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족이 대부분인
우리 영토 대마도 (對馬島)를 찾자
대마도가 한국땅/이승만전대통령,日에 수십차례 요구 -
중국은 작년 7.15이후 구로 산수원의 백두산 등정을 마치고 광개토대왕및
장수왕릉을 보수없이 팽개치듯 방치하고 호산산성 이라는곳은 옛날
우리의 선조님들 께서 성을쌓아 나라를 지키고 종족을 보위 했던 이곳을
최근 많은 돈을 들여 재축조해놓고 그곳이 만리장성의 시발점 이라고
표시 하는등 당치도 않는 동북공정에 혈안이 되있지않나,
일본은 겉으로는 값싼 기생웃음으로 친한체하면서 돌아서면
남의 영토(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툭 던져보는 짓거리에 그때마다 따끔한 쓴맛을 보여주기는
커녕 마냥 순한 양인 한국은 제대로 항의한번 않고
그저 눈치외교에 그치니 국민은
언제까지 울분만 삼키고 있어야 할까요.
우리 국민도 어찌보면 전폭적인 국민의 지지로 용기있고
소신있는 인재가없었다기보다 그런 인물이 탄생할 만한 환경을
조성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국익에 추호도 도움안되는 망국의 지역감정이 잘도 이용한 청치인,
이젠 도덕없는 인터넷누리꾼들 손장난에 극히 사소말장난.
론쟁 잘못인 못된 이력만을 끝없이 후벼파고 침소봉대하여
폐인격을 만들줄은 알았지 쓸만한 능력자를 키우는 노력에는
소홀했음을 돌이켜 봐야 합니다,
그리고 보면 지금의 난세에 더욱 잊을 수 없는 선구자인
대한민국 건국의 선구자 이승만 전대통령이 대일본 대마도
영토주장이야말로 무궁한 대한민국
의 발전을 기리는 후손으로서 마땅히 되새겨 혼미한
국민정신을 바로 일깨워야겠습니다
◎동해 2.000m 해저 지층에서 캐낸 '불타는 얼음'◎
[Wide Shot] 차세대 에너지 ‘가스 하이드레이트’
입력 2012.05.30 00:25
‘불타는 얼음(Burning Ice)’이 있다. 마술이 아니라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질이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Gas Hydrate)’다.
천연가스가 낮은 온도와 높은 압력에서 물 분자와 결합해 형성된
고체 에너지원으로 주성분은 메탄이다.
알래스카나 시베리아 등 동토 지역의 깊은 땅속과 수심 300m 이상
해저 지층에 존재한다. 전 세계 추정량이 천연가스의 약 100배인 10조t에 이른다.
이 불타는 얼음이 동해바다 속에도 있다.
울릉도와 독도 주변에 6억t가량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내 가스 소비량 30년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우리나라는 2005년부터 가스 하이드레이트 사업단 주관으로 탐사와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2014년까지 시험생산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석유해저연구본부 책임연구 원인 박장준 박사는
“하이드레이트는 연소되면서 물과 이산화탄소밖에 발생하지 않아 청정에너지원이지만 시추 과정에서 메탄이 직접
유출될 경우 지구온난화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21세기 에너지원이 되려면 시추 과정에서 메탄
방출을 막을 수 있는 기술 개발과 안전성 확보가 연구과제로 남아 있다. 박 박사가 2009년 동해 수심 2000m 해저에서
채취한 가스 하이드레이트에 불을 붙이고 있다. 사진에서 흰 얼음처럼 보이는 것이 하이드레이트이고 나머지 부분은 바다 진흙이다.
일본놈들이 독도를 탐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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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마도가 조선 땅이란 공식지도문서를 의도적으로 은폐
미국과 협상에서 국제공인지도로 활용,미국-영국 지도도
"대마도는 조선 땅"으로되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우리 지식인 중 일제 식민지 역사교육을 거치지 않고
서양에서 서양역사를 통해, 구한말 우리 역사와 일본의 한국 영토침탈
과정을 공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이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오래된 해상 경계가 있다”고 한 발언 중
‘오래된 해상경계“는 어디일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11일 열린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주최 제3회이승만 포럼에서 “이 오래된 해상경계는
대마도와 일본 본 섬 사이의 현해탄”이라고 밝혔다.
즉 대마도는 엄연한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주장이다.
0여개 군도)제도에 대한 지도와 해설을 해놓았다.
사진의 지도는 독일인 클라프로토(Klaproth)가
프랑스어로 번역한 것이다.
지도는 대마도가 명백한 한국 영토임을, 색으로 구분해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이 프랑스어 판 지도의 국제적 가치는
호사카 유지 교수(세종대 독도연구센터 소장)의
일본어 논문(三國通覽與地路程全圖』
と‘伊能島’の 中の 獨島. 독도 창간호, 영남대 독도연구소.
2008)과 조선총독부 문서에 잘 기술되어 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당시 일본 정부가 이 지도를 국제공인지도로
활용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일본에 개국을 요구한 미국의 페리는,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할
목적으로 이미 미국인을 군도에 살게 하였고,
이 사실을 들어 막부에 오가사와라를 미국령으로
인정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이에 대해 막부 측은,
임자평의 ‘삼국통람도설’과 그 삽입지도인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삼국접양지도)’를 제시하였는데,
이를 미국이 인정하지 않자, 그 프랑스어판을 제시하여
겨우 미국의 영유권 주장을 물리친 것이다.”
즉 일본은 1861년 2월과 1862년 4월 미국의 해리스(Harris)대사,
영국의 알코크(Alcock) 대사 등 당시 열강 대사들에게 이 지도를
제시하면서, 국제적인 영토 분쟁의 공식 자료로 활용한 것이다.
김 대령은 “이 같은 미일간의 오가사와라 영토분쟁을 해결한 하야시
시헤이에 대해 해설서에는 '모든 일본인은 하야시 헤이시 선생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해야 함. 광격천황께 바쳐져서 원본을 친히 열람하셨음.'이라는 표현이 있어 이 지도를 일본이 공식으로 인정한 것이 증명됐다“
고 강조했다.김 대령은 “대마도가 조선령으로 기록된 삼국접양도를
이토오 히로부미도 알고 있었다”면서 “일본은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고자
증거자료를 없애고 사실과 다른 자료를 19세기부터 지금까지
다량 배포함으로서 우리를 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대령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거나 박물관에 소장된 일본어판
<삼국접양지도>(구글에도 있음)는 물론, 심지어는
일본 극우단체가 제시한 프랑스어판 <삼국접양지도>
조차도 모조품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또 미국 국가기록보존소에 보관돼 있는
미국 페리제독의 1865년 일본 지도를 함께 제시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미 의회 지시로 미-일 조약체결(1858년)에 따라
페리제독의 정찰결과를 토대로 일본의 지도를 작성하도록 지시한
미 국가기록문서소(NARA ; The U.S National Archives and Records Administration)의 당시 기록과, 1862년 미-일 영토협상 후
미국에서 작성된 1864~68년
일본 지도 역시 대마도를 우리 영토로 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당시 영국지도에도 대마도를 우리의 영토로 표기하고 ‘대마도는
일본 영토에서 제외된다’고 지도에 직접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 대령은 “한-. 일간의 해상 국경선은 일본지명사전에도 ‘고래로부터
일본과 한국, 대륙을 연결하는 통로’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현해탄
(玄海灘), 일본은 겐카이나다(玄界灘 )으로 부르고 있는 곳, 즉,
대마도 남단 한참 아래인 이끼섬과 일본 본토 사이”라며
“일본이 현재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는 의도는
대마도의 진실을 숨기기 위한 방패막이로
활용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대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대마도 반환 요구는 아직도
유효하다”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주; (윤정우 씀)
포럼후에 대마도반환추진국민운동을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박수가 나왔습니다.
또한, 일본교과서에 1930년경부터 1945년까지 사용한 지도에,
대마도가 조선땅임을색칠한 지도가 있다는것을 보여 주는
노신사의 발언도 있었습니다.
김대령은 6.25전쟁이 터지자, 이승만대통령은 우선 소련 공산당을
무찌를 때까지일본에 대한 반환요구를 잠시 참자는 발언도 했다고 합니다.
아마, 상세한 포럼내용이 추가 보도 될것으로 봅니다.
최종편집 2011.05.11 18:48:52......
온종림 기자
대마도 반환하라” 이승만, 日에 수십차례 요구
1948년 8월 18일, 대한민국이 건국한 지 3일 뒤 이승만 건국 대통령은 첫 기자회견을 열고 대일 관계에 관해 중대한 발언을 한다.
"우리는 일본에 대마도를 한국에 반환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대마도는 上島及下島(상도와 하도)의 二島(두 섬)로 되어 한일 양국의 중간에 위치한 우리 영토인데 삼백 오십년 전 일본이
불법으로 탈취해 간 것이다."
이 대통령의 이 같은 '대마도 한국 영유권' 발언에 당시 일본 요시다 시게루 내각이 반발하자
이 대통령은 9월 9일엔 '대마도 속령에 관한
성명'을 발표, 영유권을 확인했다고 뉴데일 리가 보도했다.
뉴데일리에 따르면 다음해인 1949년 1월 8일 연두 회견에서 이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마도 반환문제를 강력히 제기한다.
이 대통령은 회견에서 "대일 배상문제는 임진왜란 시부터 기산하여야 한다"며 "특히 대마도는 별개로 하여 취급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마도가 우리 섬이라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거니와 350년 전
일본인들이 그 섬에 침입하여 왔고 도민들을 민병을 일으켜 일본인과
싸웠다"며 "그 역사적 증거는 도민들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마도
여러 곳에 건립했던 비석을 일본인들이 뽑아다가 도쿄박물관에 갖다
둔 것으로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 비석도 찾아올 생각이다. 1870년대에 대마도를
불법적으로 삼킨 일본은 포츠담선언에서 불법으로
소유한 영토를 반환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1949년 12월 31일 대통령 연말기자회견에서
거듭 "대마도는 우리의 실지를 회복하는 것이다. 대마도 문제는
대일 강화회의 석상에서 해결할 수 있으며, 일본이 아무리 억지를
부려도 역사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라고 강력히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했다.
이 같은 이승만 대통령의 요구는 약탈 문화재 반환 요구와 함께 한일회담
협상과 맞물리면서 60여 차례나 이어졌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보도된 국내외 기사들을 살펴보면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의
대마도를 반환받는 것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함께 중국 여론도 이 같은 주장을 지지하고 있었으며, 중국에 거주하는
동포들이 이를 지원하는 대규모 시위를 했던 사실 역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어떤 근거로 대마도가 한국 땅이고 해방-건국과 함께
일본으로부터 돌려받아야 할 실지(失地)라고 주장할 수 있었을까?
김상훈 대령(육군사관학교 군사훈련처장)은 2008년 미국 조지 워싱턴대에
정책 연수를 위해 1년간 머물렀다. 조지 워싱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학부를 마친 곳. 건국대통령에 대한 관심을 갖고 조지 워싱턴대에서
1907년 청년 이승만의 흔적을 찾던 김 대령은 우연히 조지워싱턴대
도서관에서 이승만의 영문 저서 'Japan Inside Out'을 발견하고
탐독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책의 내용 중에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오래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있다'라는 이 대통령의 언급을 발견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으로
나라가 시끄럽던 시절, 김 대령은 이
'한-일 간의 오래 된 명확한 해상경계'가 어디를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승만이 건국대통령에 오른 뒤 기회만 주어지면
"대마도를 불법 점거한 일본은 즉각 반환해야 한다"고
수십 차례나 주장한 그 근거는 무엇인지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수 년 간의 집요한 연구와 추적 끝에 김 대령은 이승만의 '대마도가 한국
영토'라는 주장의 명백한 근거를 찾았다. 그리고 왜 일본이 틈만 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이유도 밝혀냈다.
거리상으로도 우리나라가 훨씬 더 가까운 대마도는
옛날부터 조선인들이 더 많이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대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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