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안동풍수기행(하회마을 3) 강의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2. 10. 7. 17:46

안동풍수기행(하회마을 3) 강의를 다녀와서

 

찬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를 하루 앞두고

가을비가 오락가락 하는 2022년 10월 7일 14:00 

옥동 제주복어에서 점심을 먹고 사)한국음양지리학회의

안동풍수기행(돌혈의 땅과 인물) 강의에 참석을 하였다.

 

지난번에 이어 하회마을의 풍수에 대한 강의로

하회는 절지(絶地)로 피난지나 은둔지로서는 알맞지만

생활공간으로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풍산류씨가 입향하면서

'허씨터전에, 안씨문전에, 류씨배판(杯盤)'이라는 설화를 남겼으며

 

하회마을이

강가이나 수해를 입지 않은 것은 부용대와 화천의 절묘한 물길 때문이고

그 강가의 언덕이 풍수학적으로 돌혈(突穴)의 명당이기 때문이라 하며

좋은 터를 잡은 덕분에 훌륭한 인물(겸암 류운룡, 서애 류성룡)이 나왔고

선행~명당획득~명당발복을 받는다는 풍수의 설화가 생겨났다고 한다.

 

 화산중턱에서 시작한 허씨와 안씨는 정착을 실패하였고

뱃머리에 터를 잡은 류씨에 이르러 그땅의 소응(昭應)이 꽃을 피워

하회를 행주형(行舟形)이라 하고 '우물을 파지 말라'는 설화도 전하고 있으며

동쪽의 화산, 서쪽의 서애, 남쪽의 남산, 북쪽의 부용대가 꽃잎을 이루고

하회마을이 화심(花心)을 이루는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으로

'돌혈은 바람을 꺼리므로 사방에서 산이 감싸주어야 한다'는

조건도 갖추었다다고 한다.

 

또 풍수에서도 이상향(理想鄕)으로

동쪽 목성, 서쪽 금성, 남쪽 화성, 북쪽 수성의 산이 호위하는 중앙에 토성이

좌정하여 오성이 상생기운을 일으켜 만물창조의 조화를 이루는 곳을 말하며

 

하회는 동쪽 화산, 서쪽 서애, 남뽁 남산, 북쪽 부용대를 의인화 하여

네명의 신선이  하회를 바둑판 삼아 바둑을 두고 있는 형상으로 표현하여

사선기국형(四仙碁局形)이라 하기도 한다.

 

하회마을의 혈처는

삼신당(三神堂)이고 혈처의 주인은 '나무(神木)'라 하며

명당의 혈처는 인간이 거주하는 공간이 아니고 신의 자리이자

죽은자들의 영면처이며 산 사람은 혈처에 기대어 살아야 하고

명당의 주인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하회마을의 주요 건물로

양진당(養眞堂)은 하회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전서공(류종해)이

처음 자리잡은 곳에  마늘봉(蒜峰)을 안대(案對)로 남향으로 지어졌고

충효당(忠孝堂)은 서애선생의 종택으로 양진당과 이웃에 자리한 것은

형제의 우애와 관련된 것으로 보이고 양진당의 안대를 막지 않기 위해

서애(西厓)와 원지산을 안대로 삼아 서향으로 지어 졌을 것이며

북촌댁(北村宅)은 양진당과 충효당이 당초에 규모가 작게 지어졌으나

시간이 지나며 부속건물이 늘어 규모가 커졌으므로 처음부터 크게 지어졌고

화천을 향하면 부용대와 너무 가까워서 화산을 향하여 동향으로 지어졌으며

원지정사(遠志精舍)의 연좌루(燕坐樓)는 부용대 절벽이 주는

위압감을 벗어나 능압에 걸리지 않기 위해 누각으로 높게 세웠으며

남촌댁(南村宅)은 우람한 저택이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고

속세와 차단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기도 하다며

마을의 건물들을 소개하였다.

 

이완규 선생님은

세차례에 걸쳐 하회마을의 풍수에 대한 설명을 하시며

하회마을에 대한 모든 것들을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 주었으며

하회마을이 조상들이 살았던 곳이자 내가 살고 있는 곳인 동시에

우리 자손들이 다음 생을 살아갈 수 있는 터전으로 가듭나기를 바라며

안상학 시인의 하회청풍(河回淸風) 시를 읖으며 강의를 마쳤다.

 

하회마을에 대한 강의를 하여주신 강사님께 감사드리며

오늘 강의를 함께하여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