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 (419)
(마지막회) 삼국통일 - 1
진주 사마염(晉主 司馬炎)은 양호의 유언에 따라
두예(杜預)를 진남대장군 도독형주사(鎭南大將軍 都督荊州事)에 봉했다.
두예는 부지런하고 노련했으며, 학문을 좋아했다.
특히 좌구명(左丘明)의 춘추전(春秋傳)을 즐겨 읽어,
자리에 앉든지 눕든지 항상 손에서 춘추전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두예에게는 '좌전벽(左傳癖, 좌전에 미친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두예는 황제의 어명을 받들어 양양으로 가서 백성들을 돌보고
군사력을 양성하며 오 를 정벌할 준비에 매진했다.
그무렵,
오나라에서는 노장 정봉(丁奉)과 육항(陸抗)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오주 손호(吳主 孫皓)는 매일 술잔치를 벌여 놓고 즐기느라 여념이 없었다.
손호는 괴팍한 술자리 취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하들로 하여금 술을 진탕 마시게 해놓고는 잔치가 파하면
감주관(監酒官)에게 신하들의 술취한 실태를 낱낱이 고하게 하여
잘못이 있는 자의 얼굴 가죽을 벗기거나
눈알을 뽑아내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었다.
손호의 이러한 행태에 조정의 신하들 뿐만 아니라
나라의 백성들도 모두 공포에 떨었다.
진나라 익주 자사 왕준(益州 刺史 王濬)은
오나라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가 마침내 황제에게 상소 하나를 올렸다.
오주 손호의 황음무도하고 흉폭한 태도가
날이 갈 수록 심해지고 있사옵니다.
속히 오를 정벌하소서.
혹여 손호가 죽고 다시 어진 임금이 옹립하면
동오의 기강이 단단해져서 깨치기 어려워 질 것이옵니다.
게다가 신이 함선을 만든지 벌써 칠 년째라 날이 갈 수록 함선이 낡고 있습니다.
또, 신의 나이도 이제는 칠십이라 언제 죽을지 앞날을 알기 어렵사옵니다.
지금을 놓치면 언제 또 기회가 올지 알 수 없사옵니다.
부디 폐하께서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지 마소서.
진주는 상소를 읽고는
동오 정벌에 관해 상의하기 위해 신하들을 소집했다.
진주가 말한다.
"왕공이 올린 상소 내용이 바로 양호 도독의 뜻과 같소.
짐은 이미 뜻을 정했소."
시중 왕혼(王渾)이 나서서 아뢴다.
"신이 듣자하니 손호가 우리와 맞서기 위해
군사들의 기세를 바짝 올리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 하옵니다.
제 풀에 지치도록 일 년만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동오를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경의 말도 타당하군."
진주는 중신들의 의견을 따라서
동오 정벌을 일년 후로 미루기로 했다.
진주가 비서승 장화(秘書丞 張華)와 더불어 심심풀이로 바둑을 두고 있는데,
두예로부터 표문이 올라왔다는 신하의 보고가 들어왔다.
진주는 바둑판을 앞에 둔 채 두예가 올린 표문을 펼쳤다.
지난날 양호 장군은 동오 정벌 계획을
조정의 신하들과 두루 의논하지 않고 폐하께 은밀하게 아뢴 까닭에
조정 신하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아옵니다.
일을 도모함에 있어 이해 관계는 마땅히 따져야 하는 것이온데,
이번 거사에 이로움을 얻기란 십중팔구이고,
혹여라도 얻을 해로움이라고 해봐야 공을 세우지 못한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지난 가을부터 오를 정벌하려는 우리의 계획이 이미 적에게 노출되었으니,
만일 계획을 중단하면 손호에게 준비할 시간만 주는 꼴이 될 것이옵니다.
손호는 일 년의 시간동안 도읍을 무창(武昌)으로 옮기고,
강남의 모든 성곽을 수리하여 백성들을 그곳에 살게 할 가능성이 아주 크옵니다.
그렇게 되면 적은 난공불락이 될 것이며,
들판에서 식량을 약탈할 수도 없게 되온즉,
결국 우리로서는 때를 놓치게 되는 것이옵니다.
진주가 표문 읽기를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비서승 장화가
바둑판 위의 바둑돌을 손으로 쓸어버리더니
두 손을 모으고 아뢴다.
"폐하께서는 성스럽고 용감하시며,
나라는 윤택하고 군사는 강하옵니다.
그에 비해 오주(吳主)는 음탕하고 포악하여
백성들이 어려움에 처해있고 나라 상황은 피폐합니다.
지금 오를 치면 큰 힘을 들이지 않고 평정할 수 있사오니
폐하께서는 주저하지 마시옵소서."
진주가 결심을 확고히 하고 말한다.
"지금 경의 말은
이해득실을 잘 살펴서 한 말이니 짐이 무얼 주저하겠는가?"
진주는 즉시 대전으로 나가서 오를 정벌하라는 명을 내렸다.
진남대장군 두예를 대도독(大都督)으로 삼아
십만 대군을 이끌고 강릉(江陵)으로 나아가게 했다.
진동대장군 낭야왕 사마주(鎭東大將軍 瑯琊王 司馬伷)는
오만 군사로 도중(涂中)으로 진격하고,
정동대장군 왕혼(征東大將軍 王渾)은
오만 군사로 횡강(橫江)으로 진격하고,
건위장군 왕융(建威將軍 王戎)은
오만 군사로 무창으로 진격하고,
평남장군 호분(平南將軍 胡奮)은
오만 군사로 하구(夏口)로 진격하도록 했다.
그리고 모든 장수들은 두예의 지휘에 따르도록 했다.
또, 용양장군 왕준(龍驤將軍 王濬)과 광무장군 당빈(廣武將軍 唐彬)에게는
수륙군 이십만 명, 전함 수만 척을 이끌고
장강 하류를 따라 동쪽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관군장군 양제(冠軍將軍 楊濟)에게는
양양에 머물며 여러 갈래의 군마를 통제하도록 했다.
진나라가 대대적으로 군사를 움직이자
그 소식은 금세 동오에 알려졌다.
깜짝 놀란 오주 손호는 승상 장제(丞相 張悌)와 사도 하식(司徒 何植),
사공 등수(司空 騰修)를 불러모아 적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했다.
장제가 오주에게 아뢴다.
"거기장군 오연(車騎將軍 伍延)을 도독으로 삼아
강릉으로 진격하여 두예를 막게 하시고,
표기장군 손흠(驃騎將軍 孫歆)에게 하구를 비롯한
각 방면의 적군을 막게 하십시오.
신은 좌장군 심영(左將軍 沈瑩), 우장군 제갈정(右將軍 諸葛靚)과 더불어
십만 군사를 이끌고 우저(牛渚)로 나아가서
여러 방면의 군사들을 지원하겠사옵니다."
손호는 장제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장제를 위시하여 여러 장수들이 각 방면으로 떠나고,
손호가 후궁으로 들어가는데 그 표정에 근심이 떠올랐다.
중상시 잠혼이 손호에게 묻는다.
"폐하,
어찌하여 용안에 근심이 가득하시옵니까?"
"진의 대군이 쳐들어오다고 하여
각 방면으로 군사를 보내긴 하였으나......
장강을 따라 내려오는 왕준의 전함 수와
군사 수가 많고 그 예기 또한 날카롭다고 하니 걱정이로다."
"신에게 계책이 있사오니 염려 마시옵소서.
왕준의 배쯤이야 산산조각 낼 수 있사옵니다."
손준이 눈을 한 번 크게 반짝 뜨며 잠혼에게 묻는다.
"계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 강남에는 철이 많이 나옵니다.
그 철을 이용하여 길이가 수백 장 되는 쇠사슬을 수백 개 만들되,
각 고리의 무게는 이삼십 근 정도로합니다.
그 쇠사슬을 장강 연안의 중요한 길목마다 가로질러 깔아놓으십시오.
그리고 길이가 일 장 정도 되는 송곳을 수만 개를 만들어
물 속에 설치하십시오.
전선이 바람을 타고 내려오다가
송곳과 부딪히면 배는 침몰하게 될 것이옵니다.
게다가 쇠사슬이 곳곳을 막고 있으니
저들이 무슨 재주로 강을 건너겠습니까?"
"놀라운 계책이로군. 당장 시행하시오."
손호의 명에 따라 즉시 도성 안의 모든 대장장이들이 소집되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쇠사슬과 송곳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며칠 후,
장강의 요해처에는 무수한 송곳과 쇠사슬이 설치되었다.
한편,
진나라 도독 두예는 군사들을 이끌고 강릉으로 진출했다.
그리고 아장 주지(牙將 周旨)에게 수군 팔백 명과 작은 배를 주고
은밀히 장강을 건너 낙향(樂鄕) 땅을 야습하도록 명했다.
주지가 출격하기 전, 두예가 주지를 불러다가 작전을 일러둔다.
"낙향을 점령하면 파산(巴山)에 매복하라.
숲 속에 깃발을 많이 꽂아두고,
낮에는 포를 쏘면서 북을 치고,
밤에는 여러 곳에 횟불을 올려 적의 이목을 흐트려라."
이튿날,
두예는 본대를 이끌고 수륙 양면으로 동시에 나아갔다.
두예가 길을 재촉하는데 앞서 갔던 정탐꾼이 달려와 급보를 전한다.
"적이 세 방면으로 오고 있습니다.
오연은 육로, 육경(陸景)은 수로,
그리고 선봉장 손흠군의 선단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두예는 결전의 의지를 다지며 계속 진군해나갔다.
손흠은 이미 당도하여 싸울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양쪽 군사들이 처음으로 싸움에 붙으려는데,
돌연 두예가 후퇴명령을 내렸다.
손흠은 얼른 연안으로 상륙하여
군사들을 이끌고 두예의 뒤를 쫓았다.
오군이 두예군을 정신없이 추격하는데
갑자기 포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리더니
사방에서 진군(晉軍)이 쏟아져나왔다.
당황한 오군들은 급히 퇴각했다.
손흠군에게 쫓기던 두예군이
이번에는 손흠군을 뒤쫓기 시작했다.
힘의 흐름이 바뀐 틈을 타서 두예가
군사들을 휘몰아 오군을 마구 무찔렀다.
이때 죽은 오군의 수는 셀 수가 없었다.
오군 선봉 손흠은 더이상 대적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성까지 부리나케 도망쳤다.
패잔병들이 성 안으로 진입하는데,
주지의 군사 팔 백이 성 앞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여
패잔병에 몰래 섞여 들어갔다.
그리고 해가 저물고 사위가 고요해진 시각, 성벽 위에 횃불이 높이 올랐다.
패잔병에 섞여서 잠입했던 주지의 군사들이 올린 횃불이었다.
횃불을 보고 손흠이 놀라서 외친다.
"적군은 날개라도 있는 것인가!
어떻게 강을 건너 성 안까지 온 것인가!"
손흠이 황급히 퇴각하려는데
주지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주지는 손흠을 단칼에 베어 버렸다.
그 모습을 목격한 오군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달아났다.
전함에 있던 육경은 강남 연안에서 불길이 치솟고
파산 위에 '진남장군 두예'라고 적힌 깃발이 펄럭이는 것을 보았다.
사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육경은 얼른 배에서 내려 뭍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뭍에 발을 내린 순간 진의 장수 장상(張尙)이 나타나서 육경의 목을 쳤다.
오군 주장 도독 오연은 각 처의 군사들이 모두 대패한 것을 알고
성을 포기하고 달아나다가 진의 복병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오연은 결박된 채로 두예 앞으로 끌려갔다.
두예는 오연을 흘낏 보더니 말한다.
"이런 놈은 살려둬봤자 쓸모가 없다.
목을 베어라!"
두예는 어렵지 않게 강릉을 점령했다.
강릉이 함락되자, 원수(沅水), 상강(湘江) 일대와 광주(廣州)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의 수령들은 진나라 군이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전부 성문을 열고 나와 인(印)을 바치며 항복해왔다.
두예는 점령지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군사들로 하여금 노략질을 절대로 하지 않도록 명했다.
두예의 계속되는 진격에 무창성 역시 싸움이 일어나기 전에 자진하여 항복했다.
기세를 크게 떨친 두예는
드디어 오나라의 도읍 건업(建業)을 칠 마음을 먹었다.
장수들을 소집하여 건업을 공략할 계책을 상의했다.
호분이 말한다.
"백 년이나 대적해온 적을 일시에 손에 넣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는 봄물이 불어나서 오래 머물기도 어려운 형편이니
내년 봄을 기약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건업 정벌을 미루자는 호분의 의견에 두예가 답한다.
"지난날 악의(樂毅, 연나라 장수)는
제수(濟水) 서쪽 지역에서 결전을 벌여 강성한 제나라를 억눌렀다.
지금 우리 군사의 위세가 하늘 높은 줄을 모르니
지금처럼만 나아가면 적은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우리가 크게 힘을 쓸 것도 없다."
두예는 여러 장수들에게 격문을 보내
건업 정벌의 뜻을 밝히고 일제히 건업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이때 용양장군 왕준은 강물의 흐름을 따라서 하류로 내려오고 있었다.
전방에서 앞서가던 배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오나라에서
쇠사슬과 쇠송곳을 만들어 강에 설치해놓았습니다."
왕준은 크게 소리내어 웃었다.
"그까짓 것으로 나를 막겠다는 것인가?
가소롭군.
혼쭐을 내줘야겠어. 하하하하!"
즉시 군사들로 하여금 뗏목 수십 개를 만들게 했다.
그리고 뗏목 위에 갑옷을 입히고 무기를 든 허수아비를 세워서
송곳과 쇠사슬이 있다는 곳으로 흘려보냈다.
오군 장병들은 멀리서 허수아비를 보고
진짜 사람인 줄 알고 그대로 달아났다.
오나라에서 깔아놓은 송곳은 뗏목에 걸려 모조리 뽑혔고,
또 다른 뗏목에 기름을 붓고 불을 올리자
불 올린 뗏목과 닿은 쇠사슬은 녹아내려 끊어졌다.
진의 수군들은 두 갈래로 나뉘어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다.
동오의 승상 장제는 좌장군 심영과
우장군 제갈정에게 명을 내려 진군을 맞아 싸우도록 했다.
하지만 대세는 이미 진나라로 향하고 있었다. 심영이 제갈정에게 말한다.
"상류에서 적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적군이 반드시 여기까지 올 것이오.
승리를 거두면 다행히 강남을 안정시킬 수 있겠지만,
혹시라도 패한다면 만사는 끝장이오."
"공의 말씀이 맞소."
둘의 대화가 계속되는데 급보가 들어왔다.
진군이 강을 따라 내려오는데 그 기세를 감당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심영과 제갈정은 급히 장제에게 달려갔다. 제갈정이 장제에게 말한다.
"승상,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달아나지 않고 앉아서 죽어야 하는 것입니까?"
장제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오나라에 망국의 기운이 들어찬 것은
똑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아는 바이오.
그렇다고 국난 중에 목숨을 던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이
임금과 신하가 모조리 항복하고 만다면 그 또한 치욕이 아니겠소?"
장제의 말을 듣고 제갈정은 눈물을 흘리며 떠나갔다.
군사들 대부분도 전의를 상실하여 진영을 버리고 흩어졌다.
장제와 심영은 얼마남지 않은 군사들을 이끌고
적과의 마지막 싸움을 위해 나섰다.
얼마가지 않아 오군은 진군에게 둘러싸였다.
포위망이 점점 좁혀지는 가운데 주지가 달려나와 장제와 맞섰다.
장제는 창과 칼이 모두 꺾이도록 분투했지만
진군의 힘을 당하지 못하고 싸움터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영은 주지의 칼에 목숨을 잃었고, 오군 병사들은 흩어져서 달아났다.
진나라 군사는 우저를 점령하고 오나라 경계까지 침투했다.
왕준은 이 소식을 낙양에 보고했다.
진주 사마염은 소식을 듣고 크게 기뻐했다.
옆에 있던 가충이 아뢴다.
"우리 군사가 땅과 물이
낯선 외지에서 오랫동안 고생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병에 시달리면 사기가 저하될 수 있으니
이제는 군사들을 거두시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가충의 말을 듣고 장화가 말한다.
"우리 대군이 이미 적 깊숙이 들어가서 오나라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고,
손호를 잡을 날이 머지 않았는데 군사를 거두는 것은 안 될 일이옵니다.
이대로 군사를 물리면 지금까지의 공로가 수포로 돌아가게 될텐데,
그렇다면 애석함을 금할 길이 없겠사옵니다."
진주가 끼어들 새가 없이 가충이 장화를 나무란다.
"그대는 하늘이 우리를 돕는 시기가 지금 와 있는 것인지,
땅의 형세로 얻을 수 있는 이로움이 있는 것인지
판단할 줄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망령되어
공훈만을 탐내어 군사들을 괴롭히려 하는 것이오?
그대가 자진하여 목을 내놓는다하여도
그 죄를 다 용서받지 못할 것이오!"
진주는 가충을 저지하며 말한다.
"오나라를 깨치려하는 것은 곧 짐의 뜻이오.
장화는 단지 짐의 뜻과 함께하는 것이니 경들은 말다툼을 그만 두시오."
이때 두예의 표문이 올라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두예의 표문 역시 서둘러 진군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진주는 두예의 표문으로 더욱 결심을 굳혔다.
그리하여 전장에 나가 있는 군사들에게 끝까지 진격하여
오나라 정벌을 완수하라는 명을 내렸다.
왕준과 두예 등이 진군하는 곳마다 그 기세가 거침이 없어서
오나라 사람들은 적군의 깃발만 보고도 성문을 활짝 열어 스스로 항복해왔다.
오주 손호는 그런 상황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신하들이 손호에게 묻는다.
"북쪽에서 온 군사들이 하루가 다르게 건업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데
강남의 군사와 백성들은 적과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손호가 어두운 낯빛을 하더니
도리어 신하들에게 되묻는다.
"어찌하여 싸우지 않는 것인가?"
손호의 물음에 모든 신하들이 한결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오늘날 이런 화가 닥친 것은 모두 중상시 잠혼 때문이옵니다.
청컨대 폐하께서 잠혼에게 극형을 내리십시오.
저희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나가서 적과 싸우겠습니다."
손호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말한다.
"하찮은 환관 따위가 무슨 재주로 나라를 망칠 수 있겠는가?"
모든 대신들이 입을 모아 아뢴다.
"폐하께서는 촉나라의 황호를 못 보셨습니까?"
마침내 대신들은 오주의 명을 받지도 않은 채
잠혼을 붙잡아다가 갈갈이 베어 죽이고 그 살을 씹어 삼켰다.
끔찍한 처결이 끝나고 도준(陶濬)이 손호에게 아뢴다.
"신이 가진 전선은 규모가 모두 작사옵니다.
군사 이만과 큰 배만 있다면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손호는 즉시 어림군을 도준에게 내주며
상류에서 적을 막도록 했다.
그리고 전장군 장상(前將軍 張象)에게는 수군을 이끌고 나가 싸우도록 했다.
두 장수가 각기 군사들을 이끌고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서북풍이 크게 일더니 배 안에 세워두었던 기치가 우수수 쓰러졌다.
불길한 징조였다.
오군 병사들은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배에서 내려 도망쳤다.
그러고나자 장상에게 남은 병사는 겨우 십여 명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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