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호뢰관

오토산 2021. 9. 19. 05:24

삼국지(三國志) (42)
호뢰관

한편,
<화웅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낙양의 동탁은 크게 황망하여 이유를 불러 묻는다.

 

"화웅같은 용장이 죽었다면

사수관은 어찌 되었는가 ?"

 

"지원군을 보내 줄 때까지

사수(死守)하고 있으라고 명령했습니다."

 

"패전의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고 ?"

"원소의 휘하에는

십팔 군의 용맹이 제각기 다른 장수들이 즐비한 것 같습니다."

 

"음...

낙양에는 원소의 작은 애비 <원외>가 있지 않은가 ?"

 

"네,

아직도 태부(太傅) 벼슬을 지내고 있습니다."

"천만 위험한 일 !

그자가 원소와 내응(內應)을 한다면 큰일 아닌가 ?"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그래서 그를 없애는 것이 어떨까 하고 아뢰옵니다."

 

"진작 그럴 일이지.

여태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냐 !

당장 그자를 없애 버려라 !"

 

이유는 즉석에서 군사를 보내어,

원외와 그의 가족과 집사를 비롯한 측근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하인들까지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여 버렸다.

그리고 이십만 대군을 일으켜 적을 물리치게 하되,

먼저 이각, 곽사 두 대장에게 오만 명의 병사를 딸려 주어 사수관을 지키게 보내 놓고,

동탁 자신은 이유,여포, 번주,장제 등 쟁쟁한 장수들과 더불어 십오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낙양에서 오십 리쯤 떨어진 호뢰관(虎牢關)으로 나왔다. 

호뢰관은 천혜의 요새로써

이곳에 십만 명의 병사를 두면

천하의 어떤 영웅도 감히 통과할 수 없다고 하는 곳이었다.

 

동탁은 호뢰관에 진을 치고 난 뒤,

여포에게 삼만의 병력을 주어 성문밖을 지키게 하였다. 천하의 맹장 여포가 성밖을 지키고 있고,

성안에서는 동탁 자신이 십이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으니

그야말로 금성철벽(金城鐵壁)이라고 볼 수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회맹군 편에서도 낙양성 공격에 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원소는 조조의 주장대로,

이쪽에서도 두 패로 나누어 적을 공격하는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일부는 사수관에 남겨 두고, 왕광, 교모, 포신, 원유, 공융, 장양, 도겸, 공손찬 등은

총력을 기울여 호뢰관을 공격, 낙양성으로 가는 길을 확보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조조는 대기 병력을 데리고 후군(後軍)으로 남아서

어디든지 전세상 불리한 곳으로 달려가 지원하기로 하였다.
제후들이 각기 군사를 거느리고 전진하는 도중에,

왕광의 군사들이 제일 먼저 호뢰관에 도착하였다.

여포는 적이 성문밖에 도착한 것을 보고,

철기(鐵騎) 삼천을 거느리고 공격해 온다.

이때의 여포의 차림새는 호화찬란하기 그지없었다.
붉은 비단으로 만든 백화전포(百花戰袍)에 보석 고리가 달린 갑옷을 겹쳐 입고,

등에는 호피(虎皮)로 만든 화살통을 둘러 메고,

손에는 커다란 방천화극(方天畵戟)을 거뭐쥐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타고 있는 말은 명마중에 명마로 유명한 적토마(赤兎馬)가 아니던가.

"저자가 여포다 !

저자를 잡아라 !"

 

대장 왕광이 부하 맹장 방열과 함께 여포에게로 달려갔다.
그러자 여포가 달려나와 방열을 맞아 싸운다.

그러나 방열은 채 오 합을 싸우지 못하고 여포의 칼에 머리가 달아났다.
이번에는 왕광이 여포를 맞아 싸웠다.

 

그러나 왕광도 여포를 당할 재주가 없었다.

간신히 십여 합을 싸우다가 도저히 안 되겠던지

말을 돌려 도망을 가는중에 원유,교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이튼날,

여포가 또다시 나타나 싸움을 걸어왔다.

그러자 상당 태수 장양의 부장 목순(穆順)이 달려나가 싸웠으나,

그의 실력도 여포 앞에서는 한낱 어린애에 불과하였다.

그는 불과 이 합을 겨뤄보지 못하고 여포의 단칼에 마상에서 머리가 굴러 떨어졌다.
북해 태수 공융의 부장 무안국(武安國)이 여포에게 달려들었으나,

그는 여포 앞에서 어린애보다도 무력하였다.

여포에게 이미 대항할 자가 없었다.
누구든지 그를 보기만 하면 겁에 질려 맥을 못 썼던 것이다.
원소를 비롯한 제후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다시 대책을 의논하였다.
그 자리에서 조조가 말한다.

"여포 같은 용장은 백 년에 한 사람 나기가 어려운 사람이오.

일 대 일로 싸워서는 아무도 그를 당할 사람이 없으므로 제후들은

그에게 집중 공격을 퍼부어서, 그를 피로하게 만든 뒤에 사로잡아 보기로 합시다.
그렇게 여포만 잡아 놓으면 동탁을 없애는 것은 문제가 아닐 것 같소."

한창 논의를 하고 있는 와중에 여포가 또다시 나타났다는 전갈이 왔다.
여포가 나타나기만 하면,

아군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지레 겁을 먹고 쫒기기만 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팔국 제후들이 일제히 말을 타고 여포에게로 달려나갔다.

공손찬이 창을 휘두르며 맞서 싸워보았으나,

여포의 적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십여 합을 싸워 보다가 도망을 치는데,

여포가 적토마를 달려 추격하는 것이었다.
적토마는 능히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말이었다.

 

여포가 바람처럼 달려오며 창을 휘둘러 공손찬의 머리를 자르려는 순간,

문득 한 장수가 고리눈을 부릅뜨고 범의 수염을 거스르며,

장팔사모를 꼬나잡고 말을 몰아 내달아 온다.

"이놈, 여포야 !

장비의 창을 받아라 !"

 

여포를 향하여,

물찬 제비와 같은 속도로  벽력같은 소리를 질러 대니,

이때만은 여포도 찔끔 놀라다가, 이번에는 장비를 향하여 공격을 하였다.
두 장수가 어울려 싸우기를 오십 합이 넘어도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를 바라보던 관우가 팔십여 근의 청룡도를 휘두르며 화살같이 내달아,

장비를 도와 여포와 싸우기를 삼십여 합 !

그래도 여포를 거꾸러뜨리지 못하였다.

마침내 유비마저 쌍고검을 휘두르며 말을 달려 나왔다.
세 형제가 여포 한 사람을 상대로 벼락치듯 싸웠다.

쌍고검과 청룡도와 장팔사모가 여포의 방천화극(方天畵戟)과 한데 어울려

연실 불꽃과 굉음을 내면서 번쩍거렸다.

모든 군사들이 정신을 잃고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여포도 힘이 다했는지 불현듯 말머리를 돌려 자기 진지를 향해 패주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쪽의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구름떼처럼 적진으로 돌격해 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유비,관우, 장비가 여포의 뒤를 쫒아 호뢰관 아래 이르렀을 때,

문득 성루를 바라 보니,

그곳에는 동탁을 상징하는 푸른 비단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보라 !

저기 보이는 것이 총수 동탁의 깃발이다.

여포 따위는 내버려두고 저자를 잡아 죽이자 !"

장비가 벼락같은 소리를 지르며 성문으로 덤벼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성 위에서 돌과 화살이 쏱아져 내린다.
관우는 더 이상 공격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장비를 달래서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그리하여 이날의 격전은 결국

어느쪽도 확실한 승리를 거두지 못 한 무승부로 결말이 나고 말았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호뢰관의 삼전(三戰)>이라는 것이다.
                 
43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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