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72>
진회는 능수능란한 언변으로 고종을 현혹시켜
금나라와 화해토록 결정하는 한편 악비를 모함하는데...
진회(秦檜)가 탈출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고종은 즉시 그를 불러 적의 상황과 동태를 물었다.
전방에 있는 악비 장군이 자꾸만 상소를 올려 북진을 주장하였기에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던 고종은 적진속에서 친히 보고 들은 진회의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고종과 단 둘이 독대한 진회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큰 절을 올렸다.
"황상 폐하!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렇게 용안을 뵈오니 이제 소신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어리석은 황제 고종은 과거 진회가 늘 강직한 말로
부친인 휘종 조길을 괴롭게 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터라 조금은 꺼람찍 하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진회의 첫 대면이 자기를 대하면서 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어 점차 기분이 좋아졌다.
십여년만에 나타난 진회는 어찌된 일인지 어리석은 황제 고종이 무엇을 바라는지
정확하게 꿰뚧어 보고 있었다.
"폐하!
이제 무고하게 희생되는 백성을 위해서라도 하루 속히 금나라와의 전쟁을 끝내야만 합니다."
"오, 경의 말이 지극히 옳소.
허나 금나라의 군대가 자꾸만 우리나라를 넘보니
우리 마음대로 전쟁을 끝낼 수가 없지 않은가?
차라리 악비 장군의 주장대로 북진하여 옛 땅을 수복하는 것이 어떻겠소?"
"아니올시다.
폐하, 금나라도 사실은 평화를 원하고 있나이다.
회하(淮河)를 경계선으로 하고 우리가 약간의 배상금을 주어
성의를 표시하기만 한다면 저들도 기꺼이 평화 조약을 맺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국력을 모두 모아 옛 땅을 수복할 수 있다 하더라도
금나라 황제 오걸매의 성격으로 보아 역시 대노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시 백만대군을 몰고 재차 남침을할 것입니다.
그때가서 우리가 어찌 당해내겠나이까?
소신도 과거에는 전쟁을 주장하였으나, 십여년동안 금나라에 유배당하여
그들의 군사력을 지켜보니 용맹하기가 이루 말할 수 조차 없었나이다.
지금 와서 옛 땅을 수복하고자 한다는 것은 결코 상책이 될 수 없다 생각되나이다."
진회의 말에 고종은 크게 기뻤했다.
황천탕과 건안성의 승리로 고조된 북진의 주장에 은근히 가슴이 떨려왔던 고종은
돌연 나타난 진회가 구세주 처럼 생각되었다.
고종은 다음 날 어전회의에서 장준(张俊)과 조정(赵鼎) 두 재상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짐은 배상금을 주더라도 하루 속히 백성들을 편히 지내게 하겠노라!
또 어제저녁 금나라에서 돌아온 진회를 만나보니 만고에 보기 드문 충신이었소.
이제 강직하기로 소문난 진회를 다시 볼수 있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라 너무 기쁜 나머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소."
고종은 그 즉시 진회에게 한림학사(翰林学士)를제수하고,
두 재상과 함께 정사(政事)에 참여하도록 전지를 내렸다.
그러나 진회는 오직 장준의 분부만 받들 뿐,
언제나 겸손하게 처신하며 함부로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다.
그러한 진회를 만조 백관들은 입을 모아 칭송했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조정 만은 아무래도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조정은 재상 장준에게 자신의 견해를 넌즈시 밝혔다.
"장공(张公)!
공께서는 진회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인품이 훌륭한 사람이지요.
십여년이 흐르도록 고국을 잊지 않고 기회를 보고 있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 온 그 충성심 또한 갸륵하기 짝이 없지 않소?"
"장공!
잘 생각해 보시오.
어쩐지 이상하지 않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신하가 수없이 많은데,
어찌 그 혼자서만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이오?
수만리 위험한 적진을 무장도아닌 문신이 어찌 다친 곳 하나없이 멀쩡하단 말이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수상하오.
필시 꾀 많은 올술이 악비 장군의 맹활약으로 궁지에 몰리자,
우리를 이간시키려 몰래 보낸 것 같은 생각이 자꾸 생각난단 말이오."
"하하!
대감, 비약이 너무 지나치오이다!
과거에 휘종 시절에 진대감이 얼마나 충직하게 직언을 많이 했던 인물인지 잊으시었소?
하하!"
장준은 조정의 말을 전혀 듣지않고 오히려 진회의 의견만 따랐던 것이다.
고종은 어떻게든 전쟁을 종결 시킬 수만 있다면 그걸로 만족할 따름이었다.
"만족백관들은 들으라!
짐은 장차 진회 대감을 금나라에 밀사로 파견하여 그들과 강화조약을 맺으려 하니,
악비 장군과 한세충 장군의 군사를 양자강 이남으로 철수시켜
우리 송나라가 적의(敌意)가 없음을 그들에게 보이도록 하라!"
단호한 고종의 어명에 조야(朝野)가 발칵 뒤집혀 버렸다.
악비 장군과 한세충 장군이 연일 상소를 올려 진회를 비난하였음은 물론,
장준과 조정 두 재상을 비롯한 조정(朝廷)의 모든 신하들이 강화조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였다.
조정과 제야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우유부단한 고종은 결정을 하지 못하고 다시 망설이기 시작했다.
고종은 즉시 진회를 불러 수습책을 물어 보았다.
진회의 답변은 간교하기 이를 데 없었다.
"폐하!
신은 금나라에 십년이 넘도록 갇혀 지내며
그들의 군사력이 얼마나 강대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나이다.
병법에도 이르기를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战百胜)이라 하였습니다.
우리 송나라의 문무백관들은 적도 모르고 아군의 능력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나이다.
장차 금나라가 국력을 모아 재침해 온다면,
그때 가서 과연 악비 장군 혼자서 만리장성이 될 수 있겠나이까?
통촉하옵소서!"
"짐의 생각도 바로 경과 하나도 다름이 없노라!"
하지만 만조백관들이 모두 들고 일어나 상소를 올리고 신문고를 울렸다.
우유부단한 고종은 그래도 결정을 못하고 망설였다.
그러자 진회는 노련하게 미사여구를 섞어 은근히 고종을 협박 하였다.
"폐하!
이제 모든 대소 신료들의 의견을 들으셨사오니,
결단은 천하만민의 어버이이신 폐하께서 결정하셔야 하옵니다.
하오니 소신을 포함한 누구의 의견에도 현혹되지 마시고,
며칠간 숙고하신 후에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때가서 소신이 매우 중요한 이야기를 폐하께 아뢰오리다."
"중요한 이야기라?
그것이 무엇인고?"
"그것은 사흘 후
폐하께서 홀로 결단을 내린신 뒤에 아뢰겠나이다."
고종은 진회의 교묘한 언변에 홀려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그러나 진회는 한사코 즉답을 회피하며 고종의 호기심을 끌어올려 놓았다.
고종은 신하들이 소청한 내용은 분석 결정 할 생각을 하지않고
사흘동안 진회의 이야기가 궁금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 상황이니 고종은 아무리 상소가 빗발쳐도 상소는 재처놓고,
사흘후에 진회를 불러 이야기를 듣고 결정하리라 마음 먹었다.
사흘이 지나자 마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고종은 진회를 불러 오라고 하여
그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폐하,
먼저 결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면 진언(进言)하기가 난감하옵나이다!"
"짐은 이미 결단을 내렸노라!
금나라와 화해하고 평화 협정을 꼭 맺고 싶구나."
고종은 진회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결단을 내렸는 척 해보였던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격은 여우같은 진회가 고종의 마음을 모를리가 없었다.
일단 자신의 생각대로 전개되자 노련한 진회는 못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아무도 없는 자리였지만,
그는 누가 듣기라도하면 큰일 날듯이 조그마케 나즈막하게 말을 했다.
"폐하!
악비 장군이 평소에 무슨 말을 하고 다니는지 아시옵나이까?"
"글쎄다?"
"폐하 악비는 무엄하게도 늘 입에 올리는 말이 한시바삐 오랑캐를쳐서
금나라 연경에 계시는 폐하의 형님되시는 흠종 황제 폐하을 모셔와
복위(复位)시키겠다 하고 다닙니다.
악비 장군을 소환 조사해 보면 소신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것을 아실 것이 옵니다.
만일 저가 거짓을 고하였다면 능지처참 하시옵소서."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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