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독으로 독을 다스리다- ( 1 )[以毒制毒]

오토산 2022. 5. 28. 08:48

삼국지(三國志) .. (416)

독으로 독을 다스리다- ( 1 )[以毒制毒]

태복 장현(太僕 莊顯)은 검각에 있는 강유에게

위나라에 항복하라는 후주의 칙령을 전달했다.
강유는 너무 놀란 나머지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소식을 들은 장수들은 하나 같이 눈을 치뜨고 이를 갈며 분노했다.
어떤 장수는 칼을 뽑아들고 바위를 내리치며 소리를 지른다.

 

"우리는 여기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데

성도에서는 천자가 먼저 항복을 하다니.
이런 법이 어디있나!"

 

나라를 잃은 슬픔에 촉군 진영에는 통곡소리가 가득했다.
강유 또한 어디에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장병들이 모두

촉한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다.
강유는 장병들을 위로하며 말한다.

 

"지금 여기서 통곡하고 있는 촉한의 장수들은 걱정하지 말라.
나에게 한실(漢室)을 부흥시킬 계책이 있다."

 

강유의 말에 모여 있는 장수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여러 장수가 강유에게 묻는다.

 

"계책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장군과 기꺼이 함께 하겠습니다."

강유는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귓속말로 계책을 일러주었다.

 

이튿날,

검각 관문 사면에는 항복의 깃발이 세워졌다.
강유는 종회의 영채로 사람을 보내서

곧 항복하러 나갈 것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종회는 크게 기뻐하며 사람을 보내서

항복하러 나오는 강유, 장익, 요화, 동궐을 영접하도록 했다.
강유가 장막 안에 들어오자 종회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백약(伯約, 강유의 자),
어찌 이리 늦으셨소?"
강유는 눈물을 흘리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나라의 모든 군사가 내 휘하에 있는데,
오늘 내가 이 곳에 온 것도 이른 것 아니겠소?"
같은 장수로서 종회는 강유의 말을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비록 강유가 항복을 하러 왔으나

당당한 태도에는 변함이 없어 강유에 대해 존경심마저 들었다.
그래서 종회는 자리에서 내려와 강유와 맞절을 하고

강유에게 상석에 앉도록 권유했다. 
자리에 앉은 강유가 종회에게 말한다.

 

"장군께서는 회남 토벌전 이래로 마련한 모든 계책을

실수 한 번 없이 성공으로 이끌었다 들었소.
지금 사마씨가 조정에서 권세를 잡고 있는 것도 모두

장군의 덕이 아니오?

 

비록 우리는 적이었지만 나는 장군을 흠모하고 있었소.
그래서 장군께 와서 항복을 한 것이오.
만약 검각 앞에 있는 것이 장군이 아니라 등사재(鄧士載, 등애)였다면

나는 죽을 힘을 다해 싸웠지, 이렇게 항복을 하지는 않았을 거요."
종회는 강유의 말에 감격했다.
종회가 바로 곁에 있는 화살을 한 대 꺼내더니

그것을 반으로 부러뜨리며 맹세한다.

 

"백약, 우리 의형제를 맺음이 어떠오?"

 

강유 또한 화살을 꺾어 그 둘은 의형제를 맺었다.
종회는 강유와 친형제보다도 더 친밀하게 지내는 것은

물론 강유가 옛 병사들을 그대로 거느릴 수 있도록 했다.
마음 속으로 그리는 바가 있는 강유는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그 무렵에 등애는 사찬(師纂)을 익주 자사에 봉하고,

견홍(甄弘), 왕기(王頎) 등에게 각 주군(州郡)을 다스리게 했다.

 

또, 면죽(綿竹)에 전공비를 세운 후

잔치를 성대하게 열어 아군 장병들을 위로하고,

촉의 옛 관리들도 빠짐 없이 초대하여 크게 대접했다.
한 잔 두 잔 술이 계속되자 얼큰하게 취한 등애가

촉의 신하들을 향해 말한다.

 

"그대들은 나를 만난 것이 행운이네.
나 말고 다른 장군을 만났으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야.

떼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거든."

 

여기 저기에서 촉의 관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등애에게 절을 올려 사례를 했다. 
그때 검각에 사신으로 갔던 장현이 들어와서 등애에게 보고한다.

 

"강유가 종회 장군에게 항복했습니다."

 

"그래?

잘 되었군."
등애는 모두가 듣는 앞에서는 잘 된 일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종회에 대한 시기심이 불타고 있었다.
등애는 생각 끝에 낙양에 있는 사마소에게 편지를 한 통 적어 보냈다.

신 등애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말씀 올립니다.

병법에서 '먼저 소리쳐서 알리고 그 후에 실력을 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촉을 평정한 지금의 기세로 이제는 오 를 석권할 차례입니다.
허나, 워낙 큰 작전을 수행한 이후인지라 장수와 군사들이

모두 지쳐 있어서 바로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없는 실정입니다.

 

농우(隴右)의 군사 이만과

촉군 이만을 남겨두어 휴식을 취하게 하면서 소금을 굽고,

쇠를 벼리고, 선박을 만들게 하여 장차 물길로 진격할 준비를 갖춘 뒤에

오 에 사신을 보내어 이해와 사리를 따져 설득하면 싸우지 않고도

우리가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폐주(廢主) 유선을 후하게 예우하여

오주 손휴의 마음이 흔들리게 하소서.
지금 유선을 낙양으로 압송하면, 분명
오 에서는 진공(晉公)의 뜻을 의심하여

우리에게 귀순할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유선은 그대로 촉에 머물게 했다가

내년 겨울쯤에 낙양으로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유선을 바로 부풍왕(扶風王)에 봉하고 재물을 내리셔서

자신의 옛 신하들에게 주게 하고,
그 아들들은 공후(公侯)로 삼아

귀순자에게 은총을 베푼다는 것을 널리 알리십시오.

그것을 보면 오나라 사람들은 진공의 덕망에 감화되어

싸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자진하여 귀순할 것입니다.  

사마소는 등애의 서신을 다 읽고,

등애가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앞으로 제멋대로 권력을

좌지우지 하려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등애를 태위(太尉)로 봉하고,
식읍(食邑) 이만 호를 내려서 포상을 한다는 황제의 조칙과 함께

사마소 자신이 직접 쓴 서한 한 통을 감군 위관(衛瓘)을 통해 
등애에게 보냈다.

 

사마소가 보낸 편지에는

'건의한 뜻은 잘 알겠으나,

그 일에 대해서는 우선 황제께 아뢰고 조정 대신들이

상의해야 하는 문제이니함부로 행동을 개시하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칙과 서신을 들고 온 위관에게 등애가 말한다.

 

"손자병법에 그런 말이 있지 않더냐?

 

'장수가 외지에 원정을 갔을 때에는

군주의 명령도 듣지 않을 수 있다.'라고 말이다.

내가 이미 황제의 명으로 정벌의 전권을 가지고

있으니 아무도 나를 막을 수는 없다."

 

그 무렵에 낙양 조정에서는

등애가 반역할 것이 틀림없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등애를 향한 사마소의 의심도 깊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등애는 그런 실정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사마소에게 답장을 적어 보냈다.

신 등애는

서촉을 정벌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들어 이미 원흉을 굴복시켰습니다.
이러한 때에 현지의 형편에 맞추어 일을 처리해야만

상황을 안정시킬 수 있겠습니다.

 

조정의 명령을 받아서 일을 처리하느라

전령들이 먼 거리를 계속 오가면 세월만 늦어질 뿐입니다.

 

춘추(春秋)의 대의(大義)에 이르기를,

'대부가 국경 바깥으로 나가 있을 때는 조정과 나라의 안녕을 위하여

독단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아직 오나라는 항복하지 않았고,

언제라도 촉한의 잔당(殘黨)들과 오나라가 연합할 가능성이 있는데

관례에 얽매여 일을 처리하다가 기회를 잃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손자병법에도

'장수는 진격할 때 명예를 구하지 말며,

패전했을 때는 그 책임을 피하지 말라[進不求名 退不避罪]'고

했습니다.

 

이 등애가 비록 옛사람들만큼의 절개는 없으나

오판하여 나라에 손실을 끼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아뢰고 시행하고자 하오니 부디 너그러이 봐주십시오.

사마소는 등애의 답장을 읽고 깜짝 놀라며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급히 모사 가충을 불러다가 계책을 상의했다.

사마소가 가충에게 말한다.

 

"등애가 공을 세운 것을 믿고

교만하게도 제 멋대로 행하려 하니,

반역하려는 것이 분명하다.

어찌하면 좋겠는가?"
가충이 대답한다.

 

"종회에게 등애와 같은 직권을 가진 벼슬을 내리시지요.
종회가 등애를 견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게 좋겠군.
이독제독(以毒制毒)의 절묘한 계책이야."

사마소는 가충의 권유에 따라

즉시 종회를 사도(司徒)에 봉한다는 조서를 띄우고,

더불어 자신이 적은 밀서를 종회에게 전달했다.

 

또 한편으로는 감군 위관에게 종회와 등애를 모두 감독하는 권한을 주면서,
변란이 발생했을 때는 즉시 장병들을 동원하여 방비하라는 명을 내렸다.

종회는 벼슬을 내린다는 조서와 함께

도착한 사마소의 밀서를 읽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강유를 청해다 상의를 해보기로 한다.

 

"백약,
지금은 등애의 공이 나보다 크고

또, 태위의 직책도 받았소.
그런데 사마공은 등애가 반역의 뜻이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여 나에게 등애를 제압하라는 밀명을 내리셨는데,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소?"
강유가 대답한다.

 

"등애는 출신이 미천해서 어릴 적에는 농가에서 소나 치며 살았다고 들었소.
이번에 어쩌다가 요행으로 음평 샛길을 알아내어 큰 공을 세운 것일 뿐이오.
지모가 뛰어나서가 아니고 나라의 큰 복에 기대서 성공한 것이오.
만일 장군이 검각에서 이 강유와 대치하지 않고 있었다면

등애가 무슨 수로 나까지 감당하며 그리 큰 공을 세웠겠소?
등애가 촉주를 부풍왕으로 옹립하려는 것도 촉한 백성들의 인심을 사서

군주의 자리를 노리는 것이오.
누가 봐도 그렇지 않소?
진공이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오."

 

"좋은 계책이 없겠소?"

 

"잠시 좌우를 물려주시오.
내가 은밀히 할 말이 있소."

종회가 측근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자

강유는 소매 안쪽에서 지도를 한 장 꺼내 종회에게 건네며 말한다.

 

"이 지도는 옛날 제갈무후께서 남양 초려에서 나오실 때,

선제(先帝, 유비)께 바친 것이오.

 

이 지도를 바치면서

'익주의 땅은 기름진 토지가 천 리나 있어 백성은 풍요롭게 살고,

나라는 부강해질 수 있는 곳이라 패업(覇業)을 이룰 만한 곳이다'라고

말씀하셨다하오.

선제께서는 제갈무후의 말씀을 옳게 여겨 성도를 근거로 삼아

촉한 건국의 위업을 달성했던 것이오.
그런 좋은 위치의 땅을 얻었으니 등애가 욕심에 정신이 나가

방자한 뜻을 품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 아니겠소?"

 

등애를 깎아내리는 강유의 말에 종회는 기뻐하며 지도를 살폈다.
강유는 지도에 그려진 산천의 형세를 종회에게 일일이 설명해 주었다.
종회가 강유에게 묻는다.

 

"등애를 어떤 계책으로 상대하면 좋겠소?"

 

"우선 진공께

등애가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표문을 올리는 것이 좋겠소.
진공이 등애를 의심하고 있으니 지금이 기회요.
틀림없이 진공께서는 장군에게 등애를 토벌하라는 명을 내릴 것이오.
조정의 명령만 있으면 장군의 능력으로 등애 쯤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니지 않소?" 

 

종회는 강유의 말을 좇아 낙양에 표문을 올렸다.
등애가 전권을 휘어잡고 있으면서 촉의 신하와 백성들의 인심을 사고 있으니

머지 않아 반역할 것이 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는 한편

종회는 등애가 낙양으로 올려보내는 표문을 중간에서 낚아채어 표문을 위조했다.
등애의 필적을 흉내내어 등애가 적은 내용을 오만무례한 말투로 고쳐서

낙양으로 보냈다.  

종회가 손을 댄 등애의 표문을 본 사마소는 대노했다.
즉시 종회에게 사자를 보내서 등애를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그리고 가충에게 삼만의 군사를 주고 야곡(斜谷)으로 진출하게 하고,

사마소 자신은 위주 조환(魏主 曹奐)을 설득하여 친정군(親征軍)을 일으켰다. 

 

서두르는 사마소에게
서조연 소제(西曹椽 邵悌)가 간한다.

 

"종회의 군사가 등애보다 6배나 많습니다.

종회 혼자서도 등애를 잡을 수 있는데

굳이 주공께서 직접 나가시려 하십니까?"
그 말에 사마소가 빙그레 웃더니 답한다.

 

"그대가 전에 한 말은 잊었나?
장차 종회가 반드시 반역할 것이라는 말 말이다.

나는 지금 등애 때문에 가는 것이 아니다."
소제도 사마소를 따라 웃으며 말한다.

 

"저는 명공(明公)께서

혹여나 그 일을 잊으셨나하여 여쭌 것입니다.
이제 진정한 뜻을 알았으니 안심입니다.
다만,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그렇지. 당연한 말이다."

사마소는 곧 대군을 이끌고 낙양성을 떠날 채비를 갖추었다. 

 

그 무렵,

가충 또한 사마소에게 종회가 딴 뜻을 품고 있는 것 같다는 밀고를 했다.
사마소는 가충에게 퉁명스럽게 말한다.

 

"만약에 내가 종회와 등애 대신 그대를 보냈으면,

내가 그대 또한 의심해야 하는 것이냐?
내가 장안에 이르면 모든 것이 명백해질 터이니

괜히 앞질러서 의심하지 말라."

 

사마소는 모사 가충에게조차 비밀을 누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정탐꾼을 통해 사마소의 토벌군이 출정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종회는

황급히 강유를 불러다가 등애를 칠 계책을 상의했다.
강유가 말한다.

 

"먼저 위관에게 등애를 잡아들이라고 명하시오.
등애가 위관을 죽이려든다면 그것이 바로 등애가

반역을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될 것이오.
그때 장군이 군사를 일으켜 등애군을 토벌하시오."

 

종회는 강유의 말에 동의했다.
즉시 위관에게 수하 수십 명을 이끌고 가서 등애 부자를 잡아오도록 명했다. 
위관이 명을 받들고 성도로 떠나려 하자 수하 하나가 위관에게 아뢴다.

 

"떠나지 마십시오.
이것은 종사도(鍾司徒, 종회의 자)가 정서장군 등애의 손으로

장군을 죽여 반역의 증거를 잡으려 함이 분명합니다.
모략이 분명한 이상, 절대로 나가셔서는 안 됩니다."
위관의 대답은 단호하다.

 

"나도 생각이 있다."

 

위관은 성도로 향하기 전,

격문 이삼십 통을 적어 선발대를 통해 먼저 보냈다.

격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제의 조서를 받들어 등애를 체포하러 왔을 뿐,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죄를 묻지 않겠다.

미리 귀순하면 벼슬과 상을 내릴 것이나,

감히 맞서는 자가 있다면 삼족을 멸하리라.

위관은 죄수 이송용 함거(檻車)를 두 대 마련하여

밤을 새워가며 성도로 내달렸다.

 

새벽닭이 울 무렵,

위관이 먼저 띄워보냈던 격문을 발빠르게 읽은

등애 수하의 장수들은 모두 위관 앞에 나와 엎드려 절했다. 
등애는 그런 사정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아직도 부중에서 잠들어 있었다. 
위관이 부하들을 이끌고 등애의 침실로 들이닥친다.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등애 부자를 체포한다!"

 

단잠을 자던 등애는

벼락같은 소리에 깜짝 놀라 침상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위관은 무사들을 호령하여 등애를 포박했다.
등애의 아들 등충 또한 소란에 놀라 급히 잠자리에서 달려나왔다가

제 아비와 같이 포승줄에 묶이는 신세가 됐다.
등애에게 충성하던 장수와 관리들이 그제서야 무기를 휘두르며

등애 부자를 구해내려 했으나 그것은 헛수고였다.

 

저 멀리서 모래 먼지를 자욱하게 날리며 종회의 대군이 몰려왔던 것이다.
등애 부자를 구하려고 애쓰던 장수와 관리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종회는 강유와 함께 말에서 내려 등애 부자 앞으로 갔다.
묶여 있는 등애 부자를 보더니 종회는 다른 사람에게 보일 듯 말듯 한

희미한 미소를 짓다가 이내 인상을 쓰더니

채찍으로 등애의 머리를 후려치며 외친다.

 

"소나 치던 놈이 감히 이런 짓을 꾸민 것이냐!"
옆에 있던 강유 또한 거든다.

 

"같잖은 놈이 요행으로

큰 공을 세우나 싶더니 결국 이런 꼴이 되었구나!"

 

등애는 비록 묶여 있었으나 가만히 있지 않고

목청을 높여 욕설을 하며 종회와 강유의 말을 맞받아쳤다.
종회는 등애와 등충을 함거에 실어 낙양으로 올려보냈다.
등애의 군마를 모두 휘하에 넣게 된 종회는
그 기세와 위엄이 대단했다.
종회가 강유에게 말한다.

 

"내가 이제야

내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소!"
강유가 감격에 차 있는 종회에게 차분한 말투로 말한다.

 

"옛적에 한신(韓信)은 괴통(蒯通)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미앙궁(未央宮)에서 화를 당했고

 

1, 월나라 대부 문종(文鍾)은 범려(范蠡)를 따라

오호(五湖)로 물러나지 않았다가 칼에 엎드려 죽고 말았소
2. 한신과 문종의 공이 얼마나 빛났소?

하지만 이해(利害) 판단을 잘 하지 못하고

시기를 살피는 것에 둔하여 화를 당한 것이오.

 

오늘날 공이 세운 공은 이미 그 위세가 진공을 능가할 지경이오.
이제는 배를 띄워 조용히 발자취를 끊고 아미산(峨嵋山) 깊은 골짜기에서
적송자(赤松子)와 함께 노니는 것이 좋을 것이외다."

 

강유가 종회의 심사(心思)를 뻔히 알면서도

종회의 마음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했다.

강유의 말은 종회의 권세욕을 은근히 부추길 것이었다.
종회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하하!

그 말은 잘못된 것이오.
내 나이가 아직 마흔도 안 됐소.
앞으로 나아갈 생각만 해도 모자를 젊은 나이에

어찌 물러나서 한가하게 노는 일을 본받아야 하겠소?"

 

종회의 반응에 강유는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 싶었다.
속으로 기뻐하며 종회에게 말한다. 

 

"은퇴할 생각이 없다면 조속히 좋은 계책을 세우시오.
이 늙은이의 잔소리가 없어도 공의 지혜와 능력으로

능히 이룰 수 있을 테지만 말이오."
종회는 웃음에 손뼉까지 치며 기뻐한다.

 

"하하!

백약이야말로 내 마음을 잘 알아주시는구려."

 

강유의 말에 종회의 마음은 더욱 들썩였다.

이날부터 두 사람은 날마다 큰 일을 도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그럴 때에 강유는 후주 유선에게 밀서를 보냈다.

폐하,

며칠만 더 굴욕을 참고 계시옵소서.
신 강유가 위태로운 사직을 평안케 하고,

어두워진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내도록 하겠사옵니다.
한실의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사옵니다.

종회가 강유와 함께 한창 반역을 꾀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마소로부터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나는 종사도가 등애를 토벌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직접 대군을 이끌고 와서 장안에 주둔하고 있다.
조만간 만나고자 하여 이렇게 먼저 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