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

사그라드는한실 부흥의 꿈 ( 2 )

오토산 2022. 5. 27. 11:35

삼국지(三國志) .. (415)
사그라드는 한실 부흥의 꿈 ( 2 )

이무렵,

등애는 매일 무장 기병 수백 명을 동원하여 성도를 정찰하고 있었다.

 

후주가 결단을 내린 그날,

위군 정찰대가 촉 성벽에 오른 항복의 깃발을 발견하고 곧장 등애에게 보고했다.

등애는 두 손뼉을 마주치며 기뻐했다. 
그때 초주의 일행이 찾아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등애는 사람을 시켜서 그들을 맞이하게 했다.

 

사신으로 온 세 사람은 등애가 올라서있는 계단 아래에서 엎드려 절하고

항복문서와 옥새를 등애에게 바쳤다.
등애는 초주, 장소, 등량을 극진히 대접하고

후주에게 답장을 적어 세 사람에게 건네주었다.

 

셋은 성도로 돌아와서 후주에게 등애의 서신을 전달하고

등애가 자신들을 극진히 대접해주었음을 상세히 보고했다.
후주는 등애의 회신을 읽고 매우 기뻐했다.

후주는 태복 장현(太僕 莊顯)을 시켜

당장 항복하라는 칙령을 강유에게 전달하게 했다.

그리고 상서랑 이호(尙書郞 李虎)에게 전국의 문서 장부를 가지고

등애에게 가서 바치도록 명했다.

 

장부에는 촉의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의 수량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었다.

그 내용을 보면, 촉의 인적 자원은 28만호(戶)에 인구가 총 94만이었으며,

무장한 장수와 군사는 10만 2천 명, 관리는 4만 명이었다.

물적 자원은 식량이 40여만 섬, 금과 은이 각기 2천 근,

무늬비단과 채색비단이 각각 20만 필,

그 밖의 물건들은 일일이 다 기록할 수조차 없었다.
촉주와 신하가 모두 위군 앞에 나가서 항복할 날짜는 12월 초하루로 정해졌다.

북지왕 유심은 이 일을 듣고 노기충천(怒氣衝天)했다.
비장한 각오로 허리에 칼을 차고 집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더니 부인 최씨가 묻는다.

 

"오늘 대왕의 안색이 좋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유심이 대답한다.

 

"위군은 아직 본격적으로 도성을 공격하지도 않았는데,

부황(父皇)께서는 벌써부터 항복의 뜻을 전하셨고

내일은 임금과 신하가 모두 나가 항복을 한다 하오.
이제 종묘사직이 멸망하게 되었소.

적에게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하에 계신 선제를 뵈어야겠소."
최씨 부인이 미소를 보이며 말한다.

 

"현명하십니다.
제가 훌륭한 지아비를 두었습니다.
신첩이 먼저 죽겠습니다.
대왕께서는 뒤따라 오소서."

 

"당신은 왜 죽으려 하는 것이오?"

 

최씨 부인이 눈을 한 번 깊게 감았다 뜨더니

남편을 바라보며 말한다.

 

"대왕께서는 부황을 위해 죽고,

신첩은 지아비를 위해 죽으니, 그 뜻은 서로 같다 하겠습니다.
지아비가 죽기에 첩도 죽는 것이니

굳이 이유를 물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말을 마친 최씨 부인은 바로 머리를 기둥에 부딪고 죽었다.
유심은 죽은 아내를 뒤로 하고

제 손으로 아들 셋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그 머리를 들고

소열묘(昭烈廟, 소열제 유비를 모신 사당)에

가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통곡한다.

 

"불초 소신은 기업(基業)이 남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미련을 갖지 않고자 처자식을 먼저 죽였사옵니다.
이제 제 목숨을 바쳐 할아버님께 사죄할 것이니

할아버님의 혼령이 여기 계시거든 부디

이 손자의 마음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유심이 얼마나 절절하게 통곡하는지

그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대성통곡 끝에 유심은

마침내 제가 가지고 온 칼로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드디어 12월 초하루,

위의 대군이 도성 북문 앞에 이르렀다.
후주는 태자와 여러 왕자, 신하 60여 명과 함께

스스로를 결박한 채 관(棺)을 싣고
(항복의 의식 중 하나) 성밖 십 리 밖까지 나가서 항복했다.

 

후주의 항복을 받은 등애는

후주를 일으켜 세우고 친히 유선의 결박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관을 싣고 온 수레는 불태워 버리고

자신이 타고 온 수레에 유선과 함께 올라 도성에 입성했다. 
성도의 백성들은 향과 꽃을 들고 입성하는 위군을 맞이했다.
등애는 유선을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삼고,

그 외 문무관원에게도 직급에 따라 각기 벼슬을 내렸다.

도성 전역에는 방을 내걸어 민심을 안정시키고,

모든 관서와 창고를 접수했다.

 

그리고 태상 장준(太常 張峻)과

익주별가 장소(益州別駕 張紹)를 각 군(郡)으로 보내서

그곳의 군사와 백성들을 안정시키도록 했으며,

검각에 사람을 보내 강유에게 투항 권유서를 전달했다.
도성 안의 정리가 얼추 끝나고 등애는 비로소 
낙양에 사람을 보내 승첩을 알렸다.

 

등애는 환관 황호가 간교하다는 말을 듣고 처형하려 했으나,

황호는 이번에도 발빠르게 등애의 측근을

금은보화로 매수하여 죽음을 모면했다. 

소열황제 유비가 품었던 큰 꿈과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들은 그의 아들 후주 유선에 의해

맥없이 사그라들고 말았다. 

 416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