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안동김씨 집성촌 소산마을

오토산 2012. 2. 26. 22:20

 

(新)安東金氏 가문의 성장과 번영

 

구한말 세도정치로 60년동안 권력을 휘둘렀던 안동김씨는 조선중기 부터 본향인 안동 풍산 소산리을 떠나 한양(청풍계,장의동)에 세거 하면서 명문거족으로 성장했던 조선말기 60년 세도가문 장동김씨(壯金 = 新안동김씨중 서울京派)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신안동김씨(장동김씨)는 청음 김상헌선생의 동생집안이라고 합니다.

.첨음 김상헌 선생은 고향인 안동시 풍산읍 소산마을에서 말년을 보냈다고 하며 어쨌던 간에 후손들이 세도정치라는 어마어마한 부와 권력을 가진, 한때 나는 새도 떨어 뜨렸다는 명문 집안으로 권력을 휘둘렀다고 합니다.

대원군도 살아남기 위해서 안동김씨 앞에서 기생 가랑이 사이로 기었다는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오늘 소산리에 있는 청음 김상헌선생의 청원루(淸遠樓), 안동김씨종택 양소당(養素堂), 태고정(太古亭), 삼구정(三龜亭)을 둘러 봤습니다. 

 

 

 청원루(淸遠樓)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87번지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 되어있다.

조선 중종 때 평양서윤(平壤庶尹)을 지낸 청음 김상헌의 증조부 김번(金璠:1479-1544)이 관직에서 은퇴하고 돌아와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이다.  청음 김상헌(金尙憲:1570-1652)선생이 병자호란때 예조판서로서 남한산성에서의 굴욕적인 화의에 반대하다가 청나라 심양에 6년간 인질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고 귀국한 후 낙향하여 은거하던 곳으로, 증조부(김번)가 지은 기존 건물을 인조21년(1643)에 누각식으로 중건하면서 ‘청나라를 멀리한다’는 뜻으로 청원루라 하였다 한다.  본래 두 채의 건물로 41칸 규모였으나 1934년 대홍수 때 허물어져 현재 청원루만 남아 있다. 몸채 부분은 기단을 높게 한 단층 다락집 형태이며, 대청을 중앙에 두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안동 김씨 소산종회’라는 현판이 붙어있다.

 

 

 

 

 

 

 

 

 

 

양소당(養素堂)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218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경북민속자료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성종 때의 사헌부장령을 지낸 청음 김상헌의 고조부인 김영수(金永銖:1446-1502)선생의 종가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로 이루어진 'ㅁ'자형의 한옥이다.

 

 

 

 

 

 

 

 

 

태고정(太古亭)

경북 안동시 풍산읍 현애리에 있으며 시도민속자료 제27-2호(안동시)로 지정되어 있다.

이 정자는 조선 중종때 동부승지 강원관찰사등를 역임한  삼당(三塘) 김영(金瑛:1475-1528, 청음 김상헌의 종조부)이 서울 청풍계(淸楓溪,현 청운동)에 지어 거처하던 곳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미상이나 공이 세상을 떠난 중종23년(1528, 1522년건축으로 추정함) 이전임에는 분명하다. 그후 공의 손자  원주목사 창균(蒼筠) 김기보(金箕報,1531-1588)가 안동 풍산 소산(素山)으로 낙향한 이후에는 공의 종증손 김상용(金尙容)이 수리하여 사랑방으로 사용했다. 이후 주로 김상용의 후손들이 한말(韓末)까지 수백년을 관리해 왔다. 그후 우여곡절 끝에 1910년경 어느 일본인 회사 소유가 되어 헐릴 위기에 처하자 이 정자를 지은 삼당공의 후손들이 선생의 본향(本鄕)인 소산으로 1926년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구정(三龜亭)

 

 삼구정안동김씨 소산마을 입향조인 김삼근(金三近)의 손자 김영전(金永銓, 1439~1522)이 지례현감으로 있던 1495년(연산군 1)에 지은 것이다. 당시 김영전88세의 노모 예천권씨즐겁게 하려는 효심에서 아우 김영추(金永錘), 김영수(金永銖)와 함께 삼구정 건립하였다. 삼구정이란 정자 앞뜰에 거북이 모양의 돌이 세 개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거북이는 십장생 중의 하나이므로 모친이 거북이처럼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동안 몇 차례 중수한 것으로 보이며, 1947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였다.

  • [위치]
  •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 동오(東吳)라 불리는 높이 2m 가량 되는 봉우리의 머리에 앉아 있다. 북쪽으로는 좀 거리를 두고 학가산이 둘렀고, 동서남 세 곳은 큰 들이라 조망이 시원하게 트여 있으며, 남쪽에는 낙동강지류인 곡강이 흐르고 있는 절경에 자리 잡았다.

  • [형태]
  • 정자의 토석담 밖에는 노거수가 몇 그루 둘러서 있어 더욱 운치를 돋우고 있다. 서측 담에 둔 일각대문을 들어서면 삼구정이 자리 잡고 있고, 그 앞 왼쪽으로 삼구석이 보인다. 비교적 큰 잡석으로 기단을 쌓았고,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나 2개소에는 탑의 옥개석이 사용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 전부를 우물마루로 시설하였다.

    기둥 위에는 앙서로 된 쇠서를 하나 내어 보머리를 받친 초익공으로 마무리하였다. 5량가로 모를 죽인 방형의 단면을 가진 대량을 전후 평주 위에 걸었고, 이 위에 화반과 첨차를 十자로 걸어 포대공을 짠 후 종량을 얹었으며, 그 위에 파련대공을 세웠는데, 고급스러운 기법을 사용하였다. 네 모서리의 추녀 밑에 활주를 세워 지지하였고 서편 사래 끝에는 용머리 장식 기와 1개가 끼워져 있다.

     

     

     

     

     

     

     

     

     

     

     

     

     

     

     

     

     

     

      

     

     

    안동김씨 세도시절 철종대왕께서 더벅머리 총각으로 강화섬에서 뛰어 놀며

    사랑을 나누었는데 화진포 돚단배타고 떠난 후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임금님을 사모하는 노래 

      

    임금님의 첫사랑(조미미)

     

    강화섬 꽃바람이  물결에 실려오면 머리위에 구름 이고

    맨발로 달려나와 두마리 사슴처럼 뛰고 안고 놀았는데
    화포진 나룻터에 돛단배

    떠나던 날 노을에 타버리는데 임금님의 첫사랑

    어려서 같이 놀던 그리운

    강화섬에흐르는 세월따라 꽃은 피고 지는데
    보고픈 그리운 님 언제나 오시려나
    화포진 나룻터에 빈배만 돌아오네
    어디로 가시려나 임금님의
    첫사랑

     

    강화섬 꽃바람이 물결에 실려오면 머리위에 구름 이고

    맨발로 달려나와 두마리 사슴처럼 뛰고

    안고 놀았는데 화포진 나룻터에 돛단배 떠나던 날
    노을에 타버리는데 임금님의 첫사랑

    어려서 같이 놀던 그리운

    강화섬에흐르는 세월따라 꽃은 피고 지는데
    보고픈 그리운 님 언제나 오시려나
    화포진 나룻터에 빈배만 돌아오네
    어디로 가시려나
    임금님의 첫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