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18)
적당한 때와 기회
오주 손휴(吳主 孫休)는
사마염(司馬炎)이 위(魏)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손휴는 머지않아 사마염이 오를 정벌할 것임을 직감했고,
그것에 대한 근심으로 병을 얻고 말았다.
병은 날로 깊어져서 손휴는
마침내 승상 복양흥(丞相 濮陽興)을 궁궐로 불러들여
태자 손완(孫?)으로 하여금 복양흥에게 절을 올리도록 했다.
손휴의 병세는 말로 탁고(託孤)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손으로 복양흥의 팔을 잡고 태자 손완을 가리키며 숨을 거두었다.
복양흥은 물러나와 태자 손완을 임금으로 세우는 일을 대신들과 상의했다.
좌전군 만욱(左典軍 萬彧)이 말한다.
"태자는 아직 너무 어려서 정사를 이끌기 어렵습니다.
오정후 손호(烏程侯 孫皓)를 세우는 것이 옳습니다."
좌장군 장포(左將軍 張布)도 만욱의 의견을 거든다.
"손호가 재능과 식견이 있고,
결단력이 있으니 제왕으로서 더 적합합니다."
승상 복양흥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황실 어르신의 의견을 듣고자 주태후(朱太后)를 찾아가 아뢰었다.
주태후가 말한다.
"한낱 과부의 몸으로 사직의 일을 어찌 알겠소?
경들이 잘 생각하여 추대하시오."
복양흥은 여러 대신들의 의견을 모아
마침내 손호를 임금으로 세웠다.
손호의 자는 원종(元宗)으로,
대제 손권(大帝 孫權)의 태자였던 손화(孫和)의 아들이다.
손호는 영안(永安) 7년(264)에
제위에 올라 원흥(元興) 원년으로 개원했다.
이듬해에는 다시 연호를 감로(甘露) 원년으로 고쳤다.
손호는 워낙에 천상이 포악스러웠는데
황위에 오르자 마자 주색을 가까이하였으며,
옆에서 달콤한 소리만 하는 중상시 잠혼(中常侍 岑昏만을 총애했다.
승상 복양흥과 좌장군 장포가 손호에게 여러 차례 간언을 올렸으나
손호는 그들의 말을 듣기는 커녕 오히려 역정을 내며
그 두 신하를 참수형에 처하고 삼족을 멸하기까지 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 본 조정의 대신들은
눈과 입을 닫아버리고 다시는 간언을 올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음해에 연호를 또 보정(寶鼎) 원년으로 고치고,
육개(陸凱)를 좌승상으로, 만욱(萬彧)을 우승상으로 삼았다.
두 승상에게 국정을 모두 맡긴 채
손호는 무창(武昌)에 행궁을 지어 놓고 그곳에서 지냈다.
양주(揚州) 백성들은 강물을 거슬러
황제에게 생활품을 공급하느라 고초를 겪었다.
손호의 사치와 향락은 끝이 없어 국고가 마르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보다못한 좌승상 육개가 손호에게 상소를 올렸다.
근래에는 재앙도 없는데
백성들이 죽어가고 국가재정은 바닥을 보이고 있으니
신은 통탄을 금치 못하겠사옵니다.
지난날 한(漢) 황실이 쇠락하여
삼국이 정족지세(鼎足之勢)를 이루다가,
이제 조(曹)씨와 유(劉)씨가 도를 잃어 진(晉)의 천하가 되었으니,
이는 틀림없이 무언가의 징조입니다.
어리석은 신은 그저 폐하를 위하고 나라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사옵니다.
무창은 토지가 척박하여 제왕이 도읍으로 삼을 곳이 못 되옵니다.
민가에서는 '차라리 건업의 물을 마시지, 무창의 고기는 안 먹겠다.
차라리 건업으로 돌아가서 죽지,
무창에서 살지 않겠다.'하는 동요가 떠돌 정도입니다.
항간에 떠도는 이런 노래야 말로 민심과 하늘의 뜻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지금 가진 양식으로는 한 해를 버티기 어려운 처지인데
관리들은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뜯어낼 뿐,
그들을 전혀 돌보고 있지 않사옵니다.
대제(大帝, 손권) 시절에는 궁에 궁녀가 일백 명이 넘지 않았는데,
경제(景帝, 손휴) 이래로 궁녀의 수가 일천을 넘으니,
이는 국가의 재정을 극심히 낭비하는 일이옵니다.
또 폐하 주변의 신하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나,
일부가 서로 무리를 지어 충신을 모함하고 어진 사람의 존재를 가리니,
이는 국가 정사를 해치고 백성들을 괴롭히는 일이옵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굽어살피시어
백성들에게 부과되는 부역과 세금을 줄이시고,
궁녀의 수를 줄이시며, 관리를 공정하게 뽑아주시옵소서.
그렇게 되면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백성들이 기뻐하며
폐하의 뜻에 따르니 자연히 나라에 평안이 올 것이옵니다.
손호는 육개의 간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켰다.
소명궁(昭明宮)을 지으면서 문무관원들에게까지 나무를 구해오라 지시했다.
어느날은 손호가 방술사(方術士) 상광(尙廣)을 불러다가 묻는다.
"천하가 어찌될 것인지 점을 쳐보아라."
상광은 뭔가를 헤아려보더니 대답한다.
"폐하,
점괘는 길조입니다.
경자년(庚子年)에 폐하께서 청개거(靑蓋車, 황제가 타는수레)를 타고
낙양에 입성하시는 모습이 보입니다."
손호는 크게 기뻐하면서
중서승 화핵(中書丞 華覈)에게 묻는다.
"선제께서 경의 말을 받아들여
장강 일대에 수백 개의 영채를 설치하고 노장 정봉에게 총독하게 하셨는데,
지금도 그것들이 남아있는가?"
"네. 그렇사옵니다."
"짐이 옛 한나라 땅을 병탄하여 촉주(蜀主)의 원수를 갚고자 하는데
어느 지역을 먼저 치는 것이 적당하겠는가?"
화핵이 대답한다.
"성도는 이미 함락된지 오래고 촉한의 사직(社稷)도 무너졌으니
사마염은 틀림없이 우리 오를 병탄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럴 때일수록 폐하께서는 안으로 덕정을 베풀어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시는 것이 우선이옵니다.
지금 같은 시기에 군사를 일으키는 것은
삼베옷을 입고 불을 끄려고 달려드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
제 몸만 태우게 될 것이옵니다. 폐하께서는 부디 굽어살피소서."
손호는 당장에 버럭 화를 낸다.
"짐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얻어
오랜 염원을 이루고자 하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리 불길한 소리만 하는 것인가!
그대가 오랜 신하인 까닭에 그냥 두는 것이다.
아니면 당장 참수형에 처하여 저자에 내걸었을 것이다!"
악담을 퍼부는 손호는
이어서 무사들을 호령하여 화핵을 궁문 밖으로 쫓아내게 했다.
화핵은 무사들에게 끌려가며 탄식을 한다.
"애석하다!
이 금수강산이 머지 않아 남의 것이 되겠구나!"
끌려나간 화핵은
인적 없는 산야에 파묻혀서 다시는 조정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손호는 양양(襄陽)부터 도모할 생각이었다.
그리하여 진동장군 육항(鎭東將軍 陸抗)으로 하여금
강구(江口)에 군사를 주둔하게 하고 기회를 살피도록 했다.
손호가 양양에 군대를 주둔시켰다는 소식은
진주(晉主) 사마염에게 빠르게 전해졌다.
사마염은 즉시 문무대신들을 소집하여 대비책을 상의했다.
가충이 나서서 말한다.
"신이 듣기로
오나라 군주 손호는 덕정을 베풀지 못하고
포악무도한 혼군이라 하옵니다.
폐하께서는 도독 양호(都督 羊祜)에게 조서를 내리셔서
군사를 이끌고 육항군을 막도록 하십시오.
오나라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그 기회에 공격하면 동오 평정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마냥 쉬울 것이옵니다."
사마염은 가충의 의견에 따라
바로 조서를 작성하여 양호에게 칙사를 보냈다.
양호는 조서를 받들어 군마를 정돈하여 적을 맞을 준비를 갖추었다.
양호가 군사를 양양성에 주둔시켜 지키는동안
병사들과 현지 백성들의 인심을 크게 얻었다.
양호는 진나라에 항복한 오나라 사람이
다시 오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면 그대로 돌려보내주었다.
그리고 국경을 지키는 병력을 대폭 줄이고
그들을 모두 간척사업에 투입하여 전답 팔백여 경(頃)을 개간하였다.
그 땅에 농사를 지으니 처음 양호가 부임했을 때에는
석 달치 군량밖에 없던 것이 그 이듬해에는 십 년치 양식이 쌓였다.
그리고 진중(陣中)에 지내면서도 갑옷과 투구를 쓰는 법 없이
가벼운 가죽옷을 입고 넓은 허리띠만 띠고 있었으며,
장막 앞을 지키는 호위병도 겨우 열 명 정도만 배치하였다.
하루는 부장(部將) 하나가 양호를 찾아와서 아뢴다.
"정탐꾼이 보고하기를 근래에 오군의 방비가 허술해졌다고 합니다.
지금 기습하면 반드시 크게 승리할 겁니다."
양호가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그대들이 육항을 우습게 보는 모양이군.
육항은 지모가 뛰어난 사람이다.
지난번에 육항이 서릉(西陵)을 기습했던 일을 모르는가?
우리 수비장 보천(步闡)과 그의 부하 장수 수십 명의 목이
육항의 손에 달아나는 동안 나는 그들을 구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런 뛰어난 인재가 적장이니 우리는 그저 단단히 지키다가
저쪽에서 내란이 일어나면 그때 공격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시세(時勢)도 살피지 않고 덤벼들었다가는 곧 패하고 말 것이다."
양호의 말을 들은 장수들은 그의 말에 감복하여
국경을 굳게 지키는 것에만 힘썼다.
어느날,
양호는 장수들을 이끌고 사냥을 나갔다.
공교롭게도 그날 오군 주장 육항도
사냥을 나와 있어 둘은 서로 마주쳤다.
양호가 부하 장수들에게 명한다.
"사냥을 하되, 절대 국경은 넘지 말라!"
양호의 명을 받은 장수들은 진나라 경계 안에서만 사냥을 하고,
오나라와의 경계를 침범하지 않았다.
육항이 멀찍이서 보며 감탄한다.
"양 장군 군대의 기율이 참으로 엄숙하구나.
진의 경계를 함부로 범해선 안 되겠다."
해가 기울자 두 장수는 사냥을 그만두고
각자의 본영으로 돌아갔다.
양호는 사냥해온 짐승들을 살펴보고
오군의 화살이 먼저 꽂힌 채로 국경을 넘어온 짐승들을 추려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은 인편으로 모조리 오나라 측에 돌려보냈다.
오군은 모두들 기뻐하며 이 일을 주장 육항에게 보고했다.
육항은 짐승들을 전달하러 온 양호의 군사를 불러들여 묻는다.
"너희 장군은 술을 좋아하시는가?"
"잘 익은 술이라면 즐겨 드십니다."
육항은 빙그레 웃더니 말한다.
"내게 오래 묵은 좋은 술이 있다.
그걸 가져다가 너희 장군께 드리도록 하라.
내가 손수 빚어 마시던 것인데 어제 사낭터에서의
정에 대한 보답이니 한 잔 맛을 보시라고 전하라."
양호의 군사가 술을 가지고 돌아가자 육항의 좌우 측근들이 육항에게 묻는다.
"적장에게 좋은 술을 선사하신 뜻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육항이 지체없이 대답한다.
"저쪽에서 내게 먼저 덕을 베풀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한편,
양호는 오나라에서 돌아온 군사가 들고 온
술동이를 앞에 두고 말한다.
"그도 내가 술을 즐기는 것을 잘 아는 모양이군."
그리고 곧장 술동이를 열어 술을 들이키려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부장 진원(部將 陳元)이
걱정하는 말을 하며 양호를 말린다.
"혹시 그 술에 독이라도 들었을지 모를 일입니다.
도독께서는 그 술을 드시지 마십시오."
술 잔을 들고 있던 양호가 미소를 짓더니 말한다.
"육항은 독을 쓸 사람이 아니다.
괜한 염려 말라."
그리고 그대로 술 잔을 기울여 술을 단숨에 마셨다.
이때부터 두 적장은 서로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물으며 교분을 나누었다.
육항이 양호에게 사람을 보내 안부를 묻는데,
양호 또한 사자에게 육항의 안부를 묻는다.
"육 장군도 평안히 잘 계신가?"
"최근 우리 장군께서는
병석에 누우셔서 며칠째 거동이 힘드십니다."
양호가 걱정하는 얼굴로 말한다.
"내가 아픈 것과 같구나.
여기 좋은 약이 있으니 가져가서 드시게 하라.
그리고 얼른 쾌차하시기를 바란다고 말씀 전하라."
사자가 약을 들고 돌아가 육항에게 바치며 양호의 말을 전했다.
육항 측근의 장수들이 육항에게 말한다.
"양호는 우리의 적입니다.
적장이 보낸 것이니 함부로 드시지 마십시오.
틀림없이 나쁜 뜻이 있을 것입니다."
육항이 고개를 젓더니 말한다.
"양숙자(羊叔子, 양호의 자) 같은 인물이
독살할 사람처럼 보이는가?
그대들은 의심하지 말라."
육항은 양호가 보내온 약을 그자리에서 먹었다.
이튿날 육항의 병은 언제 아팠냐는 듯이 깨끗하게 나았다.
부하 장수들은 기뻐하며 육항의 완쾌를 축하했다. 육항이 말한다.
"저쪽에서 덕으로 대하는데 내가 나쁜 마음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곧 싸우지 않고서도 저들이 우리를 굴복시키게 하는 것이다.
지금은 서로 경계를 지키기만 해야 할 때이니,
사소한 이익을 탐하여 허튼 일을 벌여서는 안 된다."
육항과 양호의 왕래를 보아온 장수들은 모두 육항의 명에 따랐다.
며칠 후,
육항에게 오주 손호의 칙명 사신이 찾아왔다.
육항은 칙사를 맞아들이며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칙사가 말한다.
"황제께서는 적이 먼저 공격해오기 전에
장군이 먼저 양양으로 진격하라 하셨습니다."
육항은 잠시 생각하더니 칙사에게 말한다.
"알았소.
그대는 돌아가시오.
내가 폐하께 곧 상소를 올리겠소."
칙사가 돌아가고
육항은 바로 상소문을 작성하여 건업으로 보냈다.
손호가 육항이 올린 상소를 펼쳐 읽는다.
아직은 적당한 때가 아닙니다.
진나라를 정벌할 형세가 무르익지 않았으니 잠시 기다리소서.
폐하께서는 무력을 앞세우지 마시고,
덕을 닦고 지나친 형벌을 삼가시어
우선 국내의 민심을 안정시키는 것에 전념하소서.
오주 손호는 상소문을 읽고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이런 건방진!
육항이 적장과 내통한다는 소문이 과연 사실인가보군!"
손호는 바로 육항의 병권(兵權)을 박탈하고
벼슬을 사마(司馬)로 깎았다.
육항의 자리에는 좌장군 손익(孫翼)을 앉혔다
신하들은 잘못 된 조처임을 알았지만
손호의 성미를 잘 아는 터라,
아무도 간언을 올리는 자가 없었다.
오주 손호는 또 연호를 건형(建衡) 원년(269)으로 고쳤다.
그리고 봉황(鳳凰) 원년(272)까지 모든 일을 제 마음대로 했다.
진나라를 치겠다며 오래도록
군사들을 변방에 주둔시키니 군사들의 불만은 높아져갔다.
보다 못한 승상 만욱과 장군 유평(留平),
대사농 누현(樓玄)이 용기를 내어
손호에게 직언을 올렸다가 모두 참형을 받고 죽었다.
손호가 즉위한 이래,
십여 년 간 임금에게 충언을 올렸다가
목숨을 잃은 충신이 마흔 명이 넘었다.
손호는 늘 철기군 오만으로 하여금 자신을 호위하게 하니
모든 신하들은 그 위세에 눌려 감히 간언을 올리지 못했다.
양호는 적장 육항이 파면되고
손호가 덕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제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양호는 표문을 적어 낙양의 진주 사마염에게 올려보냈다.
기회와 운세는 하늘이 내리는 것이라고 하오나,
공로와 업적은 반드시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옵니다.
오늘날 장강(長江)과 회하(淮河)가 험하다고는 하지만
촉한의 검각(劍閣)만큼은 아니옵고,
손호의 포악함은 유선보다 더하며,
오나라 백성들의 곤궁함은 지난날 촉의 백성보다 더욱 심합니다.
우리 대진(大晉)의 군사력은 어느 때보다도 강성해졌으니
부디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고 천하를 평정하시옵소서.
양호의 표문을 받아 본 사마염은
기뻐하며 즉시 군사를 일으키려고 했다.
그러자 가충, 순욱, 풍담, 세 사람이 사마염을 극구 말렸다.
사마염은 정벌하려는 마음을 접고 군사들을 출동시키지 않았다.
황제의 윤허가 떨어지지 않자 표문을 올렸던 양호는 탄식한다.
"천하에 쉽지 않은 일이 십중팔구인데,
하늘이 주신 그 하나의 기회를 받지 않으니 애석한 일이로다!"
함녕(咸寧) 4년(278)에 이르러 양호는 조정에 들어가서
고향으로 돌아가 병을 다스리겠다는 이유를 들어 사직할 뜻을 아뢰었다.
사마염은 서운해하며 양호에게 묻는다.
"경은 과인에게 나라를 편안히 할 계책을 알려주지 않겠소?"
양호가 대답한다.
"손호의 학정이 극에 달했으니,
지금은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습니다.
허나 손호가 죽고 우리로서는 불행하게도 어진 군주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날이면 폐하께서는 오를 얻기 어려워지실 것이옵니다."
사마염은 동오 공략을 재차 제안하는 양호의 말에 크게 깨닫는 바가 있었다.
사마염이 양호에게 말한다.
"이제라도 경이 군사를 이끌고 출정하면 어떻겠소?"
양호는 공손히 사양한다.
"신은 이제는 늙고 병들어 그런 중책을 감당하기 어렵사옵니다.
폐하께서 잘 살피시어 지략과 용맹이 있는 장수를 가려 뽑으십시오."
양호는 사마염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돌아갔다.
같은 해 11월, 양호의 병세가 위독해졌다.
사마염은 친히 양호의 집으로 문병을 갔다.
사마염이 양호의 병상 앞으로 다가가자 양호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신이 만 번을 죽어도
폐하께서 베푸신 은혜에 보답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
사마염 또한 눈물을 보이며 말한다.
"짐은 이제와서 경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구려.
경의 뜻을 이어 받을 만한 자가 있소?
있다면 말해주시오."
"비록 신은 이제 곧 죽겠으나
우둔한 충성심으로나마 감히 말씀드리옵니다.
제가 보기에는 우장군 두예(右將軍 杜預)가 그 일을 맡을만 하옵니다.
폐하께서 오를 정벌하시려거든 두예를 쓰시옵소서."
사마염이 양호에게 말한다.
"훌륭한 인재를 천거하는 것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오.
어째서 사직하던 날 그 사람을 천거하지 않았소?"
"벼슬길을 뒤로 하고 물러나는 마당에
새로운 사람을 천거하면 사사로운 정리(情理)에 이끌리는 법이옵니다.
그것은 충성심 있는 신하가 할 행동이 못 된다고 생각하였사옵니다."
사마염이 양호의 사려깊음에 마음 속으로 감탄하고 있는데,
양호의 숨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사마염은 양호의 죽음을 확인하고
그 자리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궁궐로 돌아온 사마염은 양호에게 태부 거평후(太夫 鉅平侯)의 작위를 추증했다.
남주(南州) 백성들은 양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온 거리의 가게 문을 모두 닫고 사흘 동안 통곡하며 애도했다.
강남 변방을 지키는 장수와 병사들도 모두 가족이 죽은 것처럼 슬피 울었다.
양양 사람들은
양호가 생전에 자주 유람다니던 현산(峴山)에 사당을 짓고
추모비를 세워 철마다 제사를 올렸다.
오가는 사람마다 추모비의 비문을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는지라,
후세 사람들은 그 추모비를 '타루비(墮淚碑)'라 이름 붙였다.
419회( 종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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