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15)
사그라드는 한실 부흥의 꿈 ( 1 )
곳곳에서 들이닥치는 급보와
급사의 행렬에 후주 유선은 그제야 사태가 위급함을 알았다.
후주는 서둘러 조정으로 문무백관들을 불러모아 대책을 의논하려고 했다.
그러나 자리에 모인 신하들은 입을 떼는 사람 하나 없이 서로 눈치만 살폈다.
어색한 침묵을 비서랑 극정(秘書郞 郤正)이 깨고 나와 후주에게 아뢴다.
"폐하, 사태가 급박하옵니다.
제갈무후의 아들 제갈첨(諸葛瞻)을 불러들여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하소서."
제갈첨의 자는 사원(思遠)으로, 모친 황씨는 황승언(黃承彦)의 딸이었다.
황씨는 용모는 추레하였으나 재주가 남달랐다.
위로는 천문을, 아래로는 지리를 통달했으며,
육도삼략(六韜三略)과 둔갑술을 비롯하여
제자백가의 학문에 이르기까지 두루 이해가 깊었다.
제갈공명이 남양에 머물던 시절에
그 현명함을 전해듣고 청혼하여 아내로 맞았다.
공명의 학문 또한 아내에게서 도움을 받은 바가 컸다.
공명이 세상을 떠나고 얼마 안 되어 황씨 또한 세상을 떠났는데,
황씨는 유언으로 아들 제갈첨에게
오로지 충효에 힘쓰라는 말을 남겼다.
지혜가 깊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둔 덕분인지
제갈첨은 어릴 때부터 총명함이 남달라 후주 유선의 사랑을 받았다.
후주가 자신의 딸을 제갈첨과 맺어주어 제갈첨은 부마도위(駙馬都尉)가 되었다.
나중에는 부친의 작위 무향후(武鄕侯)를 물려받았고,
경요(景曜) 4년(261)에 행군호위장군(行軍護衛將軍)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중상시 황호가 조정에서 득세하자
칭병(稱病)하고 조정 출입을 자제했다.
후주는 극정의 말에 따라
제갈첨을 조정으로 불러오기 위해 칙사를 보냈다.
제갈첨은 입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으나
칙사가 세 차례나 찾아오는 까닭에 마지못해 입조했다.
제갈첨이 모습을 보이자 후주가 눈물로 호소한다.
"등애의 군사가 벌써 부성을 점령하고 있다 하니, 성도가 위급해졌소.
경은 선군(先君, 제갈양)을 생각해서라도 짐의 목숨을 구해주오."
제갈첨도 어전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신(臣)의 부자가
선제(先帝, 유비) 폐하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사옵니다.
제가 간뇌도지(肝腦塗地)하여도
그 은덕을 다 보답할 수는 없을 것이옵니다.
청하옵건대 폐하께서 도성의 전 병력을 모아주시면
신이 목숨을 걸고 적과 싸우겠사옵니다."
후주는 엎드려 있는 제갈첨에게
다가가 제갈첨의 손을 감싸쥐고 말한다.
"고맙소.
짐이 즉시 그리 하리다."
후주는 성도에 있는 장수와 군사 칠만을 제갈첨에게 맡겼다.
제갈첨은 하직을 하고 나와 군마를 정돈하고 장수들을 소집했다.
결의에 차 있는 장수들이 제갈첨 앞에 눈을 빛내며 서있었다.
제갈첨이 장수들을 돌아보고 묻는다.
"누가 선봉을 맡겠는가?"
"제가 그 임무를 맡겠습니다!"
제갈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소년장수가 나선다.
모두가 그 장수를 돌아보니,
그는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諸葛尙)이었다.
제갈상은 비록 아직 나이가 열아홉 밖에 되지 않았지만
병법을 두루 익혔고, 무예도 뛰어났다.
제갈첨은 아들을 대견해하며 제갈상을 선봉의 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그날 위군과 맞서 싸우기 위해 성도를 떠났다.
위군에 투항한 마막은 등애에게 지도를 하나 바쳤다.
그 지도에는 부성에서 성도까지 360리 길의 산천, 도로,
험준한 지형의 넓고 좁음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등애가 지도를 면밀하게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서 말한다.
"이 지도를 보니 자칫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다.
내가 부성에 들어앉아 지키기만 하다가
촉군이 앞산을 차지하면 어쩔 뻔 했느냐?
그랬다면 성도까지 나갈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날짜를 끌었다가는 강유의 군사가
배후에서 들이닥쳐 우린 꼼짝없이 전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등애가 급하게 사찬과 등충을 호출하여 명한다.
"군사들을 이끌고
이 밤 안에 면죽땅으로 진군하여 촉군을 막아라.
내가 곧 뒤따라 갈 것이다.
태만하게 굴어서는 안 된다.
적군이 면죽을 먼저 차지하는 날에는 당장에 목이 달아날 줄 알아라."
"네!
분부 받잡겠습니다!"
사찬과 등충이 즉시 군사들을 이끌고
면죽을 향해 밤을 세워 달려갔다.
면죽땅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한 발 앞서 온 촉군과 정면으로 맞닥뜨렸다.
양군은 날카롭게 예기를 뽐내며 서로를 향해 진을 쳤다.
사찬과 등충이 기문(旗門) 앞으로 가서 촉 진영을 바라보니,
촉군은 팔진(八陣)을 펴고 있었다.
그때 북소리가 세 번 울리더니,
팔진 기문이 양 옆으로 갈라지며 수십 명의 장수가
사륜거(四輪車) 한 대를 호위하며 나타났다.
그 사륜거 위에는 한 사람이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몸에는 학창의를 입고, 머리에는 윤건을 쓰고,
손에는 깃털이 살랑이는 우선(羽扇)이 들려 있었다.
사륜거 위에 매달린 황색 깃발은 사찬과 등충을 대경실색하게 했다.
깃발에 '한승상제갈무후(漢承相諸葛武侯)'라는 일곱 글자가
선명히 적혀 있었던 것이다.
"앗!
저것은!"
사찬과 등충은 온 몸에 진땀이 흘렀다.
서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급히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공명이 살아 있다!"
"후퇴하라!"
두 장수가 군사들을 물리려는데
촉군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그들을 저지했다
. 위군은 촉군과 제대로 된 싸움도 한 번 붙어보지 못한채 대패하고 달아났다.
촉군은 달아나는 위군을 이십여 리나 추격하며 엄살했다.
달아나는 사찬, 등충의 군 앞에 등애의 후속부대가 나타났다.
대군이 몰려오자 그제야 촉군은 공격을 멈췄다.
양 쪽은 모두 군사를 거두어 갔다.
등애는 사찬과 등충을 막사 안으로 불러들였다.
등애가 눈을 감고 낮은 목소리로 두 장수에게 묻는다.
"적이 보이면 싸우는 것이 마땅하거늘
너희들은 어찌하여 싸우지도 않고 후퇴했느냐?"
묵직한 등애의 목소리에 기가 눌린 등충은
간신히 입을 열고 말을 한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촉군 진영을 이끄는 자가 글쎄......
제갈공명이었습니다.
그래서 급하게 군사들을 돌렸습니다."
등애가 오른 주먹을 탁자에 쾅 내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고함을 친다.
"그게 무슨 잠꼬대 같은 소리냐!
설령 공명이 살아 있다손 치더라도 두려워할 내가 아닌데,
어찌 삼십 년 전에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 하는 것이냐!
헛것에 놀라 도망친 것이 부끄럽지도 않은 것이냐!
패전의 책임을 져라.
너희의 목을 베어 군법을 바로 세우겠다!
여봐라! 이 두 놈을 끌어다 바로 참수형에 처하라!"
모여 있던 장수들이 등애를 뜯어 말린 끝에
사찬과 등충은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등애가 간신히 화를 가라 앉히고 있는데
촉군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정탐꾼이 등애에게 보고한다.
"사륜거에 타고 있던 것은 진짜 공명이 아닙니다.
그것은 옛날 사마중달을 놀라게 했던 공명의 목상(木像)이었습니다.
현재 촉군의 대장은 공명의 아들 제갈첨이고,
선봉은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이 맡고 있습니다."
등애는 그까짓 목상에 놀라 도망친 장수들에 대한 분노가
다시 치솟으려 했지만 참고 또 참으며 사찬과 등충에게 말한다.
"우리 작전의 성패는 이번 싸움에 달렸다.
다시 지는 날에는 가차없이 너희의 목을 벨 것이다."
사찬과 등충이 다시 군사 일만을 거느리고 출전했다.
촉군에서는 제갈상이 혼자 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나섰다.
제갈상은 그 기개가 얼마나 대단한지
불과 십여 합만에 사찬과 등충을 물리쳤다.
상황을 지켜보던 제갈첨이
좌우의 군사들을 모두 휘몰아 나와 위의 진영으로 돌격했다.
제갈첨 부자는 마치 전장에 무기를 든 자는 둘 밖에 없는 것처럼
여기 저기를 오가며 위군을 닥치는대로 무찔렀다.
위군 측의 사상자는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찬과 등충 또한 부상을 입고 도망치는 신세였다.
제갈첨은 도망치는 적들을 이십여 리나 뒤쫓아가서 그곳에 영채를 세웠다.
사찬과 등충이 죽을 힘을 다해 싸웠다는 것은
몸에 난 상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등애는 예고했던 것과 달리
대패하고 돌아온 사찬과 등충을 처벌하지 않았다.
대신 장수들을 모두 소집하여 대책을 상의했다.
등애가 탄식하며 말한다.
"촉에 제갈첨 같은 인재가 남아 있었을 줄이야!
제갈첨이 부친의 뜻을 그대로 이어받은 모양이다.
두 번의 싸움에 우리는 일만의 병력을 잃었다.
제갈첨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우리에게 더 큰 화가 닥칠 것이다."
등애의 말을 들은 감군 구본(監軍 丘本)이 등애에게 조심스럽게 아뢴다.
"항복 권유서를 한 장 적어 보내봄이
어떻겠습니까?"
"그래.
그것부터 실행해보자."
등애는 즉시 서신을 한 통 적어
사자를 통해 촉채에 서신을 전달하도록 했다.
제갈첨이 등애의 서신을 펼쳐본다.
정서장군 등애가 행군호위장군 제갈사원 휘하에 서신을 보내오이다.
근세에 어질고 뛰어난 인재는 공의 부친만한 분이 없소.
제갈무후께서 일찍이 남양의 초려에서 나오실 때부터
이미 천하를 삼분하고자 하는 뜻을 세우셨으며,
형주와 익주를 평정하여 그 위업을 이루셨으니
고금에 무후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이오.
후에 여섯 차례 기산으로 나아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은
지혜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하늘의 운수 때문이었소.
오늘날 후주는 나약한 혼군이오,
왕기(王氣)도 이제 다 한 탓에 이 등애가 위나라 황제의 명을 받들어
촉을 정벌하여 촉의 강토 대부분을 점령할 수 있었소.
성도의 운명은 위태로움에 놓여 조석(朝夕)을 알 수가 없거늘,
공은 어찌 하늘의 명과 사람의 뜻에 순응하지 않으려 하시오?
공께서 귀순하시면 이 등애는 마땅히 공을 낭야왕(琅琊王)으로 삼도록
황제께 표문을 올려 공의 가문을 길이 빛나게 할 것이오.
이 말에는 결코 거짓이 없으니, 공께서 깊이 살피시기를 바라겠소.
제갈첨은 당장에 등애가 보내온 편지를 찢어서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장막 안에 있는 무사들에게 소리쳤다.
"이 서신을 들고 온 자의 목을 베어라!"
그리고 목을 벤 사자의 머리를 위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등애는 머리만 돌아온 사자를 보고 격노했다.
곧바로 군사들에게 출동을 준비하라는 명을 내렸다.
격분하고 있는 등애에게 구본이 말한다.
"장군, 섣불리 출전하시면 안 됩니다.
제갈첨 같은 자는 계책을 마련하여 나가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래. 침착하게 대응해야겠지."
등애는 구본의 간언에 따르기로 했다.
등애는 천수 태수 왕기와 농서 태수 견홍으로 하여금
후방에 매복하도록 하고,
자신은 친히 군사를 거느리고 촉군 앞으로 나아갔다.
제갈첨 또한 등애의 서신에 대한 보복으로
출동 준비를 하고 있던 터였다.
제갈첨은 등애가 먼저 도발을 해왔다는 보고를 받고
더 화가 나서 직접 군사를 이끌고 위군 진영으로 짓쳐갔다.
촉군의 병사들 또한 기세를 올리며 위군 진영으로 돌격했다.
촉군의 힘에 눌린 등애의 군대가 정신 없이 도망치기 시작하자
제갈첨은 군사를 휘몰아 적군의 뒤를 바짝 쫓았다.
제갈첨이 추격에 열을 올리는데,
갑자기 길 양편에서 매복군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위군의 기습에 제갈첨의 군사들은 일순간 혼란에 빠졌다.
가지런했던 대열이 엉망이 되면서 위군의 기습에 적절한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제갈첨은 가까스로 군사들을 수습하여 면죽으로 퇴각했다.
등애는 제갈첨이 도망쳐 들어간 면죽성을
철통같이 에워싸라는 명을 내렸다.
위군의 포위망은 점점 면죽성의 제갈첨을 압박했다.
제갈첨은 구원을 청하는 편지를 한 통 써서
아장 팽화(牙將 彭和)에게 건네주며 동오에 전달하도록 하였다.
포위망을 겨우 뚫고 동오로 달려간 팽화는
군주 손휴(孫休)에게 제갈첨의 편지를 바쳤다.
손휴는 편지를 읽자마자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우리의 동맹국이 위급한 상황에 빠졌는데
짐이 가만히 앉아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자리에 모인 신하들도 모두 손휴의 말에 동의했다.
이리하여 손휴는 노장 정봉(丁奉)을 주장으로 세우고,
정봉(丁封)과 손이(孫異)를 부장으로 삼아 오만의 군사를 이끌고
촉을 구원하러 가도록 했다.
주장 정봉은 세 갈래 길로 나아가 촉을 돕기로 했다.
부장 정봉과 손이에게 군사 이만을 주고 우선 면중(沔中)으로 진격하게 했다.
그리고 자신은 남은 군사 삼만을 이끌고 수춘성(壽春城)으로 향했다.
한편,
면죽을 지키고 있는 제갈첨은 기다려도 지원군이 오지 않자,
모든 장수들을 불러놓고 결심을 말한다.
"굳게 지키기만 하는 것이 좋은 방도는 아니다.
나가서 결전을 벌이자!"
제갈첨은 아들 제갈상과 상서 장준(尙書 張遵)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자신은 무장을 한 뒤에 말에 올랐다.
그리고 성문 세 곳을 활짝 열어젖히고 병력을 휘몰아 돌진했다.
제갈첨의 군사가 무서운 기세로 짓쳐나오니
등애는 군사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렸다.
제갈첨은 있는 힘을 모두 끌어내어 등애군을 부지런히 뒤쫓았다.
적을 한참 뒤쫓고 있는데 갑자기 한 방의 포성이 요란히 울리더니
사방팔방에서 복병이 튀어나왔다.
제갈첨은 삽시간에 포위망에 둘러싸였다.
하지만 제갈첨의 의지는 불타오르고 있었다.
마구 날뛰며 적군 수백 명의 목숨줄을 끊어놓았다.
등애는 근거리 공격으로는 제갈첨의 기세를 꺾을 수 없을 것 같자
군사들에게 일제히 활을 쏘라는 명을 내렸다.
위군의 화살이 장맛비처럼 촉군을 향해 쏟아졌다.
촉군은 쏟아지는 화살을 피해 뿔뿔이 흩어졌다.
제갈첨은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지 못하고 그만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
사실상 제갈첨이 살아 남을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제갈첨이 칼을 치켜들더니 외친다.
"이제 내 힘은 다했으니
죽음으로써라도 나라에 보답하리라!"
그리고는 칼로 제 목을 스스로 찔러 죽었다.
제갈첨의 아들 제갈상은 성루 위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한 제갈상은 곧장 말에 올랐다.
옆에 있던 장준이 제갈상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한다.
"소장군(小將軍)은 경솔히 나가시면 안 되오."
제갈상이 긴 한숨을 쉬고 말한다.
"우리 부자, 조손(祖孫) 삼 대는 나라의 큰 은혜를 입었소.
아버님이 적과 싸우다 돌아가셨는데 내가 가만히 있어서야 되겠소?
내 목숨을 아껴서 무엇 하겠소? 비키시오."
제갈상의 말을 듣고 장준은 제갈상을 더이상 말릴 수 없었다.
제갈상이 말의 옆구리를 힘차게 박차고 적진으로 돌진했다.
제갈상이 동분서주(東奔西走)하며 활약했지만
이미 촉군의 대열이 흩어질대로 흩어진 탓에
제갈상은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등애는 제갈첨 부자의 충정을 높이 사서
그 둘의 시신을 한 무덤에 합장해 주었다.
그리고 다시 면죽성에 맹공을 퍼부었다.
성에 남아있던 장준, 황숭(黃崇), 이구(李球) 세 장수는
각자 군사를 이끌고 나가 등애군을 향해 돌격했다.
세 장수의 의지와 기세는 좋았으나,
중과부적(衆寡不敵)은 어쩔 수 없었다.
세 장수 역시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다.
결국 등애가 면죽성까지 점령했다.
등애는 싸움에 지친 군사들을 위로하고
곧장 마지막 목표인 성도를 공략하기 위해 진격을 시작했다.
한편,
성도에 있던 후주는 제갈첨 부자가 전사하고
면죽성은 위군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대경실색(大驚失色)했다.
급히 조정으로 문무백관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의논했다.
이런 와중에 한 신하가 서둘러 들어와 후주에게 아뢴다.
"도성 안의 백성들이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달아나고 있사옵니다.
피난민들의 통곡소리가 이곳까지 들릴 지경이옵니다."
후주가 어쩔 줄을 모르고 초조해하고 있는데
정탐꾼이 달려들어와 후주에게 아뢴다.
"위군 선봉대가 성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조정에 모인 신하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여러 의견이 격렬하게 쏟아져 나왔다.
"폐하,
우리는 장수와 군사의 수가 적어 적과 대적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차라리 성도를 버리고 빨리 남중(南中)의 일곱 군(郡)으로
파천(播遷)하시는 것이 최선이옵니다.
그곳은 지세가 험준하여 병력이 넉넉하지 않아도 지켜낼 수 있사옵니다.
이후에 남만(南蠻)의 군사들을 빌려서 수복하소서."
광록대부 초주(光祿大夫 譙周)가 나서서 말한다.
"안 되오.
남만은 오래 전에 반란을 일으켰기에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아무런 은혜를 베푼 적이 없소.
남만족에게 의탁했다가는 오히려 더 큰 화를 입을 것이오."
여러 관원들이 또 다른 의견을 낸다.
"우리는 동오와 오랜 동맹 관계이니
동오에 의탁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초주가 다시 나서서 말한다.
"지금껏 천자가 다른 나라로 가서
황제 노릇을 한 사례는 없었사옵니다.
신이 보기에는 위는 오를 집어 삼킬 힘이 충분하나,
오가 위를 평정할 힘은 없사옵니다.
폐하께서 오에 가셔서
신하 노릇을 하시는 것은 큰 모욕이옵니다.
폐하께서 오에 의탁하는 동안 오가 위에 병탄되는 날이라도 오면
폐하께서는 또 위의 신하 노릇까지 하셔야 할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큰 모욕을 두 번이나 겪게 되시는 것이지요.
그럴 바에는 지금 오로 가실 것이 아니라
차라리 위에 투항을 하시는 편이 낫다고 하겠사옵니다.
위는 반드시 폐하에게 영토를 나누어 줄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위로는 종묘를 지킬 수 있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안녕을 보전할 수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이를 깊이 생각해 주시옵소서."
후주는 분분한 의견 속에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내궁으로 들어가버렸다.
다음날도 군신회의가 다시 열렸지만 갑론을박(甲論乙駁)만 계속 될 뿐,
결론은 지어지지 않았다.
사세는 급한데 대책이 정해지지 않자,
초주는 후주에게 상소를 올려 다시 간했다.
마침내 후주는 결정을 내렸다.
신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후주가 말한다.
"경들은 항복할 절차를 의논해 보시오."
그때 병풍 뒤에서 한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더니
초주를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 썩어빠진 선비놈아!
넌 네 목숨이 아까워 종묘사직을 팔아먹으려 하느냐!
세상에 황제가 적국에 투항하는 일이 어디 있느냐 말이다!"
후주가 병풍 쪽을 돌아보니
고함을 치는 자는 자신의 다섯째 아들 북지왕 유심(北地王 劉諶)이었다.
후주에게는 아들이 일곱 있었다.
장자는 유선(劉璿), 둘째는 유요(劉瑤), 셋째는 유종(劉琮), 넷째는 유찬(劉瓚),
다섯째가 유심, 여섯째는 유순(劉恂), 일곱째는 유거(劉璩)였다.
아들이 일곱이나 있었으나 다섯째 유심만이 총명하고 기백이 있었을 뿐,
나머지 아들들은 모두 유약하고 착하기만 했다.
후주가 아들 유심에게 묻는다.
"대신들이 모두 이제는 항복할 때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너 혼자서만 혈기지용(血氣之勇)을 믿고 반대하는구나.
너는 도성을 온통 피바다로 만들고 싶은 것이냐?"
유심이 아비의 말에 가슴을 치며 눈물로 호소한다.
"지난날 선제(先帝, 유비)께서 살아계실 적에
'초주는 국정에 참여할 재목이 못 된다.' 하셨습니다.
지금 초주가 망령되게도 국가의 큰 일에 나서서 반역적인 언사를 하니,
이것은 하늘의 이치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신이 보건대,
성도에는 아직 수만의 군사가 있고,
검각에 있는 강유의 군사도 성도가 위기에 처하면 반드시 달려올 것입니다.
그때 안팎으로 협공하면 능히 이길 수 있을진대 폐하께서는
초주 같은 썩은 선비의 말만 들으시고
선제 폐하께서 이루어 놓으신 위업의 터를 가벼이 버리려 하시는 것입니까?"
후주는 이미 결심이 확고하게 선 터라 아들을 꾸짖는다.
"너 같이 어린 것이 어찌 천시(天時)를 알겠느냐!"
그래도 유심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후주에게 아뢴다.
"형세가 기울고 힘이 다해 멸망의 화가 닥치면
우리 군신(君臣)과 부자(父子)는 마땅히 성을 등지고 싸우다
종묘사직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할 것입니다.
적에게 항복하고 훗날 무슨 낯으로 선제를 뵈려 하십니까?"
아들의 간곡한 청에도 후주의 결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유심은 통곡하며 외친다.
"선제께서 얼마나 힘들게 위업의 기반을 마련해 놓으셨는데,
하루 아침에 저버리시는 것입니까?
저는 욕을 보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모여 있는 대신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만 있었다.
후주는 측근의 신하에게 명하여 유심을 궐문 밖으로 쫓아냈다.
그리고 초주로 하여금 항복문서를 쓰게 하고,
시중 장소(侍中 張紹), 부마도위 등량(駙馬都尉 鄧良)과 함께
항복문서와 전국옥새(傳國玉璽)를 가지고 위군에게 가서
항복의 뜻을 보이라고 명하였다.
( 2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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