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유태인수용소 아우슈비츠

오토산 2012. 10. 30. 07:30

 

유태인수용소 아우슈비츠(10)

 

제2차세계대전의 비극적인 현장인 폴란드 오쉬비엠칭에 있는

이우슈비츠 유태인수용소가 세계적으로 알려진것은

인간도살장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 6월에 나치 친위대(SS)총사령관 하인리히 힘믈러에 의해

폴란드 기마부대의 군막사를 개조하여 세워진 붉은벽돌의

단층건물로 전체28동이 3열횡대로 열지어 있다.

입구 철문에는 독일어로 ARBEIT MACHT FREI(일하면

자유로워 진다)라고 씌여 있다.

 

비가 잦은 유럽날씨지만 12일간의 여행도중 우산을 쓰고 관광을

한곳은 여기뿐이다. 숙연한분위기를 하늘도 알아주신 모양이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1918)한 독일은 많은 와채상환의

부담을 안고 있었고, 유태교와 기독교의 종교갈등,

유태인들이 유럽사회에서 악덕상업과 고리대금업등으로

노력없는 부를 많이 축적하는데 대한 사회적갈등이 심각한

1933년, 히틀러가 독일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유태인의 상권박탈, 시민권박탈, 공무담임권박탈등

"유태인은 벌레같은민족이다"는 구호로 시민들의 호응을

얻어 갔고 유태인의 학살은 유럽사회의 지지를 받았다.

연합군이 수용소의 위치를 파악하고도 폭파하지 않은

이유도 이런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아무내용도 모르고 끌려와서 무참히 고생하다 학살된 인원은

150만이나 되며 깨스실에서 사망된 인원이 제일 많다고 한다.

깨스실옆에는 화장시설도 같이 있었다. 참혹한 현장이었다.

 

알송달송한마디

참혹한 현장을 관람하면서 우리는 어떨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학살된 우리민족은 얼마나 될까?

중국을 포함한 동남아 전체의 학살인원을 합하면 이보다 적을까?

독일은 전쟁의 패배를 인정하고 주변국들에게 사과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일본은 사과는 커녕 당연시 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궁금할뿐이네요?

 

 

 

 

 

 

 

 

 

 

 

 

 

 

 

 

 

 

 

유류품들 

 

 

 

 침실

 

 

 

탈출반지용 철조망

 

깨스투입구 

 깨스실

황장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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