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

겸재와 겸재 조정 루정강좌를 다녀와서

오토산 2022. 10. 20. 05:49

겸재와 겸재 조정 루정강좌를 다녀와서

 

1582년 율리우스력에서 글레고리력으로 바꾸면서

그레고리력의 첫날이 되었던 10월 15일 15:00

체육의 날이자 문화의 날이기도 하는 날 오늘

안동청년유도회가 주최하는 제82회 누정강좌가

도산면에 있는 다래마을 겸재(謙齋)에서 있었다.

 

다래마을에 들르니 월천서당 앞 공원에서는 

아토앙상불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하고 있었고

우리는 월천서당 앞에 새로이 복원하여 10월 17일

낙성식을 가지는 월천선생구택(月川先生舊宅)을 돌아보고

월천서당 북편 능선에 있는 겸재謙齋)를 찾아갔다.

 

누정강좌위원장님의 사회로 진행된 강좌는

12대손 조병득님이 다래마을의 유래에 대한 소개가 있었고

남상철 회장님과 조병선 문중대표님이 인사가 있었으며

이어서 박동일 한국국학진흥원전임연구원의

'겸재(謙齋)와 겸재(謙齋) 조정(趙禎)'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다.

 

다래마을은

원숭이와 토끼들이 떼를 지어 다닌다 하여

'솔내(率乃)'라 불리는 인적이 없는 숲이었는데

부포에 살던 권수익(權受益 1452~1544)선생이

마을을 개척하여 다래(月川)이라 하였고

조정선생의 부친인 조대춘(趙大春 1487~1573)선생이

권수익선생의 따님과 결혼하여 처향으로 이거하여 살았으며

둘째아들 조목(趙穆 1524~1606)이 월천(月川)이라 자호하였다.

 

횡성조씨는 겸재의 19대조인 횡성군(橫成君) 조익(趙翌)을 시조로 

13대조 조영인, 12대조 조승, 11대조 조계순 3대에 융성기를 이루었고

5대조 조온보(趙溫寶)가 문경으로 이주하여 영남에 횡성조씨 문호를 열어

이들 조장(趙璋)이 손경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처향인 금당실로 이거하였으며

부친 조대춘이 4세에 부모를 모두 잃고 외가인 영주에 살다가

권수익의 따님과 혼인하여 처향인 이곳으로 이거하여 살면서

안동권씨와 혼인하여 조숙, 조목과 딸 셋을 낳았고

뒤에 예천권씨와 혼인하여 조호, 조정을 두었다.

 

겸재(謙齋)는

 임진왜란때 의사(義士)로 활동했던 겸재(謙齋) 조정(趙禎 1551~1633)선생의 서재로

조카 조석붕(趙錫朋 1585~1657)이 계부 조정을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문집이 전하지 않고 20세기 이전 건물에 대한 기록도

향산 이만도(1842~1910)선생의 『겸재기』가 유일하며

1976년 정리한 『겸재선생실록』과 구전에 의하면

 처음에는 월천서당 곁에 있었다가 화재로 모든 것이 불탓고

1926년 장인, 상인, 수인 세 후손이 동천(東川)가에 3칸으로 개건하였고

1976년 안동댐 건설에 의한 이건과 2005년 중건하였던 것으로 전한다.

 

조정선생의 호 겸재(謙齋)

월천선생이 지어준 아호로 주역의 『지산겸괘』에서 취한 것으로

훌륭한 자질을 갖춘 군자가 스스로를 낮추는 겸양의 미덕을 읽어 낸 듯하고

선생은 사람들을 너그럽게 대하고 면전에서 꾸짖거나 허물하는 일이 없었으며

법도에 맞게 자신을 단속하고 언행은 겸손하여 선행을 자랑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임진왜란(1592)때는 월천선생의 명으로 의병활동에 참여하였고

정유재란(1597)때는 숙형 조호와 수봉, 석봉 두 조카와

예안의병들과 화왕산성 전투에 참가하였고

월천선생이 쓴 왜변일기(倭變日記)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발표자 박동일 전임연구원은

조정선생에 대한 기록과 겸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으며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며 발표를 마쳤다

 

오늘의 루정강좌를 주최하신 안동청년유도회에 감사를 드리고

발표를 하여주신 박동일 전임연구원님에게도 감사를 드리며

함께 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안동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운잡방 종가음식체험관 옆에 있는 <하루목공예>에 들려

뛰어난 목공예솜씨와 아름답게 꾸며놓은 조경솜씨를 구경하며

훌륭한 장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