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16)
독으로 독을 다스리다- ( 2 )[以毒制毒]
종회는 편지를 다 읽고 강유에게 묻는다.
"이 편지 내용을 보시오.
내 군사가 등애보다 몇 배가 더 많아 내가 등애를 잡는 것은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진공께서도 아실 터인데
직접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오셨다니,
이것은 필시 나를 의심하는 것 아니오?"
강유가 대답한다.
"군주에게 의심을 사면 그 신하는 반드시 죽게 마련이오.
등애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소."
"내 뜻은 이미 결정했소.
이 일이 성공하면 천하를 얻을 것이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서촉(西蜀) 땅으로 물러나 지키면,
유비 정도는 될 것이오."
종회의 의지를 보고 강유가 종회에게 계책을 내놓는다.
"근래에 듣자하니 곽태후(郭太后)가 세상을 떠났다고 하오.
장군께서 마치 임금을 시해한 사마소의 죄를 물으라는
태후의 유촉(遺囑)을 받은 것처럼 꾸며서 군사를 일으키시오.
명공의 능력이면 분명히 중원을 손에 넣을 것이오."
종회가 강유의 손을 맞잡으며 말한다.
"백약에게 선봉을 부탁하겠소.
일을 이루고 부귀를 함께 누리십시다."
강유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겠소.
다만 걱정되는 것이 있소.
과연 여러 장수들이 우리의 뜻을 따르겠소?"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내일이 원소절(元宵節)이니 등불을 가득 내걸고
장수들을 불러다 잔치를 벌여서 다짐을 받겠소.
불복하는 자는 곧장 목을 베어버릴 것이오."
강유는 일이 뜻대로 돌아가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다음날 종회가 예고대로 잔치를 열었다.
부하 장수들이 모두 참석한 가운데 술이 몇 순 배 돌았을 때
종회가 술잔을 꽉 움켜잡더니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장수들이 모두 놀라 종회에게 까닭을 물었다.
종회가 대답한다.
"곽태후께서 세상을 떠나실 무렵,
나에게 이런 조서를 남기셨소. '
사마소는 군주를 시해한 대역죄인으로,
조만간 위나라 황실을 찬탈할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불상사가 닥치기 전에 그대가 토멸하시오.'하고 말이오.
여기 그 내용이 담긴 조서가 있으니
제장들은 이 문서에 서명을 하고 마음을 합쳐 사마소를 벌합시다."
갑작스러운 종회의 말에 장수들은 크게 놀라
그자리에서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색하게 눈치만 살피는 분위기를 깨는 건 종회의 노한 목소리였다.
종회는 쥐고 있던 술잔을 탁자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 놓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허리의 칼을 빼서
장수들을 가리키며 외친다.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참형에 처한다!"
장수들은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문서에 서명을 했다.
종회는 장수들을 궁궐에 감금하고
군사들을 시켜 그들을 삼엄하게 감시하게 했다.
강유가 종회에게 말한다.
"내가 보기에는 충심으로
명에 따르려는 자가 아무도 없소.
장수들을 생매장 해버리시오."
"좋소.
궁중에 구덩이를 파고
곤장을 수천 개 준비하여 다짐을 받아야겠소.
그래도 따르지 않으려는 놈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때려 죽여 구덩이에 파묻겠소."
종회가 강유와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 옆에는 종회의 심복 장수 구건(丘建)이 곁에 있었다.
구건은 원래 호군 호열(護軍 胡烈)의 옛 부하였다.
호열은 지금 종회에 의해 궁중에 감금되어 있는 신세였다.
구건은 종회가 했던 말을 호열에게 몰래 알렸다.
호열은 울면서 구건에게 부탁의 말을 한다.
"내 아들 호연(胡淵)이
지금 성밖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으니
종회의 음모를 어찌 알겠나?
자네가 지난 날의 정을 생각해서
이 소식을 내 아들에게 알려주면 고맙겠다.
그리 해주면 내가 죽는다해도 여한이 없을 것이네."
"염려 마십시오.
제가 무슨 수라도 써보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와 곧장 종회를 찾아갔다.
구건이 종회에게 말한다.
"주공,
궁에 감금된 장수들이 먹고 마실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
한 사람에게 오가며 음식을 전하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평소에도 종회는 구건의 말을 믿었던 터라
아무런 의심 없이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며 당부의 말을 한다.
"내가 너를 깊이 믿어 맡기는 일이니
외부에 새나가는 일이 없도록 하라."
"마음 놓으십시오.
엄하게 단속할 방법이 있습니다."
구건은 믿을만한 심복 한 사람을
호열에게 들여보내서 밀서 하나를 받아오게 했다.
그리고 그 밀서를 호열의 아들 호연에게 전했다.
호연은 아버지의 편지를 받고 그 내용에 깜짝 놀랐다.
종회의 음모를 알게 된 호연은 각 진영에 아버지가 보낸 밀서를 돌렸다.
밀서를 받아 본 각 처의 장수들은 급히 호연의 영채로 달려와
계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모인 장수들의 의견은 모두 같다.
"차라리 우리가 죽었으면 죽었지,
역신을 따를 수는 없소!"
장수들의 결의를 보고 호연이 말한다.
"정월 여드렛날 궁중 안으로 짓쳐들어 갑시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되오."
호연이 상세한 계책을 내놓자
감군 위관이 매우 기뻐하며 동의했다.
종회를 치기 위해 군마를 정돈하고,
구건으로 하여금 호열에게 이 소식을 전달하도록 했다.
연락을 받은 호열은 그 내용을 함께 갇혀 있는 다른 장수들에게 전파했다.
다음날 아침,
종회는 강유을 불러서 묻는다.
"내가 지난 밤에 수상한 꿈을 꾸었소.
큰 뱀 수천 마리가 나에게 달려들어 내 몸을 마구 물어 뜯는데,
이것이 길몽인지 흉몽인지 모르겠소."
강유는 지체없이 대답한다.
"꿈에 용이나 뱀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경사스러운 길몽이오."
종회는 그 말에 기뻐하며 수상한 마음은 금새 잊었다.
그리고 강유에게 말한다.
"구덩이를 다 파고 곤장도 준비가 끝났소.
장수들을 모아놓고 지금 문초하면 어떻겠소?"
강유가 고개를 내젓고는 말한다.
"그자들은 틀렸소.
하나같이 복종할 마음이 없소.
그대로 두면 해가 될 것이니 차라리 이참에 죽여버리는 것이 낫소."
"음...... 그러는 것이 좋겠소.
백약에게 그 일을 부탁해도 되겠소?"
"분부만 내리시오."
강유가 무사들을 이끌고
장수들이 감금되어 있는 궁으로 향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가슴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그대로 땅에 쓰러지고 말았다.
강유는 좌우의 부축을 받고 몸을 일으키기는 했으나
온전히 정신이 돌아온 것은 반나절이나 지난 후였다.
정신을 차린 강유가 다시 궁으로 가려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군사들이 벌떼처럼 온갖 방향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강유가 말한다.
"이것은 틀림없이 갇혀 있는 장수들이 꾸민 일이오.
우선 그들의 목부터 쳐야 하오!"
강유의 말에 종회가 판단을 내릴 겨를도 없이
저쪽 군사들이 벌써 궁문 안으로 짓쳐들어오고 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마음이 급해진 종회는 바로 전각의 문을 닫게 하고
군사들을 전각 지붕으로 올려보냈다.
그리고 전각 기와를 집어 던져 싸우라고 명했다.
양쪽의 군사 모두 변변한 무기가 없는지라
서로가 기왓장을 집어들고 마구 던져댔다.
혼전 속에 순식간에 수십 명이 죽었다.
잠시후 궁 밖에서 불길이 솟구치더니
중무장한 감군 위관의 군사들이 전각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종회는 칼을 빼들고 몇 명을 쳐죽였다.
하지만 사방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날아드는 화살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한때 종회의 부하였던 장수들이 쓰러진 종회에게 우르르 달려들어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종회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종회의 목은 높은 장대에 매달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강유는 전각 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적을 무찌르며 나아가는데 그만 다시 가슴 통증이 강유를 덮쳐왔다.
타들어 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강유가 하늘을 향해 탄식한다.
"이것 또한 하늘의 뜻인가!"
강유는 적을 향하던 칼날을 자신에게 겨누고 스스로 목을 찔렀다.
한실 부흥의 마지막 한 줄기 희망은 강유의 자결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다.
그때 강유의 나이 쉰아홉이었다.
1. 한나라 장군 한신이 병권을 쥐었을 때 괴통이 유방을 저버리라고 한신에게 간하였으나,
한신은 이를 듣지 않았다가 끝내는 병권을 박탈당하고 간계에 속아 미앙궁에서 죽었다.
2. 문종과 범려는 전국시대 월나라의 공신. 둘은 월왕 구천을 섬겨 오를 정벌하였으나,
범려는 구천이 즐거움을 함께 누릴 수 없는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떠나면서
문종에게 함께 가기를 권했는데, 문종은 이를 거절하였다.
훗날 문종은 구천의 박해를 받아 자결했다.
3. 한나라의 공신 장량은 공은 이룬 뒤에 신선 적송자를 따라 은둔하여 화를 면했다.
417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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