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경복궁(교태전)의 좌우명

오토산 2023. 3. 18. 06:04

 

                                                                 ● 불원재 유교문화해설 (104)
                                                                      경복궁(교태전)의 좌우명
 
○ 임금이 거처하는 궁궐을 ‘아홉겹 문이 있는 깊숙한 곳’이란 의미로 구중궁궐(九重宮闕)이라고 한다.
9(九)라는 수(數)는 기본수의 가장 많은 수(數)이자 높은 수로 겹겹의 많은 문을 거쳐 들어가야
그 곳에 가장 높은 분 임금을 만날 수 있다는 뜻도 있다.
 
경복궁내 궁궐의 명칭은 대부분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것으로 유학의 핵심사상이 담겨 있으며,
그 용도에 따라 건물의 이름이 있다. 왕과 왕비가 거처하는 전(殿)이 12곳, 궁(宮)이 2곳, 합(閤)이 3곳. 각(閣)이 4곳,
전각의 부속건물인 당(堂)이 30개소, 재(齋)가 3곳, 헌(軒)이 1곳, 루(樓)가 7곳, 정(亭)이 3개소, 다리(橋)가 1곳,
못(池)이 4곳, 창고(庫)가 10곳이며, 문(門)이 무려 77개소나 있다.
 
경복궁(景福宮)의 남쪽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을 들어가면 중심축에 있는 문이 흥례문(興禮門)이며
흥례문을 들어서면 북한산에서 경회루를 거쳐 내려오는 개천을 건너는 영제교(永濟橋)가 있다.
영제교를 지나 근정문(勤政門)을 들어가면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백관들이 도열하던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勤政殿)이 있다.
근정전을 지나 사정문(思政門을 들어가면 임금이 평소에 집무를 보던 사정전(思政殿)이 있다.
왕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 편전(便殿)이라 하기도 하고 어전회의(御前會議)나
학자들의 강의와 자문을 듣던 경연(經筵)이 있던 곳이다.
 
임금의 집무실인 사정전을 지나 향오문(嚮五門)을 들어가면 임금의 사생활 공간으로
주로 왕과 왕비, 가족과 비빈, 궁녀, 내시등 임금의 가족과 임금을 모시던 궁인 식솔들이 기거하는 공간이다.
 
강녕전(康寧殿)은 임금의 침전이자 처소이며
교태전(交泰殿)은 궁내의 모든 살림을 주간하던 왕비의 생활공간이자
왕가의 비빈(妃嬪)과 궁인들과 왕실 자녀들의 사생활공간이 있고 자녀를 생산하는 신성한 산실(産室)이 있다.
강령전 뒤편에는 후원이 있고 동쪽에는 주방인 소주방(燒廚房)이 있고 서쪽에는 연회장인 경회루가 있다.
강령전의 동쪽은 세자의 영역인 동궁(東宮)과 대비의 생활공간인 자경전(慈慶殿)과 종친(宗親)들의 영역이고
서쪽은 임금과 신하가 만나는 영역인 경회루, 집현전 그리고 궐내각사(闕內各司)가 자리 잡고 있다.
 
○ 왕은 온 백성들을 말 몰이 하듯 잘 다스려 행복하고 태평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주역으로서
예로부터 왕권의 상징을 하늘을 날아 풍운조화(風雲造化)를 부린다는 상상의 동물인 용(龍)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래서 임금이 거처하는 모든 공간에는 용장식이 있고 왕권의 상징 깃발을 용기(龍旗)로 하여
임금이 앉는 자리를 용상(龍床), 임금의 얼굴을 용안(龍顔), 임금의 덕성을 용덕(龍德), 임금의 가마를 용거(龍車),
용가(龍駕), 임금의 옷을 용포(龍袍)라 하고 가슴과 등, 어깨에는 용을 수 놓은 자수(刺繡)판인 보(黼)를 부착하여
권위를 세웠는데 왕과 왕비는 오조룡(五爪龍), 왕세자와 세자빈은 사조룡(四爪龍),
왕세손과 세손빈은 삼조룡(三爪龍)의 보를 사용하였다.
 
중국황제는 용포에 용의 발톱이 7개인 7조룡을 수 놓고 제후들은 오조룡(五爪龍)을 수 놓는다고 하기도 하고,
황제는 주역의 건괘(乾卦) 구오효의 비룡재천(飛龍在天)의 의미에서 5조룡을 사용하고
제후국과 조선은 4조룡, 일본은 3조룡을 취했다는 말도 있다,
우리나라는 조선초 태조와 영조, 고종임금은 자주적인 사상으로 5조룡의 용포를 입었고
그 외의 임금은 중화사상에 의거 하여 4조룡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건축 구조에 있어서도 임금이 거처하는 전각에는 지붕의 제일 꼭대기에 용마루(宗)장식을 하지만
왕비의 처소에는 곤도(坤道) 손순(遜順)의 의미에서 용마루가 없다.
 
○ 『주역』은 64괘 384효로 우주만상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하늘과 땅 사이 만물이 생멸, 변화하듯 건,곤괘를 두 기둥으로 하여
그 사이에 만사 만물의 변화 이치를 포괄하고 있다.
 
《건괘》(乾卦)는 자강불식(自彊不息)하는 하늘의 운행이요,
남성이며 양(陽)의 변화 현상을 건(乾)이라 하고 용에 비유하고 있다.
용이란 동물은 물속에서 자란 이무기가 점점 커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키워 용이 되어 하늘을 날아 다니며,
구름을 몰고 비를 오게 하는 조화를 부리는 용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군자가 학문을 닦아 인간완성이 되는 과정, 왕세자가 어릴때부터 학문과 행실을 닦아 덕망을 키우고
끝내는 군주가 되어 태평한 세상을 만들고 후대 군주에게 왕권을 물려주는 나아감과 물러남의 과정을
《건괘》는 설명하고 있다.
 
《건괘》의 도가 변화 성장해 가는 과정을 여섯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을 육효(六爻)라고 한다.
첫단계 초구는 아직 물에 사는 잠룡(潛龍)으로 쓰임이 되지 않는 단계
다음은 구이로 이제 가정에서 세상밖으로 나와보는 현룡(見龍)의 단계
다음은 구삼으로 사회에 쓰임이 되는 인재가 되기 위하여 열심히 능력을 키워가는 단계
다음은 구사로 폭포를 뛰어 올라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는 약룡(躍龍)의 단계
다음은 구오로 하늘을 날아 자신의 이상을 펼쳐보는 비룡(飛龍)의 단계
마지막은 상구로 하늘 끝까지 올라서 물러나는 항룡(亢龍)으로 설명하고 있다.
 
《곤괘》(坤卦)는 두터운 덕성으로 세상만물을 포용하고 있는 대지(地)의 운행이요,
여성이며 음(陰)의 변화를 곤(坤)으로 설명하고 유순한 암말(牝馬)에 비유하고 있다.
 
○ 경복궁의 궁궐 명칭중에 교태전(交泰殿) 내의 건물과 출입문에는
유독 『주역』 ‘곤괘’와 ‘태괘’의 의미를 취하여 이름을 지었다.
 
- 양의문(兩儀門)은 교태전의 출입문으로 이는 『주역』 《계사전》에서 세상만물이 생겨나는 이치를 설명하기를
‘태극에서 음양으로 분화되어 음양과 오행의 교합으로 만물이 생겨난다’고 하는
‘역유태극 시생양의(是生兩儀)’에서 취하여 ‘양의문’이라 하였다.
- 교태전(交泰殿)은 왕비의 처소이자 왕과 왕비의 교합의 장소이기도 하다.
주역 64괘중에 ‘천지가 교감하여 만물이 태통(泰通)하게 되고 음양의 기운이 서로 교감하여
뜻이 통하게 된다’는 길운의 괘상인 《지천태》(地天泰)괘의 ‘상왈 천지교태(天地交泰)’에서 취하여
‘교태전’이라 하였다.
 
- 원길헌(元吉軒)은 교태전의 동쪽 거실로 《지천태》괘 육오효 ‘누이동생을 시집보내는 것이니
이로써 복이 되며 크게 길하리라’(帝乙歸妹 以祉元吉)에서 ‘군주가 몸을 낮추면 길하다’는 의미를 취하였다.
함홍각(含弘閣)은 교태전 서쪽의 소침전으로 《중지곤》괘의 ‘단왈 곤이 후덕하여 만물을 싣고 있으니
그 덕이 한량이 없고 큰 것을 머금고 빛나고 크게 하니 만물이 모두 형통하다’(含弘光大 品物咸亨)에서 취하여
‘함홍각’이라 하였다.
 
- 함형문(咸亨門)은 교태전 서쪽에서 북쪽 후원으로 가는 문이며
역시 《중지곤》괘의 ‘큰 것을 머금고 빛나고 크게 하니 만물이 모두 형통하다.(含弘光大 品物咸亨)’에서 취하여
‘함형문’이라 하였다.
- 체인당(體仁堂)은 교태전 동행각의 상궁 나인들의 거실로 《중천건》괘 ‘문언왈 군자는 인을 체득하여
만물을 사랑하게 되니 어른이 되기에 족하며’ (體仁 足以長人)에서 취하여 ‘체인당’이라 하였다.
 
- 내순당(乃順堂)은 교태전 서쪽 궁인들의 거실로 《중지곤》괘의 ‘단왈 크도다! 대지의 원기에 바탕하여
만물이 생겨나게 되니 이에 하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도다(至哉坤元 萬物資生 乃順承天)’에서 취하여
‘내순당’이라 하였다.
- 승순당(承順堂)은 교태전 남행각 동쪽의 거실로 역시 《중지곤》괘의 ‘하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도다(乃順承天)’에서 취하여 ‘승순당’이라 하였다.
 
- 보의당(輔宜堂)은 교태전 남행각 서쪽의 나인들의 거실로 《지천태》괘의 ‘천지의 도를 재단하여
사계를 이루며,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두는 천지의 마땅함으로 백성을 도와 모자람이 없게 한다’
(財成天地之道 輔相天地之宜 以左右民)에서 취하여 ‘보의당’이라 하였다.
- 재성문(財成門)은 교태전 서쪽 보의당에서 함원전 가는 문으로 역시 《지천태》괘의 ‘천지의 도를 재단하여
사시를 이루며’(財成天地之道)에서 취하여 ‘재성문’이라 하였다.
 
-건순각(健順閣)은 왕비와 비빈의 산실로 그 의미는 건강(健康)한 아이를 순산(順産) 하기를 바라는 뜻도 있지만
태어날 아이가 아들일 수도 딸일 수도 있으니 《건괘》의 ‘하늘의 운행이 굳세고 씩씩하다’(天行 健)의
강건의 의미와 《곤괘》 문언전에서 ‘곤도는 따르는 것이구나 천도를 따라 때에 맞게 행하는 것이다’
(坤道其順乎 承天而時行)에서 순종의 의미를 취하여 ‘건순각’이라 하였다.
- 만통문(萬通門)은 교태전에서 소주방으로 통하는 동문으로 《지천태》괘의 ‘단왈 천지가 교감하여
만물이 태통한다’(天地交而萬物通也)에서 취하여 ‘만통문’이라 하였다.
 
- 원지문(元祉門)은 건순각에서 후원으로 출입하는 문으로 《지천태》괘의 ‘이로써 복이 되며 크게 길하리라’
(以祉元吉)에서 취하여 태아의 복을 비는 뜻에서 ‘원지문’이라 하였다.
- 연휘문(延輝門)은 건순각 동쪽의 소주방과 출입하는 문으로 ‘밝은 빛이 퍼져 나가다’(延輝)의 상서롭고
기쁜 소식이 퍼지다는 뜻을 취하여 ‘연휘문’이라 하였다.
 
- 자시문(資始門)은 경회루의 북쪽 왕비가 출입하는 문으로 《중천건괘》 ‘단왈 하늘의 시작이 원대함이여,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비롯되나니’(大哉乾元萬物資始)에서 취하여 ‘자시문’이라 하였다.
- 함홍문(含弘門)은 경회루 3문 중 대신들이 출입하는 중문으로 《중지곤괘》 ‘단왈 지극하도다!
땅의 큼이여,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생겨나니, 머금어 키워 크게 빛나게 하여 온갖 만물이
다 함께 형통하니라,’(至哉坤元萬物資生 含弘光大品物咸亨)에서 취하여 ‘함홍문’이라 하였다.
 
- 대재문(大哉門)은 함원전에서 서쪽 경회루 방향 출입문으로 《중천건괘》 ‘단왈 하늘의 시작이 원대함이여’
(大哉乾元)에서 취하여 ‘대재문’이라 하였다.
- 이견문(利見門) 경회루 3문 중 임금이 출입하는 어문(御門)으로 《중천건괘》 ‘구오왈 용이 날아서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만나는 것이 이롭다’(飛龍在天, 利見大人)에서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능한 인재들이 필요하다는 뜻을 취하여 ‘이견문’이라 하였다.
 
- 만시문(萬始門)은 경회루 북쪽 소주방과 출입하는 문으로 역시 《중천건괘》의 ‘만물이 이를 바탕으로
비롯되나니’(萬物資始)에서 취하여 ‘만시문’이라 하였다.
 
○ 경복궁은 조선을 개국하면서 당시 최고의 학자이자 실권자인 삼봉 정도전이 기획하고
궁궐의 배치와 전각의 명칭을 지었다. 궁궐은 만백성들이 우러르는 곳이며
임금과 대신들이 정사를 논의 하는 치세의 중심이요,
왕족들이 일상의 삶을 영위하는 생활공간이기도 하다.
 
임금과 왕족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생활하고 출입하는 건물과 문에
울림을 주는 경구(警句)를 유학의 최고봉인 주역의 가르침에서 취하여
우리에게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아 마음을 성찰하게 한 것이다.
이 건물과 문을 출입할 때마다 눈으로 보고 뜻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새겨서 자신의 인격을 완성하고
바른 지도자가 되어 태평한 세상을 만들고자 한 뜻이 모두 여기에 담겨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