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351)
공명의 출사표(出師表)
공명이 후주 유선(後主 劉禪)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는
아래와 같았다.
<선제께서는 전국통일의 원대한 꿈을 이루지 못하시고
안타깝게도 승하하셨습니다.
지금 천하가 삼분(三分)됨에,
그중 우리 촉국(蜀國)이 가장 국력이 쇠약한 풍전등화와 같은 지경에 처해있습니다.
허나,
문무백관들은 선제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본분을 잊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신은 본시 평민으로 세상사를 등지고 농사를 지으며 은둔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헌데 선제께서는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 않고,
신의 초가집을 세 번씩이나 방문하시는 수고로움을 마다치 않으셨습니다.
그 모습에 신의 마음이 움직여 선제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후,
숱한 전쟁에 참가하여 짜릿한 승전과 가슴 아픈 패전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선제께서는 임종 전에 황송하게도 신에게 중임을 맡기셨으나,
신은 명을 받은 후, 이렇다할 공적을 세우지 못하여 늘 송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허나,
이제 남만은 안정되었고 촉의 병력이 강화되었으니
이제는 중원 정벌의 때가 도래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하여 지금부터는 악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옛 도읍을 수복하여 반드시 한을 부흥시키는 노력을 행동으로 옮길 때가 되었습니다.
이에 신은 북벌을 위한 출병을 아뢰옵니다.
폐하께서는 선제의 유업을 받들어 신에게 부흥의 명을 내려 주시고,
실패할 경우 선제의 영전 앞에서 죄를 물어주실 것을 청하옵니다.
신의 뜻대로 윤허하여 주신다면 폐하의 크나 큰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신, 공명이 올리옵니다.>
다음날 아침,
공명은 만조 백관들이 모두 참여한 조회에서 후주 유선에게 출사표를 올렸다.
후주 유선은 표문을 읽어 보고 감격한 나머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공명의 얼굴을 바라보기만 하였다.
이윽고 그는 입을 열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상부(相父)께서 갖은 고난을 겪으시면서 남방을 평정하고
돌아오신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었는데,
이제 피로가 채 회복되기도 전에 어찌 또 북벌(北伐)을 하시려고 합니까.
국가의 장래를 위해 우선은 피로를 푸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공명이 이에 대답한다.
"신은 북벌을 위해 먼저 남방을 친 것입니다.
후방이 안정되어야 군대를 일으킬 수가 있는데 이젠 걱정할 것이 없지요.
지금 중원을 치지 않으면 다시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이엄이 중앙으로 나와,
"승상의 원대한 포부는 높이 살 만 합니다.
허나 위의 세력이 막강하니 쉬운 일이 아니옵니다."하고,
천자 유선에게 아뢴 뒤에 공명을 향하여,
"우리 촉은 하늘이 내린 땅입니다.
수비에 용이하고 물자가 풍부하기 때문에
굳이 다른 곳을 치지 않아도 천하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데,
승상께서는 어찌 위험한 길로 가시려고 하십니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엄은 본시 서천 출신으로
이곳에 터를 잡은 <원주민>이기에 지역과 이곳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에 대한 애착이 남달리 강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명은 선제 유비와 그의 의형제 관우, 장비, 조운을 비롯한
도원결의 직후에 합류한 영웅들의 공동 목표였던
아직도 이루지 못한 한실 부흥에 대한 집념과 애착이 유달리 강했다.
공명이 이엄의 말에 즉각 반론을 제기하였다.
"그 말은 옳지않소.
촉의 땅이 넓기는 하나, 한쪽으로 치우쳐 있소.
수비만을 한다면 십 년, 이십 년은 괜찮을지 몰라도
오십 년까지는 알 수가 없소이다.
촉의 영원한 태평을 보장할 수 있었다면
사백 년전 태조 황제께서 어찌하여 북벌을 시도해서 천하를 다스렸겠소.
그때 태조 황제께서는 멀리 내다 보신 것이오."
공명은 여기까지 말한 뒤에
후주 유선을 향해 계속해 말을 한다.
"우리가 수비에만 치중하고 가만히 있으면
남이 우리를 치기 때문에 절대로 영원한 태평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대업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런 점을 헤아려 주십시오."
공명이 이렇게 자신의 출사를 강력히 주장하니,
이엄은 그대로 물러나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그러자 대신 하나가 중앙으로 나와 천자 유선에게,
"폐하, 신이 천문(天文)을 관찰하건데,
최근 북방의 세가 강한 것이 아직은 때가 아닌 듯 하옵니다.
하오니 북벌은 그 시기를 조절해야 할 것으로 아뢰옵니다."하고,
말하면서 공명을 바라다 보았다.
그러자 공명이 또다시 즉각 반박하고 나서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천문 외에 천도(天圖)까지 살폈소.
폐하, 천도는 고정 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군사를 일으켜 한중(漢中)에 진출하였다가
위의 동태를 살펴서 처리할 것이오니 걱정하지 마소서."
공명의 뜻은 이미 굽힐 길이 없어 보였다.
후주 유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무 백관들과 공명을 번갈아 보면서 말한다.
"상부께서 이렇게 결심하셨다면
어이 그 뜻을 막겠습니까.
모든 일은 상부의 뜻대로 하시오."
이리하여 공명은 드디어 후주의 허락을 받고
일대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다.
그리하여 승상 공명은 성도에 남아서
후주 유선을 보필할 대신과 참군(參軍)할 사람을 구분하여
내각(內閣)을 조각(組閣)하였는데 그 명단은 다음과 같았다.
승상 공명을 대신할 시중(侍中)은 진진(陳陳)으로 삼고,
곽유지, 비위, 동윤 등으로 하여금 궁중지사를 돌보게 하였으며,
향총(向寵)을 수장(首長)으로 삼아
황제의 군마를 총독(總督)하게 하고,
장완(張琬)에게 성도에 남은 군사를 다스리게 하였고,
장예(張裔)에게는 승상부의 일을 살피게 맡겼고,
두경(杜瓊)을 공문서 수발을 맡겼으며,
두미(杜微)와 양홍(楊洪)에게 조정의 남은 문무대신들을 관장하게 하였으며,
맹광(孟光), 내민(來敏)을 궁중 제례를 주관하게 하였으며,
윤묵(尹默), 이선은 박사(博士)로 삼아 각종 자문에 응하도록 하였고,
극정, 비시(費詩)로 하여금 황제의 주변을 보살피게 하여 국사를 함께 논의하도록 하였다.
다음으로는 북벌에 참여할 군부 인사(軍部 人事)를
다음과 같이 단행하였다.
평북대도독 승상 무향후 익주목 지내외사 제갈양
(平北大都督 丞相 武鄕侯 益州牧 知內外事 諸葛亮)
전독부 진북장군 영승상사마 양주자사 도정후 위연
(前督部 鎭北將軍 領丞相司馬 凉州刺史 都亭侯 魏延)
전군도독 부풍태수 장익(前軍都督 扶風太守 張翼)
아문장 비장군 왕평(牙門將 裨將軍 王平)
후군 영병사 안한장군 이회(後軍 領兵使 安漢將軍 李恢)
후군부장 정원장군 여의(後軍副將 定遠將軍 呂義)
좌군영병사 평북장군 마대(左軍領兵使 平北將軍 馬垈)
부장 비위장군(副將 飛衛將軍) 요화
우군영병사 분위장군 마충(右軍領兵使 奮威將軍 馬忠)
우군부장 진무장군 장의(右軍副將 鎭撫將軍 張嶷)
행중군사 거기대장군 (行中軍師 車騎大將軍) 유염
중감군 양무장군 등지(中監軍 揚武將軍 鄧芝)
중참군 안원장군 마속(中參軍 安遠將軍 馬謖)
전장군 도정후 원림(前將軍 都亭侯 袁琳)
좌장군 고양후 오의(左將軍 高陽侯 吳懿)
우장군 현도후 고상(右將軍 玄都侯 高翔)
후장군 안락후 오반(後將軍 安樂侯 吳班)
장사 유군장군 양의(長史 緌軍將軍 楊儀)
전장군 정남장군 유파(前將軍 征南將軍 劉巴)
전호군 편장군 허윤(前護軍 偏將軍 許允)
좌호군 독신중랑장 정함(左護軍 篤信中郞將 丁咸)
우호군 편장군 유민(右護軍 偏將軍 劉敏)
후호군 전군중랑장 궁옹(後護軍 典軍中郞將 宮雝)
행참군 소무중랑장 호제(行參軍 昭武中郞將 胡濟)
행참군 부장 간의장군 염안(行參軍 副將 諫議將軍 閻晏)
행참군 비장 두의(行參軍 裨將 杜義)
무략중랑장 두기(武略中郞將 杜祺)
전군서기 번건(典軍書記 樊建)
종사 무략중랑장 번기(從事 武略中郞將 樊岐)
승상영사(丞相令史)동궐
장전좌호위사 용양장군 관흥(帳前左護衛使 龍驤將軍 關興)
우호위사 호익장군 장포(右護衛使 虎翼將軍 張苞)
제갈공명은 위국 대정벌(魏國 大征伐)의 길에 오르기에 앞서
이상과 같은 군용을 갖추었는데,
그중에 빠져서는 안 될 장수 한 사람을 빠뜨렸으니,
그는 상산 조자룡(常山 趙子龍)이었다.
북벌 장수들의 인사 발표가 끝나도록 조운은 자신의 거명이 없자,
점차 얼굴이 어두워졌다.
호명을 받은 장수들이 제각기 복명하며
대청 중앙으로 명을 수령하는 자세로 나오는데,
끝내 조운은 호명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 조운이,
"승상,
어찌 신은 빼시는겁니까?"하고,
볼멘 소리를 터뜨렸다.
그러자 공명이 단상에서 내려와 조운의 앞으로 다가서며,
"조 장군,
그대는 이제 쉰이 넘었소.
며칠 전 마초(馬超)가 세상을 떠났으니,
선제의 오호장군(五虎將軍) 중, 남은 사람은 그대 뿐이오.
험한 전쟁에 끌어들이기 싫으니 남아서 성도를 지켜 주시오.
북벌은 젊은 장군들과 함께 하겠소."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조운은 더욱 언짢은 표정으로 말한다.
"소장이 선제를 따른 이후로 싸움에 쫒긴 일이 없었고,
크고 작은 전쟁에 나서서 앞장서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오늘 소장을 뒤로 돌린 것은 대단히 유감이올시다.
오늘 소장에게 선봉을 명하지 않으신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기둥에 머리를 밖고 죽어버리겠습니다!"
"아...!"
공명이 조운의 말을 듣고,
암담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나 곧,
"조 장군은 들으시오!
그대를 선봉대장에 봉하니
정예병 이만 과 부장군 등지( 副將軍 鄧芝)를 비롯한 군사를 이끄시오!"하고,
조운의 북벌 참여를 허락하였다.
조운은 평북대도독 승상 제갈공명으로 부터 만족한 대답을 듣자 즉각,
"명에 따르겠습니다!"하고,
흔쾌히 대답하였다.
352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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