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74>
요공은 산채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남쪽으로 향하다가
양주성 천녕사 객방에서 여러 스님들이 어머니 찾는데 힘을 모은다.
죽림 깊은 곳에 가사 옷 걸쳐입고,
수행길 십년 걸어 나의 집은 필요없다.
가끔씩 파계하여 술 한잔에 목 축이고,
참선하다 도망나가 청향차를 마셔본다.
동냥 사발 손에 들고 시주하러 다니는데,
술잔안에 받은 술이 그럭저럭 맛있도다.
부처되는 수행법이 어디 따로 있겠는가?
달빛 가득 짊어지고 지평선을 걸어본다.
이전(李全)의 산채에서 금병의 도움으로 도망나온 요공은
뒷산 오솔길을 통해 한참만에 큰 길로 나서게 되었다.
요공은 동냥질로 식사를 대신하며 남쪽을 향해 걸어간지 하루만에 회안부(淮安府)에 도착했다.
길거리에는 금나라 오랑캐들이 득실거렸다,
다떨어진 누더기 가사를 입은 요공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넓은 성안에서 월랑의 소식을 알아낸다는 것은
넓은 사막에서 잃어버린 바늘을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대안이 만큼은 외부로 활발히 다니니까
혹 대안이라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인 요공은 한번 혼이 난지라 아무곳에서 기숙하기가 겁이나서
되도록 이면 절간을 찾아다니며 요기하고 숙박을 했다.
다행히도 회안 땅에는 절과 암자가 많아 먹고 자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금나라와 송나라의 전쟁이 오랬동안 지속되고 오랑캐가 회안성을 점령해 버리자
회안성의 백성들은 대부분 피난을 가버려 집들은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후유!
이 난리통에 어머님과 소옥은 제대로 끼니나 때우고 계신지 모르겠네.
성안이 모두 텅텅비어 있는데 어디에서 거쳐하고 계실런지 걱정이 되네.
대안이는 또 어찌 되었을까?
나랑 붙잡히지는 안하고 도망 쳤을텐데 어디가 있는지
어디에 있든지 잘 지내야 될텐데 정말 걱정이 되네.
요공은 모든 것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자기 어머니를 찾기 위하여 준제암을 떠났던 길이기에
지금와서 포기하고 돌아간다 한들 제대로 참선 공부에 전념할 자신도 없을 것 같아
끝까지 어머니를 찾으리라 마음 먹었다.
요공은 회안성에서 월랑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남쪽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송나라 한세충의 군사들이 일반인의 도강을 불허하는지라 할 수 없이
양주성 쪽으로 되돌아와 그 근처에서 비교적 큰 천녕사(天宁寺)라는 절을 찾아가
지친 몸을 쉬기로 했다.
객방(客房)에 있는 여러 객승들 틈에 끼어 요공은 지친몸을 눞혔다.
그런데 요공 옆에 드러누워 있던 한 승려가 요공에게 떠돌아 다니는 사연을 물었다.
"나무아미타불!
스님께서는 어디에서 오셨나요, 또 어디로 가시는 길이신데 이곳에 오셨나요?"
그는 요공보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였다.
"피란중에 토적들에 쫒기다 헤어진 어머님을 찾아 다니는 길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흘러왔건만 도대체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마음입니다.
그저 어머님은 불심이 크시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가엾게 여기시어
도와주시기만 바라면서 무턱대고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탐문을 하고 있습니다."
요공이 자초지종을 일러주며 말해주다 눈물을 글썽였다.
요공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객승들은 모두 자신의 일 인양 안타까워 하였다.
"젊은 스님,
보아하니 효성이 매우 깊은듯 하구려,
인륜을 다하는것 또한 불가의 도리이니 우리의 미약한 힘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여기에 있는 많은 스님들이 이 근처 민가나 다른 절을 막론하고
이곳저곳 안 가는데가 없이 돌아 다니며 독경도 해주고
예불도 올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인적사항과 고향과 주소 모친의 성명을 적어 주시면 우리도 알아봐 드리지요."
요공 스님은 그들의 말을 듣고 아주 기뻐하며 곧 종이를 빌려 자신의 내력을 상세히 적었다.
그 적은 내용을 천녕사의 십방당(十方堂)복도에 붙여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었다.
"산동 청하현 서문 집안의 외동 아들 효가로 태어나 준제암에서 출가한 요공은
여러 스님들과 시주들에게 간절히 애원 부탁드립니다.
소승은 십여년전 일곱살때 생모 오월랑과 소옥을 난리통에 헤어져
우연히 가복(家仆)이었던 대안을 만나 생모를 찾으러 길을 나셨다가,
심야에 강도를 만나는 바람에 그와도 헤어져 버렸습니다.
이제 생모와 대안의 소식을 듣고자 남쪽으로 길을 가고 있으니,
만약 소식을 알고 계신 분이 있으시면 이 곳 천녕사로 전언(传言)을 남겨주신다면
그 은혜 평생토록 잊지 않겠습니다."
벽보를 복도에 붙인 요공은 다시 객방으로 돌아와
처음에 사연을 물어왔던 스님과 함께 이런 저련 대화를 나누었다.
"소승은 여혜(如惠)라 하오이다.
회안에 있는 호심사 승려입니다.
나이는 이제 갓 이십이 되었습니다.
나이로 보면 저가 형님뻘이 되네요?
원래 양주 태생인데 그 곳이 오랑캐 들이 주둔해서 많은 백성들이 모진 일을 당한다해서
혹시 그곳에 살고 있는 어머님이 평안히 지내시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모친을 뵈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진강(镇江)으로 피난을 가셨다 하여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는 진강으로 찾아가 볼 생각입니다."
"하오면 스님께서도 모친을 찾아 길을 떠나신 것이군요.
동병상련(同病相怜)이라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내일 무사히 모친을 찾으시길 부처님께 기도 드리지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고맙습니다.
헌데 스님도 여기서 무작정 기다리실 게 아니라,
내일 소승과 같이 그 근처에 가서 스님의 모친 소식을 알아 보는게 낫지 않을까요?"
"그러지요,
폐가 되지 않을지 모르겠어요,
소승도 내일 스님을 따라 가겠습니다."
두 스님은 의기가 투합하여 밤새도록 함께 불법을 토론 했다.
여혜는 어린 사마승이 불법에 대한 교리를 깊게 깨치고 있음에 탄복하였다.
다음 날이었다.
두 스님은 함께 천녕사를 떠나 과주(瓜州)까지 함께 배를 타고 갔다.
그러나 과주의 근처에 있는 감로사(甘露寺)가 아주 큰 사찰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요공은 혹시 그 곳에서 어머니의 소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진강으로 가는 여혜 스님과 헤어져 감로사로 갔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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