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시인 김삿갓/김삿갓

무당의 예언 탓인가 사고를 당한 김삿갓

오토산 2022. 2. 2. 07:29

김삿갓 85 -
[무당의 예언 탓인가 사고를 당한 김삿갓]

​봄이 되었지만 김삿갓은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낮에는 친구들 조차 농사일로 모두 들녘에 나가 있으니

허탈감에 빠져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밤이 되면 상황은 조금 달라져

모임방에 나가 음담패설을 듣고 여담을 나누다가,

새벽녘이나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와

수안댁과  정을 나누는 것은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어쩌면 이런 재미라도 붙였기에

천동 마을을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 시간들을 보내던 장마철인 어느날,

그날은 김삿갓이 모임방에 모인 친구들에게 술 한 턱을 냈다. 
김삿갓이 술을 사게 된 까닭은 마누라 수안댁의 충고 때문이었다.

​"남의 술을 한 번 대접받거든 당신은 두 번씩 술을 사드리세요.

남의 술을 얻어 먹기만 하는 사내처럼 쩨쩨한 인간은 없으니까요.

돈은 뒀다 뭣에 쓰게요. 우리 집 돈은 모두다  당신 소유인걸요."

그러면서 수안댁은 삿갓이 모임방으로 나가기 전에 넉넉한 돈을 쥐어 주었다.
그날은 초저녁부터 오기 시작한 비가 밤이 깊어서도 계속되었다.

​모임방 친구들과 나눈 술에 거나해진 김삿갓은 도롱이를 쓰고 조조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은 술 맛도 좋았지만,

참새와 땡굴이의 음담에는 정말 놀랐는걸.

너무 웃다보니 배가 다 아프구먼."

그러자 조조가 말을 받아,

 

"아닌게 아니라

그 친구들 걸쭉한 농담에 배꼽이 빠질 뻔했네." 한다.

두 사람은 오늘, 모임방에서 오가던

음담패설의 여운을 생각하며 서로 껄껄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이렇게 소리내어 웃던 김삿갓이 흙탕길을 천방지축 걸어가다

일순간 발을 잘못 디뎌 두 길이 넘는 벼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앗!

이 사람아!"

 

조조는 무심중에 경악의 소리를 질렀다.
벼랑 아래로 떨어진 김삿갓은

 

"아이쿠!"

소리만 한번 질렀을 뿐 인기척이 없었다.
조조는 부랴부랴 벼랑아래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김삿갓이 풀밭에 빨래처럼 널부러져 있었다.

"이 사람아!

어디를 다쳤기에  꼼짝도 못하고 있는가?"
​김삿갓은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사지를 조금씩 움직거리며

 

"인명지 재천이라,

죽지는 않았으니 걱정말게!"하며

위급한 상황임에도 익살을 부렸다.

그러자 조조는 무심중에 웃음을 터트리며

"예끼 이 친구야!

어디를 다쳤는가 말일쎄,

자네가 죽은 줄 알고 걱정하는 줄 아는가?"

​"그러게, 죽지는 않았지만 일어날 수가 없는 걸 어떡하나.

다리가 부러진 모양이네."

​"뭐? 다리가 부러져..

그게 정말인가?"

​조조는 기겁하여 김삿갓을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고 하였으나,

워낙 캄캄한 밤이라서 어디를 어떻게 잡아 일으켜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사람아!

내가 업어 갈 테니 어서 등에 업히게!"

 

조조는 김삿갓을 부축해 등에 업고 벼랑을 기어 오르다시피 올라왔다.
그리고 김삿갓을 업은채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집으로 데려갔다.

​"이거, 미안허이..."
조조의 등에 업힌 김삿갓이 말하자.

​"미안은 그만두고 많이 다치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수안댁! 수안댁!

어서 방 문을 열어요!"

 

삿갓의 집에 다달은 조조는 황급한 어조로 수안댁을 불렀다.

그러자  다급한 소리에 놀란 수안댁이 벼락같이 뛰쳐 나왔는데

비에 쫄딱 젖은 두 사람의 모습도 기가막혔지만

남편인 김삿갓이 조조의 등에 업혀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구머니...

이게 무슨 날벼락이에요!"

 

수안댁은 울음 섞인 소리로 부르짖었다. 
무당의 예언대로 남편이 사고가 나,

다 죽게 된 몸으로 친구인 조조에게 업혀 온 것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김삿갓은 놀란 마누라를 보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여보게! 

나는 죽지 않고 살아 있네.
재혼을 하면 남편이 또 죽게 된다는 무당의 예언은 멀쩡한 거짓말 이었어!"

​그러자 수안댁은

남편이 죽지 않은 것을 알게되자 한편으로 뛸뜻이 기뻐하며,

​"어디를 어떻게 다치셨어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

 

그러면서 황급히 방 문을 열어 젖혔다.
조조의 등에서 방바닥으로 눕혀진 김삿갓의 몰골은 형편 없었다.

그러자  김삿갓의 험한 몰골을 씻길 물과, 비에 젓은 몸을 닦아줄 천을 찾아

황급히 밖으로 나가던 수안댁은 조조에게 부탁을 한다.

​"수고스럽지만

약국에 가셔서 의원님을 빨리 좀 모셔와 주세요.

어서요!"

 

조조는 황급히 의원을 부르러 약국으로 향했고,

수안댁은 대야에 물을 받아와 김삿갓을 씻기고 있었다.

​"어디를 다치셨어요?'

"응, 다리가 부러진 것 같네,

꼼짝할 수가 없구먼"

​수안댁이 비에 젖은  남편의 저고리는 벗겼지만
바지는 발이 부러진 김삿갓이 아파 하므로 벗길 수가 없었다.
그러자 곧 가위를 가져와 김삿갓이 아파하는 다리쪽 바지단을 갈라 내고 보니,

발목위에서 무릅사이 정강이 뼈가 어그러져 보였다.

수안댁이 그 모습을 보고, 공포감에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도,

마치 자신의 팔자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잠시 후에 조조가 의원 영감을 모시고 왔다.

의원이 진찰을 하는 동안에도 수안댁은 공포감을 억제할 수 없었던지,

​"의원 어른!

이 양반 설마 돌아가시지는 않겠지요?" 하고

묻는 것이 아닌가.

​"부인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사람이 죽기가 그렇게도 쉬운 줄 아시오?
​다리뼈가 좀 부러졌으니 서너 달은 누워 있어야 겠지만

그러고 나면 완전히 회복 될 테니 아무 걱정 말아요!"
의원은 부러진 곳을 버드나무로 동여매 준 뒤에 산골을 듬뿍 내주며 말했다.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 산골이나 열심히 먹어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 정도의 횡액은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인데,

무슨 걱정인가!"

​늙은 의원이 태평스럽게 위로해 주는 바람에,

김삿갓과 조조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러나 수안댁만은 아직도 미신의 망령에 사로잡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계속 불안해 하였다.

​모두가 가버리고 나자 김삿갓은 상처가 새삼스럽게 쑤셔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누라가 걱정할 것이 안쓰러워 아픔을 참으며 말했다.

​"나는 지금부터 한잠 잘테니,

당신도 아무 걱정 말고 눈을 붙여요."

​"제 걱정은 마시고 당신이나 어서 주무세요.

상처가 아파서 어디 주무실 수나 있겠어요?"

​"걱정 말아요.

당신이 잠을 자야 나도 마음놓고 잘 수 있을게 아닌가."

​"알았어요.

그럼 저도 잘 테니 당신도 주무세요. "하며

김삿갓의 몸에 이불을 덮어주고 자신도 불을 끄고 옆에 눕는다.

생각해 보면 둘은 오다가다 아무렇게나 만난 부부간이다.

처녀 총각으로 만난 처지가 아니기에

언제든지 헤어질 수 있는 사이라고 생각했던 부부였다.

그러나 이렇게 만난 남녀간이라도 밤마다 살을 섞으며 지내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정이 두터워졌다.
그래서 김삿갓은 자신 때문에 수안댁이 불안하게 된 게 무척 미안했다.

 

(수안댁!

당신에게 이런 걱정을 끼치게 되어 정말 미안하네.

그러나 나는 결코 죽지 않을 테니 그 점만은 안심하게.

그러니까 당신은 "또다시 과부가 된다"는

잘못된 망상만은 깨끗이 씻어버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