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병연의 방랑준비

오토산 2022. 1. 16. 17:01

김삿갓 2 -
[병연의 방랑준비]

천부적인 재질을 가진 병연에게는 诗야 말로 생의 전부였다.

애써 생각치 않아도 시상(诗想)은 항상 그와 함께 있었다.
지금까지는 입신출세를 해보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온 자신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고 문장을 가다듬고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에 시작(诗作)을 붙였다.

하지만 출세가 뜬구름이 된 지금,

문장이 무슨 소용있으며 시 또한 무슨 필요 있단 말인가.

폐족의 낙인이 찍혀 있는 마당에 시를 해서 무엇한단 말인가.

자괴감에 싸여 며칠을 고민을 거듭하던 병연,

뜬구름 같은 인생, 모든 것을 떨쳐버리고 자연에 묻혀,

동가숙 서가식 (东家宿 西家食)하면서 주유천하(周遊天下)로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병연은 자기의 결심을 실행하기에 앞서 소년시절부터 자기를 깨우쳐준

서당의 스승님을 찾아 뵙고 인사를 올리리라 마음 먹었다.

"허어 병연에게는 더 가르칠 것이 없구나

너를 가르치기엔 나의 글이 너무 짧구나."

 

스승은 이렇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공부가 깊어갈수록 병연의 깨우침이 스승을 앞섰고,

이제 그 결과로 백일장 장원을 하였으니

즉시 스승님을 찾아 뵙는것이 도리이지만,

어지러운 심경 탓도 있고 급제한 바를

떳떳하게 자랑할 처지도 못되었기에 당장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집을 떠나 방랑길에 오르게 되면

언제 다시 뵐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라

떠나기전에 인사라도 올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하고

서당이 있는 아랫 마을로 내려갔다.

"스승님 !"

 

방안에서는 학동을 가르치는 스승님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 누구냐 ?"

"저 병연이옵니다"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학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니 자네 이제 왔는가 ?"

 

학우들이 그를 반기는데,

병연의 장원급제 소식을 뻔히 듣고 있던 터에

조금 늦게 나타났다는 질책어린 대답이었다.
병연은 말 없이 방안으로 들어가 스승께  큰 절을 올렸다.

 

"일찍 찾아 뵈오려 하였으나

신병으로 늦었음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병연은 하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

"그래? 많이 아팠더냐 ?

그래 지금은 괜챦느냐?"
스승은 병연의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뜨며 병연의 병을 염려하였다.

"네 지금은 염려하신 덕에 거의 낳았습니다."

"허허헛,

장원급제를 하더니 너무 기쁜 나머지 병을 얻은 모양이다.

거의 다 낳았다니 마음이 놓인다."

 

스승은 자기 문하에서 장원급제가 나왔으니 여간 즐겁지 않았다.

연실 허연 수염을 쓰다듬으며 병연을 바라보며 마냥 만족해 하였다.

"우린 그런줄도 모르고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도 소식이 없었으면 자네 집으로 올라갈 참이었네.

모두 자네의 장원급제를 축하하네."

그제서야 동문수학 하던 친구들이 저마다 나서며 병연에게 축하의 말을 건넸다.

"정말 고맙네.

내가 재주가 있다기 보다

평소에 스승님께서 잘가르쳐 주신  은덕이고 학우들이 도와준덕분일쎄."

 

병연은 이렇듯 답례를 하였지만

친구들의 축하가 여간 거북스럽지 않았다.

"백일장 다음날 읍내에 나갔더니

저자거리나 주막거리나 할 것 없이 장원급제한 선비 이야기로 들끓더군.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졌다고.

어떤 사람은 자네가 산신령의 화신이라고 까지 말을 하더군."

 

학우의 이 말에 병연은 어색하게 웃고만 있었다.
이번에는 스승이 한마디 하셨다.

"내력을 알 수 없는 젊은이가 당당히 급제를 따냈으니,

뒷 이야기도 많을 것이다.

그나저나 언제쯤 출사하기로 하였느냐 ?"

"아직 결정된 것은 없으나

미구(未久)에  있을 것으로 압니다."
병연은 대답을 아니 할 수도 없어 생각되는 대로 말했다.

"매우 장한 일이다.

이제부터는 네 앞 길이 열려있는 셈이다.

더욱 정진하도록 하여라."
스승은 정색을 하고 병연을 훈계했다.

"예"

 

병연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빠져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생각 뿐,

학우들이 서둘러 병연을 위한 축하연을 베풀었다.

처음에는 스승님을 모셔 놓고 주안상을 벌였지만

스승님이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면서 부터 젊은이들 판이 되었다.

"여보게 병연이.

자네 벼슬길로 나아 가더라도 우릴 괄시해선 안되네.
우리들이야 천자문에 명심보감 몇줄이나 읽고 쓰다,

곧 집어치울 팔자가 아니던가?"

"엑끼 이사람들아 !"

 

술이란 좋은 것이다.

술 몇잔을 마신 병연은

어느새 조금전 까지 침울했던 기분에서 벗어나

차차 호기를 되찾고 있었다.

"읍내에는 기생도 많지 않은가?

자네는 젊고 잘생긴데다 글까지 일필휘지(一笔挥之)로 통달하였으니

기생은 마음대로 골라잡아 놀 수 있겠구먼."

"그야 물론이지.

출세하면 권세는 물론이요,

계집은 자연히 따르는 법,

그래서 모두들 출세하려고 발버둥 치는것 아니겠나.

자네도 병연이가 부럽거든  어서 장원급제를 하게."

 

학우들은 마음껏 마시고 떠들었다.
병연도 오랫만에 가져보는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병연은 학우들의 얼굴을 하나씩, 처음보는 사람처럼 오랫동안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오늘 헤어지면 평생 다시 만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아니 모르지 ..바람따라 떠돌아 다니다가,

먼 훗날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

갑자기 서글픈 생각이 밀려왔다.

그것은 훗날 다시 만날지도 모를 이 친구들,

오늘의 젊음은 간곳 없고, 서로 늙고 피곤한 모습으로

상봉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측이 들어서였다.

축하연은 날이 저물어서야 끝났다.

병연은 많은 잔을 마셨지만 좀체 취기가  돌지 않았다.

헤어질 때 병연은 학우들의 손을 일일히 잡으며

조만간 있을 이별에 서러운 마음을 담으며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흘렀다.

병연은 그동안 보아오던 책을 정돈하여 깊숙히 처박았다.

그의 야망을 북돋아 주던 책들이었다. 

 

병연은 이렇게, 지난 시절을 함께 했던

오랜 친구와 작별하는 심정으로 책들과 작별을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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