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촌(芝村)종가 비림(碑林)을 다녀와서
1951년 연합군이 서울을 재탈환하였던 3월 15일
민물요리잔문점 거랑애에서 매운탕으로 점심을 먹고
네명이 지례예술촌으로 나들이를 나섰다.
수곡교를 지나 꾸불꾸불 고갯길을 올라 넘어서니
'지례예술촌은 개방하지 않습니다'(예약은 홈페이지에서 하고
예약된 숙박손님만 개방한다)는 안내판과
사유지 무단출입금지(걸어서 들어오지마세요)는 차단기가 있어
김원길 회장님과 연락을 하였더니 잠시후 차단기가 열렸다.
지례예술촌 입구에는 ' 芝村先生金公遺墟' 유허비가 있었고
유허비 건너편 능선에 지촌종가 비림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촌(芝村)종가 비림(碑林)은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杰)선생의 역대 주사손(胄嗣孫)의
합동 제단소(祭壇所)로 험준한 산중에 산재하여 있던 선조 묘소를
종가 가까이로 옮겨 옛 어른들의 석물, 글씨와 문장을 보전하고
회전(會奠)을 통해 숭조돈친(崇祖敦親)의 미풍을 이어가고
유가의 법고창신(法古創新)한 장묘문화를 볼수 있게 하기위해
2018년 6월 지촌선생 13대주사손 金元吉님이 조성하였다고 한다.
망주석이 늘어선 산책로를 오르니
여러 선조들의 비석과 상석들이 옮겨져 자리하고 있었고
그 앞줄에는 아버지 김구직님과 어머니 권영임님의 한글비문이
앞 뒤로 새겨진 비석이 서 있었다.
김구직(金九稷 1921~2014)님은
지촌선생의 12대주손으로 태어나 1934년 권영임님과 결혼을 하였고
서울 중동중등학교 졸업후 일본메이지대학 유학중 태평양 전쟁으로 귀국,
1947년 성균관대학교 편입, 6.25사변으로 1953년 해운대에서 졸업식을 가졌고
대구에서 경찰공무원으로 근무하다가 퇴직하여 민의원에 출마와 위암수술,
안동화묵회(安東和墨會) 서예활동과 현판과 비문을 많이 남기셨으며
임하댐 수몰전 고향풍경을 사진으로 남기고 종택을 현위치로 이건하였고
안동신우회 회장으로 12년간 매주 명사초청강의와 컴퓨터 교육을 하였으며
도내 35개 서원의 원장을 역임하였고 2003년 자랑스런안동인상을 수상과
2013년 전전60주년기념호국영웅기장증과 참전경찰유공자증을 받았고
수필짐 九曲上流와 南井書藝作品集을 남기시고
2014년 3월 25일 94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권영임(權寧姙 1918~1984)님은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서 權相經씨의 3남 1녀중 세째로 태어나
18세때 김구직씨와 결혼하여 남편을따라 서울과 동경에서 살았고
해방과 6.25를 격으며 조선노동당 토벌에 쫒긴 고향출신 좌익을
숨겨준 혐의로 어려움을 격었던 시절도 있었고 민의원출마와
투병중인 남편바라지를 하며 봉제사로 고생스럽게 사시다가
1984년 10월 13일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적고 있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시며 흩어져 있던 묘비를 한 곳으로 이전하여
선조들과 자손들이 한 공간에서 만날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시고
한자로 쓰여져 보는 사람들이 해석하기가 힘들고
행장을 이름있는 선비들을 찾아가서 부탁하였던 묘갈명을
아버님, 어머님의 행적을 제일 잘 아시는 아들이
한글로 상세하게 비문을 적으시어
우리글을 아시는 누구나도 그 분의 행적과 시대상을
느낄 수 있도록 큰 혁신을 하신 김원길 회장님의
용기에 감사를 드리며
봄이 왔다고 할미꽃이 빙그레 웃는 묘역을 내려와서
우리는 지례예술촌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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