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경복궁 사정전과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

오토산 2023. 3. 26. 19:24

 

                                                                   ●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 (105)
                                                  "경복궁 사정전과 퇴계선생의 마지막 귀향길"
 
○ 경복궁 사정전은 근정전 뒤편 중앙에 있는 어전 회의실로
대신들과 일상의 조회, 알현(謁見)이 이루어지고 정무를 보고받던 곳이다.
 
사정전 동.서쪽에는 통상의 집무실인 편전(便殿)이 있는데 동쪽에는 하절기에 사용하던 만춘전(萬春殿)이 있고.
서쪽에는 동절기에 사용하던 온돌구조의 천추전(千秋殿)이 있다.
두 전각은 왕이 평소에 정사를 보고 문신들과 함께 경전을 강론하는 곳이다.
또 종친, 대신들과 함께 주연을 베풀고 왕이 직접 지켜보는 가운데 과거 시험을 치르기도 한 곳으로
만년의 봄과 천년의 가을이란 ‘오랜 세월’을 의미하며 ‘길이 왕조가 이어지고
역사에 남는 정치를 해주기 바라는 뜻’이 있다.
 
사정전(思政殿)은 임금이 ‘정사(政事)를 생각(思)하는 곳’이란 뜻도 되지만 그 의미가 대단히 깊다.
삼봉 정도전이 궁궐을 조성한 후 임금에게 궁궐의 이름을 지어 올리면서 말하기를
“사정전이라 함은 ‘천하의 이치는 생각하면 얻을 수 있고 생각하지 아니하면 잃어버리는 법입니다.
대개 임금은 한 몸으로써 높은 자리에 계시오나, 만 백성은 슬기롭고 어리석고 어질고 불초(不肖)함이 섞여 있고,
만사의 번다함은 옳고 그르고 이롭고 해됨이 섞여 있어서,
백성의 임금이 된 자가 만일에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피지 않으면,
어찌 일의 마땅함과 부당함을 처결하겠으며, 사람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을 알아서 등용할 수 있겠습니까?”
 
“예로부터 임금이 된 자로서 높고 영화로운 것을 바라고 위태로운 것을 싫어하지 않겠습니까마는,
사람답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좋지 못한 일을 꾀하여서 화패(禍敗)에 이르게 되는 것은,
진실로 생각하지 않는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말하기를,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랴마는 집이 멀다(豈不爾思 室是遠而)’ 하였는데,
『논어』(論語)에 공자(孔子)는 ‘생각함이 없는 것이다.
왜 멀다고 하리오(未之思也 夫何遠之有)’ 하였고,
 
『서경』(書經) 〈홍범편〉에 말하기를,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思曰睿 睿作聖)고 했으니,
생각이란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그 쓰임이 지극한 것입니다.
 
이 전(殿)에서는 매일 아침 여기에서 정사를 보시고 만기(萬機)를 거듭 모아서 전하에게 모두 품달하면,
조칙(詔勅)을 내려 지휘하시매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사오니,
신은 ‘사정전’이라 이름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였다.
 
결국 ‘멀다고 한 말’ 은 성인은 쉽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의 뜻을 교만하게 한 적도 없고,
또한 어렵다고 말함으로써 사람의 정진을 가로막은 적도 없다.
다만 깊이 생각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이다.
심잠(心箴)에 말하기를
“아득하고 아득한 천지는 아래로 굽어보고 위로 올려보면 끝이 없다
사람이 그 사이에 자그마한 몸이 있다.
이 몸의 미약함이 큰 창고의 낟알인데 천지간에 참여하여 삼재(三才)가 되는 것은,
오로지 마음일 뿐이다” 라고 하여 마음 씀씀이의 중요성을 강조하여 ‘사정전’이라 하였다.
 
사정전 주변의 출입문은 정문(남문)이 사정문(思政門)이며
동쪽으로 동궁의 처소인 비현각(丕顯閣)과 자선당(資善堂)을 출입하는 ‘사현문’이다.
 
왕세자는 '떠오르는 해'로 일컬어지며 왕세자가 머무는 공간도
해가 솟아오르는 방향이자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인 봄을 상징하는 근정전의 동쪽에 자리하여
'동궁(東宮)'이라고 부른다.
 
사현문(思賢門)은 『논어』에서 ‘어진 사람을 보면 그와 같이 되기를 생각하고,
남의 좋지 못한 행실을 보면 안으로 자신을 반성해 보아야 한다’(見賢思齋焉 見不賢而內自省也)라고 한데서
세자에게 어진 마음을 갖기를 강조하여 ‘사현문’이라 하였다.
 
사정전에서 뒤쪽 침전인 강령전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향오문(嚮五門)이라 하고,
동쪽 소문을 안지문(安至門) 서쪽 소문을 용부문(用敷門)이라 하였다.
 
향오문은
『서경』 〈홍범구주〉의 ‘임금이 오복(壽,富,康寧,攸好德,考終命)을 편하게 누리며 백성들 역시 오복을 누릴 수 있다는
‘다섯 가지 복을 권유하여 누린다’는 향용오복(嚮用五福)에서 취하여 ‘향오문’이라 하였다.
동쪽의 안지문(安至門) 역시 〈홍범구주〉에서 황극을 세움에 있어서
‘인군은 마땅히 인륜의 지극함을 다하여 천하의 부자(父子)된 자들이 여기에서 법을 취하여 안정케 한다’
(言人君 當盡人倫之至)에서 취하여 ‘안지문’이라 하였고,
서쪽의 용부문(用敷門) 역시 〈홍범구주〉 황극지도에서
‘인군이 복을 쌓는다는 것은 자기 몸을 두텁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복을 펴서 모든 백성들에게 주어
사람마다 보고 감동하여 변화하게 하니 이른바 펴서 준다는 것이다’
(用敷其福 以與庶民 使人人觀感而化 所謂敷錫也)에서 정치를 잘 베풀어 백성들에게 복을 베푼다는 뜻에서
‘용부문’이라 하였다.
 
사정전 남쪽 행각에는 군왕을 보필하는 근신(近臣)이 거처하던 곳이 용신당이며,
서쪽 행각에는 군왕의 스승인 사부(師傅)의 거처이자 강학청(講學廳)이 협선당이다.
용신당(用申堂)은 역시 〈홍범구주〉의 아홉가지 덕목에서 첫번째는 오행(五行)이고,
두번째는 오사(五事)로 공경함을 씀이요(敬用五事), 세번째는 농사에 팔정(八政)을 씀이요(農用八政),
네번째는 오기(五紀)로 합함을 씀이요(協用五紀), 다섯번째는 황극(皇極)을 세움이요(建用皇極),
여섯번째는 다스림을 삼덕(三德)으로써 함이요(乂用三德), 일곱번째는 계의(稽疑)로써 밝힘이요(明用稽疑),
여덟번째는 서징(庶徵)으로 상고함이요(念用庶徵), 아홉번째는 오복(五福)을 누리고 육극으로 위엄을 보인다
(嚮用五福 威用六極)에서 임금이 이 아홉가지 덕목을 써서(用)
군왕의 도를 펼칠(申)수 있도록 보필한다는 의미에서 ‘용신당’이라 하였고,
협선당(協善堂) 역시 〈홍범구주〉의 협(協)은 합치됨을 말하는 것이니 자연의 이치에 합치되면(協用五紀)
왕도의 표준을 세울수 있다고 하였고,
『서경』 강고에 이르기를 천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착하면 천명을 얻고,
착하지 못하면 천명을 잃는다(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라고 하여
왕과 신하가 서로 천리에 부응하여 착한 것을 추구하도록 돕는다는 뜻에서 ‘협선당’이라 하였다.
 
결국 사정전은 세밀하게 정무를 살피는 임금의 생각이 중요함을 강조하였고
출입문과 중신들의 거처에는 임금이 군왕의 도리인 홍범구주를 펼칠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가 있다.
○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 임금과의 대화
1569년 3월 4일 선조임금이 야대청(경연청)에 나와 판중추부사로 제수한 퇴계를 인견하고 말하기를
‘경은 나이가 칠십이 안 되었으므로 치사(致仕)할 때가 아닌데 어째서 서둘러 가려 하는가?’ 하니
 
퇴계가 답하기를
‘소신이 변변치 못하여 부득이 돌아가야 할 사유들이 매우 많지만 그 중에 몇가지를 말씀드리면
첫째로 명나라에 학자 설선(薛瑄)이 69세에 치사하였으니 고사에 비추어
소신의 나이가 이미 69세이니 치사할 나이입니다.
둘째로 신은 어릴때부터 고질병이 늙어갈수록 더욱 깊어서 심병(心病)이 조금만 조섭을 잘못하면
죽음에 이를 것이므로 죽기 전에 물러 나려는 것이요
셋째는 신이 높은 품계에 올라 괜히 자리 차지하고 녹봉을 받으니
나라를 저버리고 임금의 은혜에 부끄러운 일로서 물러나려는 것입니다.
넷째 신은 노둔하고 공소(空疏)해서 남들에게 미치지 못함이 멀거늘
헛된 이름을 얻어서 세상을 속이고 심지어 임금을 속이게 되었으니 조정에 남아 있을 수 없습니다.
다섯째 재주도 덕망도 없으면서 신에게 거는 기대와 바램이 너무 무거워 말씀드리면 망령된 것이 되고,
말씀 드리지 않으면 죄를 짓게 되니 물러 나려는 것입니다.’ 라고 하니
 
임금이 ‘경이 돌아가려고 하니 하고 싶은 말이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임금이 뛰어난 자질이 있으면서 혼자 판단으로 세상을 다스리려 하여 아랫사람들의 생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방비해야 할 걱정거리가 없으면 임금의 마음에 반드시 교만하고
사치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니 이것이 염려스러운 바입니다.
 
『주역』 건괘에 항룡유회(亢龍有悔)라 하였으니 대저 용이란
구름을 이용해서 신묘한 변화를 부려서 세상만물에 혜택을 주는 것입니다.
만약 임금이 아랫사람들과 마음을 같이 하고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면
마치 구름이 없는 용과 같이 될 것이니 아무리 신묘한 변화로 혜택을 주려한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소신이 경연에 들어왔으나 말솜씨가 없어서 자상하지 못하여 참망(僭妄)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학십도(聖學十圖)를 그려 올린 것입니다.
공부 방법에 대해서는 차자(箚子)에 올린 바와 같이 사(思)자와 학(學)자를 주지(主旨)로 삼았습니다.
이에 대해 노력한다면 그 속의 의리를 깨달아 얻게 될 것이니
이것이 소신이 충심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간절한 정성입니다.’라고 하니
상이 ‘계고(戒告)한 말은 매일같이 경계하겠다.
 
그 외에 조신(朝臣) 중에 학문하는 사람으로 천거할 만한 자는 없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말하기 어렵습니다. 뜻가진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에 기대승(奇大升)같은 자는 글을 많이 보아
이학(理學)에 대한 소견이 가장 뛰어난 바 통달한 선비라 하겠습니다.’ 라고
임금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이튿날 임금의 간곡한 만류에서 불구하고
도산을 향해 사정전을 떠나 귀향길에 올라 13박 14일 만에 도산에 도착하게 된다.
 
이 때의 일정과 경로를 되살려 2019년에 도산서원이 주최한 ‘퇴계선생 마지막 귀향길 행사’를 같게 되었고
금년에도 경상북도와 안동시의 후원으로 퇴계선생의 물러남의 의미를 되새기며
3월27일 사정전 앞에서 제4회퇴계선생귀향길행사 개막식을 시작으로
총200여명이 참여하는 귀향길 걷기 행사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