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교실

양반과 상놈

오토산 2023. 9. 27. 05:48

 

● 불원재 유교문화 해설 (127)
【양반과 상놈】
안동은 양반지향(兩班指向)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왕권사회에서는 사람의 신분이 구분되어 있었다.
군주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사회 지배계층에 있던 상류층의 문무(文武)의 관료를 양반(兩班)이라 했다.
 
일반 백성들도 직업에 따라 신분이 달랐다.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서 일을 맡아 하던 직업을 중인(中人)으로 아전(衙前)이라 하였고,
일반 농.상.어업에 종사하던 백성들은 상민(常民)이라 하고,
천한 직종에 종사하던 사람과 노비계급에 있던 사람들을 천민(賤民)이라 하였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지배층의 양반이 되기를 바랐으나
중인이나 상민층에서 양반계층으로 신분상승은 대단히 어려웠다.
 
왕가의 후손이나 양반의 후예로서 학문을 닦아 과거에 급제해야 관료로 진출하고
양반으로 행세할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교육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양반자제만 교육기회가 제공되었고 지방에서도 교육기관인 향교에도 권문세도가의 후손들만 참여할 수 있었고
상민이나 천민의 신분으로는 향교 출입도 제한되었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암흑기와 해방을 거치면서 유교적 가치가 멸시를 당하면서 정통 양반의식은 힘을 잃었고,
민주국가로 우리사회가 성숙하게 되면서 전통사회에서의 양반과 상민, 천민의 신분계층은 완전히 없어지고
누구나 평등한 인권을 가진 사회가 되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 있어서도 사회지도층인 고위관료와 국회의원, 선출직과 재력가들은
일반서민층과 달리 특권의식을 갖고 지도층이라는 특수계층이 엄연히 존재한다.
 
사회지도층이나 재력가들도 인격을 갖추고 타인을 존중하고 사회에 모범이 되는 양반소리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권력이나 재력을 앞세워 오직 자신의 권력과 이익만을 추구하여 사회에 지탄을 받는 사람의 도리를 못하는 ‘쌍놈’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엄연히 양반과 상놈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는 엄연히 양반을 지향한다고 할 수 있다.
 
40년전 예천출신의 재일교포 윤학준(尹學準)씨가 『온돌야화』를 발간한 이후
1995년에는 『나의 양반문화 탐방기』에 이어 2000년에 출판한 『양반동네 소동기』에서 저자는
향수병 환자의 망향기라고 쓴 책에서 안동의 양반문화를 잘 소개하고 있다.
 
이 책에서 글만 읽는 사람을 선비,
정치에 종사하는 이를 대부,
덕망이 있으면 군자라 하였고,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소설 『양반전』을 인용하여 양반을 희화하고 있다.
 
“새벽에 일어나 정신을 가다듬고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경전공부를 하고, 아무리 배가 고프고 추워도 잘 견디고,
가난하다는 말은 입에 담지 말아야 한다.
아래 윗니를 부딪쳐 똑똑 잇소리를 내서도 안되고, 기침소리도 크게 해서는 안되고,
가래는 질근질근 씹어 넘기고, 세수할 때 주먹의 때를 비벼 씻지 말 것이며,
양치질을 너무 수다스럽게 하지 말고, 걸음은 느릿느릿하게 신을 끌듯이 걸을 것이며,
손에는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아무리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의관을 쓰지않고 밥을 먹지 말 것이며, 국물을 마실 때 소리를 내지 말 것이며,
젓가락을 놓을때 소리를 내지 말 것이며, 생파를 먹고 냄새를 풍기지 말 것이며,
막걸리를 마시고 수염에 묻은 술을 빨지 말 것이며, 담배 피울 때 양볼이 옴폭하게 패이도록 연기를 빨지 말것이며--”
등등으로 희화하고 있지만 양반은 글 공부를 중시하고 처세와 행동거지를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자신을 제약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양반이란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제정된 계층이 아니라 사회관습을 통해서 형성된 계층이요,
따라서 양반과 상민의 한계 기준이 매우 상대적이요 주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양반과 상민의 한계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지극히 명확한 기준이 있었다.
다만 그 기준은 성문화된,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적용이 될 수 있는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변경 설정되는,
즉 어느 특정한 상황 하에서 관련된 사람들의 의식구조상에서 설정되는 주관적이고도 상대적인 기준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로는 조상 중에 벼슬을 지낸 관리가 있으면 양반으로 불렸고, 스스로 양반으로 행세했다.
조선초기의 양반의 비율이 전인구의 3%미만이던 것이 조선 말기에는 족보 매매도 있었기 때문에
양반으로 행세하는 계층이 80%정도로 늘어 났다고 한다.
 
유교문화의 본고장인 안동에서는 아직까지 양반과 상놈이라는 말이 존재하고
누구나 인격을 갖춘 양반을 지향하고 있다.
양반은 인격과 학식을 쌓아 사회에 모범이 되어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사람을 말하고,
상놈은 사람으로서 도리를 하지 못하고 가정과 사회에 쓰이지 못하는 사람을 상놈이라 하고
그 중에서 사회에 패악을 저지르는 범법자나 인간이 되지 못한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사람을
상놈중의 상놈을 ‘돌쌍놈’이라고 한다.
 
윤학준의 『양반동네 소동기』에서
“양반의 조건이란 역사적으로 사회에 기여한 훌륭한 인물이나 학자를 배출하고
그 후손들이 선조의 뜻을 이어 서원이나 종가를 중심으로 집성마을을 형성한 명문가의 후손을 말한다.
 
안동이야말로 양반의 소굴이다.
우리나라 역사책을 뒤지면 반드시 눈에 띄는 수많은 명신(名臣)과 거유(巨儒)들 이를테면
퇴계 이황을 비롯하여 농암 이현보, 학봉 김성일, 서애 류성룡, 청음 김상헌, 등등 주워 섬기자면 끝이 없는데
이들 모두가 안동출신이기 때문이다.”
 
“안동지방에는 안례통(安禮通)이니 천수통(川水通)이니 하는 말이 있다,
이 ‘통’이라는 말은 통로라는 지리적 개념의 호칭이 아니라 이를테면 양반이 밀집하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양반의 유대의식을 표명하는 특수용어라고 생각하면 된다.”
 
“즉 ‘안례통’이란
안동과 예안 지역에서 본관이 안동인 안동김씨, 안동권씨와 예안이씨, 진성이씨와 영천이씨, 선성이씨,
광산김씨를 말한다.
또 ‘천수통’이란 내앞을 중심으로 세력을 펴고 있는 의성김씨와 무실,한들 박실의 전주류씨들을 말한다.
 
이외에도 풍산을 중심으로 한 선성이씨, 전의이씨, 안동김씨, 풍산김씨, 가일권씨,
임진왜란당시 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의 자손이 살고 있는 풍천,하회의 풍산류씨 등을 말한다.
나는 지금 이 지방의 명문세가들을 그저 생각나는데로 꼽았으나
이는 보학지식이 없는 나의 어설픈 식견에 지나지 않으며 실은 이외에도 쟁쟁한 양반들이 얼마든지 있다.” 라고
안동의 명문가를 들추고 있다,
 
지금시대에 안동에는
‘나는 양반이다. 우리문중은 양반가문이다’라고 겉으로 드러내서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훌륭한 조상의 후예임을 자긍하고 있다.
 
그래서 혼사에 있어서 명문가의 후손들과 서로 혼인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는 전통가문에서 보고들은 가정교육이 그래도 가정이나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지탄받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는 바램일 것이다.
어찌보면 현대사회에서도 사회에 모범이 되는 사람인 양반을 지향하기 때문에
혼사에서 전통가문의 후예를 선택하고자는 하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사회의 파렴치한 정치지도자와 그 후예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는 현실에서
당대에도 양반이 아니라 상놈소리를 듣지만,
일반 서민들중에도 학식과 덕망을 갖추어 사회에 모범이 되는 양반가정이 얼마든지 있다.
이러한 가풍을 누대에 걸쳐 수백년 이어 가기란 쉬운일이 아니며
안동의 명문가들은 이러한 가풍을 4,5백년간 이어온 가문이니 당연히 명문가로 양반가문으로 존중받을 만하다.
그렇다면 조상의 업적을 알아야 하고 조상의 명성에 추호라도 흠결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고
가정과 사회에 모범이 되게 처신하는 것이 양반의 도리이다.
 
현대인들은 ‘손가락질 받던 말던 나혼자만 잘 살다가면 그뿐이다’라는 생각은 ‘상놈’들의 처신이다.
우리는 오늘만 살다 가는 사람이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 가운데
후손들과 후세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떳떳한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후세들의 모범이 되는 양반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더구나 명문가의 후예라면 사람의 도리를 다하고 조상에 부끄럽지 않고
후세에 비판받지 않는 올바른 삶을 살다간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서
누대로 전승된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가야 ‘양반의 고장 안동’이라는 말을 계속 듣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