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경대학에서 김천 직지사를 다녀와서
935년 신검이 후백제의 두번째 황제에 올랐으나
등극 11개월만에 고려에 항복하였던 날이라는 2024년 10월 17일 08:00
거경대학 회원 80명이 안동예술의 전당을 출발하여 서의성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10:30 황악산 직지사 동문에 도착하여
관광해설사님의 안내를 받았다.
황악산(黃岳山) 직지사(直指寺)는
418년(눌지왕 2) 도리사에 이어 신라에서 두번째로 지어진 사찰로
아도화상이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문자에 의지하지 않고 바로 마음을 가르쳐 본래의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룬다)라는 선종의 가르침에 유래하여 직지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645년(선덕여왕 14) 지장율사, 930년(경순왕 4) 천묵대사가 중수하였고
936년(태조 19) 능여조사가 중창하여 '동국제일가람'이라 일컬었으며
1399년(정종 원년) 중건하고 1488년(성종 19) 학조대사가 증축하여
조선 8대사찰 가운데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시켰다고 전한다.
보라빛 구절초가 아름답게 피어있는 동문입구에서 해설사님은
팔공산전투에서 대패한 왕건이 능여대사 도움으로 안동 병산전투 승리로
후백제를 제압하여 통일을 이루었고 직지사도 사세를 중흥하였으며
대웅전 뒷편(蛇頭峰)에 조선 정종대왕의 태실이 있었다며 조선초기
수호사찰로 사세유지하다가 임진왜란때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자하문(紫霞門)이라 불리던 일주문과 대장문, 금강문과 천왕문,
만세루를 통과하면서 각 문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을 하여 주셨고
천왕문 앞에서는 사명대사와 신묵대사의 인연을 설명하시며
사명대사가 16세(1566년) 신묵대사의 제자로 직지사에서 출가하셨고
30세(1573년) 직지사 주지로 임명되었다는 법연을 설명하기도 하였으며
천왕문에는 네명의 사천왕마다 불전함이 있는 모습도 보였다.
만세루를 통과하여
세 분의 불상 뒤에 각각의 후불탱화가 있는 대웅전에 참배를 드리고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비로전으로 가는 길에서는
황토길이 연결되어 '맨발로 걷는 황토명상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관음전 앞 음수대에는
'口'자가 공동으로 들어가는 吾唯知足(나는 오직 만족할 뿐이다) 음수대로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는
진리를 느끼며 물 한 바가지를 마시고 사명각으로 이동하였다.
사명각(四溟閣)은 사명대사의 진영을 봉안하여 대사의 자취를 기리는 건물로
1787년(정조 11)창건되어 1975년 박정희대통령의 지원으로 증축되었으며
현판은 박대통령의 글씨로 다른현판들과 달리 좌에서 우로 쓰여져 있었다.
사명대사 유정(惟政 1544~1610)은 법명은 유정, 호는 松雲, 四溟이고
시호는 慈通弘濟尊者로 직지사에서 출가하고 주지를 지냈으며
서산대사를 찾아 참선과 수행을 하며 진리를 탐구하였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장으로 활약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 가야산 해인사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사명각을 지나 비로전으로 이동을 하였다.
비로전(毘盧殿)은 '천불전(千佛殿)으로도 불리고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약사불과 노자나불을 모셨으며
그 뒤로모양과 표정, 자세와 크기가 각기다른 천불상이 모셔져 있었고
마곡사와 대흥사와 함께 조선시대에 천불상이 모셔졌던 사찰로 알려져 있다.
비로전앞 삼층석탑주변에는 '천불님께 공양하는 소원등'이
오색으로 빽빽히 달려 있었다.
소원등에 달린 소원들이 모두 이루어지길 바라며
상세한 설명을 하여주신 해설사님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우리는 만세루와 일주문을 나와 사명대사공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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