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링빙야화

사또의 울화병

오토산 2021. 7. 21. 20:11

조주청의사랑방야화
(76)사또의 울화병


새로 부임해 온 정선 사또는 첫달부터 물불 안 가리고 백성들의 고혈을 짜기 시작했다.
정선 땅이라고 해야 하늘만 빼꼼히 보이는 첩첩산중이라 백성들이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데

사또가 가가호호 빨래 짜듯이 우려내니 온 고을에 원성이 자자하다.
육방관속이 시달리는 건 백성보다 더했다.


“까치골은 이방이 맡고,

운안골은 호방이 맡고,

백석골은 병방이 맡고….”

육방에게 할당을 하니 도리 없이 자기가 맡은 고을에 가 곡식과 산나물 말린 것,

짚신 삼아 놓은 것을 수탈해 올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밤,

주막에 육방관속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울분을 토하는데 얌전한 예방이 술잔을 탁 하고 놓았다.

육방관속은 머리를 맞대고 귓속말을 나눴다.

 

그러기를 한참 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달 꺼여?”

“내가 하겠소.”
형방의 물음에 예방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이튿날 아침,

동헌에서 조회가 열렸다.

“관아 창고가 비었으니 빨리 채워 넣도록 하라!”는

사또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예방이 앞으로 나가더니

사또 얼굴에 침을 뱉으며 대갈일성을 내질렀다.

“백성들의 고혈로 창고를 채우면

네놈이 다 빼 가니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아니냐!”

그러고는 오른손으로 사또의 왼뺨을 후려치고 다시 왼손으로 오른뺨을 후려쳤다.

예방에게 귀싸대기를 맞아 두뺨이 벌겋게 달아오른 사또는

한순간 얼이 빠졌다가 벌떡 일어나

“저놈 잡아라!”고 소리쳤다.
사또의 말에 이방이 두손을 모으고 사또 앞으로 나갔다.

“나리,

무슨 일이옵니까?”

 

“무슨 일이라니….

네놈은 눈깔이 썩었느냐?”

“아닙니다.

제 두눈은 멀쩡합니다.”

“두 눈깔이 멀쩡하다면,

저, 저, 예방 놈이 무엄하게도….”

사또는 펄쩍 뛰었지만

이방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여봐라,

병방은 빨리 이놈을 포박하라.”

“사또 나리,

고정하십시오.”

사또가 소리쳤지만 병방도 마찬가지였다.

사또가 손수 예방에게 달려들자 육방관속이 사또를 잡았다.

사또는 발길로 허공을 가르며 방방 뛰었다.

이방이 사또의 사저로 달려가 부인과 아들을 데려왔다.

“나리께서 갑자기 저렇게 발작을 하십니다.”

“이방,

빨리 의원을 부르시오.”

뚱뚱보 사또 부인의 말에

사또는 꼼짝없이 사저로 끌려가 의관을 벗고 방에 눕혀지는 신세가 되었다.
달려온 의원이 진맥을 하더니

“더위에 기가 허해 헛것이 보였다”고 하자

사또가 입에 거품을 물었다.

“예방을 옥에 처 넣지 못할까!”

고래고래 고함치니 의원의 지시로 손발이 묶였다.

사또가 실성했다는 소문이 온 고을에 퍼졌다.

그날 밤 이방이 사또를 찾아왔다.

손발이 묶인 사또가 나직한 목소리로,

“자네는 그날 예방 놈이 한 짓을 분명히 봤지.”

“나리,

얌전한 예방이 그런 짓을 할 턱이 있습니까.”

한달 후 사또는 울화병으로 죽고

정선 고을에는 골골이 잔치판이 벌어졌다.

<sns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