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행사

2021 역사인물(문봉 정유일)선양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1. 8. 20. 07:34

2021 역사인물(문봉 정유일)선양 학술대회를 다녀와서

 

2021년 8월 19일 14:00 한국국학진흥원 인문정신연수원 강의실에서

역사인물선양학술대회로 '문봉 정유일의 생애와 학문' 학술대회가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40여명만 현장에 참석하고 참석 못하신분들을 위해

한국국학진흥원 유튜브체널에서 생중계가 된다고 한다.

 

정종섭국학진흥원장님은 개회사에서

문봉선생은 퇴계문하의 핵심인물로

전란으로 소실되고 장수하지 못 한 까닭에 많은 저술을 남기지 못 했지만

퇴계학파 연구에 있어서 빠져서는 안될 인물로

그간 연구가 미진하여 학술논문이 한편도 발표되지 않았으나

이번기회를 계기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고 하였고

 

정동호 전 안동시장님은 문중대표 인사에서

주관하신 한국국학진흥원과 발표를 하시는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코로나로 인하여 많은분이 참석하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하였다.

 

문봉 정유일(文峯 鄭惟一 1553~1576)은

고려때 보윤호장을 지낸 鄭之遠을 시조로 하는 동래정씨로 

고조부 賜는 직제학, 증조부 蘭元은 군수, 조부는 光祐, 부는 穆蕃이고

중종때 영의정 鄭光弼이 종조부, 선조때 좌의정 鄭惟吉이 삼종형이며

모친 월성이씨는 5세때 세상을 떠났고 외조부 李弘準, 외증조부 李時閔,

퇴계와 문봉은 각기 이시민을 외증조부로 삼는 6촌 인척형제였다.

문봉의 부인은 청풍김씨로 딸 둘을 두었다고 한다.

 

문봉선생은 소년시절 충재 권벌선생에게 수학을 하다가 

15세경 퇴계선생의 문하에서 수학을 하였다고 전하며

1552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558년 문과합격하여

승문원, 홍문관의 관직과 진보현감, 예안현감, 영천군수 등 외직근무와

1573년 명나라 원접사 종사관 업무를 마치고는

홍문관 직제학, 형조와 예조참의, 사간원 대사간 등 중임을 맡으면서

1575년 병환을 앓아 호군을 받았다가 1576년 세상을 떠났다.

 

문봉이 퇴계선생에게 보낸편지는 6통밖에 남아있지 않으나

퇴계가 문봉에게 보낸편지는 178통 남아 있으며

고봉의 두배가 넘고 월천에 비해서도 19통이 더 많다고 한다.

 

문봉집은 문봉이 서울에서 벼슬살이 하던 중 갑자기 세상을 떠나

제자도 없고 자식들도 장성하지 못 하여 유문을 수습하지 못 하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흩어져 있던 자료도 거의 사라졌으며

'한중필록'과 '송조명헌록', '관동록' 등과 퇴계선생과 주고받은

서찰을 참고하여 사후 223년 뒤인 1799년(정조 23) 김진동,

권사협, 김희분 등에 의해 6권 3책으로 간행되었다고 한다.

 

이광호 연세대명예교수는

'유학과 퇴계학의 현재성 회복'이란 기조강연에서

이교수는 서양철학을 통한 진리를 인식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중

대구향교 韶園 李壽洛선생에게서 대학과 중용을 배우며 많은 것을 느껴

철학과에 진학하였고 유학을 통하여 철학의 꿈을 실현할 수 있었다며

코로나와 IQ 200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시대환경 속에서

문봉과 퇴계가 시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추구한 학문인

인간완성의 도학(성학)을 통하여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찾자고 하였다.

 

안병걸 안동대학교 명예교수는

'문봉 정유일의 교유와 학문적 지향' 주제발표와 

박인호 금오공과대학교수는

'문봉정유일의 사환활동과 역사인식' 주제발표를

이치억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은

'문봉 정유일의 퇴계학 계승양상'이란 주제발표를 하고나서

 

이광호 교수가 좌장으로 발표자들과 종합토론이 있었고

방청석에서 박갑로님과 정동진님이 토론을 함께 하면서 행사를 마쳤다.

 

오늘은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있은 역사인물선양 학술대회에서

문봉선생의 생애와 학문에 대하여 배우면서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행사를 주최하신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지분들과

발표를 하신 교수님들께 감사를 드리고

함께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