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고령 김면장군유적지를 다녀와서
지산동고분군을 출발한 버스는
14:40 개실마을을 도착하기전 김면장군유적지를 찾았다.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只知有國 不知有身(나라있는 줄 알고 내몸 있는 줄 몰랐노라)라
새겨진 송암 김면장군 어록비가 우리를 맞았다.
송암(松菴) 김면(金沔 1541~1593)장군은
고령 송천면 양전동에서 고령김씨 시조 고양부원군(南得公)의 7세손으로 태어나
11살에 퇴계선생에게 대학연의를 배웠고 1560년 도산을 찾아 정식제자가 되었으며
19세때 남명선생의 제자가 되어 24세때 율례지(律禮志)를 지어 수정을 구하였고
28세때 재실을 지어 남명에게 송암(松菴)이란 자필현판을 받았고 자호하였으며
공조좌랑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퇴하고 돌아와 성리학연구와 후학양성을 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고 하랴!'며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일으켜 거창, 고령에서 승전하여 합천군수가 되었고
성주, 금산, 개령 등에서 관군과 함께 전과를 올려 1593년 병마절도사가 되어
1593년 3월 13일 충청, 전라의병들과 적을 격퇴시킬 준비를 하다가 병에 걸려
'只知有國 不知有身'라며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며
금산(김천) 진중에서 53세를 일기로 순국하셨다.
1666년(현종 7) 대가야읍에 추모사당을 세웠다가 1789년(정조 13) 현위치로 이건,
1868년(고종 5) 서원철폐, 1902년 도암서당을 짓고 묘제로서 선생을 추모하여 왔고
1988년 경상북도문화제기념물 제76호 지정되었고 2002년 도암서원 복원과
2002~2011년 성역화사업으로 김면장군 유적지 성역화를 하였다고 전한다.
외삼문(知止門)을 지나니 높다란 누각(常平樓)가 자리하고 있었고
누락아래 계단을 오르니 정면에 도암서원(道巖書院)이 자리하였으며
누각의 좌우에는 翠粥軒(?)과 幽逸軒(?)이란 편액이 보이기도 하였다.
묵일당(默一堂)에 오르니 3월 10일에 진행되었던 향사분정표와
중수기, 복권기를 적은 편액이 여러개 걸려 있었고
우리는 이원봉 강사와 이한방 강사로 부터
송암선생의 일생과 도암서원의 유래에 대한 설명을 듣고
뒤편으로 갔더니 사당이 있었고
사당앞에는 베롱나무 고목이 자리하였고 붉은 꽃이 지고 있었으며
이 곳은 베롱나무 명소로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고 있다고 한다.
사당옆에는 추념재(追念齋)가 있었으며
유학자이자 의병장으로서 나라사랑을 실천하신
송암선생님께 고개숙여 깊이 감사를 드리며
주변에 신도비와 묘지 등 유적이 있다고 하나 약속시간이 되어
다음기회에 돌아보기로 하고 우리는 개실마을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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