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12)
간신에게 좌지우지 되는 나라의 운명
촉한 경요 5년(262) 10월,
대장군 강유는 왕관이 파괴한 잔도를 복구하면서 군사와 무기를 정돈하고 군량을 비축했다.
그리고 한중의 수로에 대규모로 배를 모아놓고 후주 유선에게 표문을 올렸다.
신이 여러 차례 출정하여 아직 큰 공은 이루지 못하였으나
그동안 위군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것에는 성공하였습니다.
지금껏 군사를 양성한지도 오래이므로,
싸우지 않고 그냥 두면 군기가 나약해져서 반드시 병폐가 생길 것이옵니다.
이제 병사들은 죽기로 싸울 마음을 먹고 있고,
장수들은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니
가히 정벌에 나설 때가 아닌가 하옵니다.
만일 신이 이번에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목숨으로서 그 벌을 받겠나이다.
그동안 원정으로 많은 인마와 군량 등을 잃고 민심이 동요한 것을 보아
온 후주는 강유의 표문을 읽고 망설여졌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초주가 아뢴다.
"신이 밤에 천문을 보건대,
서촉 방향의 장성(將星)의 빛이 어둡고 희미하였습니다.
그런데 대장군이 또다시 출정을 하려하오니,
이는 매우 이롭지 못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조서를 내려 대장군의 원정을 제지하시옵소서."
고민 끝에 후주가 말한다.
"일단 원정을 허락하고 첫 싸움이 어떻게 되는지 지켜봅시다.
첫 싸움이 이롭지 않으면 짐이 즉시 돌아오도록 칙명을 내리겠소."
초주는 이후로 두 번을 거듭하여
출정 반대의 뜻을 올렸으나 후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초주는 궁궐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면서 연신 장탄식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칭병(稱病)하고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군사를 일으킬 때가 임박하여 강유가 요화에게 묻는다.
"이번 출정에서는 내가 반드시 중원을 회복해야 할 터인데,
어느 곳부터 공략하는 것이 좋겠소?"
요화는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대답한다.
"해마다 출정하니 군사와 백성들이 편안할 날이 없습니다.
게다가 위나라에는 등애처럼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 있으니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대장군께서 원정을 강행하겠다고 하시면 제가 극구 반대할 수는 없으나,
소장은 이번에는 대장군을 따라 모시지 못하겠습니다."
요화를 선봉으로 쓸 구상을 하던 강유는 벌컥 화를 내며 말한다.
"지난 날 제갈 승상께서 여섯 번이나
기산으로 출동하신 것은 모두 나라를 위해서였소.
내가 여덟 번째로 위를 치려고 하는 것이
내 사사로운 이익 때문이겠소?
모두 나라를 위한 것이오.
이번에는 조양(洮陽)부터 칠 것이니 그리 아시오.
지금부터 내 뜻에 거역하는 자가 있으면 즉시 목을 베겠소!"
그리고 원정에 반대한 요화는 한중을 지키도록 두고,
강유 자신은 삼십만 대군을 이끌고 조양을 향해 나아갔다.
촉군이 출동하자 서천 어귀에 잠입했던 위나라 첩자가
곧장 기산 영채에 그 사실을 알렸다.
등애가 사마망과 더불어 군사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가
이 소식을 듣고, 정탐꾼을 내보내 촉군의 움직임을 더 살펴보고 오도록 했다.
정탐꾼이 돌아와서 보고한다.
"촉군은 병력을 여러 갈래로 나누지 않고 조양으로 가고 있습니다."
사마망이 등애에게 묻는다.
"강유는 워낙 꾀가 많은 장수인지라
혹시 조양을 치는 척하면서 실은 기산을 노리는 것이 아니겠소?"
등애는 고개를 내젓는다.
"이번에 강유는 조양을 치려할 것이오."
"어찌하여 그리 생각하시오?"
"지금까지 강유는 우리가 군량을 비축해둔 곳으로만 여러 번 공격했소.
지금 조양에는 군량이 없으니 내가 조양의 방비는 소홀히 하고
기산만 지키고 있을 것이라 생각할 것이오.
조양성을 점령하면 군량과 마초를 옮겨다가
그곳에 쌓아두고서 강족(姜族)과 손을 잡고 지구전(持久戰)에 나설 것이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소?"
"우리는 기산의 병령을 모두 철수시키고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누어 조양성을 지원하러 가야 하오.
조양에서 이십오 리 떨어진 곳에 후하(侯河)라는 자그마한 성이 하나 있는데,
그곳은 조양의 목구멍이나 다름 없는 곳이오.
사마 공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조양성에 매복하되,
모든 깃발을 눕히고 북소리도 내지 마시오.
그리고 사대문은 활짝 열고 기다리다가 계략대로 수행하시오.
나는 군사들을 거느리고 후하성에 매복하겠소.
이렇게만 하면 우리는 대승을 거둘 것이오."
등애와 사마망은 편장 사찬(偏將 師纂)에게
기산 영채를 지키게 하고 계획대로 각자의 길을 떠났다.
강유는 하후패를 선봉으로 삼아 조양을 공격하도록 했다.
하후패가 군을 이끌고 조양성에 가까이 이르러서 살펴보니,
성루에 깃발 하나 보이지 않고 사방의 문이 활짝 열려있다.
성이 고요에 휩싸여 있는 것이 오히려 의심스러워서
하후패가 섣불리 입성하지 못하고 주위 장수들을 돌아보며 묻는다.
"혹시 속임수가 아니겠는가?"
여러 장수들이 대답한다.
"보아하니 성 안은 텅 비었습니다.
저기를 보십시오.
대장군의 군대가 온다는 것이 소문이 났는지 백성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후패는 의심이 가시지 않았다.
직접 성 남쪽으로 가보니, 성 뒤로 백성들이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그제서야 하후패가 기뻐한다.
"하하!
정말 빈 성이로구나!"
마침내 하후패가 앞장 서서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제장들도 하후패의 뒤를 따라 성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선두 군이 옹성(瓮城)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포소리가 크게 터지더니
성벽 위에서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일제히 울린다.
그리고 누워있던 깃발들이 곧추 섬과 동시에
방금 촉군이 지나쳐 온 조교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후패가 크게 놀라며 외친다.
"앗!
적의 계책에 빠졌다!"
하후패는 급히 후퇴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석벽 위에서 화살과 돌이 쉴 틈 없이 쏟아져 내린다.
가련하게도 하후패는 입성했던 오백의 군사들과 함께
옹성 아래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뒤이어 성 안에 매복해있던 사마망이
군사들을 휘몰아 달려나와서 촉군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촉군은 참패하여 뿔뿔이 달아났다.
하후패의 뒤를 따라오던 강유는 얼른 구원병을 보내서
사마망의 추격대를 차단하게 했다.
사마망이 성 안으로 쫓겨 들어가자,
강유는 성 바로 밑에 영채를 세우고 포위망을 쳤다.
하후패가 적의 화살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강유는 크게 상심했다.
그날밤 이경, 후하성에 매복해 있던 등애가 몰래 군사들을 이끌고 와서 촉군의 영채를 습격했다.
잠들었던 촉군의 영채는 일대 혼란에 빠졌다.
강유가 혼란을 정돈하려고 동분서주했지만 혼란은 잦아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조양성 위에서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천지를 흔들더니 사마망이 군사들을 이끌고 나왔다.
등애의 군사와 사마망의 군사가 협공을 해오니 촉군은 변변히 싸워보지도 못한 채 대패하고 말았다.
강유는 죽을 각오로 싸운 끝에 간신히 위군의 포위망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강유는 패잔병들을 수습하여 조양성에서
이십 리 떨어진 곳으로 후퇴하여 영채를 다시 세웠다.
벌써 두 차례나 패주한 터라, 촉군의 군심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강유가 그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장수들을 불러모아 말한다.
"이기고 지는 것이 원래 병가상사(兵家常事) 아니던가?
오늘 비록 군사와 장수를 일부 잃었지만 그리 걱정할 것은 아니다.
이번 원성의 성패가 조양성에서 결정될 것이니 모두 한마음이 되어 싸우라.
후퇴하자는 말을 내뱉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목을 벨 것이다."
장익이 앞으로 나서서 의견을 말한다.
"등애와 사마망의 전력이
모두 이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지금 기산은 틀림없이 텅 비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 조양성 사마망과 후하성 등애를 계속 공격하고 계시면
소장이 군사들을 이끌고 기산으로 가서 그곳을 치겠습니다.
우리가 기산의 아홉 영채를 손에 넣는 날이면
전군을 휘몰아 장안까지 진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군.
그리 하도록 하자."
강유는 장익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리하여 장익은 위군 몰래 슬쩍 후군을 빼내어 기산으로 향하고,
강유는 후하성으로 나아가 등애에게 싸움을 걸었다.
양쪽 군사가 진을 치고 있는 가운데,
강유와 등애가 직접 나왔다.
둘이 수십 합을 맞붙었지만 좀체 승부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각기 군사를 거두어 각자의 영채로 철수하며 내일을 기약했다.
다음날,
강유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후하성으로 가서 싸움을 걸었다.
하지만 어제와 달리 등애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강유는 등애를 자극하려고
군사들로 하여금 후하성 밖에서 온갖 욕설을 퍼붓게 했다.
그러나 등애는 일절 반응이 없었다.
등애는 성 안에서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촉군이 거하게 패하고도
후퇴하기는 커녕 매일 싸움을 거는 것이 수상쩍다.
이것은 반드시 계략이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군사를 나눠서 우리의 기산 영채를 넘보려 하는 것이 분명하다.
지금 기산을 지키는 사찬은 병력도 적고 지략도 부족하니 패할 것이 뻔한데......
아무래도 내가 가서 기산을 구해야겠다.'
생각을 마친 등애는 아들 등충을 불러들여서 당부한다.
"너에게 후하성을 맡기겠다.
이곳을 신중히 지켜라.
저들이 아무리 도발을 해도 참고 응하지 말아야 한다.
나는 오늘밤에 기산을 구하러 떠날 것이다."
그날 이경 무렵,
강유는 영채에서 장수들과 작전을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영채 밖에서 함성이 진동하고
북소리와 뿔피리소리가 요란스레 울려댔다.
부하가 강유에게 달려와서 보고한다.
"등애가 삼천 명의 정예병을 이끌고 야습을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모든 장수들이 벌떡 일어나 달려나가려고 한다.
"함부로 나서지 말라!"
강유는 싸우러 나가려는 장수들을 말린다.
장수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얼마쯤 있으니 과연 영채 밖의 소란이 잦아들었다.
등충이 촉군의 정찰병을 슬쩍 건드려서혼란을 만들고,
그 혼란을 틈타서 등애는 정예병들을 무장시켜
기산으로 향해 간 것이었다.
등애가 무사히 기산으로 가는 길에 진입한 것을 확인한 등충은
그대로 군사들을 거두어 후하성으로 들어가 성문을 걸어 잠갔다.
강유는 모여있는 장수들에게 말한다.
"등애는 야습인 것처럼 꾸미고
기산 영채로 갔을 것이다. 나는 기산으로 가야겠다.
부첨, 그대는 이곳을 단단히 지키라.
함부로 나가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라."
강유는 이렇게 조처를 하고 즉시 장익을 돕기 위해
삼천의 군사와 더불어 기산으로 진군했다.
한편, 기산에서는 장익이 맹공을 퍼부어
위군의 영채를 거의 함락 직전까지 만들어 놓고 있었다.
영채를 지키던 수비장 사찬은
군사의 수가 워낙 적어 버티는 것만으로도 힘에 벅찬 상황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장익군의 등 뒤에서 등애가 군사를 휘몰아 들이 닥쳤다.
기습 공격에 당황한 촉군은 전열이 흩어져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
장익은 뒷산으로 급히 도망쳤는데, 적군에게 그만 퇴로를 끊기고 말았다.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돌연 함성이 크게 들리고 뒤이어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가 요동쳤다.
장익이 가만히 들여다보니 위군들이 뿔뿔히 흩어져 달아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강유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군께서 오셨다!"
장익은 주위 군사들에게 외쳤다.
그 소리에 촉군의 사기가 급격히 올랐다.
장익은 군사들을 휘몰아서 강유의 군대와 함께 위군에게 협공을 퍼부었다.
결국 등애는 급히 기산 영채로 도망쳐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나오려 하지 않았다.
강유는 위군의 기산 영채를 촘촘히 포위하여
등애를 단단히 가두어 놓고 낮밤을 가리지 않고 맹공을 계속했다.
이번만큼은 등애를 잡고야 말겠다는 맹렬한 기세였다.
그 무렵,
성도의 후주는 환관 중상시 황호의 말만 믿고
주색에 빠져 있어 나랏일에는 뜻이 없었다.
당시 원로대신 유염(劉琰)의 아내 호씨(胡氏)는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미인으로, 황후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하루는 호씨가 황후를 알현하러 궁궐에 들어갔는데,
황후는 호씨를 궁중에 한 달이나 머물게 했다가
집으로 돌려 보낸 일이 있었다.
유염은 아내가 혹시 그 기간 동안에
후주와 정을 통한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마음이들었다
의심이 걷히지 않자 마침내는 수하의 군사 오백 명을
모두 불러다가 아내 호씨에게 혹독한 매질을 가하게 하였다.
호씨는 거의 죽을 뻔 하다가 겨우 살아났다.
이 일을 들은 후주는 크게 노했다.
즉시 이런 사안을 담당하는 담당 관서에 유염의 죄를 물으라는 명을 내렸다.
관원들이 유염의 죄를 논하여 후주에게 보고한다.
"군사는 아내를 매질하라고 훈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유염을 저잣거리에서 참형에 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하여 유염은 저잣거리에서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러나 관료들은 유염이 아내를 가혹하게 폭행하여
목이 달아난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후주는 황음무도 한 군주라고 수군거리며
자신의 처자식이 궁궐에 드나들지 못하도록 단속하였다.
점점 촉의 조정에는 어진 선비들이 자취를 감추고
소인배들만 들끓기 시작했다.
우장군 염우(右將軍 閻宇)는 터럭만큼의 공도 세운 것이 없는데
황호에게 아첨을 잘하여 무거운 벼슬을 얻은 자였다.
그는 강유가 전군을 거느리고 기산에서 활약하는 사이,
황호를 꼬드겨서 후주에게 자신에게 이로운 말을 아뢰도록 하였다.
황호가 후주에게 아뢴다.
"대장군 강유는 여러 번 정벌군을 일으켰으나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였사옵니다.
우장군 염우로 하여금 그 직분을 대신 맡게 하소서."
후주 유선은 황호의 말을 받아들였다.
강유에게 칙사를 보내서 돌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강유가 한창 기산에서 공격에 열중하고 있는데
칙사가 연달아 셋이나 오더니 군사를 거두라는 후주의 칙명을 전했다.
강유는 칙명을 어길 수는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전군에 철수 명령을 내렸다.
우선 부첨이 이끌고 있는 조양성의 군사를 물리고,
자신은 장익의 군사들과 함께 서서히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날밤 강유는 등애의 영채 밖에서 북소리와
뿔피리 소리를 크게 울렸다.
등애는 무슨 까닭에 촉군이 그러는 것인지 알지 못해
불안에 떨다가 새벽을 맞이했다.
등애의 부하가 새벽같이 밖을 살피고 돌아와서 등애에게 보고한다.
"촉군이 모조리 철수하고 영채가 텅 비었습니다."
등애는 강유가 또 무슨 계략을 펼칠지 두려워
섣부르게 추격대를 내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덕분에 강유는 군사를 하나도 잃지 않고
무사히 퇴군할 수 있었다.
한중으로 돌아온 강유는 군사들과 말에게 휴식을 주고,
자신은 후주를 뵙기 위해 칙사를 따라 성도로 향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강유가 성도에 오고 열흘이 지나도록
후주는 조회를 열지 않아 후주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의심을 품고 강유가 퇴궐하는데 우연히 비서랑 극정(秘書郞 郤正)과 마주쳤다.
강유가 극정에게 묻는다.
"공께서는 황제께서
나에게 회군 명령을 내리신 연유를 아시오?"
극정이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대장군은 아직도 내막을 모르시오?
황호가 염우에게 공을 세울 자리를 만들어 주려고
천자께 아뢰어 장군을 불러들이신 것이오.
듣자하니 위나라 등애의 지모는 따라갈 자가 없다던데
이번 결정으로 등애는 누워 자면서도 변방을 지킬 수 있게 되었소. 쯧쯧."
강유는 대로하여 소리친다.
"내 반드시 그놈의 환관놈을 죽여버리겠다!"
극정이 강유의 팔을 잡더니 말한다.
"대장군은 제갈무후께서 남기신 뜻을 계승하여
그 책임이 크고 무거운데 어찌 경솔하게 움직이려고 하십니까?
천자께서 용납하지 않으시면 대장군이
오히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누명만 쓰게 될 것이오."
"선생의 말씀이 옳소. 내 분에 못 이겨 대사를 망칠 뻔 했소."
강유는 극정의 만류에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았다.
이튿날 후주가 후원에서 잔치를 베풀어 황호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강유가 몇 사람을 거느리고 찾아온다는 기별이 들어왔다.
강유에 대해 켕키는 것이 많은 황호는
급히 호산(湖山) 옆으로 들어가 몸을 피했다.
강유는 후주가 앉아있는 정자 아래에 이르러 울먹이며 아뢴다.
"신이 기산에서 등애를 잡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폐하께서는 세 차례나 칙명을 내리시어 저를 소환하셨사옵니다.
또, 제가 성도로 돌아와 폐하를 알현하고자 하였으나
입궐하여도 뵈올 수가 없으니, 폐하의 뜻은 무엇이옵니까?"
후주는 강유에게 시선도 주지 않은 채로 묵묵부답이다.
강유가 다시 아뢴다.
"환관 황호가 농간을 부려 권세를 부리니,
그것은 한나라 영제(靈帝) 때 십상시(十常侍)와 다를 바가 없사옵니다.
바라옵건대, 폐하께서는 가까이로는 십상시의 장양(張讓)을 멀리로는
진나라의 간신 조고(趙高)를 거울 삼아 한시라도 빨리 황호를 죽이십시오.
그러면 조정은 스스로 맑아지고, 중원 회복도 먼 일이 아닐 것이옵니다."
후주가 강유를 바라보더니 껄껄 웃으며 말한다.
"황호는 짐의 시중이나 드는 말단 관리인데
무슨 우환이 된다는 말이오?
권력을 부리라고 손에 쥐여줘도 그러지 못할 위인이오.
전에 동윤(董允) 또한 경과 같은 소리를 하기에
짐이 나무란 일이 있는데, 왜 경까지 그러는 것이오?"
강유는 머리를 조아리며 거듭 간한다.
"폐하, 지금 황호를 제거하지 않으시면
가까운 시일 내에 재앙이 닥칠 것이옵니다."
"사랑하면 살리려고 하고, 미우면 죽이려고 한다는데,
경은 어찌하여 한낱 환관 하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오?"
후주는 시종을 시켜서 뒤에 숨어 있는 황호를 불러냈다.
그리고 황호에게 강유에게 사죄하라는 명을 내렸다.
황호는 명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강유의 발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을 하며 말한다.
"소인은 조석으로 폐하를 모셨을 뿐,
정사에는 간섭한 적이 없사옵니다.
장군께서는 바깥 사람들의 거짓된 말을 믿고 저를 죽이려하지 마옵소서.
소인의 목숨이 장군께 달렸으니 부디 딱히 여기시어 용서해주십시오."
그러더니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눈물을 쏟아낸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강유도 더 이상 몰아붙일 수는 없었다.
분통이 터지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억누르고 궁에서 나와 극정을 찾아갔다.
그리고 극정에게 조금 전에 벌어졌던 일을 그대로 말해주었다.
극정의 얼굴에 염려하는 기색이 완연해졌다.
"머지 않아서 장군께 큰 화가 닥치게 되었소.
장군이 위험에 처하면 이 나라 또한 위험에 처할 것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소?"
강유가 극정의 두 손을 꼭 잡고 간절히 청한다.
"선생,
부디 보국안신(保國安身)의 계책을 가르쳐 주시오."
극정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강유의 말에 대답한다.
"농서 땅에 답중(沓中)이라는 곳이 있소.
그곳은 토질이 비옥하여 농사가 아주 잘 되는 곳이오.
장군은 제갈무후가 둔전(屯田)하셨던 것을 기억하시오?
그것을 본받아 황제께 아뢰어 둔전하며 지내시는 것이 좋겠소.
답중에서 둔전을 하면 군량이 충실해질 것이고,
위나라가 가지고 있는 농우 일대를 기습 점령할 기회도 가질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위군이 한중 땅을 넘보지 못하게 될 것이고,
장군이 지방에 나가 있지만 병권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누구도 함부로 장군에게 화를 끼치지 못할 것이오.
이것이야말로 나라를 지키면서 내 몸까지
안전히 할 수 있는 방책이 아니겠소?"
강유는 극정의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컸다.
강유가 극정에게 사례하며 말한다.
"선생의 말씀이 귀중한 금옥(金玉)과도 같습니다."
강유는 극정의 말을 마음 속에 새기면서
이튿날 바로 후주에게 표문을 올렸다.
표문은 지난날 제갈무후가 그랬던 것처럼
답중에 가서 둔전을 할테니 윤허해주십사 하는 내용이었다.
후주는 자꾸만 신경이 쓰이게 하는 강유가
제 발로 멀리 떠나겠다고 하니 흔흔히 승낙하였다.
강유는 한중으로 돌아가서 장수들을 불러놓고 말한다.
"우리가 여러 차례 중원 회복을 위하여 출정하였으나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것은 모두 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제 군사 팔만명을 데리고 답중으로 가서
보리농사를 지으며 둔전을 할 작정이다.
그대들은 긴 싸움으로 심신이 고단할테니
휴식을 취하면서 이 한중을 지키도록 하라.
설령 위군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천리밖에서부터
험산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군량을 나르는 일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닐 것이다.
지친 군사들은 사기 또한 많이 꺾여있을 것이니 그때를 노려서
공격하면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이어서 강유는 호제(胡濟)에게 한수성(漢水城)을, 왕함(王含)에게
낙성(樂城)을, 장빈(蔣斌)에게 한성(漢城)을, 장서와 부첨에게는
각처의 관문과 요충지를 지키도록 명령했다.
수비군이 각기 떠나고 강유는 군사 팔만 명을 이끌고 답중으로 향했다.
답중으로 향하는 강유는 일신에 가해질 수도 있었던
화를 피했다는 안도감과 보리농사를 지으며 장구(長久)한 계획을
실행할 것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413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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