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백일장 동기와 살인사건 해결하기

오토산 2022. 1. 23. 08:39

김삿갓 39 -
[백일장 동기와 살인사건 해결하기]

"지금 대문 밖으로 사라진 사람이

혹 김삿갓이라는 선비가 아니더냐?"
그러나 좌우의 사람들은 김삿갓이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다.

"김삿갓이

어떤 사람이옵니까 ? "

사또는 더 이상 물어 볼 필요가 없다는 듯

부랴부랴 신발을 끌고 부리나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자기 자신이 직접 확인해 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사또가 대문 밖으로 나왔을 때는
김삿갓은 이미 꽤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이보시오!

날 좀 보시오."
사또는 소리를 질러 불렀다.

그러나 김삿갓은 부르는 소리를 들은둥 마는둥

뒤도 돌아다 보지 않고 마냥 휘적 휘적 걸어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저분은 분명 삿갓 선생이시다.)

 

사또는 그런 생각이 들어 체면 불구하고
헐레벌떡 김삿갓의 뒤를 쫒아갔다.

"여보세요,

삿갓 선생!

나 좀 보시요."

소리소리 지르며 가까스로 따라 잡으니 
김삿갓은 그제야 발을 멈추고 돌아본다.

"아니,

사또 어른께서 웬일이시옵니까?
옥관자 사건의 문초는 끝난 줄 알고 있는데

물어 보실 말씀이 아직도 남아 있사옵니까?"

문천 군수 이호범은 불문 곡직하고
김삿갓의 손을 덥썩 잡으며 물었다.

"선생은

 혹, 김삿갓 선생이 아니시옵니까?"
김삿갓은 짐짓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았다.

"삿갓 선생이라니오.
보시다시치 삿갓을 쓰고 다니기는 하오나

사또 어른께 선생이라고 불릴 사람은 못되옵니다.

혹 사람을 잘못 보신 것은 아니십니까?"
삿갓의 내숭에 넘어갈 이호범이 아니었다.

"선생이 아무리 정체를 숨기려해도 저만은 못 속이시옵니다.

선생이 영월 고을 백일장에서 장원 급제 하셨을 때,
저는 차석으로 급제했던 이호범 입니다."

이호범이 이렇게 나오자

김삿갓은 더이상 자신을 감출 수 없었다.

"아, 그래요?

이것 참 반갑소이다."

"저는 그뒤 한양으로 올라가 과거에 급제해

얼마전에 이곳, 문천 군수로 제수되어 내려왔습니다.
선생께서는 그 뒤 세상을 버리고
유랑길에 오르셨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 뵐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하하하 ..

인생하처人生何處 불상봉不相逢이란 말이 있지 않소이까?
영월에서 백일장을 같이 본 분이 문천 군수가 되셨다니

진심으로 기쁘오이다."

"저의 고을에서 선생을 만나게 됐으니
저로서는 선생과 그냥 작별 할 수 없습니다.

노독도 푸실 겸, 단 며칠간 이라도 저의 고을에서 쉬어 가소서."

사또는 이렇게 말을하며

김삿갓의 손을 억지로 잡아 끌었다.
김삿갓은 손을 내저었다.

"사또 어른의 호의는 고맙기 한량없으나,  

나는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곳은 많은 사람이니 그냥 놓아주소서."

"선생께선 무슨 말씀을...!
제가 워낙에 풋내기 사또여서 민정을 처리함에 매우 미숙한 편이니
며칠동안이라도 묵으시면서 제게 도움이 될 만한 말씀을 꼭 들려주십시오."
사또는 이같이 말을 하며 김삿갓을 어거지로 잡아 끄는 것이었다.

"방랑객에 불과한 나 같은 놈에게
치도를 물어 보신다는 것은 당찮은 말씀입니다."

"무슨말씀을!
백일장에서 장원급제 하신 시문 속에는
선생의 고매한 치도정신이 여실히 담겨있었습니다.

청둥오리 한 마리를 살리려고
스스로 도둑의 누명을 쓰셨던 정신에
저는 거듭 탄복을 마지 못하는 바이옵니다.
바라옵건데 부디 본관의 소망을 꼭 들어주소서."

김삿갓은 인정에 약한 사람이라
이호범의 간청을 떨치고 돌아설 수 없었다.

"사또 어른의 말씀이 이토록 간곡하시니
그러면 며칠 동안 술이나 얻어먹고 떠나겠습니다."

이호범이 김삿갓을 관사로 데려와서
그날부터 칙사 대접을 해가며 문천고을의 민정을 상세하게 말해 주었다.
어느날 술을 나누며 사또는 김삿갓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저희 고을에는 해결하기 어려운
민소 사건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러자 김삿갓이 술을 마셔가며 말을했다.

"사또께서는 워낙 영명하셔서,

백성들의 민소를 가리는데 어려움이 전혀 없으실 터인데,

뭐가 그토록 어렵다는 말씀입니까?"
사또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과분한 칭찬 올시다.

실상인즉, 저 자신도 백성들의 시시 비비를 가려주는데

얼만큼 자신이 있다 자부를 했지요.

 

허나, 실무에 부딪치고 보니,

판단을 해야 할 어려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옵니다.

그러니 삿갓 선생께서 저에게 지혜를 좀 빌려 주시옵소서."

"사또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일이라면
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만,

옛말에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文殊)의 지혜가 나온다고 하였으니

만약 어려운 소송이 있다면 서로 상의해 보도록 하십시다."

그러자 사또는

김삿갓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주었다.
문천 고을에 지금 판단하기가 참 어려운 소송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남자가 불에 타 죽은 것이었다.

그 남자의 마누라의 말에 따르면 집에 불이나서 남편이 타죽었다는데
죽은 사람의 친척들의 말은 그 남자는 불에 타 죽은 것이 아니라,
그의 마누라가 그를 죽여놓고 살인죄를 면하려고

집에 불을 놓아 시체를 태워 버린 것이 분명하다면서
사또에게 진상을 규명해 달라는 고소를 해 왔다는 것이다.
김삿갓은 사또의 이야기를 모두 듣고 물었다.

 

"사또의 심중은

어느 편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 하십니까 ? "

"염탐꾼을 풀어 그 여인의 평소 소행을 소상히 알아봤더니

그들 부부의 금술이 매우 나빴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인의 성품이 간악하기 이를데 없는 것으로 보아

여인이 남편을 살해한 뒤 계획적으로 집에 불을 내

불에 타 죽은 것 처럼 했다는 심중은 가나 

불을 낸 것이나 불에 타 죽었다는 증거가 없기로 고민입니다."

"사또께서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시고 심증을 굳히셨다면
이 사건은 본부(本夫) 살해에 방화를 겸한

중죄사건임이 틀림없을 것 같군요."

사또는 김삿갓의 말에서 더욱 힘을 얻은듯,

 

"저 역시 선생의 의견과 같습니다만
심판을 내리려면 당사자가 꼼짝 못할 증거가 있어야 할 터인데

심증만 있을 뿐 증거가 아무것도 없어 심판을 미루고 있습니다."

사또의 말을 들은 김삿갓은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몸을 좌우로 흔들더니 잠시후에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증거가 없다 하시니 확실한 증거를 만들어서라도

이런 사건은 엄격하게 다스려 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증거가 없으면 확실한 증거를 일부러 만들어 내야 한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그러나 김삿갓은

사또의 질문에 대답은 아니하고 엉뚱한 질문을 먼저했다.

"하나 물어 보겠습니다.

불에 타 죽었다는 사람은

혹, 이미 매장을 해 버린 것은 아니옵니까?"

"아닙니다.

죽은 사람의 일가들이 사인을 명확히 밝히기 전에는 매장치 않겠다고 하여

시체는 아직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김삿갓은 무릅을 치며 말을 했다.

"그렇다면 지극히 간단 합니다.

정말로 불에 타 죽은 사람인지,

아니면 마누라 손에 죽고 난뒤 시체로 불에 탄 것인지
시체를 조사해 보면 단박에 알아낼 수 있습니다."
사또는 그 말을 듣고 춤이라도 출 듯이 기뻐하였다.

"선생 !

타살인지 소사(燒死)인지
시체를 살펴보면 대번에 알아 낼 수 있다는 말씀이 정말입니까?"

"물론이지요.

사또 어른께 왜 거짓 말씀을 올리겠습니까?"
그러자 사또는 김삿갓 앞으로 바싹 다가 앉았다.

 

"선생!

시체를 검사해 보면 뭐가 어떻게 다른지

그 비방을 꼭 좀 알려 주십시오.

이 사건은 제가 사또로 부임해 오고난 뒤
처음 벌어진 방화,살인 사건 입니다.
이 사건을  공명 정대하게 재판하면
제가 이곳 문천고을에 명관으로 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러면 사또 어른을 명관으로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이 비방만은 꼭 가르쳐 드려야만 하겠군요.

하하하..."

김삿갓은 술 한잔을 쭈욱 들이키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 사또의 귀에 입을 갖다대고 무언가를 속삭였다.

사또는 김삿갓의 말을 듣자
크게  감탄하며 손바닥을 마주쳤다.

"호..! 과연 듣고 보니

그처럼 명확한 증거는 없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당장 형리에게 시체를 검안하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또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김삿갓은 사또의 옷소매를 잡으며 말을했다.

"죽은자의 시체는 마땅히 만인이 보는 앞에서 검시하되,

그 전에 꼭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너무 서두르시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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