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차전놀이를 볼 수 있는 기회는 1년에 딱 한번이다.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안동민속축제 기간 중 하루 30분여 진행되는 시연행사 때뿐이다. 이 순간을 놓치면 일 년을 꼬박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제41회 안동민속축제와 탈춤페스티벌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5일 오후 2시30분 주무대인 탈춤공원에서 안동차전놀이 시연행사가 펼쳐졌다. 이날 시연에는 차전놀이보존회원과 전수자, 의용소방대원, 안동공업고등학교 학생 등 600여명이 참여해 남성들의 역동적 움직임을 선보였다.
시연이 펼쳐지자 나들이 나온 수천의 인파가 몰리면서 장관을 이뤘다. 용맹한 머리꾼들의 기백과 일사불란한 동채꾼들의 움직임이 구경꾼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관람객들은 안동인의 역동성과 문화재로 이어져 내려온 예술적 극치를 맛봤다.
차전놀이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 전승되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로 매년 정월마다 행해지는 한국 대표 남성놀이 가운데 하나다. 동채싸움이라고도 불리는데 나무로 만든 놀이기구가 동채(동태)인 데서 유래한다.
동채꾼은 대략 대장, 머리꾼, 앞채꾼, 뒤채꾼, 놀이꾼으로 나누고, 두 대장은 이 놀이를 지휘한다. 머리꾼은 동채 앞에 삼각형 형태로 늘어서고, 항상 팔짱을 끼고 어깨로만 상대편을 밀며 이른바 '밀백이'를 한다.
승패가 결정되면 싸움에서 진 진영은 분을 삭이며 짚신으로 땅을 두드린다. 승리한 팀은 소리를 지르며 하늘 높이 신발을 던지며 기쁨을 만끽한다. 이날 시연에선 붉은색의 동부팀이 싸움에서 이겼고, 서부군의 짚신이 파란 하늘에 가득 채웠다. 동채에 오른 두 대장은 그동안 복식연구가들에 의해 고증된 고려 무관복을 착용하고 시연을 펼쳤다.
안동차전놀이의 유래
차전놀이를 일명 동채싸움이라고 하는데,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기원은 천여 년 전 후삼국시대로 추정된다.
후백제의 견훤이 삼국통일의 야망으로 신라를 멸하고 안동으로 진격해 내려오면서 고려 왕건과 싸움을 벌이게 된다. 이때 왕건은 안동지방 호족이던 김선평`권행`장길 등이 함께 도와 병산싸움에서 대승을 거둔다.
그 후 지역민들이 왕건과 견훤의 싸움을 연상시켜 '지게'처럼 생긴 동채 위에서 지역의 가장 덕망있는 장정을 지휘자(대장)로 태워 '동채놀이'를 해왔다고 한다.
어떻게 전승됐나
안동의 남성 대동놀이인 차전놀이는 지역민의 정서가 잘 녹아 있다. 또 나라의 전승을 기념하고, 고장의 평화를 염원하는 '상무정신'이 깃든 세계 몇 안 되는 놀이다.
1608년 조선조 선조가 놀이의 정신을 높이 사 직접 동부`서부 편을 갈라주고 계속 장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중단되었다가, 1966년 안동차전놀이 초대 예능보유자인 고(故) 김명한 선쟁의 주선으로 안동중학교 학생 300여명이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출전,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본격 보급되기 시작했다.
196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됐으며, 그해 사단법인 안동차전놀이보급회가 설립돼 지금껏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차전놀이의 정신
안동차전놀이는 고창전투에서 전쟁이 끝나고 고장에 평화가 되찾아 온 기쁨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 민족의 혼을 상기시키고, 국가적`민족적 차원에서도 가치가 매우 높은 대동놀이다. 협동단결의 규율을 엄수하며, 도의와 정의를 앞세우고 있다.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루는 세계 유일무이의 상무정신도 깃들어 있다. 인근 주민과의 끈끈한 유대로 민심순화와 미풍양속의 기품을 조장하며, 상부상조의 희생정신이 배양된다는 점이 높이 평가된다.
승패를 떠나 양 편이 서로의 회포를 풀고, 아쉬움을 남기며 내년을 기억하며 석별의 정을 나누는 등 인정적인 면이 차전놀이의 덕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