘두르던 진회도 땅속에 묻히게 된다.
진회가 죽고 나자 '낮말은 새가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는 속담 처럼 비밀이란 있을 수 없었다.
악비 장군의 의문의 죽음에 대한 추측은 또 백성들 입에서 떠돌아 다녔다.

진회가 땅에 묻히고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세상에 종말을 고하는 듯이 억수같은 폭풍우가 무섭게 천지를 휩쓸더니

먼동이 트자 거짓말 처럼 사라졌다.

그런데 진회의 무덤앞을 지나가던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간 밤의 폭우에 무덤이 송두리째 유실되어 있었고, 그의 시체는 벼락을 맞아

관 속에서 새까맣게 숯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영웅 악비 장군을 음해해 죽이고

오랑캐와 결탁한 민족 반역자에 대한 하늘의 응징이라 여겼다.
악비는 고종사후 효종때 악왕(岳王)으로 복권 되었다.
송나라는 또다시 오랑캐의 원나라에 멸망하는 수모를 당했다.

똑같이 금나라에 사신을 갔다가 볼모가 되었던

충신 홍호(洪晧)와  역적 진회(秦檜)의 이야기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진회는 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악비의 능인 악왕묘 악비 동상 앞에 포박된 채

그의 처와 무릎을 꿇고 있다.

중화인들은 그에게 침을 뱉고 뺨을 때리고 발로 차기도 하여

그러지 말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인들이 이름을 지을때 진회(秦檜)의 회(檜)자를 수치라 하여

절대 쓰지않는다 한다.
세상이 몇망하지 않는 한 역사의 준엄함을 되새겨 바야 할 일화이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