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75>
사월 초파일을 맞아 소원지 불공을 드리려 간 월랑은
여혜 스님으로 부터 요공의 소식을 전해 듣는다.
한편 비구니가 된 오월랑은
호심사 동쪽 마을의 관음당(观音堂)이란 비구니 암자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대안은 날마다 월랑과 소옥을 찾아와 땔감과 취사 일을 도와주며
월랑을 모시면서도 자기의 처인 소옥과는 한사코 동침을 하지 않았다.
마을에 살고 있는 맹옥루도
자주 월랑을 찾아와 서로 의지하며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곤 했다.
그 무렵은 이미 오랑캐 왕자 올술이 악비 장군에게 쫓겨 북쪽으로 퇴각하고 난 뒤라,
피난갔던 백성들도 하나둘 회안성으로 돌아와 다시 생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이었다.
자식 생각에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월랑은 마침 찾아온 월랑과 상이했다.
"동생,
며칠 지나면 사월초파일이지?
호심사에서 석탄회(释誔会)가 열릴텐데 나도 가서 불공을 드리고 싶은데 어쩌나?
아들 찾기를 바라면서 빈손으로 갈수도 없구."
월랑이 안타까운 듯 한숨을 내쉬면서 말하자,
맹옥루도 가진게 없는지라 그저 따라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때 월랑의 스승인 노 비구니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아! 불자(佛者)가 별 걱정을 다하는 구만.
여염집 사람들이나 공양미 바치고 예불을 드리는 게지,
우리같은 비구니가 꼭 보시를 해야 불공을 드릴 수 있다는 법이 어디있누?
그저 접객 스님한테 소원수리지 쪽지하나 써달라구 해서
보은경(报恩经)이나 한번 암송하고 부처님 전에 불살라 버리면 되는게야."
월랑은 스승의 말에 너무나 기뻐서 어서 석탄일이 오기를 기다렸다.
사월 초파일이 되자 월랑과 맹옥루는 목욕재계하고 호심사로 향했다.
월랑은 그동안 불경공부를 많이 해서인지 승복을 입고 염주를 걸치고 승모를 쓰니
이제는 누가 보더라도 몸에서 불심이 묻어나는 비구니 스님의 모습이었다.
아직도 오십도 안된 나이이지만 아들 걱정에 속이 상한 탓인지
이마에는 쪼글쪼그한 주름살이 가득해 보기에는 예순이 넘은 득도한 노 비구니로 보였다.
호심사에 도착한 월랑과 맹옥루는 먼저 주지스님을 찾아가
호심사 동쪽 마을에 있는 관음당에서 불심을 수행하고 있다고 말을하고
작은 암자라 부처님께 바칠 공양물이 없다며 접객승에게 소원지를 부탁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주지스님은 같이 부처님께 구도하는 사이인데 공양물이 무슨 문제이냐며 그렇게 하시라고 했다.
접객 스님에게 가니 많은 사람들이 가져온 물건이나 금전을 보시하고
접객 스님에게 소원을 이야기 하면 그 내용을 일일이 기록한 후
주지 스님의 승인을 받아서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소원지를 태우고 있었다.
월랑과 맹옥루의 차례가 되어 접객 스님에게 합장하며 말하였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전란통에 잃어버린 속세의 아들 소식을 알고파
소원수리 종이를 쓰고 싶은데 가능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소승의 속명은 산동 청하현의 서문부인 오월랑입니다..."
월랑이 아들을 잃은 사연을 이야기 하자,
그 젊은 접객승은 받아 쓰면서도 웬일인지자꾸만 월랑의 얼굴을 살펴보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말하였다.
"언제 출가 하셨는 지요?"
"아들을 찾으려 다니고 있지만 소식도 모르고 전란중이라 딱히 고향에 돌아갈 수도 없어서
동쪽마을에 있는 관음당에서 출가를 했습니다."
"아드님이 몇 살이지요?"
"금년이 열일곱입니다.
그 애가 일곱살이 되던 해에 오랑캐가 쳐들어와
피난길에 모자가 생이별을 하였으며 벌써 십년이 지났네요.
소식도 없고 죽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소식을 들으니 출가해서 스님이 되었다는군요.
지난 해에는 저희 집 가복으로 있던 대안이와 같이 저를 찾아 길을 나셨다가
회안폐 사찰에서 잠을 자다 그는 산적에게 잡혀갔는데 지금까지도 생사(生死)를 알수 없습니다.
출가를 하였으나 아직 불심이 깊지 못해 에미로서 자식이 그리운 것을
부처님 앞 에 소원지라도 올리면 도와 주실것 같아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아들을 찾게되면 그때 다시 찾아와 부처님의 은덕에 감사하는 불공을 크게 올려 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자 마자 그 접객승은 놀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서는
소원지 쓰는 일을 다른 스님에게 부탁하였다.
그리고는 월랑일행을 재당(斋堂)으로 안내하여 차를 접대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놀라우신 가호입니다!
소승은 여혜라 하옵니다.
일전에 양주의 천녕사에서 어느 사미승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이름이 요공이라 했습니다.
같이 하룻밤을 지내면서 얘기를 했는데, 고향이 산동이고 남쪽으로 모친을 찾아간다 했습니다.
그리고 본적과 성명(姓名)을 종이에 적어서 십방당(十方堂)복도에 붙이고는
절을 드나드는 스님들에게 소식을 알아 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 다음 날 요공 스님과 함께 과주까지 동행했었지요.
혹시 그 스님이 아드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여혜의 말을 들은 월랑이 흥분이 되어 미칠듯이 펑펑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당장에 자식을 찾을 수 있게 된 것처럼 좋아하니
옆에서 듣고 있던 대안도 흥분을 가라않히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언제 때 이야기인가요?"
"한달쯤 되었을 것 같습니다.
도움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달이 지났다면 지금와서 당장 요공이 갔다는 감로사로 가도 그와 만나기는 쉽지 않은 일이련만
모두들 부처님께서 자비를베푸사 소식을 아르켜 주셨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란만 끝이 난다면
만나는것은 시간 문제일것 같아 모두 무척 기뻐하였다.
마음이 바뿐 월랑은 부처님께 감사의 절을 올린뒤
주지 스님께 작별 인사를 고하고는 서둘러 관음당으로 돌아왔다.
모두들 들뜨고 기뿐 표정들이 마치 길에서 보물이라도 주은 것 같았다.
효가(孝哥)의 소식을 듣고 난 그날부터 월랑은 마음이 바빠져 한시바삐 아들을 찾아 나서고 싶었다.
월랑은 대안에게 함께 남쪽으로 효가를 찾으로 가자고 했다.
맹옥루도 월랑의 심정을 이해한 듯 더 이상 만류하지 않았다.
그러자 스승 노 비구니도 한께 가겠다고 말했다.
"내가 처음 출가할 때 마음속으로 맹세한게 있어,
꼭 남해바다 낙가산(落伽山) 에 가서 관음보살께 예불을 드리겠다 했는데,
그런데 난리통에 이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있거든.
그런데 마침 네가 천리길을 마다 않고 아들 찾아 떠난다 하니 나도 같이 가고 싶네,
어차피 네가 비록 출가한 비구니 이나 낮선 사람을 만나면
부끄러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성격이니 내가 따라가면 도움이 될꺼야?"
"그러면 저야 좋고 말고요."
월랑은 암자를 맹옥루에게 부탁하고 대안부부 노 비구니 스승과 함께 길을 떠났다.
짐은 물론 대안이 차지가 되었다.
길을 떠나자 맹옥루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언니,
효가를 만나더라도 그냥 고향으로 가시지 말고 저를 보려 오셔야 해요?"하며
손을 꼭 붙잡고 아껴 놓았던 은전 세냥을 건네 주었다.
두 여인은 눈물로 작별을 하고 먼저 호심사로 가서
여혜 스님을 만나 요공이 간다하던 길을 자세히 물어보고 노정표(露程表)를 만들었다.
"우리가 양주를 떠나 과주에서 헤어질때
요공은 감로사로 간다고 했습니다."
월랑 일행은 여혜 스님이 이야기한 요공의 행적을 쫒아 우선 감로사로 가기로 하고
길을 걸으며 숙식은 절간에 들려 해결 하였다.
오랑캐가 악비 장군에 쫒겨 북으로 간 탓인지 온 곳이 폐허로 전란의 상처는 남아 있으나
백성들의 생활은 일상으로 돌아와 있는 듯 하였다.
어느덧 양주를 지나 드넓은 양자강 하구에 다달았다.
막 강을 건너려는 배가 있어 월랑 일행은 간신히 비좁은 배에 끼여 탈 수 있었다.
후미에 타고 있던 대안은 한 노 스님을 발견하고는 물어 보았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신지요?"
"뭐, 머라고 했수 어디가냐구?"
노스님은 귀가 잘 안들리는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대안이 다시 큰 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알아 들었는지 '음' 하며 말했다.
"강건너 조금가면 큰 절이 있는데 그 감로사에 있어."
대안이 감로사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다시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럼 혹시 요공이라는 스님이 그 절에 묵고 계시나요?"
"응, 있지 어떻게 아는 사이인가?
지금 절의 모든 관리를 도맡아 하고 있지.
얼마나 바지런한지 다들 칭송이 자자해.
새벽에 일어나면 예불을 알리는 종을 치고 북도치고 그래."
대안이 너무 기뻐 월랑에게 스님과의 대화 내용을 알려주자
이제 곧 아들과의 만남이 성사된다며 너무나 기쁜지
닭똥같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을 되뇌었다.
<sns에서>
'금병매 > 금옥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월랑 일행은 요공을 찾아 남해로 길을 떠났다 (0) | 2021.07.15 |
---|---|
월랑은 사월초파일에 소원 불공을 드리려 감로사에 갔다가 (0) | 2021.07.14 |
요공은 산채에서 무사히 빠져나와 (0) | 2021.07.13 |
진회는 재상에 올라 전권을 휘두르나 (0) | 2021.07.11 |
진회는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고종을 현혹시켜 (0) | 2021.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