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옥몽(속 금병매) <171>
충신 홍호는 두 황제를 만나려 금나라에 갔다 유배되고,
도군황제는 동사해 죽어 시체를 고기밥으로 주었다는 소식에 혼절 까지 한다.
머얼리 북쪽을 바라본다,
황량한 발판 아지랑이 속에 피어나는 중원땅!
버들가지 모란꽃이 뒤덮은 도성,
온천지에 화려하게 솟구친 누각,
비취구슬 만수산에 굴러다니고,
풍악소리 봉래전에 가득 퍼졌네...
지금은 벌판을 가득메운 오랑캐의 기병,
뭉게뭉게 피어나는 고약한 먼지 바람!
병사들이여!
어디에 있는가?
예리한 칼날에 뿌려지는 핏방울,
백성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골짜기 시냇가 가득메운 시체들.
강산은 의구한데 마을은 어디로 갔나?
언제인가는 투구 쓰고 말등에 높이 앉아,황하를 뛰어넘어 오랑캐를 유린한 날,
그 이후에 다시 돌아와 황금학 타고 하늘을 나르리라.
악비(岳飞) 황학루(黄鹤楼)에 올라 황학루는 강남 땅의 명승지이다.
옛날의 선인들이 황학타고 하늘로 날아갔다는 소문이 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당나라의 그 유명한 시인 최호(崔颢)와 시선(诗仙) 이태백(李太白)이 찾아와서
천고의 유명한 시를 남긴 장소이며 현재도 오성급의 관광지 이기도 하다.
그러나 악비 장군은 이 황학루에 올라 나라를 생각하며 피눈물을 흘렸다.
그에게는 오랑캐 진영을 유린할 날이 영영오지 않았다.
송나라 명장 악비 장군이 피눈물을 흘리게 한 오천년 중국 역사속의
만고의 역적으로 낙인 찍혀 있는 진회(秦檜)가 있다.
그는 현재까지도 중국의 반역자의 대명사로 되어있으며,
지금도 항주(杭州) 서호(西湖) 서하(西夏)에 가면 악비의 묘가 있는데
묘앞에 진회 부부가 꿇어앉아 용서를 비는 동상이 있는데
아직도 지나는 사람들이 침을 벹고 채찍질을 하기도 하고
오물을 던져 재발 그러지 마세요 하는 간판이 붙어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오랑캐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십여년이 넘게 변방에서 귀양살이 하다가
잊지 않고 돌아온 충신 홍호(洪晧)의 이야기를 소개하여
악비의 피눈물을 조금이나마 위로 하고자 한다.
남송(南宋) 고종(高宗) 건염(建炎)삼년의 일이었다.
금나라로 잡혀간 두 황제가 언제 다시 돌아와 자신의 황제 자리를 뺏을지 몰라
전전긍긍 하던 고종은 두 황제에게 안부를 전하라는 구실로 홍호를 오랑캐 금나라에 보냈다.
물론 고종의 속셈은 두 황제의 근항을 염탐하여 만약의 사태에 대비 하려는 뜻이었다.
그러나 홍호는 충신이었다.
오랑캐의 나라에 사신으로 간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두 황제와 만나보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
하지만 오랑캐들은 사신의 의중을 파악하고는 그를 설중(雪中) 땅에 연금을 시켜 버렸다.
홍호는 연금 생활을 하면서도 몰래 두 황제의 소식을 계속 염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두 황제가 잠시 연경(燕京)에 와 있다는 소식을 알아내고는 아주 기뻐하며,
그동안 친하게 지내오던 오랑캐 관리에게 부탁하여, 무명솜 옷 네벌과 약간의 음식과 과일,
고종이 남방에서 황제자리를 계승하고 오랑캐를 잘 막고 있다는 편지와 함께 몰래 전하게 했다.
그러나 일은 누설되고,
대노한 금나라 황제 오걸매는 홍호를 멀리 서북쪽 벌판 끝에 있는 동토(冻土)
영고탑(宁古塔)으로 귀양보내 버리고 말았다.
홍호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이 얼어붙은 땅으로 귀양가는 것은 괜찮았지만,
몇천리 밖에서 두 황제의 소식을 알아낸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영고탑에는 중원에서 포로로 잡혀온 송나라 백성들이 강제 노동을 당하고 있었다.
모두 소나 마처럼 쇠사슬에 묶여 채찍질을 맞으면서
힘들기 말할 수 없는 일을 하다가 죽어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불행 중 다행으로 홍호는 오랑캐 관리의 집에서 살며
그 집안의 두 아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게 되어 다른 사람들 처럼 참변을 당하는 위험은 없었다.
그러나 미개한 땅에는 지필묵(纸笔墨)마저 없었다.
홍호는 화(桦) 나무껍질을 벗겨 종이를 대신하고,
흑해(黑海)에서 주워온 검은 돌을 갈아 먹물을 만들었으며,
갈대줄기에 털을 묶어 붓으로 사용했다.
그리고는 평생동안 암기해온 사서오경(四书五经)을 화피에 적어 두 아들을 가르쳤다.
소문을 들은 오랑캐들이 자기 아들도 가르쳐 달라고 찾아와 홍호는 마다하지 않고
무료함도 달래고 송나라에 대한 인식도 좋게하기 위하여 봉사하기로 했다.
오랑캐들은 학비대신 사냥해 온 토끼나 꿩등을 가져오기도 했다.
학동들은 점점 불어나 무려 육십여명이나 되었다.
그리고 그 지역 오랑캐들은 홍호를 성인으로 추앙하고 존경하게 되었다.
한편, 금나라에 끌려온 도군황제 조길과 흠종 조환은 짐승만도 못한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조길은 길림성의 황량한 벌판 오국성(五国城)에서
개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고 생고기를 씹어 먹으며 생명을 부지했다.
추운 겨울에는 마실 물도 없어 얼음과 눈 녹인 물로 겨우 목을 축였다.
쑥대머리에 맨발로 생활하며 꾀제제하고
긴손톱으로 신기한듯 조길의 몸을 쿡쿡 찔러보기도 하는 야만인들은
그나마 몇명 데리고 있는 시녀들을 수시로 능욕 했다.
인간으로서 누려 볼 수 있는 모든 사치와 쾌락을 빼놓지 않고 누려보았던 도군 황제 조길은
어느 겨울 날 아침 불꺼진 냉랭한 온돌 위에서 얼어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비참하게 십삼년이란 말년을 살아야 했다.
그리고 오랑캐들은 시체도 묻어주지도 않하고 흑하탄(黑河滩)의 검은 물속에 던져 고기밥이 되었다.
일년이 지난 후에야 도군황제 휘종이 이미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홍호는 그만 까무라치고 말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홍호는 대성통곡을 하며
머리를 풀어 헤치고 상복으로 갈아입었다.
홍호는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서북쪽 오국성을 향해 파묻고는
애절한 심정으로 분향을 했다.
"폐하!
소신이 불충하여 폐하를 돌보지도 못하였습니다.
소신이 명석하여 어리석지 않았다면 임무를 다하여
폐하를 만나서 이렇게 한이 맺혀 승하 하시지는 않았을 터인데..."
흐느끼던 홍호가 갑자기 고개를 높이 쳐 들고 비분강개하며
고함치듯 큰 목소리로 시 한수를 읊었다.
어이하여 저 말(马)에는 뿔이 돋지 않았던가?
한맺힌 혼백은 황량항 설원(雪原)을 헤매누나!
어이하여 용(龙)의 수염 나꿔채지 못했던가?
안타까운 눈물줄기 얼어붙은 동토에 떨어진다.
오랑캐 황제 오걸매가 애시당초 휘종을 놀리려고 했던 말이 있었다.
말의 머리위에 뿔이 돋아나는 그날에 송나라로 돌려 보내 주겠다고 하였다니
충신 홍호에게는 어찌 아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소리가 아니였을까?
아주 옛날 민족의 선조 황제(黄帝)께서 용을 타고 승천하니,
헤어지기 아쉬웠던 충신이 용의 수염을 나꿔채어 황제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는 말이 있듯이,
도군황제를 따라 죽지 못하였던 불충(不忠)을 스스로 나무라는 홍호의 충절이 묻어나오는 시였다.
그로부터 십여년 뒤,
송나라와 화친을한 오랑캐가 백발이 성성한 홍호를 그제서야 송나라로 돌려보내니
조정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대쪽 같은 충절을 입을 모아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홍호와 매우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인물이 있었다.
정강지변(靖康之变)때 오랑캐에게 끌려갔던 진회(秦檜)가 바로 그였다.
진회는 휘종 재위 당시 어사(御使)직책을 맡은 유명한 선비였다.
어리석은 황제 휘종이 늘 전쟁을 기피하여 금나라 오랑캐와 강화(讲和)를 도모하자,
진회는 언제나 앞방서서 전쟁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조정의 뜻있는 신하들은 충의와 윤리를 강조하는 그를 존경하고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그 진회가 금나라로 끌려간지 십여년이 훨씬 지난 어느날,
갑자기 양자강 진강부에 주둔하고 있던 한세충 장군 진영에 찾아온 것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이십니까?
진대감이 아니시오?"
"한장군!
장군의 용병술(兵勇术)은 북쪽에 있으면서도 익히 들었소!
정말 장하시오, 한장군!"
놀란 한세충에게 진회는
수만리 적진을 돌파하고 남송의 고종 황제를 찾아온 무용담을 늘어 놓았다.
"내 어이 하루라도 조국의 산하를 잊은 날이 있겠소?
그러나 워낙 감시가 철통 같은 탓에 기회를 계속 노리고 있었지만 탈출할 방법이 없었소.
하나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러 눈깜짝할 사이에 십여년이 흘러가 버렸소.
십여년이 지나자 감시의 눈초리도 많이 무디어 지고
특별히 탈출 하려는 마음도 없어 보이던지
한달 전에는 평소 안면이 있던 감시병들이 두명 밖에 없길래
은근히 술을 권하며 같이 한잔하자니 받아 먹길래
취한척하고는 숙소로 갔다가 그들의 동태를 살펴보니 졸고 있길래
두 놈들을 단칼에 쳐치하고 극적으로 탈출 했지요."
진회의 청산유수와도 같은 무용담에 탄복하였다.
더구나 십년여 동안이나 고국을 잊지 않은탈출에 성공한 애국심과 절개에는 함
께 듣던 장수들의 눈물까지 글썽이게 하였다.
<s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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