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고령 개실마을을 다녀와서
김면장군유적지를 출발한 우리는
영남학파의 종조인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선생의
6세손이 1631년경 이 곳으로 피신와서 은거하면서 선산김씨 후손들이
400여년 살아가고 있는 쌍림면 합기1리 개실마을을 찾았다.
마을입구에서 만난 개실마을 운영위원장님은
꽃이 많이 피고 아름다워 가곡(佳谷), 가화(佳花)실로 불리던 개실마을은
20년전(2001)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지정되면서 도시민들의 여가선용과
농촌체험, 음식체험(엿, 두부, 한과), 전통문화체험, 고택숙박 등으로
전통문화를 이어 나가기 위하여 주민 모두가 노력하고 있다고 하시며
신령스러운 고을 고령이 고령자만 사는 고을로 변하여 간다면서
찾아주시어 감사하고 즐거운 여행이 되시라고 인사를 하셨다.
이어서 우리를 안내하시는 해설사님은
마을뒷편에 꽃이 아름다운 화개산이 있고 마을 전체가 꽃을 이루고 있으며
그 중심에 종택이 있어서 명당이며 앞쪽에 나비형상 접무봉이 있다고하였고
종택으로 안내하여 안채,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채, 사당이 튼ㅁ자를 이룬
<文忠世家>에 대한 설명과 유물보존각인 서림각(棲林閣)에서
문적에 대한 설명을 하시고 마을 앞쪽 도연재로 이동을 하였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 1431~1492)선생은
아버지 강호(江湖) 김숙자(金淑慈 1389~1456)의 3남2녀중 막내로
밀양에서 태어나 고려말 정몽주, 길재의 학문을 이은 아버지로 부터 학문을 계승하여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계승하여 오다가 1457년(세조 3) 조의제문(弔義帝文)을 짓고
1459년(세조 5) 과거급제, 승문원 부정자로 시작, 성종때 도승지, 예조참판을 지냈으며
1489(성종20) 밀양으로낙향하여 후학지도를 하시다가 1492년(성종23) 돌아 가시자
성종임금이 이틀간 조회를 정지하고 시호가 내려졌으며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가
1507년(중종 2) 중종반정으로 벼슬과 시호 등이 복권되었고
1689년(숙종15) 영의정에 증직되고
1708년(숙종34) 문간(文簡)에서 문충(文忠)으로 시호가 고쳐졌다고 한다.
<孝爲百行之源>이란 액자가 걸린 도연재(道淵齋)는
점필재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방유림들이 건립하여 제사를 모시던 재실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건물우측 전면에 중층으로 지어진 다실이 있어
조선말기인 1866년(고종원년) 지어진 건물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해설사님은
불천위제사에서 미나리, 부추, 밤, 대추가 차려지며 익힌고기를 쓰고
'흠향 하소서'라 축을 하기때문에 젓가락을 놓지 않는다는 설명도 곁들였고
도연재앞에 있는 '金氏世居碑, 義士慶基殿參奉鮮隱金公遺跡碑,
兵曹參義佳亭金公遺跡碑, 金氏五世孝行事跡碑에 대한 설명을 하시며
개실마을에 대한 안내를 마쳤다.
우리는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를 드리고
오늘의 마지막 답사를 마치고 16:30 안동으로 출발하여
동명휴게소에서 잠시 후식하였다가 18:20 안동에 도착을 하였다.
동행을 하여주신 거경대학 강사님들과 관계자분께 께 감사드리고
장거리를 안전운전하여 주신 사장님들께도 감사를 드리며
오늘 답사를 함께하신 모든 회원분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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