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학아카데미에서 의성 사촌마을을 다녀와서
산운마을 답사를 마치고
의성 흑마늘삼계탕오리에서 점심을 먹고
14:15 의성사촌마을 가로숲앞에서 문화관광해설사님을 만나서
사촌마을과 가로숲, 만취당과 만년송에 대한 설명과 안내를 받았다.
사촌마을은
1392년 안동 회곡에서 충렬공 김방경 장군의 5세손
감목공(監牧公) 김자첨(金子瞻 1369~1454))선생이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沙眞村)을 본 따 사촌( 沙村)이라 하였다고 전하며
북쪽에는 자하산(紫霞山)이 있고 서편에는 안동김씨가 입향할때
조성한 가로숲이 납북으로 길게 놓여 마을을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송은 김광수와 그의 외손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유현을 배출하였고
현재 안동김씨, 풍산류씨, 안동권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가며
만취당선생이 여씨향약을 다듬어 시행한 沙村里約이 이어지고 있으며
신라말엽 정승을 지낸 최치원의 장인 나천업(羅千業)이 살았고
영남 8명기(名基)중의 한 곳으로 정승이 세 명 태어난다고 하여
나천업, 류성룡에 이어 한 명의 정승이 더 태어난다고도 전한다.
가로숲인 서림은 가리쑤, 가로쑤라고도 불리며
입향하면서 심어진 도토리나무는 흉년이 들어 양식이 부족할때
구황식물(救荒植物)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하였다고 전하며
인근에 지어진 의성의병기념관은 임진왜란(1592), 정묘호란(1627),
무신란(1728), 병신항일의병(1895), 국채보상운동(1907), 일제강점기 등
나라가 어려울때마다 애국활동을 펼쳤던 마을의 역사를 전하고 있었다.
종택을 들어서니 都平議公古廬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고
입구에서 만난 종손님은 오전부터 우리를 기다렸다면서
집안의 유래를 설명하시며 좋은시간 되시라고 인사를 하셨고
종택을 돌아 만취당으로 가는 마당에는
캐나다에 거주하시던 김태정(1932~2018)님이 평생수집한 수석들을
망향의 정으로 문중에 기증을 하여서 전시되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끼던 애장품들을 종원들과 관광객들이 함께 구경하면서
사랑 받을 수 있도록 하신분에게 감사를 드렸다.
무궁화꽃이 만발하고 있는 만취당(晩翠糖)은
퇴계선생 제자이신 송은공의 증손 만취당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학을 기르시기 위해 1582년부터 3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1727년 동쪽으로 두칸, 1754년 서쪽으로 1칸을 덧붙여 丁자형을 이루었고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라 전하며 동쪽 방에는 復齋라는 현판이 붙여져 있었고
들보위에는 서애선생의 모친이 사용하시던 가마가 올려져 있었다.
우리는 만취당 마루에 올라 주변을 구경하며 해설사님으로 부터
만취당과 만년송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앞쪽에 있는 만년송으로 갔다.
만년송(萬年松)은 의성사촌리향나무로 불리며
연산군때 송은(松隱 金光粹 1468~1501)선생이 만년동안
푸르게 살라는 의미로 심었다고 전하고 나이는 50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 8m, 폭 25m 정도로 하늘을 날아 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송은선생의 만년송정운(萬年松亭韻)에서
一別徂徠問幾時 栽封蒼翠萬年姿 淸香細細來詩筆 殘子粉紛落硯池
葉蜜幽禽啼自在 苔班鱗甲老尤奇 昻莊獨立村園裏 不許尋常俗士知
묻노니 조래산 떠나온지 몇해련고 만년송 푸른그루 고이괴이 심었노라
막은향 은은하게 시축에 풍겨오고 송화가루 날아서 벼루에 진다
푸른잎 무성한데 새소리 한가롭다 늙은줄기 이끼끼니 인갑인양 이롱진다
은사의 동산에 두뚝 서 있으니 심상한 속사이고 몰라본들 어떼!!
사촌마을을 돌아보고 우리는 맞아주신 종손님께 감사드리고
상세하게 설명하시며 마을안내를 하여주신 해설사님과 함께
15:00 다음답사지인 고운사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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