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청도 유등연지를 다녀와서
청도향교를 출발한 우리는
15:00 유등리에 있는 유등연지에 도착을 하였다.
유등연지는 유호연지(柳湖蓮池), 신라지(新羅池)로 불리기도 하고
청도팔경과 전국백대명승지에 포함되는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입구에는固城李氏世居地 入淸道라 새겨진 비석이 서 있었다.
유등연지는
고성이씨 안동입향조 이증(李增)선생의 손자인
고성이씨 청도입향조 모헌공(慕軒公) 이육(李育)선생이
무오.갑자사화로 부친(泙)이 부관참시 당하시고
형 쌍매당(胤)과 망헌(胄)선생이 거제와 진도로 유배당하여
안기도찰방을 지내시다 벼슬을 버리고 안동에 돌아와
거제와 진도로 문후(問候)차 왕래하던중 산수수려(山水秀麗)하고
생리(生利)가 넉넉한 유곡(柳谷)에 흥해최씨 최자순(崔自淳)의
딸과 혼례하여 이 곳에 전거(奠居)하게 되었다.
몸은 주류(駐留)에서 쫒겨나 은둔하게 되었으나
연꽃처럼 청정한 군자의 삶을 추구하며 살고 싶은 뜻에서
신라지(新羅池)라 불리던 연못을 면적 21,000평, 둘레 약700m
깊이 2m로 넓혀 연(蓮)을 심고 유호연지(柳湖蓮池)라 이름짓고
1531년 호상(湖上)에 4간겹집으로 정자를 지어 주돈이의 애련설
연화지군자(蓮花之君子) 내용을 따서 군자정(君子亭)이라 이름하고
정자의 문을 송나라 주자의 관서유감(觀書有鑑) 시구(詩句)를 따서
일감문(一鑑門)이라 지어서 선비들을 만나며 후학을 가르치면서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선생은 이 정자에서 향내유림들과 도학을 토론하며
후학들에게 강학수교하여 인의예를 바탕으로 유풍진작을 펼쳤고
1919년 370인의 향내유림이 주축되어 君子亭講學契를 창계하여
매년 음력 8월 18일에 모여 경전을 강독하고 시를 지어 읊기를 하며
선생을 추모하여 오고 있으며 고성이씨 며느리와 딸네들이 8월 16일
군자정에 모여 강학계 준비와 정의(情意)를 돈독히하는
'방보기풍습'이 이어져 온다고 한다.
경상북도와 청도군에서는
2010년 각10억원의 예산으로 유등연지와 군저장을 정비하였으며
우리는 1531년 가설되어 2010년 개축된 원관교(遠觀橋)를 지나
일감문을 통과하여 군자정에 올라서 권오추 강사님과 함께
명심보감 강독시간을 가졌다.
권오추 강사님은
북송시대 주염계의 애련설을 설명하시며
진흙속에서 나왔으나 물들지 아니하고(淤泥不染)
물에 씻기어도 요망하지 않으며(濁淸漣不妖),
속은 비어도 겉은 바르고(中通外直),
향기는 멀수록 맑아지는(香遠益淸) 연꽃(蓮)이
선비정신과 닮았다고 하여
옛 선비들이 즐겨 가꾸어 오던 꽃이라는 설명과 함께
明心寶鑑 繼善篇을 설명하시며 함께 읊는 시간을 가졌다.
강독을 하는동안 때마침 바람이 솔솔 불어와
연꽃과 연잎이 바람에 한들거리는 장관도 볼 수가 있었고
관광객들도 우리들이 강독하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였다.
강독이 끝나고 유등연지 주변을 구경하며
안동의 고성이씨 임청각과 군자정을 떠 올리며 걸었는데
붉게 피어난 베롱나무도 보였고 고성이씨 모헌공종중에서
연못주변을 훼손하지 말아 달라 부탁하는 표지판도 보였으며
군자정 강학에 대한 시비도 보였다.
君子亭講學 <柳亭 芮泰景>
君子亭中積德明 講磨詩禮養儒生 仁人遊處難爲語 信友逢場易吐情
松老山腰將翠化 蓮開水面身丹成 吾鄕勝地專華閥 世世雲仍佩玉聲
16:00 우리는 고성이씨가 안동에서 청도로 입향한
청도 고성이씨 세거지의 유래와 살아가는 모습도 돌아보고
전국명승지가 되어있는 유등연지와 군자정도 구경하면서
복원중인 안동의 임청각과 군자정은 어떤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지를 생각하며 오늘의 마지막답사지인
와인터널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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